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7.01.31 박근혜와 눈물 (8)
  2. 2017.01.26 김기춘과 전화기 (4)
  3. 2017.01.19 이재용과 종이가방 (3)

▲ 2014년 5월 19일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 담화문 발표

ⓒ 사진 출처 : KTV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서 304명이 죽고 미수습자 9명이 남았다. 국민 대부분이 멘붕을 겪은 참사였다. 대통령은 즉각 참사 브리핑이나 사과문을 발표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참사 발생 5일째 되던 4월 21일 브리핑룸이 아닌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세월호를 처음 언급했다. 철저히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취지였으나 수석회의 모두 발언이었으므로 공식 사과는 아니다. 4월 29일에는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 분향소에 검은 상복을 입고 조문했다. 눈물은커녕 유족과 대면조차 없는 이상한 조문이었다.


5월 19일 담화문에서 해경 해체를 비롯한 책임자 엄중 문책을 거론하던 대통령은 담화문을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 담화문 내용으로만 보면 대통령 눈물은 이해가 안 된다. 그동안 대통령 단골 레퍼토리 언어였던 “책임 엄중 문책”이 주요 골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임 문책에서 대통령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 것처럼 말했다.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종종 지적을 받았던 점을 상기하면 수긍이 되지만 국정 운영 최고 책임자가 국가 대참사에서 책임 면제 대상이라는 설명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을까.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국가 컨트롤 타워는 청와대, 즉 대통령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대통령이 국가 컨트롤 타워, 이른바 국가 위기 상황 최고 대응기관으로서 청와대가 무관하다는 발표는 국민 가슴에 못을 박았다. 바꿔 말하면 국가 최고 지위를 국민에게서 부여 받은 이가 권리는 가지되 책임은 안 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무엇이 슬펐던 것일까. 정말 국민이 겪는 참사 고통에 대한 공감이었을까. 대통령은 담화문 발표에서 얼굴 표정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눈물을 흘릴 때 나타나는 눈꺼풀 떨림이나 얼굴 근육 움직임이 많지 않았다. 눈물은 눈에서 나타나지만 얼굴 근육과 긴밀하다. 특히 비통한 상황에서 흘리는 눈물은 얼굴 근육 전체를 흔든다. 눈꺼풀은 아래로 향하게 되고 미간은 좁혀져서 주름이 생긴다. 심리가 위축되고 있음에 턱은 목 쪽으로 끌어당기게 된다. 

 

5월 19일 담화문 발표에서 대통령은 초반에 고개를 숙여 사과 인사를 먼저 했다. 정지 화면으로 보면 고개를 숙이기 직전에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므로 눈꺼풀 떨림이나 얼굴 근육 경직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진지한 분위기였으므로 어색하고 경직된 태도가 나올 수 있다. 그러다가 눈물이 보이기 시작한 후반부 들어 대통령은 울컥하더니 놀랍게도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어금니에 힘을 줘서 말하는 바람에 입모양이 화 난 입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고개는 꼿꼿하게 각을 세웠고 눈동자는 당당하게 정면을 응시했다.

 

대통령의 화 난 입과 꼿꼿한 고개, 형형한 눈동자는 눈물과 묘한 대조였다. 전혀 슬퍼보이지 않았다. 외려 선전포고문을 읽는 양 어느 때보다 또박또박 목소리를 냈다. 2012년 1월 2일에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던 박 대통령은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힐링캠프〉에 출연했다. 그동안 살아온 이력을 허심탄회하게 밝히는 시간이었다. 이 방송에서 대통령은 부모님을 흉탄에 여의고 난 이후 심경을 이렇게 밝힌다. “드라마를 보는데 눈물을 막 흘리면서 못살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런 장면이 나오잖아요. 저건 슬픔에 해당하지도 않는데 저런 경우가 무슨 슬픔일까 싶었어요.”

