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여우'에 해당되는 글 81건

  1. 2016.12.26 집념의 검사 프리츠 바우어
  2. 2016.12.15 시키는 대로만 했어요
  3. 2016.11.16 7시간 사생활 (5)
  4. 2015.12.24 크리스마스와 스크루지 영감
  5. 2015.12.03 서민생존헌장
  6. 2015.11.26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7. 2015.10.29 직원 구합니다 (4)
  8. 2015.10.22 12년 동안 당한 사기 (1)
  9. 2015.09.03 표절과 진실
  10. 2015.06.12 하늘이 내리신 그분

▲ 영화 〈집념의 검사 프리츠 바우어〉포스터



“1945년이 되자 정말 악인들한테 승리한 줄 알았어요. 새로운 사회를 세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유, 정의, 박애. 하지만 아무도 전망을 가지려 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단지 근사한 집과 멋진 차 마련에만 신경 쓰죠. 그놈을 프랑크푸르트 법정 피고석에 앉히면 밤에 잠 못 이룰 사람들이 수두룩할 거요.” 

 

1957년 독일 헤센 주 검찰총장 프리츠 바우어[각주:1]는 나치 정권 부역자 수사가 난관에 봉착하자 헤센 주 주지사를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제2차 대전이 끝난 지 12년이 지났지만 나치 부역자 청산은 지지부진했다. 미국과 손을 잡고 경제부흥을 꾀한 아데나워[각주:2] 정권은 화해를 주창하며 부역자 척결에 미진했다. 나치 척결에 대한 아데나워의 느슨한 사고는 나치 친위대 정보요원 출신 한스 글롭케[각주:3]를 비서실장에 임명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나치당은 해체되었지만 나치와 긴밀한 관계였던 인물들은 여전히 경찰국장이나 연방정부 검사 등 요직에 있었다. 따라서 추악한 과거를 덮고 현재 권력을 놓고 싶지 않은 부역자들은 부역자 척결 수사에 적극적인 바우어를 감시하고 제거 음모를 꾸민다.

 

오랫동안 추적했던 나치 ‘최종해결’ 책임자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각주:4]을 독일 법정에 세우기 어렵게 되자 바우어는 이스라엘 모사드[각주:5]에게 체포해 줄 것을 요청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리카르도 클레멘트라고 하는 가명으로 메르세데스 벤츠 공장을 다니고 있던 아이히만은 1960년 5월 모사드에게 체포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독일 영화〈집념의 검사 프리츠 바우어〉(Der Staat gegen Fritz Bauer, 2015)는 아이히만이 체포되기까지 과정을 군더더기 없이 만들었다. 독일 경찰국과 사법부의 온갖 방해 공작에 좌절한 바우어가 적국 이스라엘에게 정보를 제공하면서까지 아이히만을 체포한 이유를 영화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히만을 과거와 마주하게 할 수 있게 할 때, 비로소 독일은 재건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모사드가 아이히만을 체포해 예루살렘으로 데려가고 바우어가 공식 송환을 요청하면 독일로 아이히만을 보내겠다고 협의한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서독을 동시에 주무르고 있던 미국은 친미정권 아데나워를 지켜줘야 했다. 만에 하나 아이히만이 독일 법정에서 나치 부역자 이름을 자백한다면 부역자로 채워진 아데나워 정권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일이었다.

 

때마침 아랍을 견제하는 힘이 필요했던 이스라엘은 많은 무기가 필요했다. 미국은 재빨리 중재에 나섰다. 결과는 바우어 뜻과 정반대였다. 독일은 이스라엘에 무기를 팔고 그 대가로 이스라엘은 아이히만을 독일로 보내지 않는다. 과거 적국이었던 독일과 이스라엘은 정치 거래로 밀약했다. 물론 이 거래는 양다리를 걸친 미국이 결정적 역할을 맡았고 독일의 과거와 대면하는 일로부터 멀어졌다. 피해자를 위한 진실규명에 가장 반대하는 집단은 정부라는 사실을 인증한 셈이다.

 

아이히만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모사드에게 체포되기 전에 우파 잡지 ‘〈길〉(Der Weg)’과 회고록을 겸한 비공개 인터뷰를 한다. 유대인 관련 문제가 어떻게 결론 날 것 같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1천 3십만 유대인 전부를 죽였다면 저는 만족하면서 이랬겠죠. “좋다, 적을 모두 제거했다.” 우리의 피, 우리 인민, 인민의 자유를 위한 사명을 완수했을 겁니다. 제가 애초 기획한 적 섬멸 계획을 끝까지 수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이 저한테도 있습니다. 저한테 부족함이 있었고, 책임이 있습니다. 정말 더 많이 할 수 있었을 텐데요, 해야만 했었어요.”

 

지난 22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 출석한 청와대 전 민정수석 우병우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청문회가 끝나갈 즈음 지금과 같은 대통령 탄핵 소추 소감을 묻자 “그때 좀 더 세밀하게 일처리를 하지 못해 미흡하다고 여깁니다.”고 답변한다. 설마 우병우 전 수석이 “미흡하다”고 여긴 말뜻에 아이히만이 말한 “적 섬멸 계획을 끝까지 수행하지 못한” 심정이 겹쳤다고 여기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청문회에서 끝까지 ‘국감 쌩깜’ 태도를 보면, 진실규명에 앞장 선 바우어와 대척점에 있었던 정치검사가 아닌지 의문이다.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하야 성명


〈집념의 검사 프리츠 바우어〉를 보면 해방 이후 우리가 시도했다가 실패한 일제 부역자 청산이 떠오른다. 제헌국회는 1948년 8월 헌법 제101조에 의거해 ‘반민족행위처벌법’[각주:6]을 만들었다. 이 법은, 국권피탈에 적극 협력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제국의회의원이 된 자, 독립운동가 및 그 가족을 살상·박해한 자는 최고 무기징역 최하 5년 이상의 징역, 직·간접으로 일제에 협력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재산몰수에 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미군정은 반민처벌법이 미군정과 동맹 관계였던 친일 경찰과 정치인을 조준한다는 이유로 인준을 거부했다. 이들을 당장 숙청한다면 인재난에 허덕이고 정부가 무기력에 빠지며 국가가 위험에 처한다는 명분이었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은 친일 경찰 출신 최난수, 홍택희, 노덕술을 이용해 반민특위 위원을 제거하는 음모를 짰고 심지어 1949년 2월에는 반민법 법률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했다. 반민처벌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이 법안은 부결되었지만 이승만은 국회 프락치 사건[각주:7]을 일으켜 사실상 처벌법을 폐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진실규명 은폐는 5·16[각주:8], 12·12[각주:9] 군사정변으로 대변되는 권력의 사유화로 이어졌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을 주축으로 한 군사정변 주역들

 

방송에 출연한 바우어는 패전 이후 독일을 구축하는데 힘썼지만 미래를 위한 에너지와 관심을 어떻게 모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민주적 헌법을 자랑할 만하다고요? 제 생각엔 우리 독일인들은 들판과 산을 자랑스러워할 순 없어요. 그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괴테와 쉴러를 자랑스러워할 수도 없어요. 아인슈타인도 그래요. 지금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우리가 직접 만든 것들뿐입니다. 


