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먹는 여우/인문/사회'에 해당되는 글 55건

  1. 2017.04.24 권력이 묻고 이미지가 답하다
  2. 2017.04.13 먹는 인간 : 먹는 존엄권 (3)
  3. 2016.12.29 세상에서 가장 큰 집 (8)
  4. 2016.07.28 옆집의 나르시시스트 (2)
  5. 2016.07.15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
  6. 2016.03.18 이야기가 있는 곳, 동네 책방
  7. 2016.03.04 집은 어떻게 달라졌나
  8. 2016.02.29 제국의 위안부 (9)
  9. 2015.11.30 지방 식민지는 내부 식민지
  10. 2015.11.20 대한민국은 왜? (2)

▲ 2016년 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II, Elizabeth Alexandra Mary) 여왕 90세 생일을 맞아 공개한 영국 왕실 사진.

여왕과 남성 왕위 계승자 1순위 찰스 왕세자, 2순위 윌리엄 왕세손, 3순위 조지 왕자까지 4대가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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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은 인간이 가진 감각 기관 가운데 정보 파악 능력을 80퍼센트 차지한다. 눈은 본 대상을 수정체를 통해 뇌에 전달한다. 신호를 받은 뇌는 사물이나 현상을 분간하여 인지능력을 발휘한다. 인지는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지시한다. 그래서 ‘본다’는 행위는 ‘어떻게 라는 태도’와 연결된다. 고대부터 정치인은 대중을 선동하고 설득하는데 조각·회화와 같은 이미지를 널리 활용했다. 오늘날 정치인은 사진과 영상을 비롯해 대중과 직접 만난다. 옷차림과 머리모양은 물론 제스처와 목소리,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애티튜드(attitude)[각주:1]’와 ‘톤앤매너(tone and manner)[각주:2]’를 정치에 적극 이용한다.

 

목원대 미술교육과 이은기 교수가 쓴 《권력이 묻고 이미지가 답하다》(이은기 지음. 아트북스. 2016.6)는 이처럼 미술작품에 숨겨진 정치 코드를 해부했다. 미디어 매체가 발달한 지금과 다르게 예전에는 조각·회화·자수·사진과 같은 미술로 권력 의지를 표출했다고 한다. 전시 장소는 많은 사람이 쉽게 볼 수 있는 광장과 궁궐, 교회나 별장에 전시해서 공공성을 높였다. 공공장소에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정책을 다수에게 공개하는 정치인의 SNS와 비슷하다.

 

■ 과장된 이미지

이 책에서 첫장에 소개한 기원전 510년경 아우구스투스[각주:3] 조각은 모든 왕의 이미지 이상화 표본이다. 아우구스투스는 팍스로마나(Pax Romana)[각주:4] 를 연 황제였으므로 다른 왕보다 이상세계를 과장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조각 가슴에 적과 싸워 제압하고 로마 시조와 달의 여신을 새겨 신격화하면서 신의 계승자임을 천명했다. 카이사르가 죽고 17년 동안 혼란을 겪으면서 정치적 피로에 시달린 로마는 옥타비아누스[각주:5]를 선택함으로써 신의 계승자라는 명분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중세 교황청은 가장 큰 정치 집단이었다. 장원을 소유하고 왕을 움직였으며 민중을 수족으로 부렸다. 경제와 정치와 사상을 주도한 중세 교황청은 ‘하느님의 군대’라는 그럴싸한 작명을 해서 군사행동을 서슴지 않았는데 이들의 진짜 목적은 복음전도가 아니라 십자군이 그랬듯 종교를 앞세운 세계 지배였다. 직접 군사원정을 나갔던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천지창조〉를 주문했다고 한다. 스케일이 큰 그림에 신의 세계를 재현함으로써 절대복종을 각인하는 효과가 크다.

 

                72년 동안 절대왕권을 누린 루이 14세가 남긴 초상화는 왕의 초상화 교본같은 그림이다. 숱이 많은 큰 가발을 쓰고 카펫을 걸친 것 같은 큰 망토를 두른 왕은 160센티미터 작은 키를 은폐하려고 하이힐까지 신었다. 63세 늙은 왕은 권능을 과대 포장해서 건재를 과시했다. 월계수 왕관을 쓰고 정면을 응시한 나폴레옹 초상화도 루이 14세만큼 권력을 행사한 왕이다. 의자 원형 등받이는 후광처럼 보이는데 중세에 이런 효과는 절대적 존재인 하느님을 가리켰다고 한다. 제우스와 같은 당당한 풍모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6년 후 러시아 원정 실패로 몰락한다. 흙수저 출신의 코르시카 섬 출신 장교였던 나폴레옹과 다르게 금수저로 태어난 알렉산드로스[각주:6]도 왕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았던 것 같다. 찢어 죽인 사자 가죽을 머리에 뒤집어 쓴 헤라클래스처럼 알렉산드로스는 휘날리는 갈깃머리에 금가루를 뿌렸다고 한다. 신의 계승자에 그치지 않고 신이 되려던 알렉산드로스는 서른세 살에 전장에서 죽었다. 


“위태로운 사회에서는 실제보다 능력을 과장하여 환상을 심어주어야 했을지도 모른다………불안한 사회는 강력한 초월적 존재를 요구하며, 이 시대의 황제는 한 개인이기보다 자신을 거의 종교적인 존재로 부각시켜야 통치가 가능했을 것”-《권력이 묻고 이미지가 답하다》


이아생트 리고. 「루이 14세」, 캔버스에 유채, 277x194cm, 1701~1702


권력자의 조각이나 회화를 실제보다 크게 만들거나 화려한 장식을 덧입히는 이유는 권세를 과시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만들어진 이미지는 시뮬라크르(Simulacrum)[각주:7]이지만 대중은 가짜 복제물을 받아들임으로써 불안을 떨칠 심리를 구축한다. 이를테면 독재자는 거부해도 이미지에 크게 반감하지 않는 속설을 떠올리면 문제는 가짜 복제물이 아니라 가짜 그 자체에 있다. 그러나 대중은 가짜를 욕하면서 정작 가짜에 대응할만한 진짜를 찾는 노력에는 게으르다. 그래서 가짜 복사물인 이미지에 취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 여왕과 이미지

빅토리아·엘리자베스 1세·엘리자베스 2세는 다른 분위기로 초상화 모델이 되었고 사진을 찍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 역사상 대외적으로 가장 많은 힘을 확장했던 군주이다. 세계에 범선을 띄워 18세기부터 식민지 제국을 건설한 빅토리아는 이미지 활용을 가장 잘 한 왕이다. 18세에 즉위해서 82세에 사망하기까지 64년 재위 기간 동안 제국의 여왕과 순종적이고 다복한 가정의 여성상[각주:8]을 동시에 연출했다. 