 

심리학자들은 충격을 크게 받거나 반복적으로 영향에 노출될 경우 자아에 균열이 온다고 한다. 성격이나 취향이 변하면서 상처 치료가 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아집과 독선에 빠져 다른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반사회성향을 띠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이 과정에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방치했을 때 나타나는 폐단이라고 한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는 공감 결여나 장애를 보인다. 쉽게 말해서 이타성이 없으므로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한다. 나의 감정과 상태에 집착한 나머지 타인의 기쁨과 고통을 인지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흘리는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다. 이 가짜 눈물은 철저히 자기연민에서 비롯된 눈물이다.

 

2014년 5월 19일 세월호 참사 관련 담화문 발표에서 대통령은 이를 악문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슬픔만이 가장 슬픈 것이자, 자신의 고통만이 가장 힘든 일이 아닌 다음에야 이후 세월호 참사를 극복하는 일련의 행동에서 왜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세월호 특별법은 유야무야 흩어졌고 유족들은 다시는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이래서 박 대통령의 눈물을 두고 친박을 결집시키려는 ‘눈물 마케팅’이라는 말이 나온다. 때마침 올해는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 된다. 탄핵 인용 여부와 별도로 기념식에서 대통령은 또 어떤 정치 계산으로 눈물을 흘릴지 모른다. 박 대통령 눈물이 안타깝게 와 닿지 않는 건 남을 위한 눈물은 모른 채, 오직 자기를 위한 눈물로 비춰진 때문이다.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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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휴 2017.01.31 1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통이란 사람이 드라마나 보고 인용하는게 어째 드라마 아니면 없는지, 그러고 보니 드라마 사랑 징하게도 오래 되엇내요. 저는 저때 눈물 보면서 소름 끼쳤습니다. 표정이 넘 무서운...

  2. 김정인 2017.01.31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쑈를 잘해요.
    박양!
    수백명의 학생을 제물로 바쳐놓고 국민앞에 눈물쑈.

  3. 하연실 2017.02.01 1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짓의 눈물이라고 알려나
    드라마를 넘 많이봐 연습 많이 하였네

  4. 백만돌이 2017.02.02 0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누스 같은 인간이 흘린 눈물은 악어의 눈물뿐이란 걸 잊으면 안 된다

  5. 남을비판하지마라 2017.02.02 05: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들이 대통령이었으면 오전 9:30분에 모든것이 판가름나있었던 상황에 학생들을 살릴수있었을까요?

    • 윤미화 2017.02.02 0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1. '남을비판하지마라'님은 "오전 9:30분에 모든 것이 판가름 나 있었던" 상황을 어디서 수집하신건가요? 제가 알고 있는 팩트는 오전 9시 45분에 이준석 선장이 구조된 것으로 압니다. 배 안에 승객을 구조할 시간이 적어도 이때까지만 해도 충분히 있었던 셈이죠. 팩트를 알고 반론을 제기해주시기 바랍니다.

      2. 만에 하나 님의 말처럼 오전 9시 30분에 모든 게 판가름 났다고 해도 승객들이 배 안에서 죽어가도록 방치해야 하는 게 옳은 걸까요?

      3. 이 참사는 사고와 수습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선박회사와 국정원의 얽힘 관계가 사고 원인이라면 사고 수습은 국가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구조해야 하는 겁니다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지요. 대통령은 평일임에도 왜 본관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서 수상한 일정을 보낸 것일까요? 많은 국민이 이게 나라냐 하는 원성이 나온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4. 대통령은 국민 투표로 선출된(이번 대통령은 그마저 의혹 투성이지만) 국민의 종복입니다. 국정 운영권을 부여받고 그에 따른 막중한 책임도 부여 받습니다. 사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무거운 자리입니다. 세월호 참사 수습을 못한 대통령에게 자질을 물어보는 건 공화정 국가에서 당연한 국민 권리입니다.

      5. '남을비판하지마라'님은 본인의 닉네임과 괴리가 되는 오류를 범하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세요?

    • 뭐냐넌 2017.02.02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학생들을 살릴 수 있었다 살릴 수 없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최소한 국가 지도자로서의 책임이 문제인 거 아닌가? 이상한 방향으로 물타기하네, 이 정신나간 양반.

