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창문을 열었다. 눈이 그쳤다. 머리맡 불을 켜고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털목도리와 모자와 마스크와 장갑도 챙겼다. 삑~대문 여는 소리에 복순이가 자기 집에서 달려 나온다. 마을은 흰 눈 속에 깊이 잠들고 대낮처럼 환한 눈빛 속에 복순이가 신이 나서 뛰어간다. 길가의 벚나무는 눈옷을 입고 키 작은 관목에 기댄 덤불은 눈 이불을 덮고 있다. 아름드리 굴참나무들이 예기치 못한 한밤의 행인을 보고 잠시 눈을 떴다 감는다.

 

소로우는 월든에서 한겨울 밤 산책을 즐겼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꽁꽁 언 호수를 갔다. 얼음을 깨고 노를 저어 배를 띠웠다. 피리도 불었다. 나는 휘파람을 두어 번 불었다. 마을의 개들이 컹컹 짖는다. 30여분 쯤 눈길을 걷고 집으로 돌아왔다. 복순이 몸에 묻은 눈을 털어주고 마른 타월로 발의 물기도 닦아줬다. 몸과 마음에 서늘한 별 하나 담아 온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 옛 책을 들춘다. 2003년에 읽었으니 꼭 10년만이다.

 

출판사 태학사의 ‘태학산문선’ 가운데 한 권인《나를 돌려다오》는 조선중기 문인 이용휴(1706~1782)와 그의 아들 이가환(1742~1801)의 글을 엮었다. ‘태학산문선’은 문고판으로 고전부터 근대까지의 시산문을 부담없이 엮은 우아한 책이다.

 

 

이씨 부자의 글에서 가장 빈번하게 만나는 글자가 ‘아(我)’, ‘자(自)’, ‘차(此)’다. ‘나’와 ‘여기, 지금’의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이용휴의 문학은 자아에서 출발하여 자아로 귀결된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에 비유되는 ‘네 마음을 물어보라’ 에서 혜환은 이렇게 질문한다.

 

“우(寓)임금도 풍속을 따라 치마를 내려야 했고, 공자님도 남을 따라 사냥을 했어야 했다. 대동(大同)하는 마당에 시세를 위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오로지 남들 하는 대로 따를 것인가?”

 

흔히 대세를 따르는 삶을 보편적 삶의 귀감처럼 여긴다. 그러나 그 대세에의 편승이 닿는 길은 어떤 길일까. 이해타산에 능숙하거나 사회관계에서 원만한 소통을 원하는 것이 대세라면 인간은 어찌하여 이토록 지리멸렬한 삶의 고통과 외로움을 호소하는가. 그래서 혜환은 이치를 따져보라고 권한다. 혜환이 가리키는 이치는 마음에 있다. 마음에게 물어보라.

 

그런데 그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마음의 정체란 무엇인가. 마음이란 생각인가. ‘지금 여기, 생각을 품은 곳’이 마음인가.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에게 혜환은 ‘마음의 실체와 간직하고 나아갈 방향’을 말한다.

 

18세기 조선 문학은 이처럼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며 자아를 드러냈다.《나를 돌려다오》의 제목이 가리키는 ‘나’는 ‘마음’이기도 하고 ‘여기’이기도 하다. 부화뇌동의 몰지각을 지적하는 ‘나를 돌려다오’는 ‘나로 돌아가자’이기도 하다. 책 제목이 책 한 권 전체, 나아가 저자의 사상 전반을 단 한 큐로 드러낸다.

 

이 집은 이 사람이 사는 곳이다. 이곳은 바로 이 나라 이 고을 이 마을이고, 이 사람은 나이 젊고 식견이 높으며 옛글을 좋아하는 기이한 선비다. 만약 그를 찾으려거든 이 기문(記文)으로 들어오라! 그렇지 않으면 비록 쇠 신이 뚫어져라 대지를 두루 돌아다녀도 끝내 찾지 못할 것이다. 此居, 此人居此所也. 此所卽此國此州此里. 此人年少識高耆古文奇士也. 如欲求之, 當於此記. 不然, 雖穿盡鐵鞋, 踏遍大地, 終亦不得也.