우리 독일의 분위기는 우리가 아버지, 어머니, 자식으로서 날마다 하는 일들로부터 결정된다고 믿습니다. 법조항을 작성하고, 기사를 쓸 수 있고, 최고의 기본법을 만들 수 있어요. 근데 진짜로 여러분들 한데 필요한건 민주적 사회를 사는 시민들이예요. 어느 개인이 민주주의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그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임무입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수사를 위해 11월 30일 박영수 변호사가 특검에 임명됐다. 몇차례 관련 의혹 인물을 공개 소환하거나 압수 수색 하면서 수사 의지를 보이고는 있지만 삼성과 유착한 정경유착 비리를 어디까지 파헤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유신헌법을 기초하고 대통령 아홉명을 모시면서 지금까지 건재한 정치검사 김기춘과 리틀 김기춘으로 불리는 우병우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궁금하다. 박영수 특검을 기대하는 많은 이들은 온갖 협박과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나치 부역자 척결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프리츠 바우어를 떠올릴 것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엄동설한에 광장에 나가는 이유이다.


 


▼ 각주

  1. Fritz Bauer.(1903.7.16~1968.7.1)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 검사. 1920년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사회당원으로 활동하다가 나치 정권 당시 수용소 수감 중 사회당원 포기 각서를 쓰고 덴마크로 추방 당했다. 종전 후 독일로 돌아와 나치 부역자 척결 수사에 검찰총장으로 임명됨.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비롯한 많은 부역자 색출에 앞장 섰다. [본문으로]
  2. Konrad Adenauer. (1876~1967). 독일 총리. 독일의 정치가. 기민당(基民黨) 당수. 프라이부르크ㆍ뮌헨ㆍ본 대학에서 공부한 뒤 쾰른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1906년 시청 직원으로 들어가 1917년 41세 때 시장이 되었다. 제1차 대전 뒤에는 프러시아 주 의회 의장으로 활약하였고 나치스 시대에는 히틀러에게 반대하여 두 번이나 감옥 생활을 하였다(~1944). 제2차 대전이 끝난 뒤에는 69세의 나이에 다시 쾰른 시장으로 일하다 영국군과 의견이 맞지 않아 물러났으며 기독교 민주동맹(CDU)을 조직하여 당수가 되고 제헌 의회 사회 민주당과 싸워 1표 차이로 수상에 당선되었다. 1951년 외상을 겸하고 공산주의 세력을 내쫓는 데 진력했으며 구주 경제 공동체(EEC)를 만들어 경제 부흥을 이룩하였다. 1963년 10월 수상의 자리를 물러날 때까지 수상에 3선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
  3. Hans Josef Maria Globke. (1898.9.10~1973.2.13) 독일 출신 관료이자 변호사. 나치 정권 당시 유대인 재산 몰수와 청소를 착안한 뉘른베르크 법안 기초에 참여했다. 종전 후 아데나워 총리 비서실장으로 재직했다. 1963년 사임하면서 독일 연방 최고 훈장인 그랜드 크로스 훈장을 받았다. [본문으로]
  4. 독일 나치당 친위대 중령. (1906.3.19~1962.5.31) 오스트리아 출신 나치 장교로 독일 점령하에 있는 유대인을 색출하고 체포해서 수용소로 보내는 총괄임무를 맡았다. 그가 결재한 '유대인 청소' 작업 인원은 대략 밝혀진 것만 해도 5백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 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명을 쓰고 살다가 이스라엘 비밀 정보조직 모사드에게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처형됐다. [본문으로]
  5. 이스라엘의 비밀정보기관. ‘정보 및 특수임무연구소(ha Mossad le Modiin ule Tafkidim Meyuhadim)’가 정식 명칭이다. [본문으로]
  6. 1945년 8월 이전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하여 1948년 9월 제정되었던 법률. [내용] 일제강점기 동안 각 독립운동단체는 일제에 협력한 자의 처벌을 주요 정책으로 삼았다. 그러나 미국 반대와 이승만 정권의 소극적 태도와 공작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함. [본문으로]
  7. 1949년 5월부터 8월까지 남조선노동당의 프락치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현역 국회의원 10여 명이 검거되고 기소된 사건. 이승만 정부가 반민특위의 활동을 훼방 놓은 일련의 움직임. 1949년 3월 제헌국회 의원 중 김약수와 같은 진보 정치인들이 외국 군대 철수안, 남북통일 협상안 등을 골자로 한 <평화통일방안 7원칙>을 제시하였다. 남로당 측과 소통한 암호문을 가지고 있던 정제한 의원을 체포하면서 국회 프락치의 충격적 사건은 막을 내린다. [본문으로]
  8.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육군 소장과 김종필 등 정군파 장교 중심으로 이루어진 군사쿠데타. [본문으로]
  9.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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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1. 1961년 재판정에 나온 아돌프 아이히만(부스 안)

2. 1999년 재판정에 나온 모리스 파퐁

3. 2016년 12월 중앙지검에 출두하는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1.

1960년 5월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체포된 남자가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게슈타포 과장이었던 남자는 아우슈비츠로 유대인을 보냈다. 소위 ‘최종 해결’ 책임자였던 남자가 폴란드 수용소로 보낸 유대인은 5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독일이 패전하면서 남자는 미군에 체포되어 수용소에 갇혔다. 그러나 가짜 이름을 대고 수용소에서 나온 뒤 이탈리아로 도망갔다가 1950년 아르헨티나로 가는 배를 탔다. 남자는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명을 쓰며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듯했지만 10년 만에 도피 생활은 막을 내렸다.

 

이 남자 본명은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 1906년 3월 19일~1962년 6월 1일)이다. 독일 출신 미국 정치 이론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년 10월 14일~1975년 12월 4일)가 쓴 실제 재판 이야기《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아이히만은 나치 친위대였던 SS(Schutzstaffel) 중령으로 유대인 이송 최고 책임자였다. 1960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전범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2차 대전 당시 자기가 한 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법적인 책임은 없습니다. 도의적인 책임이라면 있겠습니다만. 제가 내린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 마음은 늘 가벼웠습니다. 물고기를 잡듯, 유대인을 잡아 목적지로 보내는 일은 단지 제 업무였을 뿐입니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이 한 말은 위에서 지시를 받고 한 일이기 때문에 나는 아무 책임이 없다는 말이다. 아이히만 말대로라면 법적 책임은 아이히만에게 명령을 내린 상부에게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맡은 업무가 수백만 명을 위험에 빠트리게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①. 아무리 상부 명령이라고 해도 옳지 않은 일을 할 수는 없다.

②. 법적 책임이 나에게 없으므로 문제가 안 된다.

③. 내가 아니어도 어차피 누군가 할 일이므로 양심에 가책을 받지 말자.

 

재판을 지켜봤던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의 판단력 마비를 이렇게 해석한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바보였기 때문이다.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2.

전쟁이 끝나고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로 도망갔던 1950년대부터 60년 초반에 프랑스에서는 과거세탁을 한 남자가 있다. 남프랑스 보르도 지방 치안 책임자였던 이 남자는 1942년에서 1944년까지 2년 동안 유대인 1690명을 폴란드 유대인 수용소로 보냈다. 당시 프랑스는 나치 꼭두각시로 비시 정권이 장악했다. 독일 패전이 임박하자 남자는 레지스탕스 정보원으로 변신한다. 레지스탕스 공로를 인정받은 남자는 나치부역자 척결에서 살아남았다.

