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02년 4월

침묵의 봄은 비안개가 대지를 천천히 그러나 매우 빠르게 지배하는 것처럼 속도감 높여 다가온다. 이 책에서 다룬 ‘살충제’ 문제는 말 그대로 ‘살생제’로 불려야 한다. 농산물 생산량 증가 계획에 맞춰 공중에서 ‘죽음의 비’를 뿌리고, 땅에서는 ‘죽음의 가루’를 분사한다. 전방위적인 화학물질 공격으로부터 지구의 그 어떤 대단한 생명도 무사할 수 없다. 토양에 뿌린 화학물질은 지하수나 강으로 유입되고 식물을 초토화 한 후 물고기와 물고기를 먹이로 삼은 새들을 죽인다. 죽은 새와 물고기는 다시 수중곤충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어떤 물고기는 가축이나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가 태반을 뚫고 유독물질의 위력을 발휘한다. 먹이사슬을 통해 다른 생물체로 연결하는 셈이다.

요컨대 살충제 문제는 단순히 지표위의 식물과 몇 마리의 곤충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잔디밭에 뿌리는 클로르덴이 몸속에 잠복하고 발병 후 사망까지 이르는 순서로 이 설명이 이해될까. 이건 어떤가. 제초제를 밭가에 뿌렸다. 때마침 맞바람이 불어왔고 호흡기로 약이 들어갔다. 그러나 당분간 아무 증상도 생기지 않았기에 위험하다는 생각을 안했다. 안심한 것이다. 알고 보니 밋밋한 화학물질이구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몇 개월 후 팔과 다리에 근육마비가 시작되면서 호흡곤란까지 이어진다. 약의 유효기간에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일이 터졌을 때는 대개 사태의 종결점을 향해 치달을 때다.


호흡기를 통해 침입한 화학물질은 세포의 산소 공급을 차단했다. 신경전달계를 차단한 변이는 돌연변이 인자로 재형성된다. 염색체가 문제를 일으킨다. 운이 좋으면 한 두어 달 고통을 호소하다가 죽을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암세포는 그 이상으로 번성하며 몇 개월간 생명을 유린한다. 자연의 균형이 깨진 순간, 인간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 이야기를 과대 포장했다고 자만한 일부 개발업자들과 화학물질 제조업자들에게 생명을 담보로 당신은 어떤 몽상적 무지, 또는 낙관적 어리석음에 있나요? 이 책의 물음이다. 유전자 변이는 이 시대에 대한 ‘화두’이며 과학기술의 마지막 제시어다. DDT를 발바닥에 태연하게 묻히고 다닌 들쥐로부터 고양이와 개의 기형아 출산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살충제가 묻은 씨앗이나 물고기를 먹은 딱따구리의 알은 부화되지 않는다. 노른자위(단백질)에 축적된 화학물질은 생명탄생을 곧장 죽음의 탄생으로 잡아챈다. 감소하는 출산율과. 기형아 출산 증가는 단순히 ‘신의 실수’인가. 물음 속에 답이 있다.


인간이 살충제 방제 방식을 생물학적 관점이 아닌 화학적 관점으로 대체한 이유는 뻔하다.
1)즉각적인 효과를 확인하고자 하는 조급함.

2)인간이 만물의 지배자라는 오만.

3)손쉽고 편한 생활방식 추구.

4)화학물질의 제조와 판매를 경제와 산업의 한 부분으로 편입.

5)정부의 광범위한 해충구제 계획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살충제 제조업자.


도로위에 뿌리는 제초제 덕에 들꽃과 들꽃의 꿀을 운반하는 벌이 사라진다. 떡갈나무에 숨은 매미나방 유충을 퇴치하기 위해 비행기는 하늘에서 죽음의 비행을 한다. 숲과 강, 토양이 흠뻑 젖을 정도로 공중에서 ‘화학 비’가 내린다. 연안의 물달팽이가 이질을 옮긴다는 결론을 내리고 해안가와 강가에 마음껏 펌핑하는 악마의 샴푸 덕분에 수중곤충이 시체로 발견된다.

