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II, Elizabeth Alexandra Mary) 여왕 90세 생일을 맞아 공개한 영국 왕실 사진.

여왕과 남성 왕위 계승자 1순위 찰스 왕세자, 2순위 윌리엄 왕세손, 3순위 조지 왕자까지 4대가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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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은 인간이 가진 감각 기관 가운데 정보 파악 능력을 80퍼센트 차지한다. 눈은 본 대상을 수정체를 통해 뇌에 전달한다. 신호를 받은 뇌는 사물이나 현상을 분간하여 인지능력을 발휘한다. 인지는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지시한다. 그래서 ‘본다’는 행위는 ‘어떻게 라는 태도’와 연결된다. 고대부터 정치인은 대중을 선동하고 설득하는데 조각·회화와 같은 이미지를 널리 활용했다. 오늘날 정치인은 사진과 영상을 비롯해 대중과 직접 만난다. 옷차림과 머리모양은 물론 제스처와 목소리,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애티튜드(attitude)[각주:1]’와 ‘톤앤매너(tone and manner)[각주:2]’를 정치에 적극 이용한다.

 

목원대 미술교육과 이은기 교수가 쓴 《권력이 묻고 이미지가 답하다》(이은기 지음. 아트북스. 2016.6)는 이처럼 미술작품에 숨겨진 정치 코드를 해부했다. 미디어 매체가 발달한 지금과 다르게 예전에는 조각·회화·자수·사진과 같은 미술로 권력 의지를 표출했다고 한다. 전시 장소는 많은 사람이 쉽게 볼 수 있는 광장과 궁궐, 교회나 별장에 전시해서 공공성을 높였다. 공공장소에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정책을 다수에게 공개하는 정치인의 SNS와 비슷하다.

 

■ 과장된 이미지

이 책에서 첫장에 소개한 기원전 510년경 아우구스투스[각주:3] 조각은 모든 왕의 이미지 이상화 표본이다. 아우구스투스는 팍스로마나(Pax Romana)[각주:4] 를 연 황제였으므로 다른 왕보다 이상세계를 과장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조각 가슴에 적과 싸워 제압하고 로마 시조와 달의 여신을 새겨 신격화하면서 신의 계승자임을 천명했다. 카이사르가 죽고 17년 동안 혼란을 겪으면서 정치적 피로에 시달린 로마는 옥타비아누스[각주:5]를 선택함으로써 신의 계승자라는 명분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중세 교황청은 가장 큰 정치 집단이었다. 장원을 소유하고 왕을 움직였으며 민중을 수족으로 부렸다. 경제와 정치와 사상을 주도한 중세 교황청은 ‘하느님의 군대’라는 그럴싸한 작명을 해서 군사행동을 서슴지 않았는데 이들의 진짜 목적은 복음전도가 아니라 십자군이 그랬듯 종교를 앞세운 세계 지배였다. 직접 군사원정을 나갔던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천지창조〉를 주문했다고 한다. 스케일이 큰 그림에 신의 세계를 재현함으로써 절대복종을 각인하는 효과가 크다.

 

                72년 동안 절대왕권을 누린 루이 14세가 남긴 초상화는 왕의 초상화 교본같은 그림이다. 숱이 많은 큰 가발을 쓰고 카펫을 걸친 것 같은 큰 망토를 두른 왕은 160센티미터 작은 키를 은폐하려고 하이힐까지 신었다. 63세 늙은 왕은 권능을 과대 포장해서 건재를 과시했다. 월계수 왕관을 쓰고 정면을 응시한 나폴레옹 초상화도 루이 14세만큼 권력을 행사한 왕이다. 의자 원형 등받이는 후광처럼 보이는데 중세에 이런 효과는 절대적 존재인 하느님을 가리켰다고 한다. 제우스와 같은 당당한 풍모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6년 후 러시아 원정 실패로 몰락한다. 흙수저 출신의 코르시카 섬 출신 장교였던 나폴레옹과 다르게 금수저로 태어난 알렉산드로스[각주:6]도 왕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았던 것 같다. 찢어 죽인 사자 가죽을 머리에 뒤집어 쓴 헤라클래스처럼 알렉산드로스는 휘날리는 갈깃머리에 금가루를 뿌렸다고 한다. 신의 계승자에 그치지 않고 신이 되려던 알렉산드로스는 서른세 살에 전장에서 죽었다. 