 

기회를 잘 이용한 이 남자는 1999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전범 재판을 받은 ‘모리스 파퐁’(Maurice Papon. 1910년 9월 3일~2007년 2월 17일)이다. 파퐁 재판을 계기로 나온 소설이 《처절한 정원》(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문학세계사. 2005년) 이다. 


드골 정부 신임을 얻으면서 파퐁은 승승장구한다. 알제리 전쟁에 투입되어 반군 포로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파퐁을 견제할 힘은 없었던 듯싶다. 파퐁은 1958년부터 1966년까지 파리 경찰국장 재직 중 알제리 이민자 탄압에 앞장섰다. 알제리 이민자 희생자 수는 공식 집계만 200여명에 달하지만 진압작전에 성공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레지옹 도뇌르 최고 훈장을 받는다. 마침내 1978년 파퐁은 예산장관에 임명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오는 법이다. 보르도 지방 낡은 창고에서 발견된 파퐁의 ‘더러운 과거 문서’가 나오면서 1997년 파퐁은 법정으로 나왔다. 이때 파퐁은 여든 일곱 살로 연금을 받으며 안락한 노후를 즐겼다. 파퐁이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고령이라는 이유로 재판은 6개월이나 걸렸고 10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파퐁은 스위스로 도망을 갔다.

 

적극적으로 해외 수배령을 내리지 않은 채 허송세월 몇 년이 지났다. 여론이 악화되면서 파퐁이 스위스에서 호송되었지만 수감기간은 3년에 불과했다. 병보석으로 풀려난 파퐁은 2007년 아흔여섯 살에 죽었다. 장례식은 유언대로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와 함께 매장됐다고 한다.

 

파퐁은 재판정에서 이렇게 변론했다. 나는 위에서 시키는 일을 했고, 나치가 무슨 일을 벌이는지 몰랐다.” 아이히만도 법정에서 이와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어떠한 인간도 죽인 적이 없다. 나는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단지 이송하라는 명령을 실행했을 뿐이다.”

 

3.

지난 13일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채널A 취재진과 만나 청문회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경제수석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이 죄가 됐다.” 청문회에 출석했던 7일에는 손경식 CJ그룹 회장을 만나 이미경 CJ 부회장 사퇴를 강요한 혐의 추궁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박 대통령의 뜻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 아렌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인 ‘생각없음(thoughtlessness)’이 악의 근원이라고 한다. 영향과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이나 파퐁은 성실한 수행자였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자문하지 않았고 고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옥스퍼드 대학원 정책학 박사인 조원동 전 경제수석 같은 엘리트조차 나치 전범이었던 아이히만이나 파퐁과 똑같은 말을 한다. 


조 수석뿐만 아니라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해 박근혜 대통령 측근들과 비선 실세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인 사람들이 아이히만이나 파퐁과 같은 이들이다. 일제 협력자 출신 김창룡과 노덕술처럼 완장 채워주면 ‘시키는 대로 했다가 나중에는 알아서’ 어긋난 권력을 행사했던 인물을 21세기에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혹하다. 우리 현대사 비극은 이처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가운데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에서 나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권력에 의탁한 맹목적 욕망에 충실한 이를 가리켜 세간에서는 ‘정권의 개’라고 부른다. 개에게 미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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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간 사생활

인민여우 2016.11.16 01:22

▲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가 배 안에서 보낸 문자


박근혜 대통령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는 11월 15일 대통령의 검찰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제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보면 대통령이 피의자가 될 확률이 높아지고 있는 와중에 나온 회견이다. 내용 골자는 두 가지로 압축되는데 변론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과 의혹이 정리되어야 조사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하소연이었다. 이런 핑계는 대부분 시민이 예상했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기자회견 마지막에 나왔다.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도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다.”

 

무슨 말인지 언뜻 이해가지 않았다가 김영재 의원과 차움(chaum) 병원이 떠올랐다. 두 병원은 요즘 한국에서 가장 핫(hot)한 병원이다. 15일 복지부에서는 최순실 자매가 차움에서 정맥주사약을 대통령 대신 대리 처방 받은 정황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대통령도 당대표 시절부터 ‘길라임’이라는 가명으로 차움에 드나들었다고 한다. 대통령도 우주의 기운만으로는 몸을 챙기기 어려웠던 것 같다.  

 

잠깐 이야기를 곁다리로 붙이자면 아래 사진은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화장품이다.

 

에센스 스킨, 아이크림, 콤팩트 파우더, 눈썹 펜슬, 립팔레트, 립밤. 여섯 가지이다. 화장품이 몇 가지 없다보니 화장하는 시간도 7분이 채 안 걸린다. 별도로 피부 관리 받은 적도 없다. 나처럼 하루 종일 빈둥대는 사람은 피부 관리가 덜 필요하지만 대통령이야 어디 같은가. 흙수저로 태어난 나의 7분과 그분의 7시간은 태생부터 다르니 피부 관리는 말해서 뭣하랴. 대통령은 외교사절도 맞이하고 외국순방도 가고 국내 정치인이나 행사 관련해서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좋은 인상은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속담처럼 아마 대통령도 예쁜 인상을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유영하 변호사가 말한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은 이처럼 처방전을 의식한 사전포석이다. (SBS 방송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자 김상중씨 음성지원) 그런데 말입니다. 여성으로서의 사생활과 대통령의 공무수행이 어떤 관계인지 곰곰 생각해봤다. 대통령도 여성이라서 피로 회복이나 피부 관리 받은 점은 이해 가는데 그게 국정운영에 영향을 줄 정도라면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은 “대통령으로서의 사생활”처럼이나 말이 안 되지 않나.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북이 등짝 긁는 듯한 이런 말을 대국민선전포고처럼 듣다보니 세월호 참사 7시간 미스터리 스릴러가 스믈스믈 온 몸을 타고 올라온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7시간 동안 대통령을 봤다는 사람이 없었다는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점을 “여성으로서의 사생활”로 해석해야 할지, “대통령으로서의 사생활”로 봐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공직자의 평일 근무 시간 사생활’은 이래도 의혹 저래도 논란이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은 7시간 동안 관저에서 집무를 봤다고 했다. 그에 반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전화와 서면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 말이 사실이라면 왜 평일 근무 시간에 본관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 있었던 것인지 설명이 요구된다. 이점은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인지, “대통령으로서의 사생활”인지 말이다. 어느 쪽이든 평일 근무 시간에 관저에 있었다면 평소와 다른 무엇인가 있었다는 말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말대로라면 직원들과 가까운 곳에 있던 대통령이 국가재난 앞에서 왜 대면보고를 받지 않고 전화와 팩스 보고만 받았는지 납득이 안 간다. 위급한 상황에 전화와 팩스보다 후다닥 뛰어가서 대면보고 하는 게 더 빠르지 않나? 혹시 당장 만날 수 없는 제3의 장소에 있었던 건 아닐까? 만에하나 근무 시간에 집무실에서조차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나 “대통령으로서의 사생활”을 보내신 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 해명은 해소되지 않았다. (김상중씨 음성지원) 만약에, 만약에 말입니다. 그 시간 수백 명의 사람이 바다에 빠져 죽어가고 있었던 점을 상기하면 4월 16일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은 스릴러 소설계 거장인 스티븐 킹조차 좌절하게 만드는 참혹한 호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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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양저격하자 2016.11.17 1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시간동안 정씨와 최소한 7번은 했겠죠........

