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읍내 장터 뻥튀기

(흰쌀, 옥수수, 율무, 보리 등 2킬로그램에 삯이 5천원 든다)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앞산과 뒷산과 들과 길이 눈에 쌓였습니다. 며칠째 쌀쌀합니다. 어찌나 추운지 대문이 꽁꽁 얼어 열리지 않을 정도입니다. 영하 10도가 넘는 강추위라고 하더군요. 마을에는 인적이 끊기고 먹이를 찾아 산에서 내려온 고라니나 너구리가 들녘에서 서성댑니다. 물이 고여 있는 논에는 얼음이 꽝꽝 얼었습니다. 고라니나 너구리가 굶지는 않는지 괜히 조바심이 납니다. 먹이가 부족하기로는 가끔 날아오는 재두루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에는 눈이 쌓여서 도토리같은 열매나 풀씨를 먹지 못할 것입니다. 논은 볏짚까지 얼어서 얼음을 깨기가 쉽지 않습니다. 없는 사람에게 그렇듯 야생 짐승에게도 겨울은 가혹한 계절입니다.


집 근처에 호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호수가 있으면 청둥오리나 재두루미 중대백로와 같은 새들이 많이 날아올 것 같습니다. 고라니가 물 먹으러 올지도 모릅니다. 물론 한겨울에는 호수마저 얼어버리면 난감하겠지요. 소로우는 1850년 2월 4일 월든에 도끼를 들고 나가 호수를 깼다고 합니다. 어서 봄을 맞이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얼음을 깨면 표면 아래 물이 드러나고 얼음은 그 둘레를 조금씩 녹이겠지요. 그리고 봄기운이 조금씩 다가올 즈음 호수는 팽팽한 북을 치는것처럼 크게 울린다고 합니다. 얼음이 깨지는 소리를 두고 소로우는 “호수의 천둥소리”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큰 호수라도 대기 변화에 시험관 속 수은처럼 민감하다고 합니다. 호수 얼음이 우는 소리 들어보셨어요?



《월든》을 조금 더 볼까요. 언 호수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면 소로우는 호수로 나가 벌집 모양으로 갈라지기 시작하는 호수 위를 걸었다고 합니다. 구두 굽 자국이 남았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녹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알다시피 소로우는 측량기사였습니다. 그래서 월든 둘레를 재고 깊이를 계산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호수 온도까지 쟀습니다. 1847년 3월 6일에 월든 호수 한가운데 온도계를 집어넣었는데 화씨 32도였다고 합니다. 화씨 32도는 섭씨 0도로 빙점을 가리킵니다. 물가 근처는 화씨 33도였고 물가에서 60미터 안쪽으로 들어간 얼음 밑 얕은 물속은 화시 36도, 즉 섭씨 영상 2도였다고 합니다. 머지않아 봄이 올 징후입니다.


호수가 없는 마을에 사는 저는 대신 눈길을 걷기 좋아합니다. 두꺼운 패딩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칭칭 두르고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조금 둔한 걸음걸이로 눈길을 걷습니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는 고양이가 갸르릉갸르릉 대는 소리처럼 귀엽습니다. 시골은 도시처럼 눈앞을 가리는 큰 건물이나 자동차가 엉킨 길이 없습니다. 백미터, 이백미터, 심지어 오백미터까지 앞을 볼 수 있습니다. 소로우처럼 한밤중에 호수에 나가 배를 띄우지는 못하지만 걷는데 장애물이 없으니 세심한 풍경에 저절로 눈길이 갑니다. 눈길을 걸으며 눈길을 주는 마른 풀 한포기를 만납니다. 부드러운 눈속에 파묻힌 갈색 마른풀은 얼음물 속에 발을 담그고 유유히 헤엄치는 되강오리처럼 의연합니다. 


 

넓은 마을길을 가로질러 논길이 나오기 직전에 만난 이 꼿꼿한 정념’은 온몸으로 겨울을 관통하는 중입니다. 시들었으니까 죽은풀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땅에 뿌리를 박은 채 풍화작용을 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입니다. 봄이 오면 죽은 것 같은 이 풀은 되살아납니다. 영원불멸 태생이라도 한 것일까요. 거짓말이 아닙니다. 보이시나요? 짙은 갈색으로 변색된 줄기에 매달린 수많은 씨앗 주머니를요. 아프로디테 입김을 받은것처럼 봄기운이 먼 곳에서 달려오면 눈이 녹고 마른풀은 땅위로 제 몸을 누입니다. 봄비가 내리고 봄볕이 쬐이고 봄바람을 맞으며 땅에 떨어진 씨앗은 참새 혓바닥같은 자그마한 연초록 새순을 틔우지요.


 


소로우는 얼음에도 결이 있다고 합니다. 얼음덩어리에 금이 가면서 벌집모양이 되면 얼음 안에 많은 기포가 생긴다고 하는군요. 수면하고 직각을 이룬 기포는 바닥에 반사된 태양열과 만나 얼음을 녹이는데 가속도를 보탤겁니다. 얼음 속에 들어있는 공기방울인 기포가 집열렌즈 역할을 해서 밑에 얼음을 녹이는 작용을 한다는 말입니다. 호수가 없는 마을에 사는 저는 대신 처마에 고드름이 맺힌 추운 아침에 뜰에 나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카메라가 후져서 잘 나오지 않았지만 제 눈에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성에입니다. 사실 이 얼음꽃은 풀에게는 잔혹한 현상입니다. 사람 눈에는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지만 차가운 얼음덩어리를 몸에 단 풀잎은 얼마나 춥겠습니까. 소로우는 “얼음은 흥미로운 명상 대상이다”로 했습니다. 아침햇살이 높이 떠오르면 얼음꽃은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태양열에 녹아서 물이 됩니다. 밤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면 다시 풀잎은 얼음을 달고 사람이 알수없는 농밀한 밤을 보내겠지요.



시골에 사는 겨울맛은 뜨듯한 집안에 들어앉아 구진한 입을 달래주는데 있습니다. 가게가 멀고 딱히 이렇다할 주문배달이 없으므로 만들어 먹는 게 일이지요. 읍내 장날에 나가 튀겨온 쌀튀밥에 집에 있던 해바라기씨와 검은깨를 섞고 물엿에 버무려 강정을 만들었습니다. 들며날며 집어 먹기에 좋아요. 점심에 밥상 차리기 귀찮을 때는 가을에 갈무리해서 냉장고에 넣어둔 밤과 옥수수를 쪄 먹어요. 가끔 찹쌀을 쪄서 인절미를 만들기도 합니다. 양념절구에 빻은 찐찹쌀은 곱게 빻아지지 않아 밥알갱이가 쫀득쫀득 씹힙니다. 한산모시처럼 투명하고 밝은 눈길을 걷고 돌아와 겨울맛에 몸을 풀다보면 얼음이 풀리고 봄이 조금씩 오겠지요. 



▼ 참고도서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은이)/강승영(옮긴이)/은행나무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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