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0년대 파리 6구 오데옹 거리에 실비아 비치가 운영했던 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




한국서점조합회가 발간하는《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등록한 동네 책방은 1559곳이라고 한다. 2013년에 비해 66곳이 줄었지만 새로 등록하는 책방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여전히 장사는 잘 안되지만 한편에서는 관심이 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온라인에서 쉽고 빠르게 책을 구매하거나 가까운 공공도서관에 희망 도서를 신청하면 될 일을 왜 동네 책방을 찾는 것일까? 아니, 다른 무엇보다 1년 평균 독서량이 한권 겨우 넘고,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은 책을 안 읽는다는 통계를 보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대체 동네 책방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전국 스물아홉 곳 책방을 취재하고 인터뷰한《우리, 독립책방》북노마드 편집부 엮음. 북노마드. 2015.12 서문에서 발행인은 독립책방에 대한 바람을 이렇게 밝힌다. “기존 상업출판이 눈여겨보지 않는 ‘출판물’을 직접 ‘제작’하고 ‘유통’시키는 ‘공간’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그 ‘예술 실천’의 과정에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어떤 가치들이 꿈틀거리면 좋겠습니다.”


정리하면 기획, 제작, 유통을 독립책방 한곳에서 맡을 수 있는 문화 인프라를 염원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부연하자면 ‘동네 책방’은 독립책방, 북카페, 작은 책방 등 운영 방식에 따라 이름이 갈린다. 큰 틀에서 보면 동네 책방은 책만 파는 곳과 다른 행사를 곁들이는 혼합 형태로 나눌 수 있다.《우리, 독립책방》에서도 맥주나 커피를 파는 책방, 출판을 겸한 책방, 저자와의 만남이나 전시 같은 문화 콘텐츠를 겸한 책방을 소개한다.

 

‘술 먹는 책방’으로 알려진 상암동 ‘북바이북 BOOK BY BOOK’은 ‘책맥’ 책을 보면서 맥주를 마신다는 뜻 이라는 말을 회자시킨 책방이다. 대개 책방은 책을 주 종목으로 판매하면서 음료를 제공하거나 판매하면서 고전적 형태의 책방에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술이나 음료를 함께 파는 책방을 찾는 손님들은 대개 책을 좋아한다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술이나 차를 마시면서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책 구매로 연결된다는 게 공통 의견이다.

 

술이나 차를 파는 대신 출판이나 전시를 하는 책방은 책방의 진화라고 볼 수 있다. 기존 책방이 책만 파는 공간이었다면 요즘 동네 책방은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지방이나 서울이나 책이 안 팔리는 건 똑같아서 재정 상황은 좋지 않다.《우리, 독립책방》에서 인터뷰에 응한 책방 지기들 대부분이 어려운 재정 상황을 토로한다. 가장 큰 원인은 책이 안 팔린다는 것이고, 다음으로 임대료 부담이 책방 운영에 힘든 점이다. 동네 책방 대개가 영세 자본으로 출발한다. 그러다보니 초기 적자를 억제하느라 다른 일을 병행하는 사례를 자주 접한다.

 

회사원, 사진가, 잡지 에디터 등 다른 직업을 갖고 책방을 꾸리는 지기들은 임대료와 매출을 저울질하며 부지런히 일한다. 책이 좋아 책방을 열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은 것이다. 생존과 열정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그럼에도 책방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한결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책방은 이야기가 모이는 곳”, “누구나 들어와서 쉬었다 가는 곳”, “만남의 장소”, “오래 머물고 싶은 곳” 이 책방이다. 책방 ‘무사’를 연 가수 요조는 책방의 정체성을 이렇게 말한다.

 

“저 같은 경우는 음악 하는 사람들하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할 때 그런 작당의 즐거움에 빠지곤 하거든요. 우리 나중에 이런 앨범 만들어볼까? 이런 공연 해볼까?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도 해보면서요. 거기에서 사는 재미가 느끼고, 정체 모를 에너지를 얻어요. 요즘 그 감정을 책방에서 느끼고 있어요.”

 

동네 책방에서 만나 음악 이야기도 하고 소설이며 시를 읽고 인문학을 토론하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심지어 독립출판물을 만들고 판매하기까지 이르렀다. 규모는 작지만 할 건 다 하는 셈이다. 게다가 맥주나 커피까지 마실 수 있다면 수다 떨며 작당하는 곳으로 안성맞춤이다. 집에서 만들어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떠는 책방도 있다. 독일 함부르크 라디오 방송국 프리랜서 작가가 연 책방 이야기이다.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페트라 하르틀리프 지음. 류동수 옮김. 솔빛길. 2015.8 는 빈에 책방을 열고 동네 주민들과 어울리며 책방을 꾸린 체험담이다. 어느 날 빈에 여행을 갔다가 계획에 없던 책방을 인수한 부부는 주민들의 호응과 출판계 협조를 받아 동네 책방을 성공적으로 꾸린다. 우여곡절이 있기로는 어디나 마찬가지이지만 이 실화에는 열악한 독서문화와 폐쇄적인 출판풍토라는 두 가지 악재를 가진 우리나라에 생각할 점을 던져준다.