    • cretois 2016.11.21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씨가 아니라 최씨와 했을 가능성이 높죠, 7시간 동안 7번...아니면 셋이 했던지.

  2. 닭도리탕 2016.11.17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뽕맞고 있었을 겁니다. 프로포폴

  3. 2016.11.20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뽕이나 잠자리론 7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설명하기 어려워요.. 의도적인 살일을 했을 가능성을 무시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로는 그 시간에 무엇을했는지 밝히질 못하니까요. 돌아다니는 소문보다 실제로는 더 나쁜짓을 했다는거죠

  4. 윤미화 2016.11.21 1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과는 무관한 잠자리 관련 댓글은 앞으로 차단, 삭제하겠습니다.



▲ 영화 〈크리스마스 캐롤〉엔딩 신



1843년에 발표한《크리스마스 캐롤》A Christmas Carol 은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부터 크리스마스 아침까지 에비니저 스크루지’ 영감이 혼령을 만나 과거, 현재, 미래를 겪는 사건이다. 주인공 스크루지는 초로의 노인으로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번 부자이다. 돈을 많이 벌었지만 사무실 벽난로는 불을 피우지 않아 유일한 직원인 ‘밥’은 곱은 손가락을 촛불 온기에 쬐여가며 장부 정리를 한다. 심지어 의심이 많은 스크루지는 사무실과 집 자물쇠를 각각 세개씩 갖고 다닌다. 사람들과 인사조차 나누지 않을 뿐더러 자선단체에 기부 한적이 없고 조카와 크리스마스 때 밥 한끼 먹을 줄 모른다. 결혼을 하지 않아 가족이 없지만 큰 집에서 혼자 산다. 오늘날 ‘스크루지’는 ‘수전노 영감’, ‘자린고비’로 불리며 인색한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캐롤》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어 많은 번역본과 영화와 연극과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영화〈크리스마스 캐롤〉은 2009년 월트디즈니에서 만들었다. 짐 캐리가 스크루지 목소리를 더빙했다.



 

스포일러 왕창~




스크루지 동업자 제이콥 말리가 1836년 12월 24일 죽었다. 에비니저 스크루지는 동업자가 죽었으므로 혼자 재산을 차지할 기회가 왔다. 장례사가 내민 사망확인서에 사인을 하고 장례 수수료로 동전 두 닢을 벌벌 떠는 손으로 건넨다. 그러나 수전노 스크루지는 동전 두 닢을 손해볼 짓은 하지 않는다. 죽은 말리 두 눈에 염할 때 얹은 동전 두 닢을 가져간다. “땅파면 돈이 나오냐!” 


7년 후, 스크루지는 여전히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다. 때는 크리스마스 이브. 함박눈이 펄펄 내린다. 시청 연회장에서는 시장이 주최한 만찬준비가 한창이다. 대략 이백 여 명 초청한 것 같다. 긴 식탁에는 호화로운 접시가 세팅되었고 포인세티아가 테이블마다 놓였다. 천장에는 고급 샹델리에가 반짝인다. 그러나 만찬요리를 준비하는 시청 반지하 주방 창문 앞에는 배고픔을 호소하는 가난한 아이들이 주방을 들여다본다.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고 찾아온 조카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는 인간은 푸딩에 푹 삶거나 트리에 꿰어서 파묻어야 한다고 하며 크리스마스에 돈 버는 거 말고 덕 본 게 있냐고 비웃는다. 덕 본 건 없지만 닫혀진 마음을 열고 이웃을 이해하는 날이므로 땡전 한 푼 안 생겨도 행복한 날이라고 조카가 항변하자 가난한 주제에 무슨 크리스마스냐고 내쫓는다. 요즘말로 소통은 개뿔, 돈만 있으면 된다는 거.

 

자선단체에서 스크루지 사무실을 찾아왔다.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기부좀 하라고 권하지만 스크루지가 누군가! 벽난로에 불조차 피는 걸 아까워하는 인간 아닌가. 가난한 사람들은 감옥이나 강제수용소로 보내라고 외려 역정을 낸다. 기부단체 관계자가 그런 곳에 가느니 죽음을 택할지도 모른다고 하자 인구도 많은데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응수한다. 아, 이 인간아!



그날 저녁, 아무도 기다리는 가족 없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상한 일이 생긴다. 현관 문고리에 7년 전 죽은 제이콥 말리 얼굴이 파랗게 박혀 있었다. 소스라쳐 놀랐지만 잘못 본 환영이라고 여기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붉은 카페트가 깔린 긴 계단을 올라가는 스크루지 그림자가 쓸쓸하면서 기괴하다.



스프를 끓여 먹는데 7년 전 죽은 제이콥 말리 유령이 찾아왔다. 사슬로 엮은 돈궤짝이 몸에 칭칭 감겨 있다. 말리는 돈 세는 일 밖에는 몰랐던 과거 때문에 이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탄한다. 게다가 자네는 나보다 7년을 더 해먹고 있으니 죽으면 더 많은 쇠사슬로 엮일 것이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혼령 세 명이 차례로 찾아 올것이라고 예고한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벌어질 끔찍한 일을 전혀 알지 못한다. 



촛불 형상을 한 첫 번째 유령이 데려간 어린 스크루지가 다닌 학교. 가난한 집 아이 스크루지가 때리는 아버지를 피해 혼자 교실에 있는 모습. 외로웠던 스크루지에게 집에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함박 웃으며 달려왔던 착한 여동생은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조카를 낳고 죽었다. 스크루지에게 이런 아픔이 ㅠㅠ



학교를 졸업해서 좋은 직장에 취업했다. 어느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착하고 예쁜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한다. 그러나 스크루지는 점점 돈에 집착하면서 변한다. 여자가 돈을 더 사랑하느냐고 묻자 “내가 제일 두려운 건 가난뱅이로 살다 죽는거야” 라고 말한다. 여자는 모든 걸 돈으로 계산하는 당신을 놔주겠다고 하면서 떠난다. 아, 쫌!



현재를 보여주는 두 번째 혼령은 신이다. 두 번째 혼령은 크리스마스 트리 위에 앉아 인간들은 신의 이름을 앞세워 탐욕을 채우는데 소위 성직자들이 신을 잘 안다고 하지만 사실은 모른다고 말한다. 두 번째 혼령은 스크루지 사무실에서 서기를 보는 가난한 ‘밥’네 집과 조카네 집을 보여준다. 두 집은 스크루지보다 돈이 없지만 돈만 알고 사랑을 모르는 스크루지가 외려 가엾다고 기도한다.



