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리수 열매

 

시골사람들은 울타리 곁, 밭 둑, 논 둑, 동네 길 어귀에 저 스스로 씨가 묻혀 자라는 식물에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농사짓는 일이 우선인지라 살가운 손길을 거둘 새 없습니다. 그래서 보리수, 오디, 개살구, 개복숭아, 야생 밤이 저절로 열매 맺고 혼자 떨어집니다. 도시와는 다르게 시골은 나무가 흔하니까 귀한 대접을 덜 받습니다. 지난해까지 구장님 댁 밭 둑에 서 있던 개복숭아 나무가 올해는 베어지고 밑둥치만 남았더군요. 개복숭아는 약을 안 쳐서 벌레가 많고 씨알이 작지만 매실과는 다르게 씨까지 폐에 좋은 약이라고 합니다. 구장님네 개복숭아가 베어지면서 흠내골에선 이젠 야생 개복숭아 나무가 멸종됐습니다. 2년 전엔 산 길에서 발견한 개복숭아 몇 알로 효소를 담가 먹었는데 지난 해 간벌작업으로 사라졌더군요.

 

4년 전, 옆 집에서 밭 둑에 보리수 나무를 심었습니다. 이듬해부터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보리수 나무를 심은 사람은 열매를 방치하고 있지 뭐에요. 농익은 열매가 땅으로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면서 혼자 애간장만 끓였습니다. 새빨갛고 통통한 테스의 입술’(토머스 하디 소설 ‘테스’-나스타샤 킨스키 주연 영화)처럼 관능미를 뽐내는 열매입니다. 이 매혹적인 붉은 열매를 훔치고 싶은 사람은 근방에 저 외에는 없는 듯 합니다. 안 되겠다 싶어 옆 집 남자 허락을 받아 효소를 담가 먹었습니다. 보리수 열매는 앵두보다 크고 타원형입니다. 맛은 약간 시큼하며  답니다. 앵두보다 물컹하고 씨앗도 큽니다.

 

                                               ⊙오디 열매(까만 열매가 익은 겁니다)

 

 

시골살이 하면서 야생 오디를 먹는 일은 큰 즐거움입니다. 오디가 뭐냐고요? 뽕나무 열매입니다. 누에고치가 좋아하는 그 뽕나무 맞습니다. 연한 잎은 말려서 차로 끓여 먹거나 찹쌀풀을 입혀 부각으로 만들어 먹습니다. 6월 경에 흰 열매가 맺히고 빨개졌다가 검게 익으면 따 먹습니다. 마을회관 모퉁이 돌아 이장님 댁 지나면서 한동안 재미있게 따 먹었던 키 작은 뽕나무는 벌써 베어졌습니다. 논 둑에 그늘 만들고 예초기로 풀 베거나 농약 주는데 방해된다고 합니다. 성가신거죠. 

 

이렇게 작업에 방해되고 성가시고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야생 뽕나무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산뽕나무는 숲에서 자라지만 마을 입구 논 둑이나 밭 둑에 난 뽕나무는 가차없이 베어집니다. 하물며 땅 주인이 바뀌어 컨테이너 박스가 덜컥 실려오면 빈 집을 지키던 나무도 함께 사라집니다. 새 주인은 굴착기를 불러 반반하게 터를 다지고 울타리 나무를 전기톱으로 벱니다. 뽕나무, 닥나무, 산초나무, 감나무, 은행나무가 잘려 나가는 걸 지켜본 적이 있어요. 나무가 잘려나간 자리는 시멘트 블록 담장이 세웠습니다. 한 가족과 추억을 나눴던 나무는 이렇게 생을 달리합니다.

 

꿀처럼 단 오디를 손으로 따먹으면 손과 입이 새까맣게 물듭니다. 색소가 진하거든요. 요즘은 재배 농가 증가로  쇼핑몰에서 비싸게 팔립니다. 저는 다행이 방목장 옆에 야생 뽕나무 몇 그루가 있어서 원 없이 먹습니다. 약은 한 방울도 안쳐서 가끔 가루 진딧물이 하얗게 피지만 6월초만 되면 마음이 설레입니다. 매일 매일 오디가 언제 익나 들여다 봅니다. 저녁을 먹고 일곱시가 넘어 한 시간 가량 산책을 나갑니다. 농로에 농익은 오디가 떨어져 땅바닥을 검게 물들입니다. 떨어진 오디를 아깝게 여기는 사람은 저처럼 농삿일에 한갓진 한량 뿐, 노인들은 허리 펼 틈 없이 바쁩니다. 흠내골에서 길 가던 걸음 멈추고 오디 따먹는 인간은 저 혼자 입니다.