 

폐업한 책방을 열 때 주민들 대개가 찾아와서 반가워했다. 동네 책방은 지역 주민의 문화 자긍심을 나타낸다고 여긴 것이다. 문화에 대한 의식이 열려있는 상태에서 책방은 가장 쉽게 접하는 문화 최전선이다. 한 나라의 시민 의식 수준을 문화를 대하는 인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회는 다양한 인식이 공유되고 인정되는 사회일 것이다. 책은 문화의 척후병이자 증표로써 누구나, 거의 아무 장애 없이 접할 수 있다.스트리아에서는 이런 의식 수준이 시스템에 정착되어 책방 사업자 등록이나 보증 없이 주문만 하면 도매상에서 책방에 책을 제공한다고 한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선매입을 요구하는 우리나라 실정이 대비된다. 탄탄한 문화 인프라가 구축된 상황에서 책방이 지역 주민의 자긍심을 자극하는 건 당연하다.《우리, 독립책방》에 소개된 포항의 ‘달팽이 북스앤티’ 책방이 이런 경우이다. 최근 1~2년 사이 술집과 원룸만 있던 골목에 대학생들이 만든 커뮤니티 카페와 작은 카레집, 젊은 업주가 운영하는 술집 등 작은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책을 매개로 작은 가게들이 공존하는 관계가 된 셈이다. 책방은 동종업끼리 연결되어도 좋지만 다른 업종과도 공생이 가능하다. 책은 옷이나 음식, 주방가구와는 완전히 다른 문화 상품이자 타업종 사업에 경쟁이나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가장 작은 책방으로 알려진 오키나와에 있는 헌책방 ‘울랄라 ウララ’는 반찬가게와 옷가게 사이에 있다. 다다미 세 장 크기로 사람 세 명만 들어차면 꽉 찬다.《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우다 도모코 지음. 김민정 옮김. 효형출판. 2015.12 는 도쿄 대형서점 직원인 저자가 오키나와 지점으로 발령 나고 2년 가까이 일하다가 아예 헌책방 주인이 된 실화이다. 우리나라 동네 책방 규모보다 더 작은 헌책방을 열기까지 지역 주민에게 많은 조력을 받는 점이 인상 깊다. 본토에서 먼 섬이지만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이 없으면 책방을 지지하고 반길 수 없다.

 

전국 각지에서 헌책 경매 시장이 열리는 일본은 출판사까지 섬에 있다고 한다. 본토에서 멀기 때문에 배송료가 비싸고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는 운송에 악조건이다. 그래서 기획과 출판과 유통을 오키나와 자체에서 원스톱시스템 one stop system 을 갖춘 것이다. 독자와 가깝게 만나는 체계이다 보니 책을 읽는 사람이 많은 건 당연하다. 책을 읽는 사람이 많으면 책 구입 장소가 많이 생긴다. 그래서 오키나와에서는 떡집이나 우산 가게에서까지 책 주문을 받는다고 한다. “오키나와에서 책은 특별한 물건이 아니었다. 오키나와만의 특별한 풍토가 키운 하나의 특산물처럼 여겨졌다.” 지역 특성을 갖췄거나 관광객을 겨냥한 판매 전략도 동네 책방 운영에 귀담아 들을 부분이다.


▲ 오키나와 헌책방 ‘울랄라 ウララ


기억에 따르면 2000년대 초기부터 온라인 서점이 부흥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 즈음부터 온라인 서점을 이용했다. 어쩌다 지역 책방을 찾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온라인 서점에 책을 주문했다. 선택부터 결재와 배송까지 깔끔하게 간편했다. 게다가 온라인 서점에서 제공하는 할인과 적립금에 귀가 솔깃했다. 편리함에 길들여져 온라인 마일리지를 쌓는 동안 동네 책방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가끔 동네 책방이 그립다. 책방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야릇한 설렘, 뜻밖에 다른 책을 발견하는 기쁨, 책장을 살포시 넘기던 예민하고 단정한 손놀림, 옆 사람이 뒤적이는 책을 흘깃 넘겨보는 호기심, 무엇보다 고른 책을 품에 안고 오던 두근거림을 잊을 수 없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프랜차이즈가 골목상권까지 진출하면서 동네 작은 가게가 사라졌다. 세탁소, 복덕방, 동네슈퍼, 문구점, 반찬가게, 과일가게, 빵집, 등등 헤아릴 수 없다. 책방도 예외가 아니다.

 

20세기 초 파리 오데옹 거리에서 명성을 떨치던 책방들은 파리를 문화의 상징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실비아 비치가 문을 연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Shakespeare and Company’ 에는 소설가와 시인과 음악가가 모여 당대 문화를 토론했다. 독자들은 책방 언저리에 모여 풍성한 문화를 수혈 받았다. 제임스 조이스는 이곳에서《율리시스》를 출판했고 헤밍웨이는 파리에 머문 7년 동안 단골 고객이었다. 


우리에게는 20세기 초 파리에 버금가는 동네 책방이 많다. 한 지역에 동네 책방이 몇개인지를 보면 문화 수준과 사회 인식 상태가 가늠된다. 군부독재 시대에 피폐한 현실을 견디게 해 준 것도 골목마다 문을 열었던 동네 책방이었다. 그곳은 압제 피난처였으며 민주 기도처였다. 만남 장소이자 공유 결집체인 허브였고 사상과 문학을 재생산하는 출처였다. 경제성장만 외치면 무엇이든 다 해결될 것처럼 호도하는 구호에 세뇌 당하는 동안 정작 우리가 잊었거나 잃은 것은 무엇일까.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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