“위태로운 사회에서는 실제보다 능력을 과장하여 환상을 심어주어야 했을지도 모른다………불안한 사회는 강력한 초월적 존재를 요구하며, 이 시대의 황제는 한 개인이기보다 자신을 거의 종교적인 존재로 부각시켜야 통치가 가능했을 것”-《권력이 묻고 이미지가 답하다》


이아생트 리고. 「루이 14세」, 캔버스에 유채, 277x194cm, 1701~1702


권력자의 조각이나 회화를 실제보다 크게 만들거나 화려한 장식을 덧입히는 이유는 권세를 과시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만들어진 이미지는 시뮬라크르(Simulacrum)[각주:7]이지만 대중은 가짜 복제물을 받아들임으로써 불안을 떨칠 심리를 구축한다. 이를테면 독재자는 거부해도 이미지에 크게 반감하지 않는 속설을 떠올리면 문제는 가짜 복제물이 아니라 가짜 그 자체에 있다. 그러나 대중은 가짜를 욕하면서 정작 가짜에 대응할만한 진짜를 찾는 노력에는 게으르다. 그래서 가짜 복사물인 이미지에 취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 여왕과 이미지

빅토리아·엘리자베스 1세·엘리자베스 2세는 다른 분위기로 초상화 모델이 되었고 사진을 찍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 역사상 대외적으로 가장 많은 힘을 확장했던 군주이다. 세계에 범선을 띄워 18세기부터 식민지 제국을 건설한 빅토리아는 이미지 활용을 가장 잘 한 왕이다. 18세에 즉위해서 82세에 사망하기까지 64년 재위 기간 동안 제국의 여왕과 순종적이고 다복한 가정의 여성상[각주:8]을 동시에 연출했다. 

 

                                                         제국시대 영국 남성은 용기와 탐욕을 요구받았는데 이 때문에 집에서는 피로를 보상받고자 했다고 한다. “집안의 천사와 같은 성실, 순종, 희생하는 아내상”은 이렇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빅토리아가 여염집 여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해외 식민지 건설로 대중에게 자긍심과 경제 안정을 안겨줘야 했고 순종적 아내를 연출해서 사회 분위기에 호응해야 했다. 여성의 미덕을 출산과 육아, 내조와 순종으로 규정한 시대에 여성이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란 가부장 체제에 편입하는 일이다. 자기 의견이나 개성이 강한 여성은 경계 대상이었으며 마녀라는 낙인이 찍힌 시대였다. 빅토리아는 잦은 임신을 싫어해서 막내딸에게는 결혼을 하지 말 것을 권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본인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인권에 관해 정책을 편 것이 없다.

 

가부장제는 여성에게 순종과 순결을 강요한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처럼 처녀 숭배 가치관이 퍼진 사회에서 강한 여성은 적대와 경계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여왕은 군주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않으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신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흰 벨벳옷에 은색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가 독려하며 처녀와 어머니라는 모순된 두 가지 이미지를 보인 엘리자베스 1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나는 처녀 여왕(Virgin Queen)이다. 나는 국민의 어머니다.”[각주:9] 라던 엘리자베스 1세의 형용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왕의 초상화와 이미지의 정치학을 다룬《이미지와 권력》(권행가 지음. 돌베개. 2015.11) 에서 통치자 이미지는 곧 권력의 표상이기 때문에 이미지가 권력이라는 주장을 한다. “대중 매체를 통해 유포되는 통치자의 이미지는 그 자체가 정치적 공간 속에서 권력을 표상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이미지를 만드는 재현의 권력이기도 하고 이미지가 표상하는 권력 그 자체이기도 하다”

 

올해 91세가 된 엘리자베스 2세는 세계 대전 두 번과 식민지 독립을 경험했다. 저자는 “엘리자베스 2세의 영국은 모든 면에서 빅토리아 시대를 해체하는 시대이다.”라고 주장한다. 성실, 인내, 순종, 순결과 같은 시대 요구가 더 이상 미덕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따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자본주의 등장과 왕권 약화를 살피자면, 권위에 기대는 자본이 아닌 자유로운 투자와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에 자본주의와 왕정이 양립하기란 쉽지 않다. 60~70년대 불황이나 실업은 왕실이 계도하고 주도한 문화와 전통 가치관을 와해시켰으며 왕족이 놀면서 먹는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시민과 만나며 친근한 이미지를 연출했지만 다이애나와의 갈등, 여성 인권에 무관심한 점, 왕위 계승에서 남녀를 차별한 점은 가부장적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여성이었지만 여왕이었을 뿐 여성의 자유와 평등에 기여했는지 의문이다. 


