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밍걸(2013년)


“큰 말들 틈서 뛰는 모습, 성실히 사는 소시민 같다.”

-‘차밍걸’ 마주 변영남씨 인터뷰(2013년 5월 26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불만이면 종목을 갈아타야지. 남의 욕하기 바쁘니 아무리 다른 거 한들 어디 성공하겠니?”


2014년 최순실(개명 후 : 최서연) 딸 정유라(개명 전 : 정유연)는 위와 같은 글을 SNS에 올렸다. 먹고 살만한 집 자식이 못사는 집 자식을 비웃는 거야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그러기 전에 자기 부모가 어떤 방법으로 부자가 되었는지 알 바 아니라는 의식이 짙다. 물론 부자라고 해서 무조건 지탄 대상은 아니다. 성실하고 정직한 부자는 사회 귀감이 된다. 게다가 공익에 기여한다면 ‘부의 가치’가 올라가고 ‘부의 의미’는 긍정적 효과를 얻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정직한 부자는 점점 보기 어렵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에는 다른 행성에 사는 것처럼 접근이 어려워졌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빈부 양극화 심화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주장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IMF 유산인 비정규직이나 명퇴, 가계부채 증가와 맞물린 빈곤은 청년과 노인을 구분하지 않고 삶을 ‘살아 견디는 일’로 내몰았다. 그렇다고 모두 IMF 탓으로 돌리면 IMF는 억울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오래전부터 방법과 과정 대신 목적과 결과에만 투신했다. 서울을 가려면 정당한 절차를 거쳐 온당한 방법으로 가야 하는데 모로 가는, 이를테면 자동차를 훔치거나 기차에 무임승차하거나 여비를 강도질하든 목적에 이르는 과정을 무시했다. 어쨌든 목적만 이루면 나중일은 이해가 되고 용서를 받고 심지어 선망 대상까지 됐다. 서울은 입신양명 종착지처럼 말이다. 오죽하면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까지 생겼다.


나중에는 말까지 서울로 갔다. 제주도에서 2005년 3월 4일 태어난 작은 말이 있다. 다른 말 보다 키도 작고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이나 적게 나갔다. 덩치가 턱없이 작아 허드렛일을 하거나 관광용 승마로 살 처지였다. 마주의 빚 대신 서울로 보내진 말은 과천 승마 경기장에서 경주마로 뛴다. 성적은 처절했다. 8년 동안 101번 경주에 나섰지만 우승한 적이 없다. 덩치 크고 잘 달리는 말에 밀려 하위권에 머물렀다. 사람들은 성적이 안 좋은 이 말을 ‘똥말’이라고 불렀다.


똥말은 8년 동안 뛰면서 한 번도 상위권에 링크된 적이 없다. 트랙에 나서면 객석에서는 야유가 들렸고 마주와 기수는 고개를 숙였다. 성적이 안 좋다보니 똥말에게 승부를 거는 사람도 적었다. 그러나 똥말은 뒤처지면 포기할 만도 한데 끝까지 달렸다. 꼴찌를 하는 날에도 중간에 그만두는 법이 없었다. 마치 완주가 목표인 것처럼 말이다. 자기 몸보다 두 배 가까이 큰 말들 틈에 끼여 꿋꿋이 달린 똥말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모여 ‘똥말 팬클럽’을 만들었다.


똥말은 101번째 경기를 마지막으로 경주마에서 은퇴했다. 팬들이 마련한 은퇴식에서조차 우승 한 번 하지 못한 말에게 무슨 은퇴식이냐고 관중은 욕을 했다. 성공한 인물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사회 이면을 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 차밍걸(6번)이 달리는 모습


똥말에 관한 책이 두 권 있다.《위대한 똥말》(서석영 지음. 허구 그림. 바우솔. 2015년 1월)은 어린이 책이고 《101번의 아름다운 도전》(이해준 지음. 중앙북스. 2014년 3월)은 오랫동안 똥말을 취재한 중앙일보 이해준 기자가 취재기를 엮었다. 1등, 성공, 최고만을 지향하고 강조하는 사회에서 그늘에 가려진 대상에게 조명을 비춘 이야기다.