 

이글은 어떤 사람의 서재에 붙인 글 ‘차거기(此居記)’다. 원문은 7언 율시 한 편 자수에도 미치지 못하는 53자에 불과하다. 불완전하고 짧은 이 글에서 눈여겨 볼 글자는 ‘지금, 바로 여기’를 뜻하는 ‘차(此)’다. 무려 아홉 번이나 반복 썼다. 이 글은 주자학을 국학으로 모신 조선이 ‘저곳 중국’만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파격적이다. 주자학이 조선을 사실상 지배한 현실에서 ‘이곳의 나’를 말하는 일은 불순한 사상이다.

 

상국(上國) 중국이 주입한 충효사상에서 벗어나 ‘참 나’를 발견하고 ‘이곳’을 논한다는 발상은 ‘사상의 해방’을 뜻한다. 오해가 있을 것 같아서 부연설명을 하자면 혜환은 신분계급 타파나 체제전복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자아탐구와 사회비평을 추구했지만 사대부 출신의 한계를 뚫지는 못했다.

 

혜환은《성호사설》을 쓴 이익의 조카다. 이익은 전통 성리학 답습으로부터 벗어나 실학을 받아들인 실학자다. 혜환은 조실부모하고 숙부 이익의 슬하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실학을 접했다. 명말 좌파 양명학의 거두였던 이탁오의 사상을 받아들인 혜환은 신분 구별 없이 제자를 키웠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우상 이언진이다. 역관출신의 이언진은 조선이 낳은 최고의 반역시인이다. 비록 스물일곱 살에 병사했지만 파격적이고 도발적 시풍은 조선시대 으뜸이다. 혜환은 이언진을 가리켜 ‘오색의 진기한 새’라고 칭송했다. 서울대 국문과 박희병 교수는《저항과 아만》,《골목길 나의 집》,《나는 골목길 부처다》를 통해 이언진을 소개한다.

 

다시, 마음을 묻자. 그 마음이란 것이 대관절 무엇인가. 무엇을 마음이라 하는가.

 

삼십대 초반이었다. 사회생활에 지쳤던 무렵, 한 스님을 만났다. 눈매가 서글서글하고 말수가 적은 비구니였다. 월출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광주의 한 찻집에서 스님과 첫 만남을 가졌다. 편지와 전화로 뜨문뜨문 인사를 나눴다. 스물한 살 때 어머니를 여읜 나는 모정이 그리웠던 것 같다. 스님은 광양 백운산 계곡 절집에 계셨다. 마음에 부침이 심해서 견딜 수 없을 때 일 년에 한 번이나 두 번, 스님을 찾아갔다. 성난 코뿔소처럼 아무 곳이나 들이받 시절이다. 깨지고 멍들고 아팠다. 기형도처럼 세상을 증오한다고 분기를 떨었다. 스님은 고개만 끄덕이며 들어주셨다. 불가에 귀의하라는 말씀을 한 번도 안 하셨다. 그 대신 무심(無心)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정식으로 계를 받지 않고 덜컥 받았다.

 

무심. 마음 없음. 없음은 있음을 전제로 한다. 논리적으로 해석하면 그렇다. 그러나 무심에서의 없음은 있음의 상대가 아니다. 원래 없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완벽한 무다. 생기지도 않았으므로 있을 리가 없다. 씨앗 자체가 없음이며 뿌리가 없음이다. 내 사주에 화려한 언변의 폐(廢)가 진하다고 스님은 말씀하셨다. 당시 나는 화려한 언변을 구사했고 그런 인물들과 교류했다. 가슴 속에 폭풍이 가실 날이 없었다.

 

《나를 돌려다오》에 수록한 글 가운데 혜환의 사상을 압축한 글은 ‘내면을 보는 눈’과 ‘환아잠’이다. 사람의 됨됨이, 바탕, 결을 응시하는 글이다. 특히 제목에 쓰인 ‘환아잠(還我箴)’은 연암 박지원의《재맹아(再盲兒)》,《염재기(念齋記)》와 상통한다. 두 이야기 모두《연암집》에 수록되었다.