  6. 인사시머(人刺身ER) 2017.02.02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 비록 주먹질로 먹고살지만 뭐가 옳고그른 정도는 안다.
    9시30분이면 배가 뒤집어지기전이다.
    니가 빨아대느 그싀벌연은 그위급한 때 무슨 질알한다고 방구석에 쳐박혀서 꼼짝않고 있었다냐?
    9시30분 그이야기는 김규현 그쇄뀌가 헌재에서 그렇게 씨부렸다고 하더구만...
    그소리를 들었다고 너도 여기서 말도 안되는 소릴 하는거냐?
    제대로 알고 상식적인 댓글 올려라 요즘처럼 무서운 세상에 개소리하다가 칼침 맞는다.

▲ 2016년 12월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서 오전 질의가 끝난 뒤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 사진 출처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1946년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정치는 공안 통치였다. 이승만은 ‘빨갱이’를 색출하자고 했고, 박정희는 ‘간첩’을 처단하자고 했으며, 전두환은 ‘프락치’를 족쳐야 한다고 했다. 실제 그리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종북’ 척결이 이념이었다. 이념은 아직 공화정이 자리 잡지 못한 나라에서 누군가의 권력 유지를 위한 가장 좋은 도구이자 여론몰이 땔감이다. 이념은 그림자처럼 어떤 일에든, 어떤 사람에든, 어떤 곳에든 따라붙었다. 많은 사람이 사라지고 다쳤고 죽었다. 권력자는 도덕 감정과 윤리 양심은 신경쓰지 않았다. 은밀한 움직임 끝에 노골적 여론 선동이 박자를 맞췄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는 통신이 관여했다. 통신은 비밀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도 되는 양 조작 건설에 절대적 힘을 발휘했다. 통화내역 조회 기술이 없던 1970년대 전화는 완벽한 명령체계 전달 수단이었다.

 

1970년대부터 남들보다 전화에 예민하게 살아왔을 사람, 김기춘. 1939년생, 일흔여덟 살. 청와대 전 비서실장 직함이 어쩌면 생에 마지막 공식 네임드가 될지도 모른다. 김 전 실장은 삼십대 초반에 유신입법에 참여했다. 삼십대 중반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국장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공안 통치 이념을 실행했다. 사십대 중반에 검사장을 따냈고, 이어 검찰총장에 취임했다. 오십대 초반에 최연소 법무장관이 되었고 일흔 다섯살에 청와대 비서실장이 되었다. 이만하면 관료로써 최고의 공명을 얻었으니 집안에서는 엄지 척! 성공한 사람으로 불릴지도 모른다. 


정치 검사로 성공한 모사꾼이자 전략가였던 김 전 실장은 귀엣말과 전화를 애용한다. 속삭임은 정적에게 작전이 노출될 위험을 줄이고 논쟁에서 자유롭다. 작전에 집중하기에도 좋다. 실수가 있다하더라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한 형체가 없다. 탐정처럼 세세하게 탐지하고 분석하고 예견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은 또박또박 말하되 서라운드 스피커처럼 울리지 않는다. 걸음걸이는 가볍고 행동은 민첩하다. 늘 상대방 의중을 먼저 알아채는 눈동자는 좌우로 빨리 움직이며 제스처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조작이란 자신을 드러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조작은 은폐와 공조 관계이다. 평생을 스릴러에 익숙했던 사람처럼 김 전 실장은 청문회장에서 속내를 감춘채 간결한 답변을 했다. 사라져가는 과거의 망령에 취한 사람답지 않게 차분한 척 세련된 연출을 유지했지만,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생방송에 노출된 때문인지 연기는 완벽하지 못했다. 공안 통치로 일궈 온 명예와 40년이 넘도록 “주군”으로 받들어 모신 박정희 일가를 향한 편집증은 자주 주먹을 쥐면서 나타냈다.

