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일 미국의 시사주간지 TIME은 2007년도 ‘환경 영웅상’에 이명박을 수상자로 정했다. 청계천복원이 수상내용이다. 이런 상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환경‘인’상도 아니고 ‘영웅’자가 특별접미사로 붙은걸 보니 TIME지는 조선일보하고 동문인 것 같다(요새 조선일보는 ‘아덴만 영웅’을 심심치 않게 보도하고 있다)미국에서 ‘영웅’이란 의미는 곧 ‘스타’를 가리킨다. 베트남 전쟁에서 막 패배한 즈음에는 람보가 영웅이었다. 남아메리카 분쟁이 요란할 때는 코만도가 나왔다. 코만도 역을 맡았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지금 캘리포니아 주지사다. 

람보는 베트남을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더니 람보4 에서는 미얀마로 진입해서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람보와 코만도같은 액션 영화의 공통점은 미국과 적대관계에 놓인 적국을 비밀리에 침투해서 일당백으로 미국의 정의를 (폭력으로) 행사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런 인물을 영웅으로 부른다. 스포츠 스타 중에서 막대한 부와 명예를 성취한 사람들도 스포츠 영웅으로 부른다. 시민이 범죄사건 한 건을 해결해도 영웅이 되는 나라가 미국이다.


                                              2007년 10월호 TIME지 환경 영웅상 보도


그렇다면 미국인도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 어떻게 ‘환경 영웅’이 되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영화배우라도 되나? 물불 안 가리고 돌격해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미국식 영웅이라면 자격은 있다. 거대 이벤트를 좋아하고 기업이 살아야 국민이 잘 살 수 있다는 신념의 대통령. 이 책은 2008년 2월 취임식 직전에 읽었다. 임기 2년을 남겨두고 레임덕 같은 것은 모른다고 장담하는 대통령이 안쓰러워 옛 글을 찾았다.

이 책의 부제는 <생각만 해도 가슴 저미는 이름>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어머니라는 저자는 어머니가 남겨주신 유산을 ‘바르게 살 수 있는 정신’-(9쪽)이라고 한다. 세상의 많은 어머니들이 자녀에게 정직과 강인함을 훈육한다. 책에 의하면 저자의 어머니도 자녀들의 삶이 찌그러진 깡통처럼 길거리에서 뒹굴지 않게 가난 속에서 풀빵장사와 노점상으로 연명했다. 그들 가족이 경험했을 가난의 고통을 나는 조금 안다. 내 어머니는 노점상이나 풀빵장사는 하지 않았어도 아버지가 남겨준 검은 빚더미에 파묻혀 돌아가셨다. 조상에게 물려받은 방짜 놋그릇과 화각장과 자수병풍을 팔아 아버지의 사교 비용으로 대고 생활비로 썼다. 말년에는 더 이상 내다 팔 것이 없어 연안부두에서 홍합을 깠는데 칼날처럼 뾰족한 홍합 껍데기에 베여 손가락마다 붕대를 칭칭 감았다. 어머니는 대지주의 일곱 번째 딸이었지만 몰락한 종가로 시집와 이명박 대통령의 어머니와 다를 바 없이 가난한 삶을 살았다.

이제는 가난과 눈물이 버무려진 신파조 비슷한 이야기가 되었다. 풀빵 냄새를 맡으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는 저자처럼 나 역시 홍합만 봐도 어머니의 붕대 감은 손가락이 생각나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러나 슬픔은 잠깐이고 저승의 어머니를 모셔와 이승의 자신을 합리화하는 이명박의 언변술은 점입가경이다. 중학교 때까지도 술지게미를 먹고 연명했다는 저자는 흰쌀밥에 날계란 하나를 최고의 음식으로 친다. 왜 안 그렇겠나. 가난 때문에 영양실조에 걸리고 군대도 면제받고 가출과 자살유혹까지 두루 거친 그의 회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난으로 일관한다. 굶주림은 모멸감이다. 가난은 자신의 무능력을 공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런데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에는 가난이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일종의 동지애적 감정이 훈훈한 인정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가 국민의 경제수준 기표로 삼는 국민소득이 향상되었어도 가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 그 이유를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빈번한 야근에도 전셋집조차 장만하기 어렵다면 사회구조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 대통령의 말대로 '열심히' 일해도 대출금 갚기 어렵고 임금인상은 요원하고 집 장만도 못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국민이 속출한다면 균등한 분배를 의심해 보게 된다.  