동화작가 서석영이 쓴《위대한 똥말》에서는 똥말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가 주인공이다. 키는 작고 공부나 운동도 못한다.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하는 누나와 비교를 당하며 자신감을 잃고 자포자기 심정이 강했다. 실직한 아버지가 편의점을 차려 바쁜 와중에 한 달에 한번 똥말 경기를 보러 가는데 동행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똥말을 보면서 주인공은 매일 운동장을 뛰고 마라톤에 출전하며 공부도 잘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정유라가 편법을 “실력”으로 인식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머니 최순실이 사는 방식과 가치관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부모가 사회 공익에 반하고 위법을 하며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깨우치지 못했기에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을 비웃은 것이다. 삐뚤어진 모정과 그악스럽고 야멸스런 행동을 시대정신으로 각인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삼성이 정유라에게 사준 그랑프리 명마 비타나-브이(vitana-v)는 30억 원이었다고 한다. 정유라가 아시안게임에 타고 나온 말(馬)도 7억 원을 넘는다고 하니 웬만큼 잘 살지 않으면 말(語)이 안 나온다. 타고난 신체조건과 엄격한 훈련과 관리를 받은 말은 경기에서 뛰어난 성적을 낼 테니 비쌀만하다. 그런데 이조차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말 세계에서조차 신분계급이 나뉘지 않았다고 부정할 수 있을까.


비단 정유라 뿐만 아니다. 내 새끼가 어떡하든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려서 뇌물을 건네고 조작을 하며 남을 쳐내는 부모를 극성부모라고 단순하게 부르면 안 된다. 엄정하게 말해서 이들은 공정과 합리의 가치를 말살하고 공동체 질서 파괴와 공익 훼손을 초래하므로 사회질서 파괴범이다. 정유라가 승마 관계로 드러난 의혹만해도 여러가지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출석 며칠만 했음에도 졸업을 하고, 학칙을 바꿔 원서마감이 지났음에도 대학 입학 자격이 주어진 정황은 힘들게 공부해 입학한 학생들에게 사회 신뢰감을 상실하게 하고 노력의 결과에 박탈감을 제공한다. 게다가 정유라를 이화여대에 합격시키려고 정유라보다 높은 면접 점수를 받은 학생 두 명을 탈락시킨 의혹을 대입하면 정유라의 승마는 뇌물과 편법과 협박으로 조장된 승부조작 경마와 다를 바가 없다. 말(馬) 때문에 말(語)이 막힌다.



“주목받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했어요. 중간이나 그 아래밖에 못하지만 자기보다 큰 말들 틈에서 끝까지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면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을 보는 듯했지요. 차밍걸을 함부로 똥말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차밍걸이 똥말이면 우리 같은 소시민은 다 똥말인가요?”-《101번의 아름다운 도전》

 

똥말은 우승을 못했지만 묵묵히 달리는 끈기를 알아봐준 팬들의 응원과 환호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떨까. 통계청은 2016년 11월 현재 비정규직이 640만여 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인원까지 합치면 1천만 명에 이를 것이다. 생계가 급해 붕어빵을 파는 사람, 야근을 해야 아파트 대출금을 갚는 사람, 연탄을 떼면서 근근이 겨울을 나는 병든 사람, 새벽 버스를 타고 가서 청소를 하는 사람,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해 몇 달 째 월세를 못 내는 사람에게 사회가 안겨준 것은 과정의 공정성을 무시한 무감각한 도덕성 붕괴와 이타성 상실의 공황이다. 우리는 공황사회에 살고 있다. 


똥말은 은퇴 후 목장에 가서 승용마 훈련을 받고 제2의 삶을 살다가 2015년 11월 3일에 죽었다. 그녀의 공식 이름은 ‘매력적인 소녀’라는 뜻인 ‘차밍걸’이다.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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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똥엄마 2017.10.01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나 좋은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