 

                                                         제국시대 영국 남성은 용기와 탐욕을 요구받았는데 이 때문에 집에서는 피로를 보상받고자 했다고 한다. “집안의 천사와 같은 성실, 순종, 희생하는 아내상”은 이렇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빅토리아가 여염집 여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해외 식민지 건설로 대중에게 자긍심과 경제 안정을 안겨줘야 했고 순종적 아내를 연출해서 사회 분위기에 호응해야 했다. 여성의 미덕을 출산과 육아, 내조와 순종으로 규정한 시대에 여성이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란 가부장 체제에 편입하는 일이다. 자기 의견이나 개성이 강한 여성은 경계 대상이었으며 마녀라는 낙인이 찍힌 시대였다. 빅토리아는 잦은 임신을 싫어해서 막내딸에게는 결혼을 하지 말 것을 권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본인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인권에 관해 정책을 편 것이 없다.

 

가부장제는 여성에게 순종과 순결을 강요한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처럼 처녀 숭배 가치관이 퍼진 사회에서 강한 여성은 적대와 경계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여왕은 군주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않으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신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흰 벨벳옷에 은색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가 독려하며 처녀와 어머니라는 모순된 두 가지 이미지를 보인 엘리자베스 1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나는 처녀 여왕(Virgin Queen)이다. 나는 국민의 어머니다.”[각주:9] 라던 엘리자베스 1세의 형용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왕의 초상화와 이미지의 정치학을 다룬《이미지와 권력》(권행가 지음. 돌베개. 2015.11) 에서 통치자 이미지는 곧 권력의 표상이기 때문에 이미지가 권력이라는 주장을 한다. “대중 매체를 통해 유포되는 통치자의 이미지는 그 자체가 정치적 공간 속에서 권력을 표상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이미지를 만드는 재현의 권력이기도 하고 이미지가 표상하는 권력 그 자체이기도 하다”

 

올해 91세가 된 엘리자베스 2세는 세계 대전 두 번과 식민지 독립을 경험했다. 저자는 “엘리자베스 2세의 영국은 모든 면에서 빅토리아 시대를 해체하는 시대이다.”라고 주장한다. 성실, 인내, 순종, 순결과 같은 시대 요구가 더 이상 미덕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따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자본주의 등장과 왕권 약화를 살피자면, 권위에 기대는 자본이 아닌 자유로운 투자와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에 자본주의와 왕정이 양립하기란 쉽지 않다. 60~70년대 불황이나 실업은 왕실이 계도하고 주도한 문화와 전통 가치관을 와해시켰으며 왕족이 놀면서 먹는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시민과 만나며 친근한 이미지를 연출했지만 다이애나와의 갈등, 여성 인권에 무관심한 점, 왕위 계승에서 남녀를 차별한 점은 가부장적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여성이었지만 여왕이었을 뿐 여성의 자유와 평등에 기여했는지 의문이다. 


■ 폭력을 고발하다

고야가 그린〈1808년 5월 3일의 학살〉, 마네 작품〈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피카소가 1937년 그린〈게르니카〉와 1951년 작품〈한국에서의 학살〉은 전쟁과 학살, 처형을 그린 작품이다. 나폴레옹이 그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스페인 왕위에 앉히자 화가 난 스페인 민중은 스페인 왕족 페르디난도 7세를 옹위하고자 민란을 일으킨다. 프랑스 군대는 저항하는 스페인 국민을 즉결 처형했는데 당시 이 사태를 본 고야는 1814년 이 그림을 그렸다. 프랑스 왕정 기간 동안 궁정화가였던 고야는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았던 까닭에〈1808년 5월 3일의 학살〉은 민중 편에서 그린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저자는 고야가 완전한 민중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다른 작품들에서 고야는 민중을 우매하게 그림으로써 “정의가 존재하지 않은 사회에서 큰 고통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한다. 

 

무심한 역사화로 유명한〈막시밀리안 황제 처형〉은 아무 감정이 없는 듯 처형 장면을 그려서 외려 충격적이다. 무심함과 태연함이 화면을 장악한 이 그림을 두고 저자는 “화가가 누구 편에서 이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마네가 이렇게 무심한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는 저자 지적처럼〈풀밭 위의 식사〉,〈올랭피아〉,〈피리 부는 소년〉이 살롱에서 계속 거부당하면서 대중화가로서 실의에 빠졌던 것으로 짐작된다. 마네는 당시 아카데미 출신 화가들과는 다른 파격적인 화풍을 묘사했는데 이런 이유로 화단에서는 이단아로 불렸다고 한다. 실제 마네는 공화파 일원으로 무책임한 정치인들에게 분노했을 것이다. 

▲ 파블로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1.1mx2.1, 1951


미노타우로스[각주:10]를 즐겨 그린 피카소는 폭력적인 야수성을 잘 표현했다. 여성편력과 거침없는 행보를 자초했으므로 “인간의 동물적인 공격성과 힘없는 약자들의 절규”를 표현하는데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히틀러 지원을 받은 프랑코 군부 폭력을 그린〈게르니카〉는 공산당 당원으로서 그린〈한국에서의 학살〉과 함께 정치논란을 낳았다. 그러나 숨겨진 의도를 알아채는 게 독자 몫이라면〈한국에서의 학살〉에 나오는 가해자는 미군이나 북한군도 남한군도 아니다. 가해자를 감정이 없는 로봇처럼 묘사해서 특정을 규정하지 않았다. 중국 현대화가 웨민쥔(岳敏君)이 천안문 사태를 풍자한〈처형〉도 마찬가지이다. 등장인물 다섯 명을 화가 자화상으로 그린 이 그림은〈막시밀리안 황제 처형〉과 〈1808년 5월 3일의 학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기묘한 웃음이 흐르는 처형장면은 압제와 비극을 당당하게 희화화했다.


■ 이미지와 왜곡

숭고한 이미지가 있을까? 종교나 신화, 또는 영웅과 위인이 연관된 미술에서 숭고함을 느낀다고 할 때 숭고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숭고는 감동을 느끼는 감정 반응 결과이다. 압도적인 위대함을 격하게 느껴 고귀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지에서 느끼는 숭고함과 아름다움 기준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추함의 반대이고 선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아름다움과 숭고함은 다르다. 이를테면, 미켈란젤로작품〈피에타〉는 숭고하다고 하지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이미지에서 느끼는 감정 차이를 톺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피카소 작품에서 느끼는 감정 차이를 밝히기로 한다. 피카소는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유명하다. 가십거리로 치부하기에는 그가 그림에서 많은 여성을 그렸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피카소 그림에서 여성은 피해자이자 약자이다. 절규하는 여인, 횃불 든 여인, 우는 여인과〈한국에서의 학살〉에서처럼 임신부가 총살까지 당한다. 피카소의 여성관을 잘 드러낸 그림은 1933년 그린 벽화〈미노타우로마키(Minotauromachy)〉이다. 예의 황소를 등장시킨 이 그림에는 여성 투우사가 나온다. 투우사는 황소를 찌르려고 에스토카다[각주:11]를 들었지만 창에 찔린 황소가 말의 배를 들이받아 여성 투우사는 옷이 벗겨진다. 정신이 혼미해진 여성 투우사는 유방과 성기를 드러낸 채 나른하고 황홀한 표정으로 에우로페[각주:12]가 납치 되듯 말에 실려 황소를 따라 간다. 