 

정회시간에 복도에 나가 전화 통화를 하던 김 전 실장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아마 몸을 돌렸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 밖 일이 생겼다. 몸을 돌린 방향에도 기자가 있다. 당황한 순간이다. 기자를 보고 종이를 쥔 왼 손에 힘이 꽉 들어갔는지 종이 반이 접혀지기 직전이다. 조명을 등진 얼굴 반에 그늘이 졌다. 눈썹 아래 그늘 때문에 미간이 뿔처럼 돋보이지만 음침하거나 음험한 분위기가 아니다. 현실을 기이하게 쪼개놓은 비현실적인 단면처럼 의외로 차갑다. 사실과 진실과 거짓을 뒤범벅 섞어 밀 반죽처럼 법을 주물렀던 사람같지 않게 초조하고 심각한 긴장감은 이마를 덮고 정지한 눈동자를 거쳐 다문 입으로 연결됐다. 이마와 입은 같은 표정을 짓는다. 이마에 수심이 가득하니 입이 웃을 리 없다. 


간첩을 만들고, 사법부를 통제하고, 블랙리스트로 탄압하고, 관제데모를 지시한 언어에서 증오와 공격이 물씬 짙다. “응징”, “배제”, “독촉”, “강구”, “조사”, “척결”, “문책”과 같은 말은 조작을 지시할 때 쓰는 말이다. 권위적 성격이 강할수록 수직적 체계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전화로 지시하고 접수하는 특징이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대면보고 대신 전화보고를 애용했다고 알려졌다. 여든을 앞둔 나이에 자신이 이제까지 건설했던 공안 통치가 무너져 내림을 인지한 것일까? 팔십 평생 통화 가운데 가장 무거운 통화였을지도 모를 청문회장 복도에서 찍힌 김 전 실장의 사진은 ‘조작 정치 실제가 불쑥 드러난 순간’을 포착했다. 그곳에는 전화기가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김 전 실장이 받고 건 전화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제는 전화기에 스스로 속박 당한 모습을 본다. 김 전 실장과 전화기는 운명공동체이다. 김 전 실장이 자유롭고 대범하게 전화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될 때 오랫동안 그를 지켜준 썩은 권력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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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단골 2017.01.26 1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사진 한장' 새로 카테고리 개설하신 거 기대합니다. 김기춘을 보고 있으면 이 나라 이념 기조가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짐작이 가죠. 이 사람은 지금도 자기가 모신 주군을 잘 보필하지 못해서 이런 사단이 났다고 청문회에서 말하는 거 보고 기함했어요. 주군이라니, 참내. 간첩 혐의 받은 분들 고생을 생각하면 반드시 무거운 죄 물어야 합니다.

  2. 강철군화 2017.01.29 14: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반도에 유신망령이 배회하고 있다. 조작과 공안통치의 대리인이자 설계자인 김기춘. 유신의 딸 박근혜를 앞세워 종북몰이와 프레임 전환의 기술자로 목숨 연명해왔다. 그가 저지른 죄과는 셀수도 없겠지만얼마 남지 않은 그의 인생 차디찬 감옥에서 송장이 돼서 나오겠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저지른 죄에 비해 그의 남은 인생이 충분치 않다. 그게 아싑다.

  3. 하늘바람 2017.01.30 2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사진만으로도 많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설명은 더욱 감각적입니다
    고맙습니다

  4. 김사랑 2017.01.31 0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한장으로 그의 모든 행적을 알수없지만 기자님 맕대로 전화기와 김기춘은 뗄래야 뗄수없는 ㄱㅓ맞네요.
    저 전화기 통화내역조회하면 숱한게 나오겠지요.
    대포폰이 있을지도 모르겠치만.
    노인들이 박정희에게 눈을 뜨는 올바른 뉴스는 언제쯤 지상파에서 볼수있을까요.
    김기춘이나 박근혜가 옥살이를 한다쳐도 뉴스에 나오지 않는한 노인들에게는 여전히 박정희이념에 사로잡혀 있겠지요.

