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글라데시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먹는 헨미 요


‘먹방(먹는 방송)’이 유행이다. 걸쭉한 육짬뽕과 살이 두툼한 왕갈비 구이에 침을 흘리다가 채널을 돌리면 단출한 건강식을 소개하는 방송이 나온다. 언제부터인가 맛있게 잘 먹는 게 즐거운 인생 비결처럼 말하는 방송과 건강을 지키려면 가려서 먹어야 한다는 방송이 경쟁하듯 안방을 장악했다. 심지어 연예인 냉장고 재료로 요리사가 근사한 음식을 뚝딱 만들어내는 걸 보면 먹거리 춘추제국이 호황중임을 실감한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헨미 요(辺見庸)가 쓴《먹는 인간》(박성민 옮김. 메멘토. 2017.3)을 읽으면 먹방 홍수 시대에 사는 우리는 타인이 무엇을 맛있게 먹는지만 볼 뿐, 재료 출처와 먹는 행위 배경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풍성한 먹거리와 혀에 착착 감기는 맛에 방점을 찍은 미식열풍 앞에서 저자가 던진 다음과 같은 질문은 ‘음식의 이타성’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어떤 얼굴로 먹고 있을까. 또는 얼마나 못 먹고 있을까? 배고픔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하루하루 음식을 먹는 당연한 행위를 어떻게 의식하고 있을까. 또는 의식도 못 하고 있을까? 먹는 행위를 둘러싸고 세계 곳곳에서 어떤 변화가 싹트고 있을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역 분쟁은 먹는다는 행위를 어떻게 짓누르고 있을까?”

 

1992년 말부터 1994년까지 2년 동안 세계를 다니면서 저자가 먹은 음식 대개는 비위생적이며 끼니로 보기에는 턱없이 적다. 지역에 따른 고유한 음식이지만 저자가 일본에서 먹은 고급 음식과는 비교가 안 된다.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입맛이 까다로운 미식가입장에서야 이 책에서 다룬 음식은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쓰레기이거나 저질 음식이다. 그럼에도 먹을 수 없는 것을 먹을 수밖에 없는 사례를 보면서 ‘먹는 행위’에 관해 생각해 보자는 게 저자의 의도이다. 


■ 분노의 맛, 증오의 맛, 슬픔의 맛

기아 문제는 인류 생존과 직결된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기아 문제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지점은 식량난이며 식량부족은 기후변화와 축산업 발달에 있다는 지적이 흔하다. 이 책에서 지적은 없었지만 식량부족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기아 문제 앞에서 풍요로운 북반구 식탁을 떠올린다. 역설적이게도 배고픔을 보며 배부름을 상기하는 일은 자본주의 상징인 분배 문제를 끌어오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는 돈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만 부의 재분배는커녕 부의 독점이라는 독약을 갖고 있다. 첫 장에 소개한 방글라데시 음식 쓰레기 사업은 부의 분배 의지가 전무할 때 사회 안전망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빈민 인구가 170만 명에 달하는 나라에서 부자들이 뜯고 남긴 고깃덩어리가 ‘판타 밧’이라는 이름을 달고 시장에 나온다. 책에 따르면 ‘판타 밧’은 도매상과 소매상을 거쳐 빈민촌 사람들과 릭샤 운전사들이 주로 사 먹는다고 한다. 신선도에 따라 값이 달라지므로 값이 저렴할수록 배탈이 나거나 식중독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달과 밧은 모든 사람에게”(밥과 국을 전국민에게) 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방글라데시에서는 음식 쓰레기를 줍는 아이들이 들개나 까마귀와 먹거리를 두고 경쟁한다. 책에서 인용한 18세기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사 바랭이《미식예찬》에서 말한 “짐승은 먹이를 먹고, 인간은 음식을 먹는다. 교양 있는 사람만이 먹는 법을 안다”고 한 말과 비교 되는 풍경이다. 식민지배 쟁탈전에 나섰던 백인 지배자가 보기에 가난한 원주민이 끼니를 채우는 행위를 짐승이 먹이를 먹는 장면과 동일하게 여기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방글라데시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다룬 가난한 아시아와 내전에 신음하는 아프리카는 유럽 식민지배에 고혈을 짰다. 무기와 종교와 자본을 앞세워 침략한 다음 자원과 노동을 단물처럼 빨아 먹은 식민주의 근성이 오늘날 우리 밥상에 미식으로 둔갑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도쿄에서는 매일 50만 명이 하루 동안 먹을 수 있는 음식 찌꺼기가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돈을 벌면 배고픔을 면할 수 있기에 경제동물이 되었지만 음식 쓰레기는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창 돈 버는 일에 불이 붙은 베트남에서는 노점에 느긋하게 앉아 쌀국수를 먹는 사람들이 줄고 있다고 한다. 먹는 시간을 줄여 한 푼이라도 더 돈을 벌려고 하기 때문이란다.