장 프랑수아 세뇨가 쓴《명작 스캔들 1》(김희경 옮김. 이숲. 2011.5) 따르면 피카소는 이 그림 변론을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황소가 파시즘은 아니지만, 폭력과 암흑이다. 나의 작업은 상징적인 것이 아니다. 게르니카만 상징적이다. 이 벽화는 우화다. 그래서 나는 말이나 황소를 이용한 것이다.” 장 프랑수아 세뇨는 피카소가 즐겨 그린 황소 그림에 나타난 여성을 관찰한 결과, 여성들은 황소를 혐오하면서도 황홀경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피카소가 황소를 예찬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황소를 즐겨 그린 피카소는 황소가 상징하는 거대한 남근, 우람한 체격과 같은 물리적 힘에 매료되지 않는 이상 왜 황소판타지에 젖어있던 것인지 설명이 안 된다. 


‘여성의 생물학적 특징을 전면에 내세운 여성성’은 남성중심 시각이다. 여성성에 대한 성찰과 담론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인식을 하는 여성 자신도 남성의 지배담론에 동조한 것과 같다. 여성성을 신체나 정서로 묶는 사회에서 여성은 ‘황소를 혐오하면서 황소에게 지배 당해 황홀경에 빠지는 여성’이 되거나 ‘남성의 밥, 꽃, 과일, 천사’가 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여성성의 이상화’가 진행되는데 앞에서 언급한 빅토리아 여왕처럼 군주였을지라도 순종적인 아내와 자녀에게 헌신적인 어머니가 진리로 숭배되는 것이다. 여성의 신체와 정서를 장악한 사회에서 많은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조차〈빌렌도르프 여인상〉과 같이 키 작고 뚱뚱한 여성을 과연 ‘비너스’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주저하게 된다. 


▲ (좌) 밀로의 비너스(높이 204m), (우)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높이 11.1cm)


                  책에 따르면 기원전 2만년 경 석회암으로 만든 11.1센티미터의 이 여인상이 발굴된 1908년 서양에서는 코르셋으로 잘록한 허리를 조이는 게 유행이었다. 뚱뚱한 여인은 흑인하녀이며 이는 곧 비문명으로 인식했다고 한다. 인종에 따른 여성차별은 익히 알려진 장 도미니크 앵그로가 그린〈노예와 함께 있는 오달리스크〉에서처럼 남성과 서양과 백인이 주관한 시각이 개입되면서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선 범세계적 차별의식으로 발전했고 그 증거가 식민주의라고 한 저자 주장은 타당하다. 이 책을 읽고나서 느낀 소회를 한줄로 정리하면, 신을 계승한 자에서 신의 이데아를 수혈 받고, 때로는 신이 되고자 모방했지만 미술 작품만 남고 권력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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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이다. 한껏 꾸민 대통령 후보자 이미지를 보며 《이미지 인문학 1》(진중권 지음. 천년의 상상. 2014.6)  나온 “이미지를 못 읽는 자가 미래의 문맹자가 될 것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1. 태도나 자세 또는 마음가짐 [본문으로]
  2. 광고에서 많이 쓰이는 마케팅 기법으로 흔히 분위기를 가리킨다. [본문으로]
  3. (Augustus, BC 63.9.23~AD 14.8.19) : 제정로마 초대 황제. ‘Augustus’는 ‘존엄한 자’라는 뜻으로 원로원이 칭호를 바쳤다고 한다. [본문으로]
  4. BC 1세기 말 아우구스투스 시대부터 5현제 시대까지 200년 동안 전쟁을 억제한 로마 평화 시대. [본문으로]
  5. 아우구스투스 원래 이름 [본문으로]
  6. (Alexandros. BC 356~BC 323) : 알렉산더 대왕으로 불림. ‘Alexandros’는 ‘사람을 두렵게 하는 이’라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7. 플라톤 철학이 제시한 ‘가짜 복사물’이라는 뜻. [본문으로]
  8. 빅토리아 여왕은 아홉명을 낳았으며 남편이 죽고 40년 동안 상복을 입은 채 공식 행사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본문으로]
  9. 처녀와 어머니는 모순된 말이다. 그러나 가톨릭의 마리아 신앙을 프로텐스탄트 영국에서 성처녀로 숭상하면서 순결하고 순종적인 여왕을 원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10. Minotaur.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수소로 황소 머리에 사람 몸을 한 반인반우. [본문으로]
  11. estocada. 스페인어 여성명사. 투우에서 일격을 가할 때 쓰는 작은 칼 [본문으로]
  12. Europ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페니키아의 공주이다. 황소로 변한 제우스에게 납치되어 크레타 섬으로 건너갔다. ‘유럽’이란 지명이 그녀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본문으로]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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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글라데시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먹는 헨미 요


‘먹방(먹는 방송)’이 유행이다. 걸쭉한 육짬뽕과 살이 두툼한 왕갈비 구이에 침을 흘리다가 채널을 돌리면 단출한 건강식을 소개하는 방송이 나온다. 언제부터인가 맛있게 잘 먹는 게 즐거운 인생 비결처럼 말하는 방송과 건강을 지키려면 가려서 먹어야 한다는 방송이 경쟁하듯 안방을 장악했다. 심지어 연예인 냉장고 재료로 요리사가 근사한 음식을 뚝딱 만들어내는 걸 보면 먹거리 춘추제국이 호황중임을 실감한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헨미 요(辺見庸)가 쓴《먹는 인간》(박성민 옮김. 메멘토. 2017.3)을 읽으면 먹방 홍수 시대에 사는 우리는 타인이 무엇을 맛있게 먹는지만 볼 뿐, 재료 출처와 먹는 행위 배경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풍성한 먹거리와 혀에 착착 감기는 맛에 방점을 찍은 미식열풍 앞에서 저자가 던진 다음과 같은 질문은 ‘음식의 이타성’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어떤 얼굴로 먹고 있을까. 또는 얼마나 못 먹고 있을까? 배고픔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하루하루 음식을 먹는 당연한 행위를 어떻게 의식하고 있을까. 또는 의식도 못 하고 있을까? 먹는 행위를 둘러싸고 세계 곳곳에서 어떤 변화가 싹트고 있을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역 분쟁은 먹는다는 행위를 어떻게 짓누르고 있을까?”

 

1992년 말부터 1994년까지 2년 동안 세계를 다니면서 저자가 먹은 음식 대개는 비위생적이며 끼니로 보기에는 턱없이 적다. 지역에 따른 고유한 음식이지만 저자가 일본에서 먹은 고급 음식과는 비교가 안 된다.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입맛이 까다로운 미식가입장에서야 이 책에서 다룬 음식은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쓰레기이거나 저질 음식이다. 그럼에도 먹을 수 없는 것을 먹을 수밖에 없는 사례를 보면서 ‘먹는 행위’에 관해 생각해 보자는 게 저자의 의도이다. 