이것은 독극물의 고의적 방류를 일삼는 악덕 화학업자의 짓과 다를 바 없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농작물에 뿌리는 그 많은 농약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노릇인지 머리가 빙빙 돈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을 한 번 해 봤다. 유기 농산물을 사 먹고, 정제된 물을 사 먹으며 멸균, 살균 처리된 조경제품을 아파트 베란다에 설치해야겠다. 돈이 좀 들겠지만 건강을 위한 것이므로 기분이 불쾌하지 않다. 그러나 숲과 바다와 강물과 토양이 오염되는 원인 중 내가 저지르는 일을 검열해봐야 한다.


레이첼 카슨은 가정용 세제를 놓치지 않았다. 세제는 공용 식수원에 심각한 오염원이다. 세제는 다른 살충제와 함께 유독물질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 중 몇이나 가정용 세제에 관해 공포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 솔직히 의문이다. 모기나 파리퇴치용 스프레이 약물과 비닐포장지 안에 곱게 쌓인 그 많은 패스트푸드 가공식품의 첨가물에 대한 인식은 깨어 있는가. 일반 가정의 생활방식의 개선도 아직 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생물학적 방제에 관한 지원도 거의 없고, 환경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천적을 이용하는 방법조차 정부 기관에서는 신속한 효과를 거론하며 외면한다.

결국엔 우리가 가는 길은 죽음의 계곡일까. 침묵의 봄을 맞이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을까. 나는 속편한 낙관주의보다 괴로운 비관주의가 이 지구를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1962년 암에 걸린 몸으로 남성주의적 과학 기술을 건드린 레이첼 카슨을 신봉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책이 출간 당시 비난을 받은 이유가 과학에 대한 인간의 오만한 맹신주의와 비밀 핵실험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면 40여년이 지난 지금 지구의 모습은 어떠한가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뜨듯하면서도 아픈 질문이다.


‘여자로서의 위치’를 망각했기 때문에 용서 할 수 없었던 충고가 현재 유효한가. 지구상 생물체의 70~80%를 차지하는 곤충. 그들의 개체 수는 자연의 힘에 조절된다. 인간의 삶에 피해를 입힌 경우 인간이 하는 일이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좀 더 적은 양의 살충제를 살포하거나 천적을 이용하는 대신에 단시일에 효과를 보는 화학물질로 끝을 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약한 곤충은 죽고 강한 곤충은 살아남아 더욱 강력한 방어체제를 갖춘다. 내성을 다진 강력해진 곤충은 방패와 창을 들고 인간을 습격하기에 이르렀다. 다윈의 적자생존 법칙이 인정받았다고 여기자 두려움과 공포로 한숨을 쉬게 된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곤충을 향해 겨눈 무기가 이 지구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문장은 이 책의 결론이다. 앞에서 언급한 몇 개의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왔다.


“살충제는 대부분 비선택적이다. 없애려는 특정한 종만을 제거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독성이라는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살충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살충제와 접촉하는 모든 생물, 가족들의 사랑을 받는 고양이, 농부가 키우는 가축, 들판에서 뛰노는 토끼, 하늘 높이 날아가는 종달새가 모두 위험에 빠진다. 이런 동물은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사실 동물들과 그 주변 환경의 존재로 인해 인간의 삶이 더욱 즐거워진다. 그러나 인간은 그 보답으로 갑작스럽고 무시무시한 죽음을 선사한다.”-(132쪽)


이 책을 지금이라도 읽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2007년 1월 29일-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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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덕선이 2017.05.01 0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년, 화학약품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적으로 다루진 않았지만(노동자의 인권에 대한 얘기가 주로 기억에 남지만)< 생활용품은우리를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를 접하고 나서 이 책에 강한 관심이 갔었는데 아직도 읽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책소개에 어서 접해보ㅏ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진심으로 이 세상이 그 본래의 목적과 자연이 그렇듯 바르게 돌아가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