두 번째 혼령은 사라지기 전에 코트 속에 감췄던 괴상하게 생긴 아이 두 명을 보여준다. 스크루지가 당신 아이냐고 묻자 혼령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인간의 자식들이지. 남자 아이‘무지’, 여자 아이는 ‘굶주림’이야. 둘 다 조심하게자정을 알리는 종이 치자 혼령은 삶은 짧다는 말을 남기고 해골이 되고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그러나 아직 스크루지는 이 모든 게 무섭고 싫을 뿐 깨닫는 게 없다! 



마침내 미래를 보여주는 세 번째 혼령이 찾아왔다. 형체 없는 검은 그림자. 첫 번째와 두 번째 혼령과는 공포수준이 완전 다르다. 저승사자다!!! 붉은 눈을 가진 말 두 필을 갖고 온 저승사자는 도망가는 스크루지를 끈질기게 쫓아온다. 



혼비백산 도망 끝에 자신의 무덤 앞에 도착한 스크루지. 묘비에 써 있는 이름이 자신이며 크리스마스 날 죽은 것으로 써 있음을 보고 저승사자에게 애걸복걸 살려 달라고 절규한다. 그러나 저승사자는 가차 없이 땅 속에 미리 파 묻어 둔 관 속으로 스크루지를 떨어뜨리고… 이렇게 끝이면… 인생, 참 무상하도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죽을 때 돈 싸갖고 가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요.



 

영국 출신 소설가 찰스 디킨스 Charles Dickens (1812년~1870년) 는 하급 공무원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빚을 지고 감옥에 가서 일찌감치 돈벌이에 나서야했다. 공장노동자, 부두 잡역부 등을 거치며 밑바닥 인생을 경험했다. 열여섯 살 때 법률사무소에서 심부름을 하며 독학으로 공부해 스무 살 무렵 신문기자가 되었다. 틈틈이 쓴 글을 발표하면서 유명 작가가 된다. 직접 겪은 사회 체험을 바탕으로 한 디킨스 작품은 부자를 풍자하고 사회비판 성격이 짙다. 그러나 대개 결말은 따듯한 휴머니즘으로 마무리하면서 소외계층에게 꿈을 안겨주었다고 평가 받는다. 쓴 작품으로《피크윅 문서》,《올리버 트위스트》,《위대한 유산》,《데이비드 코퍼필드》,《크리스마스 캐롤》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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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생존헌장

인민여우 2015.12.03 23:33


















▲ 안중근 의사 : 1879년 9월 2일~1910년 3월 26일




서민생존헌장 (※1968년 선포한 ‘국민교육헌장’ 패러디)


_하 린



나는 자본주의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서민으로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가난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신용불량자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약소국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생존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출근과 튼튼한 육체로,

저임금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출신을 계산하여,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기초수급자의 힘과 월세의 정신을 기른다.

번영과 질서를 앞세우며 일당과 시급을 숭상하고,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헝그리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대기업이 발전하며,

부유층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지름길임을 깨달아,

하청에 하청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스스로 잔업 전선에 참여하고 월차를 반납하는 정신을 드높인다.

부자를 위한 투철한 시다바리 따까리가 우리의 삶의 방식이며,

자유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가난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서민으로서,

조상의 궁핍을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빈민을 창조하자.





















▲ 2015년 11월 14일 광화문 광장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씨



참, 좆같은 풍경


_송경동



새벽 대포항
밤샘 물질 마친 저인망 어선들이
줄지어 포구로 들어선다

대여섯 명이 타고 오는 배에
선장은 하나같이 사십대고
사람들을 부리는 이는
삼십대 새파란 치들이다
그들 아래에서 바삐 닻줄을 내리고
고기상자를 나르는 이들은, 한결같이
머리가 석회처럼 센 노인네들뿐

그 짭짤한 풍경에 어디 사진기자들인지
부지런히 찰칵거리는 소리들
그런데 말이에요
이거 참, 좆같은 풍경 아닙니까
부자나 정치인이나 학자나 시인들은
나이 먹을수록 대접받는데
우리 노동자들은

왜 늙을수록 더 천대받는 것입니까




아름다운 광경


_이동순



미국의

하바드대학 도서관

어둠컴컴한 동아시아 코너를 뒤지다가

나는 보았다.

남한 시인의 시집과

북한 작가의 소설책이

서로 어깨를 다정하게 붙이고

살 그리움으로 나란히 기대어 있는 것을.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아름답고 장엄한 광경을

오래오래 바라 보았다.







※참고 시집














▶ 《서민생존헌장》하린(지은이)/천년의시작/2015-8-17

▶▶《숲의 정신》이동순(지은이)/최영철|황선열|김경복(엮은이)/산지니/2010-6-28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송경동(지은이)/창비/200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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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아테네 교외 케피소스 강가에 이름이 ‘프로크루스테스’라는 남자가 살았다. 이 남자는 낚시를 하다가 지나가는 나그네를 보면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하면서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쇠로 만든 침대에 나그네를 눕혔다. 프로크루스테스 집에는 길이가 긴 침대와 짧은 침대가 있었다고 한다. 혹은 침대가 한 개 뿐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키가 큰 사람은 작은 침대에 키가 작은 사람은 큰 침대에 눕혔다. 신화에 의하면 침대길이보다 다리가 짧은 사람은 강제로 다리를 늘려 죽이고 침대길이보다 다리가 긴 사람은 침대 밖에 나온 다리를 잘라 죽였다. 어느 날 반인반우 형상을 한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테세우스가 나그네로 변장하여 프로크루스테스 집에 초대 받아 간다. 테세우스는 프로크루스테스를 반격하여 침대에 눕힌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자신이 이제까지 많은 사람을 죽인 것과 똑같이 머리와 다리가 잘려 죽는다.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Procrustean bed)’로 알려진 이 신화는 자기가 정한 기준을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할 때 쓴다. 말하자면 견강부회다. 살면서 이런 경우 많다. 자기주장 내세우려고 형제끼리 언성 높이고 시장에서 물건 하나 고를 때도 손해 안 보려고 박박 우기기도 한다. 학교와 직장에서도 서열과 지위를 따져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사람이 있다. 도무지 대화가 안 통하는 억지주장 앞에서 잠깐 성을 내면 그만이지만 권력자가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를 갖다 놓고 우기면 말이 달라진다.


김영삼(이하 YS) 전 대통령 장례식이 있던 26일 오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지난 14일 불법 폭력 시위를 벌여서 국민 안전에 심대한 위협을 끼친 세력들로 불온한 세력들이 신청한 집회는 불허해야 한다. 공권력은 이들을 원천봉쇄해야 한다.” 본인 스스로 YS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주장했던 사람이 장례식날 아침에 공권력 동원을 언급했다. 앞뒤 말을 붙이면 민주주의 산증인이었던 아버지를 부정하는 파렴치한 아들이다.


과거야 어쨌든 김대표는 YS의 정치적 아들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충실한 보조요원 역할이 더 어울린다. 24일 국무회의 주재 회의에서 대통령은 “복면 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한다. IS도 그렇게 지금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시위대 일부가 복면을 했다는 이유로 시위대 전체를 IS에 비유한 건 막말의 달인 도널드 트럼프조차 밥 먹다가 숟가락 떨어뜨릴 만큼 황당한 일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대통령은 국민이 시위를 하는 이유를 알고는 있나? 경찰의 불법 차벽 설치와 캡사이신 살포 보고를 받고 있나? 인터넷은 하나? 쉬는 시간에 뭐하나? 