■ 분노의 맛, 증오의 맛, 슬픔의 맛

기아 문제는 인류 생존과 직결된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기아 문제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지점은 식량난이며 식량부족은 기후변화와 축산업 발달에 있다는 지적이 흔하다. 이 책에서 지적은 없었지만 식량부족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기아 문제 앞에서 풍요로운 북반구 식탁을 떠올린다. 역설적이게도 배고픔을 보며 배부름을 상기하는 일은 자본주의 상징인 분배 문제를 끌어오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는 돈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만 부의 재분배는커녕 부의 독점이라는 독약을 갖고 있다. 첫 장에 소개한 방글라데시 음식 쓰레기 사업은 부의 분배 의지가 전무할 때 사회 안전망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빈민 인구가 170만 명에 달하는 나라에서 부자들이 뜯고 남긴 고깃덩어리가 ‘판타 밧’이라는 이름을 달고 시장에 나온다. 책에 따르면 ‘판타 밧’은 도매상과 소매상을 거쳐 빈민촌 사람들과 릭샤 운전사들이 주로 사 먹는다고 한다. 신선도에 따라 값이 달라지므로 값이 저렴할수록 배탈이 나거나 식중독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달과 밧은 모든 사람에게”(밥과 국을 전국민에게) 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방글라데시에서는 음식 쓰레기를 줍는 아이들이 들개나 까마귀와 먹거리를 두고 경쟁한다. 책에서 인용한 18세기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사 바랭이《미식예찬》에서 말한 “짐승은 먹이를 먹고, 인간은 음식을 먹는다. 교양 있는 사람만이 먹는 법을 안다”고 한 말과 비교 되는 풍경이다. 식민지배 쟁탈전에 나섰던 백인 지배자가 보기에 가난한 원주민이 끼니를 채우는 행위를 짐승이 먹이를 먹는 장면과 동일하게 여기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방글라데시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다룬 가난한 아시아와 내전에 신음하는 아프리카는 유럽 식민지배에 고혈을 짰다. 무기와 종교와 자본을 앞세워 침략한 다음 자원과 노동을 단물처럼 빨아 먹은 식민주의 근성이 오늘날 우리 밥상에 미식으로 둔갑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도쿄에서는 매일 50만 명이 하루 동안 먹을 수 있는 음식 찌꺼기가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돈을 벌면 배고픔을 면할 수 있기에 경제동물이 되었지만 음식 쓰레기는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창 돈 버는 일에 불이 붙은 베트남에서는 노점에 느긋하게 앉아 쌀국수를 먹는 사람들이 줄고 있다고 한다. 먹는 시간을 줄여 한 푼이라도 더 돈을 벌려고 하기 때문이란다.

 


노동자 출신 대통령 바웬사가 집권하면 살만해질 줄 알던 폴란드 광부들은 여전히 빚을 진채 탄광에서 일한다. 석탄이 가장 특별한 음식 아니겠냐고 말하는 광부들은 소뼈에 샐러리와 파슬리 뿌리까지 넣어 푹 곤 스프를 즐겨 마신다. 탄광촌 음식은 척박한 환경 탓에 다양하고 고급진 음식 대신 강렬한 맛을 선호한다. 2006년 열여섯 명이 죽은 볼리비아 와누니 광산 유혈 사태에 참가했던 광부들은 코카 잎을 즐겨 씹는다.《남미 인권 기행》(하영식 지음. 레디앙. 2009. 4) 에 따르면 열네 살, 열여섯 살 먹은 소년들은 광부학교에 들어가 갱도 작업을 배우고 광부가 된다. 하루 열두 시간씩 일하고 나오면 이미 해가 져서 어두웠다고 하니 해를 보지 못하고 살았다고 한다. 고된 노동과 나아지지 않는 생활, 희망이 없는 하루하루를 코카 잎을 씹으며 견딘다고 한다.


1970년대 강원도 탄광촌에서 광부들이 가장 많이 마신 게 막소주였다.《박정희 시대의 유령들》(김원 지음. 현실문화. 2011. 5)에 보면 광부들은 막소주를 마시면서 고단한 삶을 위로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남자들이 어떡하든 먹고 살겠다고 진폐증에 걸려가며 탄을 캤지만 산재보상은커녕 노조탄압으로 개죽음 당하기 일쑤였다. 알코올 도수 35도인 막소주에 불을 붙여가며 뜨거운 불술을 마시면서 암울한 현실을 견딘 셈이다. 당시 사북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쓴 동시집《아버지 월급 콩알만하네》(임길택 엮음. 김환영 그림. 보리. 2006. 9)에도 배고픔을 지은 시가 있다.

 

_나의 꿈

                                              5학년 염명수 지음

나는 친구가 네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통일이라 하지만

나는 그것이 아니다

나의 꿈은

먹는 걸 많이 먹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굶주리며 죽음을 기다리는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소녀 파르히아. ⓒ 헨미 요



■ 먹는 존엄권

소말리아는 우리에게 굶주린 내전의 땅으로 각인됐다. 굶어 죽거나 총에 맞아 죽거나 강간 후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죽음의 땅으로 전락했기에 소말리아는 슬픔을 넘은 분노와 증오의 땅이 되었다. 적어도 먹는 일만큼은 고통 받지 않기를 바라지만 전쟁은 먹는 일부터 강탈한다. 책에 소개한 것처럼 새벽부터 몇 시간씩 거리에 나와 밀 한바가지를 받기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총알이 날아다니는 거리에서 한 덩어리 빵이라도 얻을까 어슬렁대는 깡마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다국적군 막사에서는 진수성찬이 차려진다. 


문득 서울 구치소에 수감된 박근혜 전 대통령 식단이 궁금하다. 박 전대통령은 1년 전 청와대에 새누리당 의원들을 초대해서 샥스핀과 송로버섯을 먹었다. 최저시급이 만 원조차 안되고 국가부채가 600조원이 넘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의 지배 명분을 유지하면서 내전을 종식시키는데 ‘평화’는 종종 가장 좋은 수단으로 이용된다. 다국적군이 가장 실천하기 쉬운 평화라면 저자가 목격한 에이즈에 걸린 우간다 소녀에게 빠른 치료를 제공해야 하며 좋은 음식을 먹게 함으로써 건강을 회복하고 삶을 조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국적군 막사 근처에서 죽어가던 소말리아 소녀처럼 우간다 소녀 역시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이 소녀들은 태어나서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먹는 인간》에서 결국 가리키는 주제는 ‘먹는 존엄권’이다. 방사능 위험에도 불구하고 세슘이 함유된 생선과 과일을 먹을 수밖에 없는 체르노빌 근처 농민들과 불량 식품 배급을 먹었던 블라디보스토크 함대 군인들처럼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삶과 죽음에 직결된 먹기는 존엄권을 상실했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를 만나 고통 가운데서도 잘 드시라고 울먹이며 권한다. ‘먹는 존엄권’은 유난하지 않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이다. ‘먹는 존엄권’은 흙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볶은 커피콩을 갈아 타 주던 에티오피아 여인과 포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크로아티아 바다에서 정어리를 구워 먹던 어부들의 삶을 망가지지 않게 하는 힘이다. 


맛 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하고 힘이 난다. 입을 갖고 태어난 운명에게 먹는 일이야말로 삶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밥은 아무데서나 먹어도 되지만 아무거나 먹어서는 안 되며 아무렇지 않게 먹고 살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다.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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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4.14 1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의 꿈 이라는 시가 슬프네요. 한동안 쥔장 안계신 곳에 왔다 갔는데 별일 없으시죠? 늘 생각하는 글 올려주셔서 잘 읽고 있습니다. 미식이니 먹방이니 방송이며 기사가 차고 넘쳐서 어지럽습니다. 이 책, 화제도서이던데 망설였거든요. 읽어봐야 겠습니다.

