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앙골’은 ‘꽃이 피는 봉우리’가 모인 화봉리(花峯里) 가운데 마을이다.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으로 오늘날까지 ‘중가(中加)’마을로 부른다. ‘중가(中加)’에서 짐작하듯 ‘상가(上加)’와 ‘하가(下加)’ 마을이 있다. 그래서 화봉리 둘레 사람들은 상, 중, 하 어디에 산다고 말한다. 면사무소 홈페이지에서 소개한 지명유래에 따르면, 새앙골은 좋은 샘(상수도가 없던 옛날에는 ‘샘’이라고 불린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시고 썼다)이 있다고 해서 새암골로 부르다가 새앙골로 변했단다.


새앙골은 집에서 직선거리 1.4km, 걸어서 20분. 길을 따라 가면 계산이 다르다. 1.81km, 걸어서 27분 걸린다. 왕복 한 시간 남짓 가볍게 걷는 거리다. 그러나 새앙골 가는 길은 자작나무 숲이 나오거나 확 트인 들녘에 눈맛이 시원한 길이 아니다. 처음 이 길을 따라 갔던 7년 전만 해도 언덕과 둔덕을 휘감고 걷던 조용한 시골마을이었다. 지금은 상태가 변했다. 


오늘날 한국 농촌은 웬델 베리가 포트윌리엄(가상의 마을)을 무대로 쓴〈그 먼 땅〉(《온 삶을 먹다》(낮은산. 이한중 옮김. 2011.10)에 수록한 단편소설) 처럼 직접 농사 지은 작물로 음식을 만들어 온식구가 모여 먹는 일은 흔치 않다. 웬델 베리는 연회 같은 식사 장면을 일컬어 이렇게 말한다. “전쟁과 파괴적 산업화에 부단히 의존한 20세기 문명으로 모든 게 바뀌어버리기 이전의 옛날식 가족생활과 환대” 환대는 환영하여 맞이한다는 뜻이다. 새앙골에는 아직 그런 집이 있을까? 

 


집에서 나와 새앙골을 가려면 찻길을 걸어야 한다. 한적한 찻길이지만 신경을 바짝 세운다. 농공단지에서 나오는 화물트럭과 지나가는 자가용이 쌩쌩 달린다. 시골 찻길은 교통사고가 잦다. 지나다니는 자동차가 적으므로 과속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걸어 다닐만한 안전한 길이 없다. 게다가 찻길을 내느라고 산줄기를 끊은 바람에 길을 건너던 고라니나 너구리가 로드킬을 당한다. 갈림길이 나온다. 프루스트의 두 갈래 길처럼 나도 선택을 해야 한다. 오른쪽 길은 농공단지로 가는 길이고 왼쪽 길은 변전소를 지난다. 왼쪽 길로 걸음을 옮긴다. 새앙골 가는 지름길이다.


3년 전 복순이(필자가 집에서 키우는 개)   이 고갯길에서 상처가 생겼다. 덤불 속에 있던 꿩이 인기척을 느끼고 후드득 날아갔다. 쏜살같이 덤불 속으로 뛰어 든 복순이가 낑낑 거리며 빠져 나오지 못하길래 안아서 꺼내 놓고 발바닥을 봤다. 밤가시가 깊이 박혔다. 족히 3센티는 넘어 보였다. 이를 악물고 확 뽑았다. 그날 새앙골을 가지 못했다. 보름쯤 지나 상처가 낫자 복순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노래를 부르며 고갯길에 들어서는데 다시 찻길로 꽁무니를 빼며 달아는 게 아닌가. 가시에 찔렸던 게 된통 혼이 났나보다. 그날 새앙골을 또 못 갔다. 



고개를 넘으면 길 오른쪽으로 양계장이 턱하니 나타난다. 샌드위치 판넬 건물은 살림채까지 합해 모두 여섯동이다. 살림채 앞에는 개 두 마리가 묶여 있다. 개가 짖으면 동남아시아 노동자로 보이는 일꾼이 유리창으로 내다 본다. 여름에도 사육장 문에는 검은 차광망이 땅까지 내려 있다. 안이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닭울음 소리가 귀청을 찢는다. 양계장 닭이 닭을 잡는 공장으로 가고, 공장에서 나온 알몸 닭은 ‘치킨’으로 개명한다. 개는 짖고, 닭은 소리치고, 대형 팬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안 그래도 심란해서 걸음을 재촉한다. 2년 전 일이다. 고구마와 고추를 심던 밭에 덤프트럭이 흙을 실어 날라 쏟아 부었다. 돈벌이가 안 된 밭임자가 양계장에 임대를 줬거나 땅을 팔았을 것이다. 