 

 

박지원의 재맹아(再盲兒)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한 장님이 길을 가다가 눈을 떴는데 자기 집을 찾아갈 수가 없어서 울고 있었다. 눈을 감고 다니던 길을 눈을 뜨고 못 찾는 것이다. 그러자 화담이 이렇게 답한다.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염재기(念齋記)는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자 방 안의 물건은 그대로 있는데 자신만 사라졌다. 투명인간이라도 된 것일까. 카프카의《변신》에서 그레고리 잠자처럼 자고 일어났더니 내 몸이 달라졌다. 그래서 옷도 안 입고 거리를 헤매며 자신을 찾아다닌다. 급기야 과거시험을 보고 채점까지 자기 마음대로 한다. 송욱이라는 인물의 실화를 기록한 이 글은 자아실종을 지적한다.

 

《재맹아(再盲兒)》와《염재기》, 두 편의 글은 자아를 조명한다. 하지만 질문은 나눌 수 있다. 그래서 눈을 뜨고 난 후 길을 잃은 장님은 다시 눈을 감고 집을 찾아갔을까. 찾아갔다면 계속 장님으로 살았을까. 아니면 집을 찾았으므로 안도감에 다시 눈을 떴을까. 자아를 잃은 미친 남자는 계속 미쳤을까. 무엇이 그 남자를 미치게 만들었을까.

 

18세기는 동서를 막론하고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요동쳤다. 유럽에선 혁명이 일어나고 식민지를 찾고 산업문명이 휘몰아쳤다. 해상제국을 건설한 메디치는 범선을 띄워 청나라 도자기를 유럽으로 실어 날랐다. 중국과 일본이 유럽 문화를 받아들일 때 조선은 밀려오는 새 문명의 파도 앞에서 빗장을 굳게 걸고 의고의 늪에 빠져 사상과 학문과 문화를 고리짝에 가뒀다.

 

혜환의 철학 기반인 ‘자아탐구’도 사상의 변모를 꾀하고 세계와 나의 만남을 향한 열망이다. 중국이 이식한 집단 충효 망상에 예속된 사회에서 숨통이 막혔을 것이다. 하지만 체제개편은 역모다. 따라서 소극적인 저항으로 분출하는 한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자아탐구’로 본다. 내 삶을 종묘사직에 의탁하지 않고 “이 한 몸 다 마치도록 나 자신과 더불어 살겠노라”고 말한 것이다. 혜환의 이 말은 완당 김정희의《자제소조》편에 나오는 “여기 있는 나도 나요”를 연상한다.

 

새 문화의 범람으로 벽(癖)과 치(痴)의 시대에 혜환은 기이한 문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루는 당대의 문장가였지만 정권에서 밀려난 남인출신의 불우함은 몰락을 재촉했다. 재야인사로서 시절을 원망도 하련만 혜환의 산문에서는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박한 세상을 한탄하지 않는다. 글에서 시니컬함은 찾을 수 없다. 문장은 건조하지만 따듯함을 유지한다.

 

시대와의 불화에 울분하지 않았던 혜환은 철저히 ‘나’를 세상의 중심에 두고 문학을 완성했다. 혜환의 제자 이언진의 분노와 증오와 고통으로 얼룩진 시문과는 극적으로 대비된다. 사회진출 좌절과 지배층의 부패와 안일함에 이언진은 격렬한 광기를 감추지 않았다. 두 사람은 사제 간이었지만 사대부와 중인의 계급 차이가 글에 투사된다.

 

짧으면서 핵심을 한 방에 찌르는 혜환의 산문은 일침견혈(一針見血)이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수사법에 얽매인 조선수필이 18세기 들어 환골탈태했다. 구체적이고 사실적 묘사와 개인의 가치를 논하는 18세기 문화 격동기 중심에 혜환이 있다.

