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황동규, ‘시월’ 에서-




시월이면 늘 떠오르는 시입니다. 일년 열두 달에서 ‘시월’은 ‘9월’ 다음에 오는 달입니다. 그런데 아라비아 숫자 순서로 ‘10월’이라고 하기보다 ‘시월’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시월’은 꽃과 나무, 숲과 바다, 산과 들이 조금씩 빛깔이 바래고 사위어가기 직전, 풍요롭고 풍성한 자태에서 조락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안톤 슈낙은《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에세이에서 가을을 슬픈 조락의 계절로 쓸쓸히 담아냅니다. “정원의 한편 구석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러나 가을은 일년 가운데 가장 화려한 색을 띠는 계절이며 시월은 지나온 계절을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는 달이기도 합니다. 황동규 시인이 쓴 시 ‘시월’ 마지막 연은 이렇게 끝납니다.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 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땅콩과 고구마도 캤고 고추도 다 땄습니다. 집일 몇가지를 마치고 모처럼 홀가분하게 마실길에 나섭니다. 논마다 샛노란 나락이 햇살을 받아 출렁이는데 멀리서 보면 금붙이를 붙여 놓은 것처럼 반짝반짝합니다. 그래서 가을녘 나락을 보면서 옛사람은 ‘금싸라기 논’이라고 불렀나 봅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올해 가뭄이 심합니다. 그럼에도 제 몸을 곧추 세워 버틴 덕에 낟알이 토실토실합니다. 할머니 손바닥처럼 바삭바삭합니다. 조만간 바심을 할 것입니다. 금싸라기 들길을 거닐때면 가슴을 분탕질쳤던 소란이 고자누룩해집니다. 이 길을 걷고 싶은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황동규, ‘즐거운 편지’에서-





순박한 시골처녀여 나에게 손을 흔들지 마오. 내가 탄 마차가 지나가면 당신은 흙먼지를 뒤집어쓴다네.

가슴속으로 파고들어봐야 나는 악마. 사랑을 아는 말티즈들은 떨어져 나가겠지


거짓으로 사랑하였으나 목 놓아 울었네. 이 계절이 다 가도록 세느 강에 똥물이 흐른다 해도 세느…… 이 아름다운 발음을 멈출 수는 없겠지.

                                        -황병승, ‘모래밭에 던져진 당신의 반지가 태양 아래 C, 노래하듯이’에서-


황병승 시인은 악마같은 자기에게 눈길을 주지 말라고, 자기는 그렇고 그런 시부랑탕이라고 하는 걸까요. 그러나 이 남자도 아주 구제불능은 아닌가 봅니다. 비록 한때 정념으로 사랑한 체 했으나 상대방이 보여줬던 진정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직 순정을 버리진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풋내기였던 시절, 섣부른 사랑 이야기를 다 캐내서 뭐하겠습니까마는 그래서 황동규 시인은 ‘시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

두견이 우는 숲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木琴소리 木琴소리 木琴소리






‘시월’ 이맘때 시골길을 걷다보면 해사한 풍경을 봅니다. 여름내내 푸른잎이 오밀조밀 돋을새김처럼 어여뻤던 느릅나무 잎은 빛깔이 바래서 한지로 만든 종이잎처럼 바삭바삭합니다. 햇살이 많이 닿았던 잎부터 서서히 엽록소가 퇴화되더군요. 맑고 투명해서 자꾸 만지작거립니다. 들길에는 보들보들했던 강아지풀이 엷은 갈색으로 변했습니다. 바람이 살랑살랑 스치면 바스락 소리를 냅니다. 아직 베지 않은 들깨는 느릅나무 잎처럼 점점 빛깔이 바래지고 있군요. 뜨거운 태양아래 샛파란 잎을 성성히 뽐내던 들깻잎도 시간의 흐름에 가만히 몸을 낮춥니다.


참 해사합니다.





‘시월’인데 토마토는 여전히 빨갛게 익습니다. 아침 저녁에는 찬기운이 지붕을 덮지만 낮에는 햇살이 따듯합니다. 서늘한 하늘아래 달고 깊은 맛이 익어 갑니다. 토마토 줄기는 시들었지만 못다한 정념을 불태우고 싶은 걸까요. 샛빨간 토마토는 에덴의 동쪽에서 추방당한 저항의 맛입니다. 과일도 아닌 것이 과일처럼 생겼고 과일처럼 행세하는 장렬히 버림받은, 그러나 그런 까닭에 질긴 생명을 얻은 도저한 기운이 토마토에 있습니다.  




면민 체육대회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이 이어 달리기를 합니다. 바톤을 먼저 받은 아이가 뒤따라 오는 친구와 같이 달리겠다고 기다려서 모두 웃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뒤에 달려오던 친구가 앞질러 가는 촌극이 빚어졌지요. 뒤처진 아이는 그래도 좋다고 웃고 앞지른 친구는 나중에 들어온 친구 땀을 닦아주며 웃습니다. 어른들은 사랑을 모르면서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시월’은 일년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해맑고 심장이 가장 부들부들해지는 달입니다. 햇빛이 해맑기로는 ‘시월’만한 달이 없습니다. 우리가 겪었거나 겪을 어둠을 지켜줄 오랜 얼굴입니다. 시골에서 십년을 사는 동안 ‘시월’에는 아무 곳에도 가고 싶지 않게 되었습니다.

 





▼ 참고 시집 













1 황동규《삼남에 내리는 눈》.민음사.1975년 1월

2 황병승《육체쇼와 전집》.문학과지성사. 2013년 5월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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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별동네 2015.10.19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편의 근사한 가을 서시를 읽는거 같아요.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2. 솔뫼 2015.10.20 0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동규 시인의 삼남에 내리는 눈 시집을 보니 반갑습니다. 한창 좋아했던 시인이었죠. 인용하신 시월도 외웠었는데. 사진이 차분하니 좋습니다.

  3. 정우진 2015.10.20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와 가을. 간만에 참 푸근해지네요. 잘 지내시죠? 이래저래 SNS 끊고 살다 보니, 샘 근황도 지나치고 살았네요. 뉘엿뉘엿 해가 지는 어느 어름, 수다 떨면 참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