    • 윤미화 2017.04.15 08: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저는 그럭저럭 잘 지냅니다. 안부 여쭤오셔서 고맙습니다.

      <먹는 인간>은 미식열풍과 1일1식 유행과 함께 생각해 볼 좋은 책입니다.

  2. 2017.05.01 0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책 좋은글로써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딱 요즘 이 나라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건 이 글과 진실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었습ㄴㅣ다. 제 주변에 공유 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경복궁 야경


2014년 작고한 한겨레 신문 건축 전문 기자 구본준이 쓴《세상에서 가장 큰 집》(구본준 지음. 한겨레출판. 2016년 11월)에서는 “건축은 태생적으로 ‘공공적’인 분야”라고 한다. 건축이 공공분야인 이유는 건물을 지은 설계자나 건축 소유자뿐만 아니라 이용자와 건물을 보는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보면 책에서 다룬 궁전이나 신전도 특권층을 위한 건축이었지만 당대 시대상을 반영하고 민중의 삶과 관계있었으므로 공공건축물이라고 본다.

 


■ 기둥을 사랑한 인류

신전과 궁전 규모는 권력을 상징한다. 당대 모든 기술을 응집한 결정체이며 문화예술 정수이다. 기존 건물보다 더 크고 더 정교하고 더 아름답게 짓는 설계를 동원한다. 새 공법을 적용했고 차별적인 디자인을 추구했다. 더 크고, 높고, 길어야 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빠트릴 수 없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기둥이었다.

 

기둥은 단순히 지붕을 떠받치는 물리적 기능에 그친 것이 아니다. 책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집트 하트셉수트(Hatshepsut) 장제전은 집이 길어지면서 기둥이 늘어난 가장 극명한 예시이다.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 계곡 아래 3단으로 지은 장제전은 죽은 왕을 모신 것으로 알려졌다. 3,500년 전 고대 이집트 여자 파라오 하트셉수트 때 지었다는 기록으로 봐서 사후 세계를 건축한 것 같다. 극도로 단순한 직사각형 건물에 네모난 줄기둥을 세웠다. 절제와 엄격함이 베어 나오는 이 건물에 유리창을 달면 현대 건물로 손색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 하트셉수트 장제전


기둥의 시각적 이미지는 반복과 웅장함이다. 같은 기둥을 반복해서 세운 열주는 건물에 진중함과 거대함을 부여한다. 2,500년 전 지은 파르테논 신전은 하트셉수트만큼 절제미를 뽐내는 대신 안정적이다. 서양 건축의 고전이 된 파르테논은 기둥지름과 길이, 두께 비율을 따져 지었다고 한다. 웅장한 돌기둥 때문에 서양 건축사의 기준이 된 파르테논은 그리스 건축 특징인 비례미학 절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저자는 “기둥이 줄지어 설 때 장중함, 숭고함이 드러납니다.”고 말한다.

 

파르테논을 기준으로 삼은 서양 기둥 건축은 이후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기둥 양식으로 변주한다. 베를린 구 박물관, 영국박물관, 경희대학교 본관 석조전은 파르테논 신전 기둥을 본 땄다. 그러나 줄기둥이라면 미켈란젤로가 78세에 설계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을 빼놓을 수 없다. 책에 따르면 바티칸 산 피에트로 대성당 광장에는 도리아식 원기둥 284개, 각기둥 88개, 지붕에 대리석 성인 조각상 140개가 있다고 한다. 설계는 이탈리아 바로크 대표이자 로마를 설계한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했다.

 

저자는 신성한 절대 신을 추구하는 건축 상징은 줄기둥밖에 없다고 한다. 성당 앞 광장에 압도적인 줄기둥만을 세움으로써 신을 향한 절대 순종을 드러낸 것이다. 예배하고 경배하는 장소에 절제미를 부각시켜 신성을 극대화했다. ‘위요(圍繞)’감 극치를 보여준 줄기둥은 그리스도가 두 팔로 인간을 품는 형상을 한 것으로 해석한다. 종교를 이해하고 숭모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설계이다.

 

신전은 신을 모시고 추앙하는 공간이다. 불순한 마음을 품을 수 없다. 절대복종과 믿음 외에 다른 의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권위를 세우고 싶었던 인류는 신전의 줄기둥을 일상으로 끌어들인다. 책에서 인용한 영국 아파트인 ‘로열 크레센트’나 티베트 불교 최고 교육기관이자 박물관인 중국 간쑤성 라브랑 사원, 여의도 국회의사당, 용산 전쟁기념관은 신처럼 숭상 받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나타냈다. 줄기둥은 그 욕망의 결과물인 셈이다. 

 

■ 종묘, 이세신궁(伊勢神宮)

종묘 정전은 한국에서 가장 긴 목조건물로 101미터이다. 맞배지붕에 단순한 구도이다. 제사공간으로 비워놓은 월대까지 넉넉한 여백을 허용했다. 죽은 이를 추모하는 장소인 만큼 번잡한 허세가 없다. 경건과 참회와 침묵이 흐른다. 역대 조선 임금 영혼을 모신 곳이므로 신전과 같다고 한다. 종묘사직을 국시로 여긴 조선에서 임금은 궁궐보다 종묘를 더 중하게 여겼고 관리에 철저했다.

 

“유교는 가부장제가 근간이었고 이 가부장제는 제사를 통해 유지되었습니다. 임금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가부장이고, 그 가부장의 조상인 역대 왕들에게 제사하며 정통성을 널리 알립니다. 나라에서 가장 신성한 건축물이었던 것입니다.”

 

조선은 가부장제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던 만큼 엄격한 제사가 요구되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유교 폐단이나 조선 기득권의 착취를 정당화하고 백성을 지배하기 위한 명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건축물은 시공간을 넘어 당대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유산이다. 비록 왕조유지를 위한 구축이었겠지만 종묘 정전이 지닌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사상과 마찬가지로 문화와 기술을 가늠하고 연구하며 계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종묘는 우리 건축사에 매우 이례적이고 독보적인 유산이다.

 

흥미로운 점은 종묘는 권위를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제된 감정과 경건함 가운데 심지어 아늑함마저 든다. 흡사 종교 시설처럼 편안하다. 중심축을 배치해서 계속 다른 건물을 등장하게 하는 중국 태묘와 달리 종묘는 시야 전체를 여러 건물로 채운 부채꼴 모양이다.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처럼 한눈에 시야가 확보되는 종묘는 아이맥스 같은 감동을 준다고 한다.

이세신궁(伊勢神宮)


시간 흐름에 따라 증축한 종묘와 다르게 일본 이세신궁은 20년마다 새로 짓는 신전이다. 일본 최고 여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시는 내궁과 농경의 여신 도요우케오카미(豊受大神)를 모시는 외궁으로 구성됐다. 일본 토착 종교인 신토(神道)에서 가장 높은 신인 태양신을 모시는 이세신궁은 일본 황실의 조상신을 모신다. 서기 260년에 신축한 것으로 알려진 이세신궁은 땅을 두 필지로 나눠서 한 땅에 건물을 짓고 20년이 지나면 옆 빈 땅에 새 건물을 짓는다. 20년 된 옆 건물은 헐고 빈 땅으로 비워 놓는다. 2000년 동안 “언제나 새 건물”이다.