▲ 그리스 화병에 그린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신화


대통령에게 아무 기대를 갖지 않고 지난 3년을 보냈다.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와 같은 단군 이래 최대 사기 사건에 치여서 그런지 5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퇴임하면 본전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 지난 3년 얼마나 길었던지 돌도끼 든 원시인류를 만난 것처럼 아득하다. 그 와중에 노령연금부터 시작해서 여러 복지비용이 삭감되거나 사라졌다. UFO 같은 창조경제 구호 앞에서 경제회생은 바랄수도 없었다. 공약을 파기했으면 유권자에게 해명이라도 해줘야 하는데 그 대신 엉뚱한 소리가 나왔다. 아버지 박정희 명예회복 작업 일환으로 역사의 뺨을 때리는 교과서 국정화 농단하고, 대화 하자고 외치는 국민을 IS에 비유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3년 동안 겪었지만 대통령은 권리만 알고 책임은 모른다. 대통령이 이렇게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면 물감이 도화지에 스며들듯 공직자를 비롯해 정치인은 대놓고 뻔뻔한 기술을 발휘한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복면금지법’을 발의하여 충성경쟁에 줄섰다. 대통령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 받으면 소고기 한 근이라도 생기나?


본인과 다른 생각에는 곁을 내주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척결대상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대통령과 정권의 나팔수 역할에 충실한 여당은 혹시 프로크루스테스 일족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자기 기준에 맞춰 동감할 대의나 공공선이나 공동체를 향한 고뇌 없이 사욕에 빠진 뻔뻔함 때문에 몸이 잘려 나가는 국민은 아프고 괴롭다. 신화대로라면 테세우스는 예기치 않은 어느 저녁 찾아와 프로크루스테스를 죽였다. 물론 신화와 현실은 다르지만 사람이 지어낸 신화와 현실이 아주 다르다고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대통령 퇴임 후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며 남은 2년을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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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도 첨부 : 다음에 해당하는 자는 결격 사유에 해당


1. 일제 강점기 만주군관학교나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한 자로 일본에 충성을 맹세하고 실제 일본 정부를 위해 조선인을 압살하는데 앞장 선 자. 또는 그 혈족으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거짓을 일삼는 자.


2.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가를 밀고하거나 독립 운동에 훼방을 놓은 자. 또는 그 혈족으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거짓을 일삼는 자.


3. 일제 강점기 ‘황국신민’, ‘내선일체’, ‘황군의 자녀’와 같은 말로 대중을 선동한 기업인, 교육자, 공무원, 예술가, 언론인. 또는 그 혈족으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거짓을 일삼는 자.


4. 일제 강점기 부당한 편법으로 사익을 챙긴 자로 일본에 공물을 바친 자. 또는 그 혈족으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거짓을 일삼는 자.


5.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가 행세를 하며 막대한 자금을 편취한 자로 민족의 고통을 외면한 자. 또는 그 혈족으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거짓을 일삼는 자.


6.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에 부역한 자로 제주 4·3 항쟁 학살과 보도연맹 학살에 가담한 자. 또는 그 혈족으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거짓을 일삼는 자.


7.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에 부역한 자로 뇌물로 얻은 사익으로 현재 부를 창출한 자. 또는 그 혈족으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거짓을 일삼는 자.


8.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에 부역한 자로 온갖 정치 조작을 꾸민 자. 또는 그 혈족으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거짓을 일삼는 자.


9. 한국전쟁 당시 독과점 이익을 취했음에도 사회 환원을 취하지 않고 부를 이용해 경제민주화에 역행한 자. 또는 그 혈족으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거짓을 일삼는 자.


10. 한국전쟁 당시 민족을 학살하는데 앞장서고 종전 이후 훈장을 받고 추대된 자. 또는 그 혈족으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거짓을 일삼는 자.


11. ‘5·16 쿠데타’를 민주주의 혁명으로 호도하며 ‘유신 독재’를 민주주의 실현으로 선동한 자. 또는 그 혈족으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거짓을 일삼는 자.


12. 정수장학회, 영남대학교, 육영재단과 같은 남의 재산을 강탈했거나 공공재산을 사유화한 자. 또는 그 혈족으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거짓을 일삼는 자.


13. 1961년부터 1979년까지 무고한 사람에게 고문, 살해, 폭행에 가담했거나 지시한 자. 또는 그 혈족으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거짓을 일삼는 자.


14. 1980년대 광주 시민 학살을 비롯해 모든 의문사와 실종을 지시한 자. 또는 그 혈족으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거짓을 일삼는 자.


15. 세월호 참사 의문을 해소하지 않으며 오직 자기주장만 내세워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자로 언행에 무책임한 자.



※ 아버지에 대한 비뚤어진 효심이 많은 자, 양심에 털이 난 자, 공공성 개념을 안드로메다에 두고 온 자는 위 사항과 무관하더라도 영구 결격 사유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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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붉은산 2015.10.29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신감정서 제출......ㅋㅋㅋㅋㅋ 반드시 제출해야죠.

  2. 영등포 선비 2015.10.30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숨걸고 이만큼 살게됐는데 박정희나 이승만 공이 큽니다. 북한에 동조하는 무리들에 넘어가지 마새요.

  3. 가을햇살 2015.10.30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향신문은 종북 집합이여!!!!!! 이싱만과 박정희 대통령이야마로 지금처럼 밥 먹고 자유 누리게 해줬다!

  4. 김형석 2015.10.31 08: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지 과거사 청산 안 한 대가가 참담합니다

국정교과서가 화제다. 국정교과서는 교육부가 내용을 편집해서 펴낸 역사 교과서를 뜻한다. 그동안 역사를 편향적으로 가르쳐왔다는 게 정부가 발표한 단행 이유이다. 정부에서 지적한 ‘역사 왜곡’을 듣자니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학창시절 배운 국정교과서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5·16을 ‘쿠데타’가 아닌 ‘혁명’으로 배웠다. 지금 여의도 시민공원 자리를 ‘5·16 광장’으로 불렀다. 북한과 중국에서 보는 것과 같은 거창한 열병식과 무기사열 행사가 국군의 날 열렸다. ‘10월 유신’은 ‘1인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 완성을 위한 민족의 염원’으로 배웠다. 학예게시판에 박정희 일가와 총리 김종필 외국 순방 기사가 붙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순신 업적이 유난히 부각되었고 잦은 개헌은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대통령의 영도력이라고 배웠다. 이 무렵 국사 시간에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가 ‘영도력’이다. 요즘 종편에서 보여주는 북한 뉴스에서도 이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가을 대통령이 총 맞아 죽었다. 1979년 10월 26일이었다. 학교에서는 전교생을 운동장에 세워놓고 한 시간 동안 특별추모 행사를 가졌다. 교장은 추모 연설을 하다가 복에 받쳐 체면이고 뭐고 없이 목 놓아 울었다. 죽은 대통령 문경초등학교 제자였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5·16 혁명’과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유신’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광주항쟁이 있었고 군사정권이 이어졌지만 교과서가 거짓말 할 리 없다고 믿었다. 전두환이 교과서에 새로 등장하면서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말을 외웠다. 시험에 자주 나왔다. 이를테면 “제5공화국 정치 이념은 다음 중 무엇인가?” 정답은 “정의 사회 구현”이었다. 나중에는 주관식 문제로 출제됐다. 수업 시간에 만화《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몰래 봤음에도 내가 정답을 맞힐 수 있었던 건 교문 앞에 몇 달 동안 세워졌던 탱크와 무장한 군인트럭 영향이었지 싶다.