■ 폭력을 고발하다

고야가 그린〈1808년 5월 3일의 학살〉, 마네 작품〈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피카소가 1937년 그린〈게르니카〉와 1951년 작품〈한국에서의 학살〉은 전쟁과 학살, 처형을 그린 작품이다. 나폴레옹이 그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스페인 왕위에 앉히자 화가 난 스페인 민중은 스페인 왕족 페르디난도 7세를 옹위하고자 민란을 일으킨다. 프랑스 군대는 저항하는 스페인 국민을 즉결 처형했는데 당시 이 사태를 본 고야는 1814년 이 그림을 그렸다. 프랑스 왕정 기간 동안 궁정화가였던 고야는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았던 까닭에〈1808년 5월 3일의 학살〉은 민중 편에서 그린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저자는 고야가 완전한 민중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다른 작품들에서 고야는 민중을 우매하게 그림으로써 “정의가 존재하지 않은 사회에서 큰 고통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한다. 

 

무심한 역사화로 유명한〈막시밀리안 황제 처형〉은 아무 감정이 없는 듯 처형 장면을 그려서 외려 충격적이다. 무심함과 태연함이 화면을 장악한 이 그림을 두고 저자는 “화가가 누구 편에서 이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마네가 이렇게 무심한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는 저자 지적처럼〈풀밭 위의 식사〉,〈올랭피아〉,〈피리 부는 소년〉이 살롱에서 계속 거부당하면서 대중화가로서 실의에 빠졌던 것으로 짐작된다. 마네는 당시 아카데미 출신 화가들과는 다른 파격적인 화풍을 묘사했는데 이런 이유로 화단에서는 이단아로 불렸다고 한다. 실제 마네는 공화파 일원으로 무책임한 정치인들에게 분노했을 것이다. 

▲ 파블로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1.1mx2.1, 1951


미노타우로스[각주:10]를 즐겨 그린 피카소는 폭력적인 야수성을 잘 표현했다. 여성편력과 거침없는 행보를 자초했으므로 “인간의 동물적인 공격성과 힘없는 약자들의 절규”를 표현하는데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히틀러 지원을 받은 프랑코 군부 폭력을 그린〈게르니카〉는 공산당 당원으로서 그린〈한국에서의 학살〉과 함께 정치논란을 낳았다. 그러나 숨겨진 의도를 알아채는 게 독자 몫이라면〈한국에서의 학살〉에 나오는 가해자는 미군이나 북한군도 남한군도 아니다. 가해자를 감정이 없는 로봇처럼 묘사해서 특정을 규정하지 않았다. 중국 현대화가 웨민쥔(岳敏君)이 천안문 사태를 풍자한〈처형〉도 마찬가지이다. 등장인물 다섯 명을 화가 자화상으로 그린 이 그림은〈막시밀리안 황제 처형〉과 〈1808년 5월 3일의 학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기묘한 웃음이 흐르는 처형장면은 압제와 비극을 당당하게 희화화했다.


■ 이미지와 왜곡

숭고한 이미지가 있을까? 종교나 신화, 또는 영웅과 위인이 연관된 미술에서 숭고함을 느낀다고 할 때 숭고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숭고는 감동을 느끼는 감정 반응 결과이다. 압도적인 위대함을 격하게 느껴 고귀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지에서 느끼는 숭고함과 아름다움 기준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추함의 반대이고 선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아름다움과 숭고함은 다르다. 이를테면, 미켈란젤로작품〈피에타〉는 숭고하다고 하지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이미지에서 느끼는 감정 차이를 톺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피카소 작품에서 느끼는 감정 차이를 밝히기로 한다. 피카소는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유명하다. 가십거리로 치부하기에는 그가 그림에서 많은 여성을 그렸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피카소 그림에서 여성은 피해자이자 약자이다. 절규하는 여인, 횃불 든 여인, 우는 여인과〈한국에서의 학살〉에서처럼 임신부가 총살까지 당한다. 피카소의 여성관을 잘 드러낸 그림은 1933년 그린 벽화〈미노타우로마키(Minotauromachy)〉이다. 예의 황소를 등장시킨 이 그림에는 여성 투우사가 나온다. 투우사는 황소를 찌르려고 에스토카다[각주:11]를 들었지만 창에 찔린 황소가 말의 배를 들이받아 여성 투우사는 옷이 벗겨진다. 정신이 혼미해진 여성 투우사는 유방과 성기를 드러낸 채 나른하고 황홀한 표정으로 에우로페[각주:12]가 납치 되듯 말에 실려 황소를 따라 간다. 


