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괵국부인유춘도(虢國夫人遊春圖) 

양귀비 셋째 언니 괵국부인이 봄나들이 가는 화려한 행차에서 인물을 고양이로 바꿔 묘사 ‘과지라(瓜幾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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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는 서기 618년 건국해서 907년 망하기까지 290년 동안 황제 20명이 통치했다. 알려진 바로는 당나라에서 풍습이 흥했던 이유로 농업 생산력 향상과 상업 발달을 꼽는다. 당나라는 건국 초기부터 외국과 활발한 교류를 하면서 여러 종교와 문화를 흡수했다. 불교를 숭상했으나 아랍 문화까지 수용했다. 여기에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쓰면서 문화 지원을 아끼지 않은 무측천 [각주:1]시대와 예술에 취했던 현종[각주:2] 시대는 정치 평가와 별개로 문화 르네상스 시기였다.

 

중국 만화가 ‘과지라(瓜幾拉)’가 그린《당나라에 간 고양이》(원제 畵猫.夢唐), (조윤진 옮김. 달과소. 2017.1)에 따르면 당나라는 호국(胡國) [각주:3]문화를 적극 수용했다고 한다. 정치는 중화중심주의를 유지하면서 북방과 서역에 문호를 개방해 영토 복속에 따른 이민족의 반발심을 누그러뜨리고 세를 과시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돌궐과 인도를 비롯해 페르시아와 아랍권까지 교류하면서 당 문화가 서역으로 확장되는 기회이기도 했다.

 

■ 당풍(唐風)의 탄생

호국문화는 당나라가 망하기 전까지 상인과 외교관에 의해 당에 유입되어 널리 퍼졌다고 한다. 실크로드 상인들이 주도한 호국문화는 풍속에 영향을 끼쳐 복식, 음악, 미술, 음식, 장식 등이 성행했다. 수도 장안에 호국의 춤과 음악이 크게 유행했던 것으로 봐서 당나라 문화는 중국과 호국문화 이종 교배 결실인 셈이다. 화려한 문화 풍조에는 현종과 양귀비가 지원했고《당나라에 간 고양이》는 많은 지면을 할애해 현종과 양귀비를 등장시킨다.

 

주지하다시피 당나라는 다양한 문화가 꽃 핀 시대였다. 시와 글씨, 그림과 조각, 음악과 춤, 이야기와 풍속이 풍성했다. 시선(詩仙) 이백(李白), 시불(詩佛) 왕유(王維), 시성(詩聖) 두보(杜甫)를 배출한 당대 시는 왕과 귀족부터 선비와 백성에 이르기까지 시를 즐겼으니 문일다(聞一多)[각주:4]가〈당시잡론〉에서 한 말처럼 ‘시당(詩唐)’[각주:5]이라는 호칭이 어울린다. 책에 따르면 당나라에서 시가 유행한 배경에 도교를 가리킨다. 신선사상과 무위자연 사상을 결합해 안빈낙도와 자연 예찬을 기조로 삼은 당시(唐詩)와 풍속은 송(宋)나라 문예부흥과 함께 중국 역사에서 예술의 중심축으로 거론된다.

 

“도교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은 문인들은 사는 것이 낙(樂)이며, 선인(仙人)이 되는 것을 극락이라 여겼기에 속세를 초탈해 자유롭고 안락한 삶을 살며 인간 세상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그래서 문인들은 “글에는 도를 담아야 하며, 시에는 풍격(風格)[각주:6]을 담아야 한다.”고 외치며 연회와 소풍, 춤과 음악 등 각종 오락 활동에 열중했다.”

 

유독 당나라에서만 ‘풍격(風格)’이 강조된 것은 아니지만 노자의 후예로 자처한 문인들과 이원(梨園)[각주:7]을 세워 예인을 양성한 현종과 불교에 심취했던 무측천 시대만 보더라도 호방하고 화려하며 장식적인 기풍이 강한 당나라 풍격은 풍류(風流)로써 정착된다. 책에서 인용된 것처럼 소풍, 연회, 호선무[각주:8], 인형극, 격구, 바둑, 투호, 전기(傳奇)[각주:9], 동물기연[각주:10] 유행은 절기에 따른 세시풍속과 함께 오늘날까지 계승되면서 시대를 넘은 고유한 문화사조가 되었다.