그것이 사회적 약자의 소외감을 치유하고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는 시작이다. 좋은 사회의 화두란 ‘우리가 가야 할 길’, ‘키워야 할 힘’에 질문하고 성찰하는 일이다. 불평등과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를 공정사회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고상하게 말해 불공정사회라고 하지만 '엿같은 사회'라고도 불린다. 그런 사회를 뼛속으로 경험하며 성장한 대통령은 
오직 국가와 사회, 가난한 계층을 위해 기도하고 일하라는 어머니의 교육관이 성공했다고 믿는다. 어머니가 새벽 다섯 시에 올리는 기도 내용조차 맨 먼저 국가와 사회와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맨 나중에 가족을 위해 기도하라는 양질의 교육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건 왜 넌센스인가. 국가를 위해 자신을 헌납하겠다는 ‘요란한 이벤트’는 아이러니하게도 기회주의자들이 상습적으로 사용한다.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은 국가충성을 강조하고 강요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 시절 국민은 독재의 억압에 큰 고통을 받고 관치금융과 정격유착의 부패는 오늘의 반 기업정서를 낳았다. 황당하게도 저자 역시 이모형을 그대로 베끼는 대목이 나온다.

1964년 6월 3일 한일회담결사반대시위 주동 혐의로 징역살이를 할 무렵 감옥에 면회를 온 어머니의 세 가지 질문
(공부는 하느냐, 기도는 하느냐, 성경은 읽느냐)을 듣고 민족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직후 친일관련 자료를 정리하는 ‘과거사 정리위원회’를 폐지했다. 나중에는 호적의혹까지 불거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는 무시하는 민족의 지도자’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민족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저자는 박정희의 주선으로 현대건설에 입사한다. 평사원에서 사장을 거쳐 서울시장과 한국의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가 제시한 ‘경제 무지개’는 순진하고 굶주린 국민의 공감대를 얻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후 보여준 인간다운 삶의 프로젝트는 숱한 의혹의 갑옷을 벗지 않고 있다.(영어 공교육과 BBK, 도곡동 땅과 현대건설의 폐망, 건설업자들과 손잡은 4대강 개발사업과 원전...) 한 집에 가족이 모여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는 74쪽의 이야기와 없는 사람의 병을 치료해주는 병원설립 이야기가 나오는 147쪽은 독자를 순진한 이명박‘빠’로 만들려는 우롱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 시장 재임시절 강북 뉴타운 개발 건은 1970년, 80년의 현대건설을 연상케 한다.




그렇지 않아도 책 말미에 수록된 사진 속에서 정주영 전 현대회장의 건설흡착은 토건광풍의 압권이다. 재개발 사업은 건설업에 가장 큰 이윤을 가져다 준다. 철거작업에서 돈 벌고 건축폐기물 운반 작업으로 돈 벌고 신축공사로 돈 벌고 분양사업으로 돈 버는 초 프리미엄급 사업이다. 그러나 미세먼지 증가 같은 환경오염 유발에 저소득층의 주거복지권과 생존권 상실의 문제도 크다.

포항에서 서울로 이사와 판잣집 단칸방을 전전해 봐서 집 없는 사람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저자는 아파트 공화국을 낳은 장본인이다. 이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집은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말이 행동과 엇박자로 나가는 바람에 현대건설 사장 재직 당시 현대 아파트는 고가의 프리미엄을 조장해 부동산 투기의 대표자본이 되었다.

그가 말한 꿈과 희망의 거주공간으로서의 집이 부동산 투기 대상으로 조장된 1970년대 현대 아파트는 부자들이 살던 타워팰리스였다. 서민도 집이 부족하다고 원성이 높아지자 2010년 하반기에는 150만채의 보금자리 주택을 지어 서민에게 집의 희망을 제공했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보금자리 실상은 25평형 한 채당 4억 원대의 상한가를 친다. 재개발 사업으로 지정된 지역만 해도 전국에서 수백 군데다. 보금자리 주택은커녕 치솟는 전세금 때문에 국민은 결혼조차 미룬다. 저자가 말한 꿈과 희망을 생산하는 집의 개념이 이런 것일까.

가난을 극복한 그의 비결은 오직 소처럼 부지런히 일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책 전편에 도배되었다. 대학 등록금 천만 원 시대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애들이 불만을 갖고, 농촌의 붕괴로 절규하는 농민들에게 떼쓴다고 얼굴 찡그리는 대통령. 비정규직 해소나 사회구조적 문제를 아파하는 흔적은 없고 잔 다르크 같은 어머니의 강건함과 현대건설 사장 시절의 무용담을 훈장화한 이 책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는다는 대통령 이명박의 '자화자찬 철면피 철학서'로 읽힌다. 문득, 이 책의 결미에 실린 정주영 회장의 사진을 보며 나는 한 장면이 기억났다. 1988년 5공 비리 특별청문회에 출석한 정 회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월급쟁이들은 제 날짜에 월급 꼬박꼬박 나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만족하고 일해야 합니다. 나 때는 도시락 하나 까먹고 열 몇 시간씩 일했어도 누구하나 불평 없었는데 요샌 배들이 너무 불러요”.