 

식년천궁(式年遷宮)을 하며 20년마다 새 건물을 짓는 이유는 “영원성”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깨끗한 신전을 지으면 신은 더 젊어지고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될 것이라는 믿음, 영원하기 위해 새로 짓는다.” 유한한 인간이 영원불멸을 추구한 셈이다. 말하자면 건축이란 유한한 인간이 무한을 염원한 의지이며 표상이 아닐까. 왕조 불멸을 기원하고 신과 대면을 바라마지 않는 이데올로기 집약체가 궁전과 신전이었던 점을 상기하면 말이다.

 

■ 자금성, 베르사유, 경복궁

저자는 건축을 결정짓는 요소는 예산과 땅이라고 한다. 대개 이 두 가지 요소에 의해 건축이 재단되는 것과 반대로 권력이 결정하는 궁전은 제약이 없다. 권력이 집중된 곳이니만큼 궁전은 최고 자원과 최고 기술이 동원된다. 절대 권력일수록 궁전은 크고 화려한데 그 이유는 권력자는 비교할만한 대상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크기로 치자면 자금성부터 떠오른다. ‘금지된 붉은 성(The Forbidden City)’이라는 뜻을 가진 자금성은 위압적이다. 두껍고 높은 벽과 육중한 문이 겹겹 둘러친 자금성은 황제 권위에 범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크고 무겁게 지어 방문객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내려다보는 건물이다. 복종과 군림만 있는 곳이므로 풍경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8천개의 방은 큰 스케일 위용을 뽐낸다.

 

황제 궁전은 당대 모든 역량이 총동원된 건축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국가 근간을 건드린다. 자금성보다 방이 더 많은 베르사유는 황제의 권능으로 자연까지 굴복시킨 건축물이다. 8킬로미터에 달하는 정원은 왕의 눈에 모든 것을 들어오게 설계했다. 심지어 귀족들을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 궁전에서 살게 했다고 한다. 왕권강화와 지방 귀족 세력 견제하려는 의도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권력 강화에는 유지비가 많이 든다.

 

지금이야 자금성과 베르사유는 유명 관광지로 꼽히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명물이지만 이면 그늘에는 희생자의 피가 서렸다. 왕과 귀족들이 흥청망청 지낼 무리한 토목공사는 과중한 납세와 가혹한 노동착취가 따랐다. 나라살림이 거덜 나고 원성이 높아지면 건축물은 권력자와 함께 처단 대상이 된다. 그래서 저자는 건축물에 집착한 독재자일수록 예외 없이 짧게 존재하다 사라졌다고 한다. 사람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무시하고 자신을 위한 하드웨어 허망함이라는 것이다.

 

“권력이 건축을 중시하는 것은 권력의 상징이 되는 건축과 마력 때문입니다. 대중은 그 화려함과 거대함에 매혹되어 권력자에게 절대 복속되고, 권력자는 이로써 권력을 생산해냅니다. 그래서 건축은 권력을 보여주는 극장인 것입니다.”

 

경복궁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원군은 아들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경복궁을 중건한다. 임진왜란 때 불 탄 경복궁은 1865년 4월 중건을 시작해 1868년 7월 입주했다. 당백전을 주조하고 관료들에게 강제로 기부금을 받았으며, 4만 명을 강제 동원했다. 서양 열강이 제물포 앞바다에 들어와 문호개방을 외치던 즈음에 왕조 부흥을 꾀했던 것이다. 세계가 공화정을 흡수할 때 고종은 일본을 견제한답시고 제국을 주창했다. 경복궁 중건은 시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경복궁은 한국에서 마지막 왕조가 살던 집이다. 비운의 장소로 기억되는 까닭이었겠지만 저자가 유독 경복궁에 보인 애정은 한국 근현대사가 집중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가 자행한 경복궁 훼손은 모멸감을 건드렸을지도 모른다. 일제 강점기 때 건물 90퍼센트가 소실된 지금의 경복궁은 규모가 많이 축소됐다. 원래 칸수가 8천개에 이르렀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1995년 8월 15일 오전 9시 21분 조선총독부 첨탑이 분리되면서 상흔의 기억을 떨쳐내었다고는 하지만 경복궁을 규모로 논하는 평은 사라지지 않았다.

 

저자는 한국보다 국토면적이 40배 큰 중국에서 자금성 규모 70퍼센트 수준인 경복궁은 결코 작은 궁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경복궁은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었고 저자 거리와 맞닿아 있다. 왕권과 신권이 견제하는 관계였고 강력한 시각연출로 주변 나라에게 조공을 받아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으므로 특별한 효과를 억지로 집어넣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 히틀러가 꿈 꾼 ‘게르마니아’

히틀러가 세우고자 했던 제국의 수도 ‘게르마니아’ 설계는 이렇다. 인구 1억 명. 폭이 100미터가 넘고 길이가 7킬로미터에 이르는 중심 직선도로를 만들고, 그 도로 끝에 초대형 돔 건물인 국민 대회당을 세우는 것. 돔은 너비 290미터, 높이 250미터, 수용인원 18만 명. 바티칸 산 피에트로 대성당 돔의 17배가 넘는 수준. 로마의 개선문에 해당하는 120미터짜리 새로운 문을 세울 계획이었다.

 

물론 제국을 통일하기 위해 한창 전쟁 중일 때 길이만 4백 미터에 달한 총통 관저를 먼저 지었다. 책에 따르면 총통관저는 끝없는 계단과 유리창 없는 돔, 거대한 방, 137미터에 달하는 홀, 천장 높이 9미터였다고 한다. 마치 SF 영화 장면 같다. 외부와 차단된 폐쇄된 동선으로 사람을 조종하고자 하는 의도였던 것 같다.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빛의 대성전(Cathedral of Light)’


한때 건축가가 꿈이었던 히틀러가 권력을 이용해 건축에 집착한 이유는 대중선동과 억압에 이만한 도구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정점이 뉘른베른크 스타디움이다. 줄기둥을 세운 건물을 배치하고 주변부에는 산 피에트로 광장 줄기둥처럼 스탠드를 빙 둘러쳤다. 40만 명이 참석한 전당대회 하이라이트는 대공 서치라이트 130개를 밤하늘에 수직으로 쏘아 올린 순간이다. 하늘 끝까지 히틀러 권위를 세운 것 같이 경외감으로 가득찬 밤이었다. ‘빛의 대성전(Cathedral of Light)’은 ‘히틀러의 애완견’으로 불린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연출했다.

 

■ “건축은 형태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생각, 곧 의도를 알아야 제대로 보인다”

저자는 뉘른베른크 나치 전당대회장 참석자들은 히틀러를 경외대상으로 여겼을 것이라고 한다. 한편의 장렬한 정치 쇼를 연출하면서 히틀러가 얻은 건 유대인의 피와 돈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얼마나 광기에 약한 존재인지, 인간이 얼마나 허상에 허약한 존재인지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었을 것이다. 히틀러는 이미지에 약한 인간의 속성을 철저히 이용했다.