 

혜환의 문장을 일컬어 사암 정약용은 ‘지금껏 조선에 없었던 문장’이라고 극찬한다. 이덕무는《우상전》에서 신령스러움을 갖추었다고 혜환을 평한다.《회인시》에서 박제가는 연꽃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것과 흡사한 문장가라고 평했다.

 

공자의 인(仁)이란 인(人)을 말한다는 혜환 문학의 아이콘은 ‘참 나’다. 혜환은 ‘참 나’를 ‘집’에 비유했다.《나를 돌려다오》에 등장하는 ‘집’은 다음과 같다. ‘마음속에 그려본 집, 살구나무 아래 작은 집, 내 집, 화가가 사는 집, 온화한 집’에서 ‘집은 ‘마음의 거처’를 말한다. 혜환의 글에 따르자면 마음이 사는 곳은 ‘집’이다.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말한다. 세계의 중심은 나다. 이렇게 방정식을 만들다보니 마음이란 유형이 아니다. 유동하고 변화한다. 거처가 일정하지 않다. 물처럼, 바람처럼,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그래서 마음은 쉽게 변한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혜환의 ‘마음 거처’ 비유는 ‘조물주에게 집을 사다’로 완성된다. 조물주는 신이다. 신은 우주 저 어딘가에 있다. 어디일까. 혹시 변화무쌍한 인간의 마음은 아닐까. 광활하고 변화무쌍하지만 원래 형체가 없는 곳, 무심(無心). 무원(無原). 무형(無形). 아, 이건 말장난이다. 말이 말을 낳았다.

 

 

 

모두 2부로 구성된《나를 돌려다오1부는 혜환의 독특한 문장이 신선하고 2부는 금대 이가환의 산문이 수록되었다. 이가환은 정계에 몸담고 있는 관료 입장에서 관료임용제도 폐단과 당파에 관한 의중을 밝힌다. 이가환 문장은 혜환 보다 힘이 넘치지만 응결된 울림을 전달하는 힘은 약하다. 이가환은 천주교 신자였다. 게다가 증조부 이잠이 숙종 때 노론을 공격한 전력으로 정조 사후 노론의 포화를 맞아 옥사했다. 명민한 소장파 정치인들이 역사의 폭풍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진 시대였다.

 

혜환은 역관 이언진뿐만 아니라 천민출신 시인 이단전(?~1790)의 글을 높이 인정했다. 신분의 벽을 넘어 문학 재능을 먼저 알아본 것이다. “제 스스로의 목소리로 우는 가을벌레의 울음소리가 혀가 잘린 앵무새의 노래보다 나은 법”이라고 했던 ‘백옥같은 문장가’다.

 

이용휴가 지목한 ‘차(此)’는 ‘마음이 닿은 지점’이다. 이 짧은 기문은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타자, 하나의 물체에 지나지 않는 나를 당당한 현실의 주인으로 끌어당긴다. 내 마음의 주인은 나다. 내 몸의 주인도 나다. 나는 나다. 이런 등식을 성립하는 혜환의 문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로부터 멀어지지 않는다. 혜환은 피(彼)로써 현상을 보지 말고 차(此)로써 세상을 볼 것을 독자에게 주문한다.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건만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란다. 마음을 모르는데 풍경 너머 풍경, 재현(在現)너머 재현을 상상할 수조차 없는 아득한 정월이다.

 

그래서 결국 내가 선택한 건 마음 탐구를 미루고 ‘생각과 시선’을 연결했다. 수락석출(水落石出). 물이 빠지고 나면 돌이 드러난다. 투명한 상태. 그것이 진아(眞我)인지 고작 나이 오십을 바라보면서 나는 모른다.

 

 

 

 

조선의 저항시인 우상 이언진(1)

 

조선의 저항시인 우상 이언진(2)

 

조선의 저항시인 우상 이언진(3)

 

참고 :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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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근운 2017.11.02 1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언진 검색하다가 우연히 들러 글을 읽었어요, 자주 올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