나무 위 나의 인생 
마거릿 D. 로우먼 지음, 유시주 옮김 / 눌와 / 2002년 3월


책을 읽으면서 내내 1962년의 레이첼 카슨이 떠올랐다. 두 여성 과학자는 미국 태생의 공통점 말고도 여성 과학자, 그것도 생물학에서 희소가치인 존재라는 점도 독특하다. 그 뿐인가. 과학이 저지르는 나쁜 병폐인 성차별은 이 두 여인의 삶에 좌절과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다. 한 사람은 유방암 진통제를 먹으면서 야생을 관찰했고 또 한 사람은 로프를 타고 우듬지 나무 꼭대기 등반을 했다. 두 여성 과학자는 남성들의 빈정거림과 또 다른 부류의‘가사여성’들로부터‘본연의 임무’를 지적당하면서 자신의 꿈을 이뤘다. 그것도 생명의 그물을 지키려는 의지를 확실히 드러내면서. 레이첼 카슨이 유독물질이 환경과 동식물의 생태에 끼치는 영향을 풀기 위해서 한 평생을 투쟁했다면 마거릿 로우먼은 숲의 생명력으로 우리를 안내하는데 현재 진행 중이다.
 
현장 생물학자로서의 저자는 지구상에 남아있는 최후의 생물학적 개척지라 불리는 숲 우듬지를 연구하는 과학자다.‘최후의’생물학적인 장소라는 의미는 인간이 그동안 숲에 저지른 결과를 증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지구 육지의 30%를 덮고 있는 삼림지역은 지구에게 물과 탄소 순환을 제공하며 생존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인류 진화의 발원지가 숲이라고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오늘 숲은 아마존 열대우림부터 민둥산이 된 내 집 뒷동산까지 택지개발, 도로확장, 무분별한 남벌과 농경지 확장과 건설정책, 문명의 창작품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 이 책은 이런 의도적 결론은 한 문장도 제시하지 않는 순수한 여성 생물학자의 자서전적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독자에게 선사하는 뜻은 남다르다. 숲은 더 이상 비밀의 정령들이 사는 은유의 왕국이 아니다. 거기엔 맹독성 강한 파충류와 치명적인 군대개미 종족과 가시나무 잎을 순식간에 갉아먹는 딱정벌레가 산다. 그들을 둘러싼 주변에 덩굴나무가 쭉쭉 뻗어 올라가고 다른 나무에 기생해서 숙주나무를 고사(枯死)시키고 자신의 뿌리를 내리는데 성공하는 무화과나무의 치열한 생존경쟁이 꿈틀댄다. 숲 바닥에 닿는 빛의 양에 따라 숲 바닥 환경이 종의 다양성을 촉진하고 씨앗이 결정되고 발아가 진행되고 새싹이 돋는 숲. 하나의 씨앗이 새싹으로 새싹이 어린나무가 되고 어린나무가 당당한 우듬지 나무로 되는 스펙터클한 시간은 인간의 생리적 감각으로는 측정이 불가능하다.

로우먼도 로프를 타고(나중에는 비행선과 건설용 대형 크레인도 탔지만) 올라간 우듬지를 두고 여전히 미지의 장소라 부른다. 전생치수(前生稚樹)의 나무가 품고 기다려서 부활하는 숲 속의 이야기는 그 현장이 열대삼림이든 온대림이든 툰드라든 생명의 네트워크가 빚어낸 한 편의 비단풍경이 아닐 수 없다. 생존의 투쟁은 지속되지만 숲이 아름다운 이유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지구(푸른 행성 지구의 모든 것을 담은 지구 대백과사전)-사이언스북스 출간, 2006년 10월 펴냄』을 펼쳤다.
몸무게가 3.6kg이나 나가는(체중계로 재어봤다)거대한 대백과사전에 의하면 현재 세계 삼림은 1/4이 사라졌다고 한다. 첫 번째 중요 원인은 1만 년 전의 농경문화 발달 때문이고 그 다음엔 인구의 증가로 인한 경제개발 필요조처에 의해서다. 여기서 흥미 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온대림과 열대림 벌채 절정 시기는 각각 다르다. 온대림은 18세기 전후고 열대림은 20세기 중반이다. 왜 서로 상이한가. 인구는 그동안 꾸준히 증가했고 2008년 현재 세계 인구는 66억 명에 다다른다. 인구증가와 전혀 무관할 수 없는 식민지 개척사업이 삼림벌채의 중요 원인이라고 결론짓는다면 무리일까.