장 프랑수아 세뇨가 쓴《명작 스캔들 1》(김희경 옮김. 이숲. 2011.5) 따르면 피카소는 이 그림 변론을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황소가 파시즘은 아니지만, 폭력과 암흑이다. 나의 작업은 상징적인 것이 아니다. 게르니카만 상징적이다. 이 벽화는 우화다. 그래서 나는 말이나 황소를 이용한 것이다.” 장 프랑수아 세뇨는 피카소가 즐겨 그린 황소 그림에 나타난 여성을 관찰한 결과, 여성들은 황소를 혐오하면서도 황홀경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피카소가 황소를 예찬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황소를 즐겨 그린 피카소는 황소가 상징하는 거대한 남근, 우람한 체격과 같은 물리적 힘에 매료되지 않는 이상 왜 황소판타지에 젖어있던 것인지 설명이 안 된다. 


‘여성의 생물학적 특징을 전면에 내세운 여성성’은 남성중심 시각이다. 여성성에 대한 성찰과 담론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인식을 하는 여성 자신도 남성의 지배담론에 동조한 것과 같다. 여성성을 신체나 정서로 묶는 사회에서 여성은 ‘황소를 혐오하면서 황소에게 지배 당해 황홀경에 빠지는 여성’이 되거나 ‘남성의 밥, 꽃, 과일, 천사’가 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여성성의 이상화’가 진행되는데 앞에서 언급한 빅토리아 여왕처럼 군주였을지라도 순종적인 아내와 자녀에게 헌신적인 어머니가 진리로 숭배되는 것이다. 여성의 신체와 정서를 장악한 사회에서 많은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조차〈빌렌도르프 여인상〉과 같이 키 작고 뚱뚱한 여성을 과연 ‘비너스’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주저하게 된다. 


▲ (좌) 밀로의 비너스(높이 204m), (우)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높이 11.1cm)


                  책에 따르면 기원전 2만년 경 석회암으로 만든 11.1센티미터의 이 여인상이 발굴된 1908년 서양에서는 코르셋으로 잘록한 허리를 조이는 게 유행이었다. 뚱뚱한 여인은 흑인하녀이며 이는 곧 비문명으로 인식했다고 한다. 인종에 따른 여성차별은 익히 알려진 장 도미니크 앵그로가 그린〈노예와 함께 있는 오달리스크〉에서처럼 남성과 서양과 백인이 주관한 시각이 개입되면서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선 범세계적 차별의식으로 발전했고 그 증거가 식민주의라고 한 저자 주장은 타당하다. 이 책을 읽고나서 느낀 소회를 한줄로 정리하면, 신을 계승한 자에서 신의 이데아를 수혈 받고, 때로는 신이 되고자 모방했지만 미술 작품만 남고 권력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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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이다. 한껏 꾸민 대통령 후보자 이미지를 보며 《이미지 인문학 1》(진중권 지음. 천년의 상상. 2014.6)  나온 “이미지를 못 읽는 자가 미래의 문맹자가 될 것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1. 태도나 자세 또는 마음가짐 [본문으로]
  2. 광고에서 많이 쓰이는 마케팅 기법으로 흔히 분위기를 가리킨다. [본문으로]
  3. (Augustus, BC 63.9.23~AD 14.8.19) : 제정로마 초대 황제. ‘Augustus’는 ‘존엄한 자’라는 뜻으로 원로원이 칭호를 바쳤다고 한다. [본문으로]
  4. BC 1세기 말 아우구스투스 시대부터 5현제 시대까지 200년 동안 전쟁을 억제한 로마 평화 시대. [본문으로]
  5. 아우구스투스 원래 이름 [본문으로]
  6. (Alexandros. BC 356~BC 323) : 알렉산더 대왕으로 불림. ‘Alexandros’는 ‘사람을 두렵게 하는 이’라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7. 플라톤 철학이 제시한 ‘가짜 복사물’이라는 뜻. [본문으로]
  8. 빅토리아 여왕은 아홉명을 낳았으며 남편이 죽고 40년 동안 상복을 입은 채 공식 행사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본문으로]
  9. 처녀와 어머니는 모순된 말이다. 그러나 가톨릭의 마리아 신앙을 프로텐스탄트 영국에서 성처녀로 숭상하면서 순결하고 순종적인 여왕을 원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10. Minotaur.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수소로 황소 머리에 사람 몸을 한 반인반우. [본문으로]
  11. estocada. 스페인어 여성명사. 투우에서 일격을 가할 때 쓰는 작은 칼 [본문으로]
  12. Europ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페니키아의 공주이다. 황소로 변한 제우스에게 납치되어 크레타 섬으로 건너갔다. ‘유럽’이란 지명이 그녀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본문으로]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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