 


노동자 출신 대통령 바웬사가 집권하면 살만해질 줄 알던 폴란드 광부들은 여전히 빚을 진채 탄광에서 일한다. 석탄이 가장 특별한 음식 아니겠냐고 말하는 광부들은 소뼈에 샐러리와 파슬리 뿌리까지 넣어 푹 곤 스프를 즐겨 마신다. 탄광촌 음식은 척박한 환경 탓에 다양하고 고급진 음식 대신 강렬한 맛을 선호한다. 2006년 열여섯 명이 죽은 볼리비아 와누니 광산 유혈 사태에 참가했던 광부들은 코카 잎을 즐겨 씹는다.《남미 인권 기행》(하영식 지음. 레디앙. 2009. 4) 에 따르면 열네 살, 열여섯 살 먹은 소년들은 광부학교에 들어가 갱도 작업을 배우고 광부가 된다. 하루 열두 시간씩 일하고 나오면 이미 해가 져서 어두웠다고 하니 해를 보지 못하고 살았다고 한다. 고된 노동과 나아지지 않는 생활, 희망이 없는 하루하루를 코카 잎을 씹으며 견딘다고 한다.


1970년대 강원도 탄광촌에서 광부들이 가장 많이 마신 게 막소주였다.《박정희 시대의 유령들》(김원 지음. 현실문화. 2011. 5)에 보면 광부들은 막소주를 마시면서 고단한 삶을 위로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남자들이 어떡하든 먹고 살겠다고 진폐증에 걸려가며 탄을 캤지만 산재보상은커녕 노조탄압으로 개죽음 당하기 일쑤였다. 알코올 도수 35도인 막소주에 불을 붙여가며 뜨거운 불술을 마시면서 암울한 현실을 견딘 셈이다. 당시 사북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쓴 동시집《아버지 월급 콩알만하네》(임길택 엮음. 김환영 그림. 보리. 2006. 9)에도 배고픔을 지은 시가 있다.

 

_나의 꿈

                                              5학년 염명수 지음

나는 친구가 네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통일이라 하지만

나는 그것이 아니다

나의 꿈은

먹는 걸 많이 먹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굶주리며 죽음을 기다리는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소녀 파르히아. ⓒ 헨미 요



■ 먹는 존엄권

소말리아는 우리에게 굶주린 내전의 땅으로 각인됐다. 굶어 죽거나 총에 맞아 죽거나 강간 후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죽음의 땅으로 전락했기에 소말리아는 슬픔을 넘은 분노와 증오의 땅이 되었다. 적어도 먹는 일만큼은 고통 받지 않기를 바라지만 전쟁은 먹는 일부터 강탈한다. 책에 소개한 것처럼 새벽부터 몇 시간씩 거리에 나와 밀 한바가지를 받기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총알이 날아다니는 거리에서 한 덩어리 빵이라도 얻을까 어슬렁대는 깡마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다국적군 막사에서는 진수성찬이 차려진다. 


문득 서울 구치소에 수감된 박근혜 전 대통령 식단이 궁금하다. 박 전대통령은 1년 전 청와대에 새누리당 의원들을 초대해서 샥스핀과 송로버섯을 먹었다. 최저시급이 만 원조차 안되고 국가부채가 600조원이 넘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의 지배 명분을 유지하면서 내전을 종식시키는데 ‘평화’는 종종 가장 좋은 수단으로 이용된다. 다국적군이 가장 실천하기 쉬운 평화라면 저자가 목격한 에이즈에 걸린 우간다 소녀에게 빠른 치료를 제공해야 하며 좋은 음식을 먹게 함으로써 건강을 회복하고 삶을 조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국적군 막사 근처에서 죽어가던 소말리아 소녀처럼 우간다 소녀 역시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이 소녀들은 태어나서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먹는 인간》에서 결국 가리키는 주제는 ‘먹는 존엄권’이다. 방사능 위험에도 불구하고 세슘이 함유된 생선과 과일을 먹을 수밖에 없는 체르노빌 근처 농민들과 불량 식품 배급을 먹었던 블라디보스토크 함대 군인들처럼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삶과 죽음에 직결된 먹기는 존엄권을 상실했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를 만나 고통 가운데서도 잘 드시라고 울먹이며 권한다. ‘먹는 존엄권’은 유난하지 않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이다. ‘먹는 존엄권’은 흙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볶은 커피콩을 갈아 타 주던 에티오피아 여인과 포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크로아티아 바다에서 정어리를 구워 먹던 어부들의 삶을 망가지지 않게 하는 힘이다. 


맛 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하고 힘이 난다. 입을 갖고 태어난 운명에게 먹는 일이야말로 삶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밥은 아무데서나 먹어도 되지만 아무거나 먹어서는 안 되며 아무렇지 않게 먹고 살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다.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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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4.14 1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의 꿈 이라는 시가 슬프네요. 한동안 쥔장 안계신 곳에 왔다 갔는데 별일 없으시죠? 늘 생각하는 글 올려주셔서 잘 읽고 있습니다. 미식이니 먹방이니 방송이며 기사가 차고 넘쳐서 어지럽습니다. 이 책, 화제도서이던데 망설였거든요. 읽어봐야 겠습니다.

    • 윤미화 2017.04.15 08: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저는 그럭저럭 잘 지냅니다. 안부 여쭤오셔서 고맙습니다.

      <먹는 인간>은 미식열풍과 1일1식 유행과 함께 생각해 볼 좋은 책입니다.

  2. 2017.05.01 0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책 좋은글로써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딱 요즘 이 나라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건 이 글과 진실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었습ㄴㅣ다. 제 주변에 공유 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