 

지천으로 떨어진 오디가 아까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뽕나무 아래 포장막을 쫙 펼쳐놓고 장대로 나무를 두들겨 후두둑 떨어지는 오디를 받습니다. 잘 여문 오디를 선별해서 선글라스를 쓰고 장날에 내다 팔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사 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읍내 장날에 한 아주머니가 야생 오디를 파는 걸 봤어요. 붉고 검은 오디가 섞인 것으로 보아 장날 아침 일찍 열매를 거둔 것 같습니다. 애석하게도 아무도 오디를 사지 않았어요.

 

말린 가재미 한 봉지를 들고 물어봤더니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군요. 마을 길을 검게 물들여도 눈길을 주지 않는 오디를 누가 돈 주고 사겠습니까. 아주머니는 상술이 어두웠던거지요. 하지만 야생 오디를 팔아 가용돈을 마련하려는 살림살이는 어떻겠습니까. 촌에선 밭때기로 농작물 넘기지 않는 이상 현금 만지는 일이 드물거든요.

 

                                           ⊙수확한 양파더미 앞에서 폼 잡는 복순이

 

오디가 농익을 무렵이면 감자와 마늘과 양파를 캡니다. 곧 장마가 닥칩니다. 감자는 초봄에 심고 마늘과 양파는 이전해 심어요. 김장 끝나고 심는 마늘과 양파는 겨울을 밭에서 납니다. 그래서 얼지 말라고 비닐이나 왕겨, 볏짚을 덮습니다.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추위를 견디며 단단한 알뿌리를 맺지요. 마늘과 양파는 혹독한 시련을 이겨내고 봄에 싹을 피워요. 마늘과 양파의 매운 맛은 매운 걸 먹고 매운 세상을 견디라는 뜻일까요.

 

저도 약간의 마늘과 양파를 지난해 늦가을 심었습니다. 사람이 게으르고 눈썰미가 없다 보니까 작황이 미덥지 않은데 이번에는 꽤 성공한 것 같아요. 육종 마늘을 세 접(3백 개), 양파는 2백여 개 수확했습니다.

 

마늘은 늘 실패해서 벌레가 먹어 성치 않거나 씨알이 작았습니다. 꼭 저처럼 부실하고 부족한 듯해서 되는 일 없는 인간이 뭐 그렇지 체념했지요. 그런데 하늘이 한 번 은혜를 베풀려는 듯 올해는 좋은 마늘을 주셨네요.

 

옛사람들은 음력 5월 5일 난 마늘을 좋게 치고 4월 초파일에는 마늘을 안 먹었다더군요. 음력 5월 5일은 단오날입니다. 대지에 양기가 가득해서 알곡이 성성할 때죠. 초파일은 부처님 생일이고 금욕을 본으로 삼은 불가에선 자극성 강한 마늘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이 날만은 세속에서도 종교적 배려를 했던 모양입니다.

 

 

마늘과 양파를 캔 밭에 들깨를 심을 예정입니다. 밤나무는 밤꽃이 활짝 피고 샛노란 오이꽃도 활짝 피었어요. 풋고추가 맺히고 옥수수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집니다. 마을 노인들은 내남없이 허리 구부려 일합니다. 해가 저물고 어스름할 때까지 들일을 하지요. 초저녁 샛별이 동산에 떠올라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경운기 시동을 겁니다. 앞을 분간 할 수 없으니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습니다. 70대 이상이 대다수인 촌에선 들에 제초제를 뿌리고 비닐을 씌웁니다. 노쇠한 체력으론 무겁고 위험한 예초기 작업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논 둑과 밭 둑에 제초제를 뿌리고 불을 놓아 풀을 죽입니다. 토양을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훼손시키지만 나무 등걸처럼 굵고 상처 투성이의 노인 손마디를 보면 착잡합니다. 

 

                                                                 ⊙오목눈이 둥지

 

 

염소 방목장 한 군데를 한 달여 동안 폐쇄했더니 새가 집을 지었더군요. 오목눈이 집입니다. 오목눈이는 참새목 오목눈이 작은 새 입니다. 몸길이가 14cm이고 한 번에 일곱개에서 열 개 가량의 알을 낳아요. 4월에서 6월에 산란하는데 뻐꾸기가 얌체처럼 둥지를 차지해 자기 알을 낳지요. 

 

알이 섞인 줄 모르는 어미 오목눈이는 알을 품어 새끼를 부화시킵니다. 알에서 먼저 부화한 새끼 뻐꾸기는 아직 부화하지 않은 오목눈이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뜨립니다. 결국, 오목눈이는 자기보다 덩치 큰 뻐꾸기 새끼가 자기 새끼인 줄 알고 몸이 부서져라 먹이를 구해 먹입니다. 그리고 아까시 꽃이 한창 필 무렵, 뻐꾹 뻐꾹 뻐꾸기 어미가 제 새끼를 찾아 부릅니다. l’m, your mother!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보다 텃밭 농사를 짓는 일을 더 못하고 세상을 읽는 일에 더 서투른 채 속절없이, 부질없이, 뜨겁게 6월이 지나갑니다.


  

 

 

 


Posted by 윤미화
TAG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