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12월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서 오전 질의가 끝난 뒤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 사진 출처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1946년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정치는 공안 통치였다. 이승만은 ‘빨갱이’를 색출하자고 했고, 박정희는 ‘간첩’을 처단하자고 했으며, 전두환은 ‘프락치’를 족쳐야 한다고 했다. 실제 그리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종북’ 척결이 이념이었다. 이념은 아직 공화정이 자리 잡지 못한 나라에서 누군가의 권력 유지를 위한 가장 좋은 도구이자 여론몰이 땔감이다. 이념은 그림자처럼 어떤 일에든, 어떤 사람에든, 어떤 곳에든 따라붙었다. 많은 사람이 사라지고 다쳤고 죽었다. 권력자는 도덕 감정과 윤리 양심은 신경쓰지 않았다. 은밀한 움직임 끝에 노골적 여론 선동이 박자를 맞췄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는 통신이 관여했다. 통신은 비밀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도 되는 양 조작 건설에 절대적 힘을 발휘했다. 통화내역 조회 기술이 없던 1970년대 전화는 완벽한 명령체계 전달 수단이었다.

 

1970년대부터 남들보다 전화에 예민하게 살아왔을 사람, 김기춘. 1939년생, 일흔여덟 살. 청와대 전 비서실장 직함이 어쩌면 생에 마지막 공식 네임드가 될지도 모른다. 김 전 실장은 삼십대 초반에 유신입법에 참여했다. 삼십대 중반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국장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공안 통치 이념을 실행했다. 사십대 중반에 검사장을 따냈고, 이어 검찰총장에 취임했다. 오십대 초반에 최연소 법무장관이 되었고 일흔 다섯살에 청와대 비서실장이 되었다. 이만하면 관료로써 최고의 공명을 얻었으니 집안에서는 엄지 척! 성공한 사람으로 불릴지도 모른다. 


정치 검사로 성공한 모사꾼이자 전략가였던 김 전 실장은 귀엣말과 전화를 애용한다. 속삭임은 정적에게 작전이 노출될 위험을 줄이고 논쟁에서 자유롭다. 작전에 집중하기에도 좋다. 실수가 있다하더라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한 형체가 없다. 탐정처럼 세세하게 탐지하고 분석하고 예견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은 또박또박 말하되 서라운드 스피커처럼 울리지 않는다. 걸음걸이는 가볍고 행동은 민첩하다. 늘 상대방 의중을 먼저 알아채는 눈동자는 좌우로 빨리 움직이며 제스처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조작이란 자신을 드러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조작은 은폐와 공조 관계이다. 평생을 스릴러에 익숙했던 사람처럼 김 전 실장은 청문회장에서 속내를 감춘채 간결한 답변을 했다. 사라져가는 과거의 망령에 취한 사람답지 않게 차분한 척 세련된 연출을 유지했지만,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생방송에 노출된 때문인지 연기는 완벽하지 못했다. 공안 통치로 일궈 온 명예와 40년이 넘도록 “주군”으로 받들어 모신 박정희 일가를 향한 편집증은 자주 주먹을 쥐면서 나타냈다.

 

정회시간에 복도에 나가 전화 통화를 하던 김 전 실장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아마 몸을 돌렸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 밖 일이 생겼다. 몸을 돌린 방향에도 기자가 있다. 당황한 순간이다. 기자를 보고 종이를 쥔 왼 손에 힘이 꽉 들어갔는지 종이 반이 접혀지기 직전이다. 조명을 등진 얼굴 반에 그늘이 졌다. 눈썹 아래 그늘 때문에 미간이 뿔처럼 돋보이지만 음침하거나 음험한 분위기가 아니다. 현실을 기이하게 쪼개놓은 비현실적인 단면처럼 의외로 차갑다. 사실과 진실과 거짓을 뒤범벅 섞어 밀 반죽처럼 법을 주물렀던 사람같지 않게 초조하고 심각한 긴장감은 이마를 덮고 정지한 눈동자를 거쳐 다문 입으로 연결됐다. 이마와 입은 같은 표정을 짓는다. 이마에 수심이 가득하니 입이 웃을 리 없다. 


간첩을 만들고, 사법부를 통제하고, 블랙리스트로 탄압하고, 관제데모를 지시한 언어에서 증오와 공격이 물씬 짙다. “응징”, “배제”, “독촉”, “강구”, “조사”, “척결”, “문책”과 같은 말은 조작을 지시할 때 쓰는 말이다. 권위적 성격이 강할수록 수직적 체계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전화로 지시하고 접수하는 특징이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대면보고 대신 전화보고를 애용했다고 알려졌다. 여든을 앞둔 나이에 자신이 이제까지 건설했던 공안 통치가 무너져 내림을 인지한 것일까? 팔십 평생 통화 가운데 가장 무거운 통화였을지도 모를 청문회장 복도에서 찍힌 김 전 실장의 사진은 ‘조작 정치 실제가 불쑥 드러난 순간’을 포착했다. 그곳에는 전화기가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김 전 실장이 받고 건 전화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제는 전화기에 스스로 속박 당한 모습을 본다. 김 전 실장과 전화기는 운명공동체이다. 김 전 실장이 자유롭고 대범하게 전화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될 때 오랫동안 그를 지켜준 썩은 권력도 사라질 것이다. 

 



Posted by 윤미화
TAG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단골 2017.01.26 1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사진 한장' 새로 카테고리 개설하신 거 기대합니다. 김기춘을 보고 있으면 이 나라 이념 기조가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짐작이 가죠. 이 사람은 지금도 자기가 모신 주군을 잘 보필하지 못해서 이런 사단이 났다고 청문회에서 말하는 거 보고 기함했어요. 주군이라니, 참내. 간첩 혐의 받은 분들 고생을 생각하면 반드시 무거운 죄 물어야 합니다.

  2. 강철군화 2017.01.29 14: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반도에 유신망령이 배회하고 있다. 조작과 공안통치의 대리인이자 설계자인 김기춘. 유신의 딸 박근혜를 앞세워 종북몰이와 프레임 전환의 기술자로 목숨 연명해왔다. 그가 저지른 죄과는 셀수도 없겠지만얼마 남지 않은 그의 인생 차디찬 감옥에서 송장이 돼서 나오겠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저지른 죄에 비해 그의 남은 인생이 충분치 않다. 그게 아싑다.

  3. 하늘바람 2017.01.30 2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사진만으로도 많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설명은 더욱 감각적입니다
    고맙습니다

  4. 김사랑 2017.01.31 0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한장으로 그의 모든 행적을 알수없지만 기자님 맕대로 전화기와 김기춘은 뗄래야 뗄수없는 ㄱㅓ맞네요.
    저 전화기 통화내역조회하면 숱한게 나오겠지요.
    대포폰이 있을지도 모르겠치만.
    노인들이 박정희에게 눈을 뜨는 올바른 뉴스는 언제쯤 지상파에서 볼수있을까요.
    김기춘이나 박근혜가 옥살이를 한다쳐도 뉴스에 나오지 않는한 노인들에게는 여전히 박정희이념에 사로잡혀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