 

흥미로운 건축사를 쉽고 차분하게 서술한 이 책에서 독자가 새겨들을 건 ‘허상에 대한 경계’와 ‘이면 톺기’이다. 크고 화려하고 오래된 건물 모습에 현혹되기 전 건물에 깃든 이야기, 즉 내용을 알아챌 때 건축은 우리에게 ‘공익 유산’이 될 것이다. “거대 건축물은 그래서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사람을 도구로 쓰는 잔인함을 함께 보여주는 두 얼굴을 가진 문화유산입니다.” 저자가 남긴 이 말을 곱씹으면, 민과 소통 통로 없이 외딴집으로 전락한 청와대와 지자체에서 앞다퉈 짓는 호화 청사가 떠오른다. 시민 세금으로 지은 집에서 시민에게 군림하려는 욕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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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송세월 2016.12.30 1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본준 기자님 밴쿠버 올림픽때 휘슬러 건물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대화했었는데 참 아쉬운 분이지요. 건축에 대한 지평을 넓혀준 분이고... 왜 이렇게 급하게 가시는 줄 모르겠어요.

  2. 딸기21 2016.12.30 1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언니, 벌써 다 읽으셨군요 ^^
    고마워요!

  3. 딸기21 2016.12.30 1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 드팀전 2016.12.31 0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이에요.건강하신가요?

    페북 외에는 잘 하지 않다보니 잊고 지냈습니다.
    구정은 기자가 페북에 기사 링크를 걸어서 보게되었네요.

    내년에 5학년과 2학년이 되는 아이들은 전에 키우시던 염소들처럼
    잘 먹고 잘 크고 종종 담장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5 kg 귤은 한줌의 건초더미처럼 하루를 넘기지 못하구요.
    종종 그럴싸한 핑계로 학교와 학원을 빠져 나가기도 합니다.
    저는 흰머리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미장원 아가씨들이 멋지다고 하는 말에
    속아서 그냥 두고 있습니다.

    마침 올해의 마지막 날인데 인사를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내년에도 건강하시구 좋은 일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산에서

    엄상준 올림

    • 윤미화 2016.12.31 2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아, 상준씨 반가워요.
      저는 잘 지내요.
      벌써 꼬마들이 이렇게나 컸군요.
      조금 있으면 질풍노도 본격시즌이 될 듯한데요.
      그러고보니 우리가 안지 10년이 훌쩍 넘었어요.
      흰머리와 주름살 늘만해요.
      아이들이 큰 것좀 봐요.

      소식 알려줘서 고마워요.
      이렇게나마 스르륵 불어오는 바람처럼 소식 묻고 얘기하고 좋네요.

      고마워요. 네 식구 모두 행복한 새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새 왕비는 권위를 내세워 이내 왕국을 지배했다. 고관대작은 앞 다퉈 무릎을 꿇고 왕비 손등에 입을 맞췄다. 왕비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젊고 예쁘고 착한 전 왕비 딸 백설 공주가 신경 쓰였지만 자기도 예쁜데다 권력까지 쥐고 있으니 거칠 게 없었다. 어느 날 왕비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껏 꾸미고 거울에게 물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거울은 뜻밖의 대답을 한다. “왕비님도 아름다우시지만 백설 공주님이 더 아름답지요” 거울이 더위를 먹어서 헛소리를 하는 것 마냥 왕비는 짜증을 내며 다시 물었다. 그러나 거울은 똑같은 대답을 했다. 화가 난 왕비는 백설 공주를 궁에서 쫓아냈다.



“소프트웨어 코드 몇 줄만 보고 그 코드가 어떻게 작성되었는지, 누가 입력했는지 알아낼 수 없는 것처럼 단순히 두뇌를 살펴본다고 해서 유전자, 환경, 그리고 그 두 가지가 정확히 어떻게 조합되어 각각의 신경 연결 구조가 형성되었는지 파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회로 없이는 컴퓨터와 두뇌 모두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우리는 객관적이고 납득할만한 정신분석 이론이 없다. 그래서 나르시시즘을 말할 때 관찰 공통점을 꼽아 판단한다. 물론 이 방식은 판단 기준면에서 정확도가 떨어진다. 단순한 말과 행동만으로 전체를 단정한다는 건 인상에 치우칠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르시시스트를 판단하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꽤 오랫동안 행동을 지켜봐야 하며 정리 작업이 필요하지만 나르시시스트는 분명 튀는 사람임을 부정할 수 없다.


2006년《타임 Time》지 표지를 장식했던 마일라mylar[각주:1] 를 똑같이 표지에 쓴《옆집의 나르시시스트》제프리 클루거 지음. 구계원 옮김. 문학동네. 2016.3 에서 저자는 나르시시스트를 “징후”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좀 더 정확한 결론을 얻으려면 뇌 반응을 측정하여 특성을 골라낸다. 2007년 네덜란드 연구팀에서 극악한 사이코패스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감각통합, 의사결정 및 보상과 처벌 사이 관계를 관장하는 ‘안와 전두회로orbital frontal circuit’ 활성화 수준이 평범한 사람보다 현저히 낮았다고 한다.

 

안와 전두회로 활성화 수준이 낮다는 건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데 둔감하며 뻔뻔한 행동을 문제로 여기지 못함을 뜻한다. 책에 따르면, 나르시시스트는 마음이론theory of mind[각주:2] 에 취약하거나 극단적일 경우 아예 없다고 한다. 입장과 상황과 견해가 다르므로 다른 사람도 내 생각과 같거나 똑같은 반응을 나타내지는 않는데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중심 세계관이 강해서 자기와 똑같이 남도 받아들인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특징인 자기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대화와 설득 대신 몰아세우고 다그치며 피해를 주는 모습이 상기된다.

 

〈집, 사무실, 침실, 우리 주변의 숨어 있는 괴물 이해하기〉라는 부제가 붙은《옆집의 나르시시스트》는 자료를 바탕으로 나르시시스트를 소개한다. 저자의 주관적 의견이 많지만 다양한 사례와 실험을 제시하며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나르시시스트는 정치인, 운동선수, 연예인, 범죄자, 회사원, 기자, 연인이나 배우자, 아이, 기업가 등 시대와 국가, 직업과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미루어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조금씩 이 증상을 갖고 있지 않을까.

 

나는 특별해, 나를 바라봐, 나만 바라봐!