양계장 맞은편에는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변전소가 우뚝 서 있다. 3년 됐다. 변전소 뒤 작은 봉우리로 쪼르륵 고압선 송전탑이 연결됐다. 내가 사는 흠내골은 봉우리 너머에 있다. 고압선 송전탑이 생긴다고 처음 말이 나왔을 때 마을에는 ‘결사 반대! 고압선 송전탑!’ 이라고 쓴 현수막이 걸렸었다. 1년 넘게 설왕설래했다. 반대 의견은 어느새 타협으로 바뀌고 협상에 나섰다. 경주 최씨 집성촌에서 나처럼 ‘외지것’(이사 온 사람)은 발언권이 없다. 문중 땅을 내 준 대가로 한전은 마을 통장에 7천만 원을 입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들은 관광버스를 불러 놀러 다녔다. 



고압선 송전탑은 둘레 어디에서나 가장 먼저, 가장 잘 보인다. 송전탑 건립을 두고 노인들은 말을 쏟아내어 홍수를 이뤘다. 나라에서 하는 일인데 무슨 명분으로 반대하냐고 했다. 설마하니 암에 걸리겠냐고 했다. 서울 사는 자식들 전기 쓰려면 고향 길 터줘야 한다고 했다. 그 앞에서 밀양 송전탑 반대 이야기와 원자력 발전소는 운도 못 뗐다. 나중에는 가관이었다. 병에 걸리면 한전에서 가만 있겠느냐는 말을 누군가 했다. 나라에서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느냐는 망언 앞에서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고 설득할 힘도 없었다. 더 이상 노인들과 말을 섞지 않았다. 비겁하다. 산봉우리에 만고불변의 사령탑처럼 우뚝 솟은 쇠붙이만이 쓸쓸한 들녘을 굽어 볼 것이다.


고압선 송전탑을 뒤로 하고 상념에 젖어 걷다보면 드디어 상가 마을과 중가 마을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닿는다.(빨간 코트를 입은 필자가 거울 안에 있다) 사진 정면으로 곧장 가면 새앙골이다. 새앙골은 집단 촌락이 아니다. 집이 모여 있지 않고 몇 채씩 띄엄띄엄 떨어졌다. 그래서 한 마을이라도 면적이 넓다. 충청도 특징이다. 평야가 넓은 전라도 마을이 앞집 뒤집 담장이 붙어 있는 것과 대조된다. 새앙골은 둔덕과 길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어서 사진 한 장에 담을 수 없다. 




상가 마을 안내판을 지나 둔덕으로 올라오면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 보인다. 송전탑 너머 흠내골이 있다. 지금쯤 복순이는 무얼 하고 있을까. 비닐 하우스 안에 들어가 쥐를 잡는다고 온 몸에 볏짚을 묻히고 있을까. 현관 앞에서 턱을 괴고 잠을 잘까. 둔덕에 올라 송전탑을 보고 있으면 두고 온 고향을 떠올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높이는 너머를 생각하게 한다. 불가항력적인 것, 가늠하기 어려운 것, 그러나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것이 너머에 있다. 인간은 너머를 궁리하며 상상을 하고 꿈을 갖는다. 그래서 꿈은 ‘너머를 넘을 때’ 실현된다.


둔덕에서 내려와 길 아래로 접어 들면 오른쪽으로 빈집이 나온다. 면사무소에서 붙인 도로명 주소판이 대문 기둥에 붙었다. 혼자 살던 할머니는 자식이 있는 도시로 가셨을까. 하늘로 가셨을까. 고향으로 돌아와 살림을 꾸릴 자식이 없다. 샛노란 들녘에서 뛰어놀고, 감나무에 매달린 연시를 따먹고, 눈길을 뚫고 학교 가던 옛일을 기억할 뿐이다. 추억은 남폿불처럼 희미하게 깜박이다 사라진다. 굳게 닫힌 대문은 녹이 슬고 담벼락은 잡풀이 엉겨 붙고 사위는 적막하다. 빈집 맞은편 화봉 교회가 늦가을 햇볕에 몸을 말리고 있다. 단출하고 담백한 한 덩어리 백설기처럼 순정하고 어여쁘다.