 ▲ 호선무(胡旋舞)


■ 당나라 여성

이민족 융합 정책은 지배층이 결정하지만 민간에 가장 먼저 이식된다. 말하자면 아래로부터의 수혈인 셈인데 농·공·상업에 종사하면서 세태 흐름에 민감한 계층은 정치이해관계로 얽힌 지배층보다 취향선택에 비교적 자유로우므로 이민족 문화에 적극 반응한다. 저자는 여러 문화가 섞이며 당나라 여성은 다른 시대보다 자유로웠다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단락 끝에 설명하겠다. 물론 놀이를 즐기며, 나아가 관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이전 시대와는 다른 당대 여성의 사회 지위에 변화가 있음이 짐작된다

 

《당나라에 간 고양이》에 따르면 말 타기에 능한 여성은 격구를 하거나 축국과 같은 격렬한 운동을 즐겼다고 한다. 황실여자축구팀까지 생긴 당나라에서 여성의 여가생활은 선택 폭이 넓어진 듯싶다. 물질적·정신적 안정은 취미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법인데 꽃놀이나 인형극 놀이, 연등회와 같은 나들이에서 말 타기나 바둑과 같은 직접 참여하는 취미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지 않아야 할 지점은 새 풍속이 유입되었다고 해서 여성의 억압과 순종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으며 신분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 점이다.

 ▲ 천랑과 왕주의 사랑 이야기


책에서 인용한 소설〈이혼기(離魂記)〉에 나오는 여주인공 ‘천랑’처럼 예법과 도덕을 중시한 당대는 여성의 자유로운 결혼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여성에게 외국 문화를 허용했다고 해서 가부장제가 폐지된 것은 아니다. 장자세습이나 힘의 서열, 또는 계급차등으로 유지된 가부장제는 권력을 잡거나 권력에 의탁하지 않는 이상 과거와 다를 바 없이 적용됐다. 중국 문학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왕의 총애를 잃은 궁녀들이 새나 반딧불을 키우며 외로움을 달래는 모습은 당대 문화 부흥에도 불구하고 왕을 정점으로 삼은 가부장 체제가 여성의 운명을 결정지은 반증이다.

 

이를테면 양귀비 자매들의 사치와 향락은 가부장제에 편입한 여성이 역으로 가부장제를 일신영달 수단으로 이용한 사례이다. 음력 3월 3일 세시풍속인 상사절에 양귀비 자매들은 화려한 연회를 열었다. ‘물총새 깃 머리장식’에 ‘진주 박힌 허리띠’를 하고 호사스런 비단옷을 입고 ‘수정 쟁반에 담긴 흰 물고기’를 먹으며 진귀한 선물을 상납 받는 양귀비 자매들과는 다르게 궁궐 한쪽에서 벌어진 ‘눈물의 단체 상봉’[각주:11]은 무엇을 뜻하는가? 당나라 여성은 남장[각주:12]하는 풍습이 유행했고 무측천 같은 여성 황제가 나왔다. 여성이 군대에 참여하고[각주:13] ‘상관완아’[각주:14]와 같은 고위 여성 관리도 배출했다. 그러나 ‘쎈 언니’ 시대라고 해서 가부장제가 만든 불평등한 상황이 개선된 것은 아니다.


여성의 신체를 남성이 주관하는 사회에서 여성 장군과 여성 관리조차 힘으로 유지되는 가부장제인 왕조에 복무한 것에 다름 아니다. 양귀비와 같은 최고 권력조차 외려 가부장제 권력을 ‘캐스팅 카우치(casting couch)’[각주:15]로 역이용했으나 권력에 의탁해 의탁한 권력의 소멸과 운명을 같이 했던 것으로 보면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놀이란 굴레와 억압을 달래는 자기위안이 깃들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속박의 고통을 놀이문화로 달랬던 당대 여성은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자유로웠다고 보기는 어렵다.

 

■ 민중의 삶

문화는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유행으로 그치거나 후대까지 계승되기도 한다. 자연환경에 인간의 생존이 절대적으로 지배받던 농경시대에 세시풍속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인간의 종족 보존 염원에 기인한다. 특정한 날을 기린 선대를 기억하며 안전하게 후대에게 물려주겠다는 의도였다. 세시풍속은 지역과 부족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하며 정해지지만 정치 계산과 종속 관계에서도 작동한다. 오늘날 한국 절기 대부분이 중국에서 전해진 것을 감안하면 오랫동안 중국 영향권에 놓여있던 한반도의 지형학적·정치학적 조건을 떠올리게 된다. 청명절, 중양절, 곡우, 춘절, 단오절, 정월대보름, 칠석, 섣달 그믐날 수세와 같은 풍습은 한국 세시풍속과 겹친다.

 

당나라는 현종대의 부패가 패망의 길로 접어들기는 했으나 화려한 문화 이면에 만연한 부패가 퍼졌다고 봐야 한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시대였음에도 민중은 가혹한 공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당나라에 간 고양이》에서 세밀한 묘사로 눈길을 끈 귀뚜라미 싸움 그림은 당대 문화 현상을 잘 설명했다. 내기 돈을 건 귀뚜라미 싸움은 평민층에서 유행하다가 귀족놀이로 변했다고 한다. 궁녀나 귀족은 코끼리 어금니나 금으 만든 상자에 귀뚜라미를 넣어두고 싸움놀이를 즐겼다. 