월급은 주는 대로 받고 일이나 많이 하라는 소리다. 시키는 대로 죽어라 일만 하는 건 노예다. 개도 그렇게 다루면 문다.
정 회장은 기술도 자본도 경험도 없던 때에 오직 땅 파먹는 기술 하나로 현대왕국을 세운 인물이다. 그로부터 삽질기술을 전수받은 저자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공약을 지키겠다고 4대강 개발 사업을 벌였다. 서울시장 재임 당시 치적사업인 청계천은 1년에 230억 관리비를 삼키는 괴물이 되었고, 제2의 두바이를 만들겠다는 새만금은 돌고래 떼가 원인도 모르고 죽는 죽음의 땅이 되었다.

4대강 개발 사업과 재개발 사업 조감도를 보면서 직접 경험한 1970년대가 떠올랐다. 홍길동 만화로 유명해서 화백 칭호를 받은 만화가 신동우씨는 대망(大望)의 1980년대를 그렸다. 모두가 집을 갖고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다. 무지개는 지붕 끝에 걸려있고 일가족은 웃는다. 하늘은 파랗고 꽃들은 만개했다. 
박정희가 설계하고 신동우가 그린 1980년의 낙원은 아무 걱정도 불안도 없는 낙원이다. 그러나 그 화려한 마감은 손에 피를 묻힌 전두환이 맡았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의 애드벌룬에 부푼 정부광고 전단지를 보며 성장한 나는 어서 1980년대가 와서 우리 집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기다렸다.

곧 낙원이 찾아온다는 날조는 한번이면 족하다. 배고픈 자에게 배부른 그림을 보여주는 것은 희망을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공허한 요설이다. 그림 대신에 한 덩어리의 빵을 골고루 나눠주면 그걸 먹고 기운을 낼 수는 있다. 교회 장로인 대통령이 예수의 오병이어를 실천한다면 칼 마르크스조차 머리를 조아릴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공약부터 재임기간 내내 1970년대식 '조작된 낙원'을 국민에게 주입했다. 선동하고 호도했다. 나는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는 155쪽의 이야기에서 ‘생존’이라는 글자를 박박 지우고 싶다. 강부자와 고소영 내각으로 부자감세를 추진하고 토건국가에 올인한 대통령의 생존방식은 그의 어머니가 기원했던 국가와 민족을 위한 소명의 기도 덕인가.

대통령의 생존은 무엇을 딛고 일어난 것일까. 그가 말하는 성공은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 물론, 이런 진지한 성찰은 이 책의 어느 대목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저 ‘존나’ 일만하면 행복이 보장된다는 강변만 시종일관이다.
그래서 나는 국민에게 노동을 강요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 노점상에서 오뎅과 떡볶이를 사 먹으며 성공을 말할 때 섬뜩하고 슬프다. 
그리움에 사무치는 어머니를 자신의 남다른 탄생설화에 차용하고 정주영 회장과의 업적 나누기로 마무리 짓는 이 책은 웃으며 읽고 괴롭게 닫는 책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머머리즘(Mummerism)을 수첩에 써 놓고 다니는 이명박씨, 오해하지 말고 제 말 좀 들어주세요(툭하면 국민들더러 자기 말을 오해했다고 하기에) 저승의 어머니까지 빌려서 자신을 광고하니까 좋아요? 이게 최선입니까?



*부기*
1) 고인이 된 화가 김점선의 정치 성향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의 그림이 어떻게 덧칠되는지 판단할 자정 능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아무리 예술과 정치가 오랜 연인관계라고 해도 예술의 개념까지 의심해야 하는 일은 맥 빠진다.

2) 이명박으로 도서 검색을 했더니 서른 권이 넘는다. 이유야 어떻든 이명박은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최고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이명박(지은이)/김점선(그림)/랜덤하우스코리아/2007.3.12


Posted by 윤미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딸기 2011.02.09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니, 저희 메인에 걸리게 되어서 중간에 행을 좀 끊었는데...
    마음에 안 드시면 다시 고치셔도 괜찮아요. :)

  2. 노인장 2011.11.16 16: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주옥같은 글들이 담겨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의 제목도 너무 마음에 듭니다.
    어..머.니 이말의 의미가 책 내용의 전체에 중심이 되는 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책방에 꼭 가서 읽어 봐야 겠습니다.

  3. 네오빤시즘 2011.11.16 2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구절절 긍정과 부정의 기운이 동시에 느껴져서인지 진중하게 글을 읽었습니다.

    시대가 가고있는데 계속 신문을 더 보게되는 것이 좋지많은 않군요..

    아무런 생각없이 길을 거닐다 전경에게 맞을 때도 요즘보다는 좋았더랬죠..

    누구의 말처럼 희망이 약해지는 시대입니다.

    나약이라는 망토를 걸치고 자유로이 나다니는 사람이 많은 이 때에

    사실적인 글을 먼발치서 응원만 합니다.......

  4. 나그네1 2011.11.26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렇군요!
    그래도 우리에게 아니 마음만 부유한 사람들에게도 희망은 있군요~
    의미있는 글 계속 써주실거죠~
    그럼 수고하세요!

  5. 고창석 2019.02.01 1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두 반갑습니다

    naver.com g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