21세기의 문을 연 지금도 국제적인 벌목무역은 아마존 유역과 인도네시아 어느 섬을 황토늪지대로 바꾸고 있다. 영국은 인도 땅에 철도를 가설해서 인도삼림을 민둥산으로 만들었고 케냐에선 다국적기업의 대규모채소농장 운영으로 국민들이 식수고갈로 바짝 말라 부서진 삶을 잇고 있다. 이 이야기는『인간과 환경의 문명사-데이비드 아널드, 2006년 7월, 한길사 출판』에 잘 나온다. 지리학적으로 너무 먼 곳의 이야긴가. 한국도 일제강점기에 그들의 철도에 하염없이 실려 가던 아름드리나무들은 일본군국의 버팀목으로 희생되었다. 골머리 아프게도 정치, 경제, 사회와 연결된 순환 시스템으로서의 환경은 입체 퍼즐카드 맞추기 게임처럼 결론은 하나지만 닿는 과정이 복잡하다.


새 정권마다 경제개발은 언제나 굶주린 시절을 앞세워 흥행사업의 1등주자다. 왈왈 대운하도 알고 보면 뿌리가 깊다. 이 와중에 숲 속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건 최근의 일이다. 배부른 다음 환경이라면 환경의 포식자로서의(얼마나 웃기는 소리인가!) 인간의 삶은 얼마큼 윤택하고 행복해졌는지 행복지수를 따져 물으면 비참하다. 이 책에서도 로우먼은 문명과 원시림의 두 가지 공간을 왕복하는 일을 곤혹스럽다고 토로한다. 카메룬 오지에서 비행선을 타고 우듬지 연구 프로젝트를 마친 후 파리에 도착해 꼬질꼬질한 몸을 씻으며 두 개의 문화를 적응하는 자신을 반추하는 여성 과학자의 심정은 다소 혼란스러워 보인다. 욕조에서의 거품목욕과 푹신한 침대, 얼음을 넣은 음료수와 설탕을 듬뿍 녹인 달콤한 빵은 모두 어디서 온 것들인가.

‘서구 문명의 장식품’을 뒤로 하고 원시림 속에 잠깐 머물다 문명의 세계로 돌아오는 현대인의 고뇌는 꿈과 현실의 양면이다. 그러나 열대우림 보존의 문제에 있어 아프리카 학생들의 교육과 그들의 정부를 교육시키는데 열대우림의 전사활이 걸렸다고 역설하는 대목은 저자가 자본의 제국인 미국 국적의 한계를 느낀다. 그게 현지인의 교육만으로 해결될 단순한 성질의 논제가 아님을 현대는 직면하고 있잖은가.


계몽적 성격을 피할 생각은 없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 무역, 글로벌 체제는 거대자본의 독점과 개발로 아프리카를 빨아 먹는 속도가 가열차다. 생태계가 지니고 있는 복잡한 시스템의 단서를 찾아내는 목적이 지구적 차원의 연구라면 거대시장주의의 전횡을 비껴 갈 수는 없다. 물론 저자는 순전히 현장생물학자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끝내는 가정을 포기했으며 일반 대중들과 소통되는 과학을 보급하는 저자의 노력은 가상하다.

①우듬지 통로 설치 확대②교육, 연구, 사업을 일원화하는 프로그램 개발은 이제 막 삼림정책의 일반소통을 꾀하기 시작하는 우리의 실정에선 부럽다. ③전문연구 프로그램에 자원봉사자 제도를 접목하거나 ④방송국의 현장 탐사 장면을 위성으로 송출해서 학교, 박물관, 교육센터에 생생하게 중계하는 삼차원 시스템과 나의 개인적인 의견 추가로 ⑤더 많은 숲 학교의 상설 운영과 사회적(정부,기업,시민단체)의 유대관계(환경보호 운동과 병행하는 취업문제해결)은 피상적인 생태계 인식으로부터 벗어나 인류의 생존이 한 그물 안에 함께 있는 존재라는 각성까지 도움닫기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지원과 인식적 활용이 숲과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유지해 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전문 생물학 용어와 쉽게 서술된 이 책은 여성의 자아성장 실체의 현장에서 만난 숲 우듬지에 관한 연구서다. 카메라와 노트, 줄자와 거머리 방지용 바지와 비옷, 과학 장비 외에 장난감과 기저귀, 이유식과 젖병을 챙겨서 숲 속의 나무를 오르내리던 씩씩한‘여탐정’은『나를 부르는 숲』의 빌 브라이슨 만큼은 아니지만 유머를 잊지 않고 이야기를 푼다.

-2008년 3월 31일-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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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필순 2017.05.01 0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성호 선생님의 관찰한다는 것을 읽다 마거릿 로우먼에 대하여 검색하게 되어 이곳에 들어왔는데요. 책에 대한 설명에 능동적이고 기발한 의견에 놀라기도 깊은 공감이 일기도 했고 언급하신 레이첼 카슨이나 마거릿 같은 분들이 다루신 것들에 대한 외경이 절로 이네요. 정말 감사한 글이었습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들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