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끝이 열린다

물이 불었다

황금빛 언덕에 그늘이 진다

산, 산에 골안개

초원의 외로운 천막이 바람에 펄럭인다

가축몰이는 끝이 났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

망설임

문위로 달이 더디 돋는다

음력 이십오일이 가까웠다

암소가 이리저리 다니다가 초원에서 밤을 지낸다

젖이 줄어드는 때가 가까웠다

발바닥 아래서 나뭇잎이 바스락

가을풀이 말랐다

앞쪽 게르를 향해 가만히 살핀다

남몰래 정이 들었다

 

                                                        이스돌람 -만추(晩秋)-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갑니다. 코스모스가 피고 바람이 부쩍 차가워졌어요. 엇그제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속절없이 한 계절을 보냅니다. 벚나무는 무성했던 잎을 떨궈냅니다. 봄에는 화사한 꽃을 피우고 여름엔 새까만 버찌를 맺었지요. 태양이 조금씩 열기를 거둬가고 바람이 자주 지나가는 9월, 나무는 홀연히 몸을 드러냅니다.

 

산책 길에 만난 은행나무도 초록에서 연두색으로 변하더니 이제는 노란색이 짙어지고 있더군요. 특히 달밤에 보는 노란색은 더 밝습니다. 주변 어둠이 상대적으로 노란색을 반사해주지요. 내년 봄밤에 개나리를 한 번 보세요. 작고 갸녀린 꽃, 한 송이 한송이가 크리스마스 트리 꼬마 전구처럼 함초롬히 피었습니다.

 

14세기 일본 승려이자 와카(和歌) 대가였던 요시다 겐코가 쓴《도연초》(무료하고 쓸쓸(徒然)하여 쓴 수필(草))(을유문화사. 2004.9)라는 산문집에는 활짝 핀 꽃 뿐만 아니라 지는 꽃과 시든 꽃마저 의미를 부여합니다.

 

어떤 여자 분이, “아무리 걸어 두어도 소용없네. 함께 볼 사람 없는 시든 접시꽃을”이라고 읊은 것도, 안채에 걸린 발에 치장했던 말라 버린 접시꽃을 읊은 것이라고, 그녀의 와카집에 써 있다. 옛 와카의 머리말에도 “시든 접시꽃에 붙여서 보내다.”라는 예가 있다.《마쿠라노소시》(지만지. 2012.3)에도, “지나간 날들이 그리워지는 것, 축제 후의 말라 버린 접시꽃”이라 썼는데, 참으로 마음이 끌린다.

 

와카(和歌)는 일본 궁정문학의 일종으로 31음으로 짓는 단가(短歌)입니다. 17음으로 짓는 하이쿠보다 두 배 가량 길지요. 짧은 한 문단으로 이해하면 좋겠군요. 와카는 궁정문화 소산물이지만 불교적 색채가 강합니다. 자연풍경이나 계절변화, 남녀의 정리를 노래했지만 인생의 허무와 욕심없는 소탈한 삶을 지향한 문학입니다. 차분하고 섬세한 묘사는 가을에 읽기 가장 좋습니다.

 

 

 

9월이 가기 전에 마지막 옥수수와 고추를 갈무리했습니다. 올해 옥수수는 두 번 심었습니다. 초봄에 한 번, 6월 말에 한 번. 초봄에 심은 옥수수는 7월부터 8월까지 요긴한 주전부리였고 6월 말에 심은 옥수수는 9월에 열매를 맺습니다. 가을 옥수수인 셈이지요. 한여름 태양과 비와 바람과 열기를 받고 살 찌운 옥수수는 답니다. 제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깊은 밤, 옥수수는 소리 없이 몸을 부풀렸을겁니다. 

 

말캉말캉한 옥수수는 소금간을 심심하게 한 후 쪄서 냉동실에 넣어 두고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에 먹습니다. 별미입니다. 딱딱해진 옥수수는 볕에 이틀 정도 바짝 말려서 알갱이를 떼어 놨다 뻥튀기를 해 먹어요. 장날에 뻥튀기 아저씨가 오시거든요.

 

옥수수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옥수수는 옥시기, 강냉이로 불리지요. 대만 고산족 원주민 태아족은 옥수수 부위 명칭이 15개에 달한답니다. 산간벽지에서 벼나 밀과 같은 작물재배가 쉽지 않았으니 옥수수는 귀한 식량이었겠지요. 그래서 주식인 옥수수는 다른 작물에 비해 풍성한 이름을 부여 받은 듯 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우리나라는 옥수수 부위별 명칭을 대략 일곱 개로 분류하더군요. 