화봉 교회에서 이십여 걸음 걸으면 마을 회관이다. 새앙골에 왔다. 현판에는 ‘중가 마을’이라고 써 있다. 옛 건물에도 새앙골 표기가 없다. 새앙골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때마침 지나가는 경운기가 있어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 여기가 새앙골 맞나요? 노인은 경운기를 세우고 대답 대신 물었다. 어서 오셨수? ‘외지것’ 같아 보였나 보다. 여차저차 말을 했다. 노인이 고개를 돌려 손으로 마을 끝자락 배추밭 너머를 가리킨다. 저짝 가에(저쪽 끝에), 이짝 가에(이쪽 끝에) 샘이 좋았쥬. 시방 죄다 수도 쓰니께 아주 고리쩍 얘긴데 소싯적에는 물이 좋고 잘 나왔슈. 허허 새앙골 찾는 사람을 수십 년 만에 처음 봐유. 



여기에 샘이 있었을까.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리던 샘은 자취가 없다. 조립식으로 지은 건축회사 사무실이 샘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지는 않다.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 마을에는 공동우물이 있었다. 산길에는 샘이 있었다고 한다. 시멘트가 산업근대화를 치장하기 이전, 샘은 한국인의 목을 축이고 몸을 씻기고 마음을 헹구던 장소였다. 카타르시스의 원형이자 고대를 계승한 유일한 보존물이었다. 그리고 근대화 나팔 소리에 맞춰 갑자기 퇴물 처리됐다. 샘물을 마시던 사람들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나왔다. 돈은 편했다. 그리고 그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이 일을 했다. 샘은 어디로 갔을까. 버려진 농기계가 밭가에서 녹슬고 있다. 비가 오면 녹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농협은 아담하다. 지소다. 직원은 두 명, 많아야 세 명이다. 주말에는 한 명이 출근한다.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든 말든 알 리 없고 알 바 없는 외진 마을에 주말에 무슨 돈 쓸 일이 있을까마는 세상일은 모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직원은 자리를 비웠고 노인이 앉아 있다. 얼굴은 한아름 버짐이 피고 이가 다 빠져 뺨은 푹 꺼졌다. 총기를 잃은 뿌연 눈동자로 텔레비전을 본다. 연속극은 부모 자식간에 한창 언성을 높이고 있다. 자동인출기에서 얼마간 돈을 찾고 나올 때까지 노인은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마트에서 흰우유와 죠리퐁 한 봉지를 사서 가방에 넣었다. 거스름돈을 지갑에 넣는데 직원이 묻는다. 못 보던 분이세요. 저차여차 말했다. 걸어서 왔다고 했더니 놀란다. 30여 분 거리다. 하기사 시골이야말로 걷는 사람 보기 어렵다. 일부러 시간 내어 걸을 이유를 모르고 인도가 없는 찻길은 위험하다. 노인은 걷고 싶어도 기력이 딸린다. 중·장년층은 트럭을 몬다. 흠내골에서 새앙골까지 걸어 오는 사람은 나 외에는 없다. 학교와 병원과 시장은 읍내에 있고, 면사무소와 보건소와 우체국은 흠내골에 있기 때문이다. 마을마다 특화 사업이라고 한가지씩 있는 게 대세다. 흠내골이 그렇듯 새앙골도 특화가 없다. 정부에서는 특화하면 지원금을 준다. 문제는 정작 팔 걷어 부치고 일 할 젊은피가 없다. 


마을에 샘이 사라지자 젊은이도 사라졌다. 획획 달려가는 세상에서 5년 후 새앙골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자즌닭이 울어서 술국을 끓이는 듯하 추탕鰍湯집의 부엌은 뜨수할 것같이 불이 뿌연히 밝다


초롱이 히근하니 물지게꾼이 우물로 가며

별 사이에 바라보는 그믐달은 눈물이 어리었다


행길에는 선장 대여가는 장꾼들의 종이등燈에 나귀눈이 빛났다

어데서 서러웁게 목탁을 두드리는 집이 있다


_백석.  시「미명계(未明界」_



미명계 :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땅

자즌닭 : 자주자주 우는 새벽닭

히근하니 : 희뿌옇게

선장 : 이른 장








Posted by 윤미화
TAG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