  ▲ 2017년 1월 19일 오전 6시 10분 경기도 의왕시 서울 구치소를 나오고 있는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 사진출처 :연합신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1시간 만에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 구치소 정문을 향해 걷는 사진은 이미지야말로 현실의 이면임을 말하고 있다. 현실과 접근이 불가능할 것 같은 사진 속 이미지는 순간을 완벽하게 정지시켜 재현하는 사진의 본질이다. 새벽 여섯시 십분, 이재용 부회장은 교도관과 함께 구치소 정문을 보며 걸어 나왔다. 정문 앞에는 영장 기각 소식을 듣고 모인 취재진과 측근이 불을 밝히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 부회장은 정문 쪽에 모인 기자들을 의식했는지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이 사진에서 ‘의외의 발견’은 이 부회장의 걷는 자세와 손에 든 종이가방이다. 다리를 굽히지 않고 걷는 교도관에 비해 이 부회장 왼쪽 다리는 약간 굽었다. 오른쪽 다리도 필요 이상으로 뒤꿈치가 들렸다. 오른쪽 어깨는 지나치게 뒤로 제껴졌다. 몸의 균형이 맞지 않아 보인다. 몸에 힘은 빠졌고 관찰되고 있음을 의식하면 과잉 행동을 낳는다. 잘 보이려고 하지만 스텝이 꼬여서 잘 안 된다. 비슷한 이유로 심약한 심리를 감추기 위해 강한 척 연출하고, 가진 것 없지만 있어 보이려고 허세를 부리면 외려 억지스럽다. 말하자면, 강한 자는 강하다고 강조하지 않으며 있는 자는 있음이 일상이라 전시에 신경 쓰지 않는다.

 

이 부회장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긴 시간을 보낸 하루였을 것이다. 재벌3세로 태어나 일찌감치 관찰대상으로 살아 왔다. 의도, 연출, 이미지와 같은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가장 부유한 사람이며 부의 계승자로 관찰대상이었으므로 피곤한 일상이다. 게다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조차 경험하지 못한 구치소 경험을 했다. 법을 주무르고 법을 희롱하며 법에 주눅 들지 않던 ‘사필귀쩐’이 무너질지도 모를 불안감에 뜬눈으로 밤을 보냈을 것이다. 희붐한 새벽 여섯시에 이 부회장은 명품 코트를 입고 정장을 했지만 얼굴에 묻어난 피로함은 그대로 걸음걸이에 전달됐다.

 

그리고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종이가방을 들었다. 이제까지 이렇게 무거운 물건을 들어본 적은 없을지도 모른다. 오소리 가죽이나 낙타 가죽, 또는 악어가죽으로 만든 지갑은 들었을지언정 가방을 들어본 적은 없었을 사람이 조금만 세게 잡으면 구겨지거나 찢기는 종이가방을 들었다. 무엇인가를 손에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이 부회장은 정문에 도착하자마자 측근에게 서둘러 종이가방을 건넸다. 서민이나 드는 하찮은 종이가방은 명품 코트 정장과 구색이 어울리지 않았다. 격이 맞지 않는 조합이었으므로 서울 구치소에서 들고 나온 종이가방은 이 부회장에게 치욕을 상징한다. 

 

430억 원 뇌물 청탁 혐의에 영장이 기각된 이 상징적인 장면은 이 부회장 일생에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기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은 정의, 평등한 법, 도덕 심리와 상관없이 ‘사필귀쩐’ 관행과 비상식이 기생하는 사회구조에 심난하다.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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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곰스크철도원 2017.01.20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재용이 든 종이가방을 본 많은 사람들은 황제에게 격이 맞지 않는 모습이라 생각했을겁니다. 사필귀쩐이 딱 맞네요. 약자에게 가혹한 법을 두고 어찌 합리적 판결이라고 할수 잇단 말인지요. 살맛 안납니다. ㅠㅠ

  2. 영장 기각 보니까 2017.01.20 1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400원 때문에 해고된 기사님 생각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인거에요. 아주 삼성장학생 새끼들이 나라를 죽사발 만드네요.

  3. 단골 2017.01.24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일자로 이재용 사진만 오려서 우라까이한 경향신문 기자가 쓴 기사보다 디테일하게 본 이 글이 훨 낫네요. 저 사진에서는 정말이지 종이 가방이 포인트인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