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 7월 9일 이한열 열사 장례식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주인이 종을 깔보자

종이 주인의 모가지를 베어버리더라

바로 그 낫으로.

-‘낫’, 김남주-



 

‘집회’, ‘시위’‘데모’를 사전에서  찾으면 뜻이 조금씩 다르다.

 

1. 집회(集會, gathering, congregation) :  다수의 사람들이 특정의 목적을 가지고 특정의 장소에 일시적으로 모이는 것

2. 시위(示威, demonstration, protest)위력이나 기세를 떨쳐 보임, 집회나 행진을 하며 위력을 나타내는 일

3. 데모( demo, demonstration) : 반대항의ㆍ시위ㆍ반항의 의사를 집단적으로 가두행진에 의해 나타내는 집단행동을 가리킨다. 통상 깃발이나 현수막을 들고 리듬을 타면서 슬로건을 외치는 집단의 힘을, 특히 공공도로, 공원, 광장이나 정부청사 앞 등에서 실행한다. 때로는 합창이 되고, 때로는 연좌의 항의 행동이 된다


⊙ 가라타니 고진의 〈9·11 원전 반대 시위〉연설문 ⊙

 저는 지난 2011년 4월부터 원전 반대 시위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이 신주쿠 역 앞의 집회에도 6·11 탈원전 데모 때문에 온 적이 있습니다.

 시위에 참가하고 난 뒤부터 데모에 관해 여러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질문들은 거의 모두가 부정적인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데모를 해서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이지요. 이에 대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데모를 힘으로써 사회를 바꾸는 것은 틀림없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데모를 함으로써 일본 사회는 사람들이 ‘데모를 하는 사회’로 바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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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모는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입니다. 데모가 불가능하다면 국민은 주권자가 아니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20년 전까지 데모가 불가능했습니다. 군사정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군사정권을 쓰러뜨리고 국민주권을 실현했습니다. 데모로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데모를 포기할 리가 없습니다.

 그럼 일본에서는 왜 데모가 적은 것일까요? 왜 데모를 이상한 짓이라고 생각할까요? 왜냐하면 국민주권을 자신들의 힘으로 투쟁하여 획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인은 전후에 국민주권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패전에 의한 것이었고 사실상 점령군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바로 데모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받은 또 하나의 질문은 “데모 이외에도 방법이 있지 않은가”하는 것입니다. 물론 데모 이외에도 여러 수단이 있습니다. 먼저 선거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수단이 있지요.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것은 데모입니다. 데모가 있기 때문에 그 외의 방법들이 유효했던 것입니다. 데모가 없으면 그와 같은 것들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일 겁니다.

 나아가 저는 “이대로 데모가 시들해지지 않겠는가”하는 질문도 받습니다. 전후 일본에서 전국적 규모의 데모가 수차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속되지 못했고 패배로 끝났습니다. 앞선 질문은 이번의 데모도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라는 의문이지요.

 분명 그런 우려는 있습니다. 대중매체에서는 이미 “후쿠시마 사고는 수습되었다. 지금 당장 경제부흥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후쿠시마에서는 아무것도 수습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국이나 미디어는 사고가 수습된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사실을 감추고 그다지 큰 사고는 없었던 것처럼 가장했던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으니까요.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싶어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앞으로 원전 반대 시위가 시들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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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건 잘못된 것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제대로 수습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당장에는 수습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앞으로 피폭자의 병세가 뚜렷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또한 후쿠시마 주민들은 영원히 고향과 이별하게 될 것입니다. 즉 우리들이 잊으려고 해도, 그리고 실제로 잊었다 해도, 원전 사고와 관련된 일은 집요하게 우리를 따라다닐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첫째, 원전 반대 운동은 오랜 기간 계속될 것이고, 둘째, 그것이 원전에만 그치지 않고 일본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나갑시다.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 ‘후쿠시마 원전’을 한국의 ‘세월호 참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입해서 읽어도 내용이나 맥락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집회’를 할 것인지, ‘데모’를 해야 할 것인지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국민주권’은 데모에서 나온다는 말을 믿는다면 말이다.


▲1996년 8월 26일 군형법상 반란 수괴 혐의로 법정에 선 전두환·노태우


⊙ 이 사진을 보면서 지금 헌법을 유린하고 국정을 농단한 핵심 인물 두 명을 떠올린다.






※ 참고도서 : 《가능성의 중심》: 인디고 연구소, 가라타니 고진 지음/궁리/2015년 6월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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