대학교는 국정교과서가 가르쳐 준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기다렸다. 쇠방망이에 맞아 죽고 뛰어내려서 죽고 최루탄에 쓰러졌다. 남산에 끌려가 죽고 심지어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죽음 행렬은 산과 바다와 학교와 거리를 가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국정교과서는 꽤 오랫동안 ‘5·16 혁명’과 ‘유신’과 ‘정의 사회 구현’을 인쇄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내가 배운 국정교과서는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이 숨기고 윤색한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것은 ‘12년 동안 당한 사기’였다.


▲ 대패


정부가 이번에 단행하는 국정교과서 취지가 ‘편향에서 탈출’하기 위한 조치라면 늦게나마 12년 동안 당한 사기를 용서할 수 있다. 그런데 범죄가 용서 받으려면 진실을 먼저 요구 받는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알고 네가 알고 하늘과 땅이 아는 엄중한 사실 말이다.


1. 박정희 1939년 만주군관학교 2차 지원 호소문 편지.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


2. 1944년 7월 9일 아사히신문(남선판 4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부친 김용주 광고문.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 시국은 확실히 승리냐 죽음이냐의 결전의 한가운데로 돌입하고 더욱이 적은 공군으로써 승패를 결정지으려고 한다. 적의 맹렬한 공습 하에서 묵묵히 수호에 애쓰는 우리 아버지, 우리 아들, 우리 형, 우리 동생.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과 그리고 “좀 더 비행기를!”이라고 외치는 필사의 요청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3. 1943년 9월 8일 아사히신문(중선판 4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부친 김용주 광고문.

“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소년들이여”


4. 1943년「징병제시행감사 적미영격멸 결의선양 전선공직자대회」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부친 김용주 연설문.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하여 이로써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각면에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모든 민중으로 하여금 신을 공경하고 신앙생활을 하게끔 하면 일본정신의 진수에 철저히 젖어들게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징병을 보낼 반도의 부모로서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과 귀여운 자식이 호국의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어질 그 영광을 충분히 인식하여 모든 것을 신께 귀일하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에 대한 신앙을 철저히 하여 현세의 신이신 천황께 귀일하는 것입니다.”


▲아사히 신문 1944년 7월 9일 남선판 4면에 실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부친 김용주의 ‘애국기 헌납 운동’ 광고문



5. 1949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청산대상 7천명, 조사대상 1천여 명, 처형대상 0명.

6.「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조사 1950년 6월~8월까지 보도연맹회원 학살 희생자 30만 명 추정.

7. 이승만 정권하에 치러진 한국전쟁 희생자 수 1백만 명 추정.

8. 1975년 긴급조치 발동 이후 유학생 간첩단 조작.

9. 위안부, 징용, 조봉암, 장준하, 인혁당, 동백림, 문세광 저격,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수많은 의문사.

10. 광주항쟁, 천문학적 비자금, 노동탄압, 자원외교, 방산비리, 4대강 사업, 국정원 대선 개입, 세월호 참사.


고대사, 고려사, 조선사 비율을 조금씩 줄이고 근·현대사 비율을 60퍼센트 수준으로 편집한다면 한국전쟁이 왜 발발했는지, 이승만이 왜 국부가 될 수 없는지,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내세워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왜 그토록 많은 궁정동 안가가 필요했는지,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과 영남대학교가 어찌하여 박정희 일가 사유재산이 되었는지, 김용주가 왜 1940년대에 칩거에 들어갔다고 거짓말 한건지, 전두환이 광주를 어떻게 참살했는지, IMF가 왜 닥쳤는지, 빈부 격차가 왜 큰지, 열정을 불태워도 왜 가난은 대물림되는지 많은 ‘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2005년 1월 19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이런 말을 했다. “역사에 관한 일은 역사학자가 판단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든 역사에 관한 것은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 10년이 흐른 2015년 10월 대통령은 10년 전 자신이 했던 말과 전혀 다른 말을 했다. “국민 통합 위해 올바른 역사 교과서 필요하다. 지금은 좌편향이라 옳지 못하다.” 친일과 독재를 사실대로 아는 일은 좌편향이 아니라 국가 주권자로서 국민의 정당한 권리이다. 


2014년 11월 20일자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박정희 기념사업 지원금이 최근 7년 동안 1356억 원이 편성되었다고 한다. 2015년에만 403억 원이 편성됐다. 2011년 국비 208억 원을 들여 만든 박정희 기념도서관도 있다. 구미 선산에 있는 박정희 생가에는 58억 원을 투입해 ‘박정희대통령 민족중흥관’을 짓고 12억 원을 들여 5미터 동상도 세웠다. 문경시에 있는 박정희 하숙집은 17억 원짜리 ‘청운각’으로 재단장 했다. 문경시 재정자립도는 18퍼센트에 불과하다. 2017년은 박정희 탄생 100년이 되는 해다. 역시 우리 가카는 준비가 치밀하다.


거짓을 배우러 학교에 다니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거짓과 참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히틀러 충견 요제프 괴벨은 “거짓말을 계속 하다보면 참이 된다.”고 했다. 역사 교육에서 거짓이 끼어들면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고 믿으며, 독재가 구국의 염원이었다고 믿으며, 일본 왕이 신이라고 믿게 된다.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역사일지라도 나무 판자 밀어버리듯 지우지 못한다. 대패질하면 나무는 깎이지만 그럴수록 속살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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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5.12.20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표절과 진실

인민여우 2015.09.03 22:06


⊙ 글쓰기는 불확실과 부조리를 직시하며 항해하는 탐험과 같다.



작가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 

“작가가 가장 중요시해야 할 일은 의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짓과 그릇된 정보의 공모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문학은 단순하게 만들려는 목소리에 반대하는 뉘앙스와 모순의 집입니다. 작가가 할 일은 정신적 약탈자들의 말을 믿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작가가 할 일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여러 가지 다른 주장과 파편과 경험으로 가득 찬 것으로 보게 하는 것입니다.”

-수전 손택,《문학은 자유다》-




신경숙 표절 의혹 논란

9월 1일 출판사 ‘문학동네’는 대표를 비롯해 1기 편집위원 전원이 올해를 기점으로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6월부터 출판계를 달군 소설가 신경숙 표절 논란에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문학동네가 과감한 결단을 내린 이유는 신경숙 표절 논란과 관련하여 신경숙 작품을 가장 많이 출간했던 출판사로서 독자를 향한 도의적 판단이자 한국문학의 긍정적 개현을 향한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출판사 ‘창작과 비평사’(이하 ‘창비’)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창비 대주주이자 편집위원을 겸한 백낙청 편집인은 “신경숙의 표절은 문자적 유사성일 뿐이며, 의도성이 없었다”고 자신의 페이스 북에 밝혔다. 표절이면 표절이고 아니면 아니지 ‘문자적 유사성’이라는 출처 불분명한 말을 끌어왔다.