 

귀뚜라미 싸움이 귀족놀이가 된 이유는 귀뚜라미를 공물로 제정하면 조달방식이 쉽기 때문이다. 백성이 잡아 바치고 귀족은 편하게 놀기만 하면 되는 발상이다. 귀뚜라미를 공물로 많이 바쳐서 논밭이나 누각을 하사 받기도 했다고 한다. 반면에 할당만큼 귀뚜라미를 잡지 못했거나 죽을 경우 엄벌에 처해질까 두려워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에서 귀족이 즐긴 놀이 대개는 이처럼 피지배층의 노동력 착취를 기반으로 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귀뚜라미가 공물로 납품되던 귀한 몸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새매를 좋아했던 당 태종은 전문 사육기관까지 세워 새매를 관리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닭싸움과 말 춤, 사냥을 즐기던 지배층의 호사스런 취미는 문화융성과 민중착취라는 상반된 역사를 낳았다.

  귀뚜라미 싸움


《당나라에 간 고양이》는 당나라 문화사를 고양이 캐릭터로 그린 귀여운 그림책이다. 저자가 후기에 쓴 말처럼 진지하지는 않을지라도 많은 역사 자료가 부담스럽지 않는 분량으로 수록됐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 당나라 문화는 과정을 톺으면 민중의 고단한 삶이 가부장적 제도와 맞물렸다. 봉건왕조 체제에서 굴레를 안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기이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현실의 부패와 억압과 불평등을 초현실적 이야기에 투영해 해소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단지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 현실세계의 시간과 공간, 즉 인간을 다룬 것이 당대 전기(傳奇) 소설이라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1. 武則天. 624~705.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 황제. [본문으로]
  2. 당나라의 제6대 황제(재위 712∼756) [본문으로]
  3. 중화사상에 젖어있던 중국이 북방과 서역 민족을 가리키는 말 [본문으로]
  4. 중국 현대 시인 (1899~1946) [본문으로]
  5. 시인 문일다는 <당시잡론>에서 "사람들은 보통 " '당시(唐詩)'라고 부르지만 나는 '시당(詩唐)', 시의 당나라' 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본문으로]
  6. 물질적, 정신적 참조물에서 보이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면모나 모습 [본문으로]
  7. 좌부기 자제 삼백명을 뽑아 노래와 춤, 시와 악기를 교육시킨, 일종의 종합예술학교이다. [본문으로]
  8. 서역에서 들여온 춤으로 작은 원 안에서 바람개비처럼 날쌔게 도는 회전무. 당대에 가장 유행했던 춤. 처음에는 여성이 즐겼으나 나중에는 남성 무용수도 나왔다고 한다. '안녹산'의 난을 일으킨 안녹산도 호선무를 잘 춘 것으로 알려졌다. [본문으로]
  9. 기이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로 한국의 '전설의 고향' 같은 장르이다. 귀신과 요괴, 용왕과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본문으로]
  10. 당나라 때는 애완동물 키우기가 유행했는데 말과 귀뚜라미, 반딧불, 앵무새, 닭싸움에 낙타, 코끼리, 코뿔소, 타조를 귀족이 키웠고 사냥을 위해 치타와 스라소니도 키웠다고 한다. [본문으로]
  11. 상사절에 흥경궁 대동전 앞에서 궁녀들은 1년에 한번 고향부모를 초대해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먼길을 며칠씩 걸려 찾아온 부모를 만나는 일은 운이 좋아야 한다. 궁녀 숫자가 많고 부모 인원도 많았기에 인파에 밀려 목놓아 이름을 부르다가 날이 저물었다고 한다. [본문으로]
  12. 일반 가정집 여인부터 공주까지 남장을 하고 대중 앞에 나섰다고 한다. [본문으로]
  13. 황제 이연의 딸 '평양공주'는 아버지가 수나라를 공격할 때 사재를 털어 낭자군 7만여명을 모집해 직접 출전했다. [본문으로]
  14. 무측천이 가장 신임했던 조서 담당 여성 관리로 미모와 학식이 뛰어났다. [본문으로]
  15. ‘캐스팅 카우치(casting couch)’ : ‘소파’ ‘침상’라는 뜻의 영어로 할리우드 황금기에 많은 여배우들이 제작자에게 자신의 성적 매력을 제공함으로써 영화배우로 입문하였다는 풍문으로부터 연유한 용어 [본문으로]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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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액결제 현금화 2017.12.06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

  2. bore 123 2019.06.10 1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천에서 좋은글 읽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