 

가을 농사는 부지깽이라도 빌려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름 동안 짓던 작물을 갈무리해야 하거든요. 일은 많고 일손은 부족하니 부지깽이 손이라도 도와달라는 뜻입니다. 울타리에는 밤이 영글고 논에는 벼가 영급니다. 밤과 벼가 통통 살이 오를 때 수련지에 갔습니다. 연꽃은 아침에 피는 꽃이에요. 10시가 넘으면 꽃잎이 오무라듭니다. 친구와 다른 볼일을 먼저 보고 늦게 갔더니 수련지 연꽃은 수줍은 듯 몸을 닫았습니다. 그래도 넓고 시원한 연잎이 연못 가득 파란 기운을 드러냅니다. 연꽃이 진 자리에는 씨방이 크게 생기고 그마저 쇠락하면 나무 등걸처럼 뻣뻣한 흔적이 남지요. 모든 생명체의 질서는 나고 피고 지는 순서를 밟습니다. 그래서 연꽃 씨방은 홀가분해 보입니다. 

 

 

 

미풍이 노래를 허공으로 실어가고

음률은 지나는 구름에  감겨 날아가네

 

춤추며 노래하는 미녀를 읊은 이백이 지은 시입니다. 목소리가 얼마나 낭랑했으면 허공으로 실어간다고 표현했을까요. 음률은 부드럽게 고저장단을 맞췄는지 구름과 함께 날아간답니다. 이런 미녀를 대하면 한참 동안 넋을 놓고 보고 싶겠지요. 더 간절히는 곁에 두고 싶을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녀는 오래 머물지 않았나 보네요. 그 다음 편을 볼까요.

 

여운이 강을 건너 멀어져가네

하늘 가장자리에 이르니 어찌 다시 찾을까

 

미녀는 멀어져갔답니다. 게다가 다시 만날 기약이 없었나 봐요. 요즘말로 전번을 못 딴 채 헤어지고 말았군요. 아쉽고 서운하고 속절없겠지요. 계절 가운데 여름만큼 아쉬운 계절도 없습니다. 봄은 겨울 끝에 기다린 설레임이 있고, 가을은 스산한 정취가 듭니다. 겨울은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추위에 대비하는 마음을 단단이 가지지요. 그런데 여름을 보내는 즈음엔 그 지겹던 더위마저 이상하게 아쉽습니다. 마음껏 열기를 분출하던 여름은 뜨거움을 기억합니다. 뜨거움은 열정이지요. 열정을 발산할 때는 못느끼지만 열정이 끝나갈 무렵엔 못다한 열정이 못내 아쉬워 멈칫멈칫 돌아보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길에는 어느새 국화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길에 핀 국화를 처음 본 것도 아니건만 9월에 보는 국화는 감각이 다릅니다. 가을 초입에 피는 국화는 늦가을까지 길모퉁이마다 노란 불을 밝힐 겁니다. 새벽길을 나서는 청소부에게 첫인사를 하고 학교 가는 아이들과 손길을 닿겠지요. 저처럼 일 없는 사람은 국화 앞에 허리를 구부리고 킁킁 냄새를 맡거나 살포시 꽃잎을 어루만지겠군요. 국화 냄새를 맡으면 내적으로 가을이 찌르르 감지됩니다. 국화는 가을의 전령입니다.

 

여름이 직설적으로 찾아 온 만남이라면 9월은 두드러지지 않게 스치 듯한 만남입니다. 여름은 강렬하고 가을은 담백합니다. 참으로 이상하지요. 단풍은 온 산을 물들이고 오곡은 들판을 물들이는데 마음은 고요를 향해 있습니다. 스스로 비워지는 준비를 할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여름은 뜨겁고 숨가쁘게 잉태하고 열매를 맺었나 봅니다. 가을은 어떤 계절일까요. 가을은 조금씩 희미해지는 계절입니다. 가을은 투명한 코발트를 가볍지만 진실하게 풀어 놓는 계절입니다.

 

짙은 것은 다하여 메말라지나

담백한 것은 점점 더 깊어진다.

 

중국 시집 사공도(司空圖)에 나오는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에 나오는 싯구입니다. 여름 꽃이 지면 가을 꽃이 피 듯, 꽃잎은 떨어져도 담담한 마음은 국화를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9월에 쓴 이 편지를 당신은 10월에 받겠군요. 아, 맨 앞의 시 만추(晩秋)를 지은 ‘이스돌람’은 몽골 시인입니다.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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