㉠ 미시마 유키오 :《우국》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워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 신경숙 :《전설》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문자적 유사성과 표절

“문자적 유사성”(fragmented literal similarity)은 ‘부분이 비슷하다’는 뜻으로 남이 만든 작품을 허락 없이 몰래 끌어와 자기가 만든 것처럼 꾸미는 행위를 뜻하는 ‘표절’보다 순화한 느낌이다. 어떤 사실을 은폐하거나 축소하고 면책을 꾀할 때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리는데 이를테면, ‘문자적 유사성’은 정치인이 즐겨 쓰는 ‘유감’과 일맥상통한다. 그랬다는 건지 안 그랬다는 건지 행위 인정이 명확하지 않다. 무책임함을 숨긴 위선은 사태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말을 하는 대신 유려한 수사를 사용하면서 진실을 감춘다. 


상처 난 허영심이야말로 모든 비극의 어머니 :  프리드리히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문자적 유사성”이라는 말로 언어도단에 빠진 ‘창비’는 창간 의미가 무색하게 문학의 진실을 망실하고 있다. 부정직함으로 인해 적잖은 공격과 비난을 받아 명성에 상처를 입었다면 도덕적 판단 본질에 접근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런 복잡한 감정과 사고 가운데 손실을 감당하며 정직한 결단을 시행함으로써 묵은 때처럼 들러붙은 ‘허위의 허영심’을 부술 수 있다.


문학은 끊임없이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행위

문학이 맡은 역할은 ‘진실을 전달’하는 이야기로서의 기능이다. 거짓말 가운데 숨겨놓은 진실을 찾는 게 문학이다. 세상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영역은 진실을 전달하는 상징과 현실을 꿰어보게 하는 영역이다. 백낙청 편집인이 1966년《창작과 비평》창간사에서 말했던 “앙가주망(engagement : 사회참여) 정당성”을 가리킨다. 이 두 가지는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나 문학이 움직이는 일이나 엄중한 본질이다.


세계와 문학은 틀에 구속할 수 없는, 그러나 엄밀하게 자각한 한계와 무의식에 파고 든 미세지각까지 섞여 중얼거린다. 이 가운데 진실을 놓지 않고 부조리를 가리키는 게 문학이 할 일이다. 문학이 자유로우면서 고통스러운 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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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지척에 악랄한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고 있는 북괴와 대치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우리나라에 전두환 대통령을 내려주신 하늘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1980년 8월 31일 TBC 방송 <내가 본 전두환 대통령> 특집에서 앵커가 한 말이다. 방송 다음날인 9월 1일 ‘하늘이 내리신’ 11대 대통령 취임식이 잠실 체육관에서 거행되었다. 대통령 취임을 얼마 앞둔 8월 22일 KBS는 ‘특별기획’으로 <전두환 장군의 이모저모>를 방송했다. 취임 직후 9월 국립영화제작소는 <국운개척의 영도자>라는 영상물을 배포했다. 1980년대는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탈취한 군사정권의 정통성을 창조한 많은 창작물이 만들어진 시대였다.


“우리는 케냐에서 대통령을 만났다. 우리는 그를 라스팔마스에서 봤다. 또 우리는 어느 신작로 위에서 우리가 타고 가는 버스를 염려하는 대통령을 뒷날 뉴스에서 봤다. 우박이 떨어진 과수원에서 농민의 타들어가는 가슴을 위로하는 그를 봤다. 오늘 세계인들은 확신의 지도자가 없음에 궁핍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는 그 확신의 지도자를 가짐으로 해서 소망의 새해를 기다릴 수가 있다.”


하늘이 내리신 대통령 ‘용비어천가’는 KBS에서 방영한 ‘1981년 7월 9일 아세안 5개국 순방 귀국 실황 중계’에서 절정에 달했다.


“대통령께서는 오랜 가뭄 끝에 이 강토에 단비를 내리게 하고 떠나시더니 돌아오시는 오늘은 지루한 장마 끝에 남국의 화사한 햇빛을 안고 귀국하셨습니다. 아마 하느님도 우리를 도우심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982년 미국 방문 때 앵커는 하늘이 내리신 그분이 날씨까지 도와준다는 멘트를 잊지 않고 날린다. 


“백악관 직원들하고 얘기했더니 사실은 이 비가 단비랍니다. 아 그런데 이상해요. 전두환 대통령이 도착하는 곳마다 약간씩 비가 내리는데 말이죠. LA에 도착해서도 단비를 몰고 왔다 그랬는데 워싱턴도 마찬가지군요.”


“단비를 몰고 온 전두환 대통령을 취재하기 위해 미국의 보도진 80여명과 국내 보도진 70여명의 취재경쟁이 2월 워싱턴 초겨울 비 추위를 녹였다.”


각하가 가시는 곳은 단비가 내려 가뭄이 해소된다니 2월을 초겨울이라고 보도한 오류는 귀엽게 패스하자. 한낱 인간의 실수는 신의 영역 앞에서 미꾸라지 짝짓기 하는 소리만큼이나 의미 없다.



그런데 또 한 번 하늘이 내린 대통령을 나는 보고 있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 


국정원과 국군사이버 사령부의 대선 댓글 조작, 성완종 리스트, 세월호 참사, 미·중·일 외교에서 밀려난 위치, 1000만여 명에 달하는 청년 실업, 1가구 5천만 원이 넘은 가계 부채, 메르스 파동까지 이렇다하게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지만 콘크리트 지지율 40퍼센트를 유지하는 그분. 게다가 새누리당의 2중대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심한 새정치민주연합 같은 물러터진 야당을 두었으니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기는 분이 아닌가. 세계에서 흔치 않은 대통령이다.


아무 일을 안 해도 “대통령님은 고심이 많다”, “부모가 일찍 죽어 불쌍하다”, “대통령을 그만 괴롭혀라”는 열혈 광신도 찬송가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하늘이 내리신 대통령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나는 궁금하다. 가뭄이 심할 때마다 전전전전전전전대통령은 단비를 내렸는데 2013년 2월 25일 여의도에 강림해서 효자동에 머무르신 그 분은 왜 이 오랜 가뭄을 지켜만 보는 것일까? 지난봄부터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면서 농작물은 바짝 말라 죽어가고 강바닥이 드러나 물고기는 떼로 죽고 가축은 마실 물이 줄어들어 건강이 염려된다. 농민만 어려운 게 아니다. 가뭄은 농작물 가격 인상으로 나아가고 안 그래도 살기 팍팍한 서민은 식재료 비용까지 부담스럽다. 아버지 박정희는 비록 정치쇼였을지라도 밀짚모자 쓰고 농민을 만났는데 그분은 자외선이 무서우신지 야외를 거부한다.


하늘은 어찌하여 그분을 낳고 또 나를 낳았던가! 한탄하는 것도 잠시, 하늘이 내리신 그분이 미국에 가시든 말든 관심 없지만 전전전전전전전전대통령에게 비법을 배워서 가실 때 단비를 내려주시고 오실 때는 화사한 햇살이 비춰주기를 바란다. 이 강토와 국민 가슴이 타도 너무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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