저자가 가리킨 나르시시스트 징후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 과장된 자존심, 허세, 사회적 사안이나 소통에 둔감, 공감 부족, 편집증을 꼽는다. 나아가 자신의 행동이 왜 잘못된 건지 이해 못하는 태도, 무책임, 자기기만까지 짚을 수 있다. 저자는 다양한 모습의 나르시시스트 특징 가운데 공통점은 “나를 좀 봐주세요!”라고 한다. 사람들의 이해와는 상관없는 돌발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의도적이고 계산된 행동을 순수와 정의로 포장하는 기만적인 태도까지 나르시시스트에게 있어 관심 받고 싶은 욕구는 가장 큰 공약수일 것이다. 그것도 가장 많이, 사실관계 상관없이 선의로 인식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여성비하, 인종차별, 노동자 무시 등 반사회적 정서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이유도 수단과 방법을 무시한 관심 갈구 증상이다. 관심집중이라면 많은 사람들과 악수하고 포옹하며 토론하기를 즐겼던 ‘퍼스트 젠틀맨First Gentleman’ 후보 빌 클린턴도 빠질 수 없다. 물론 친절하고 상냥한 표정, 부드러운 몸놀림과 뛰어난 화술 덕분에 클린턴은 늘 많은 사람(대개 여성)에게 둘러싸였다. 수 억 명 가운데 자신이 유일하게 대통령감이라고 자아도취에 빠졌던 린드 존슨만큼은 아니어도 빌 클린턴은 임기 내내 카메라 앞에 서서 브리핑하는 걸 좋아했다. 심지어 섹스 스캔들이 점화되었을 때조차 직접 카메라 앞에서 해명했다. 관심갈구는 동생이 태어나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첫째 아이부터 정치인까지 인간 본성에 깃든 유전자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증상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데까지 이르면 우리는 악이라고 부른다.

 

정치인의 ‘카메라 집착 증후군’은 한국 사회에서도 자주 본다. 자신이 무대 위에 올라가지 않으면 금방 지루해하는 사람들 말이다. 정부질의나 정기회의 때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지는 진풍경을 떠올리면 나르시시스트에게 카메라가 얼마나 중요한 조건인지 알 수 있다. 상황을 주시하고 점검할 의욕이 없는 게 아니라면 한창 진지한 질문이 오가는 상황에서 잠을 자거나 딴청을 피울 수 없다. 단상에 오른 대상을 향해 고함을 치면 카메라는 고함을 친 사람을 비춘다. 방법이야 어떻든 간에 카메라빨 받는데 성공한 셈이다.

 

정치인만큼 연예인도 카메라를 떠날 수 없다. 연예인은 처음부터 카메라 앞에서 출발한다. 게다가 박수갈채까지 요구한다. 박수를 받지 못하면 금방 실의에 빠지거나 심지어 공황장애를 겪고 무너지는 사례를 매일 연예 뉴스에서 쉽게 본다. 저자는 레이디 가가Lady GaGa 가 부른 ‘어플로즈Applause[각주:3]가사처럼 나르시시스트는 박수를 위해 산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나르시시스트는 카메라 방향이 다른 곳으로 돌려지는 걸 못 견디는 사람이다. 자신이 제작하거나 주연을 맡은 영화에서 자기 얼굴을 카메라에 클로즈업되도록 요구하는 바브라 스트라인샌드처럼 말이다.


카메라 뷰파인더 집착이라면 SNS에서 가장 많이 본다. 전쟁, 테러, 시위, 차별, 범죄소식 뿐만 아니라 평화, 기부, 봉사, 구조, 나눔과 같은 훈훈한 소식이 같은 전파에 실려 도착한다. 필요한 정보를 얻고 공감을 나누지만 관심을 받지 않아도 그만인 일상 이야기 노출이 대부분이다. 오늘 먹은 음식, 새로 산 운동화, 볼륨감 있는 몸매, 심지어 등짝에 난 뾰루지까지 게시한다. 대개 수다나 떨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반응이 없으면 시무룩해져서 소외감을 느낀다. 이처럼 연출과 기획이 빤히 드러난 노출증은 자기과시, 자아도취, 허세를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하며 24시간 일상 중계는 사람들에게 관음증을 자극한다.

 

저자는 “잘 나온 자기사진, 피상적 친구 관계, 자아도취에 빠진 자기홍보, 자기중심적 사고”가 드러난 트위터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가리켜 “자기도취 성향을 그러모아 무서운 파괴력을 갖춘 나르시시즘으로 변모시킨다.”고 지적한다. 프로필에 섹시한 사진을 게재해 섹스팅sexting[각주:4] 을 하는 사람까지 SNS는 문자 노출증인 섹스트sext [각주:5]집결지로 이들은 한결같이 “나 좀 봐주세요!”를 외친다. 그리고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망한다.

 

아기처럼 구는 나르시시스트

백설 공주 새 엄마를 비친 거울은 나르키소스Narcissus 가 빠진 연못이다.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해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처럼 왕비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취해 몰락을 재촉했다. 신화와 동화를 해석하자면 나르시시즘은 미러mirror 에 빠지면 미로迷路빠진다. 이런 맥락에서 나르시시스트는 이미지를 사랑할 뿐 자신을 사랑한다고 보기 어렵다. 과도한 자기애가 자기를 죽이고 마니까 말이다. 그런데 나르시시즘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타고나는 이기적 유전자가 아닌 것 같다.

 

책에 따르면 인간은 태아 때부터 나르시시즘 특징을 갖춘다고 한다. 의학적으로 태아는 극단적 나르시시스트이다. 특히 모체와 아기를 연결하는 태반은 나르시시스트 의문 여지가 없다. 엄마와 아기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맡은 태반이 모체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T세포를 죽여 엄마의 면역체계를 밀어낸다는 것이다. 융모성 생식선 자극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면서 태반은 엄마 영양분을 빼앗아간다. 태아가 엄마의 몸을 숙주로 삼아 태반을 통해 피와 뼈와 살을 만들 때 엄마는 고혈압, 당뇨병, 골다공증에 시달린다.

 

물론 태아에게 자기 몸을 내 준 엄마의 무기력함은 종종 ‘숭고한 모성애’로 미화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준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므로 태아의 몰지각은 나르시시스트의 몰지각을 연상시킨다. 진화생물학자 데이비드 헤이그는 엄마의 영양을 강탈하는 태반을 가리켜 “모체는 안중에도 없는 무자비한 기생기관”이라고 혹평한다. 그렇다고 엄마 배 밖으로 나온 아기가 개과천선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아기는 제왕처럼 군다. 최고권력은 눈빛으로 지시하는 것처럼 아기는 울음으로 부모에게 지시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자기욕구에만 충실한 아기를 가리켜 “1차적인 나르시시즘 단계”라고 해석했다. 저자가 소개한 1914년에 쓴 프로이트 논문「아기폐하His Majesty the Baby」에 따르면 아기의 극단적 자기중심 성향을 ‘자기성애auto-eroticism’로 정의한다. 프로이트가 구강기를 가리켜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프로이트 저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빤다’[각주:6]는 표현은 ‘자기성애’를 유추할 수 있다. 나아가 프로이트는 아기 때 자기성애가 청소년기에는 ‘자위’라는 직접 행동으로 발현되며 자신의 몸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한다.

 

프로이트가 말한 아기의 자기성애나 청소년기의 자위는 성인의 자기애성 인격 장애와 같이 나르시시스트 가장 큰 특징인 ‘자기애’를 분명히 보여준다. 만족을 얻기 위해 눈물과 콧물을 얼굴에 범벅으로 칠한 아기는(눈물과 콧물을 빨아 먹기도 한다) 청소년기에 들어 생식기를 스스로 주무르는 자위를 한다. 성인이 되어서는 키스를 하며 침을 나누고 섹스를 한다. 모두 점액질이 등장하는 바, ‘빤다’는 행위는 곧 사랑의 증표인 셈이다. 여기서 말하는 ‘빤다’는 결국 자기를 위한 행위이다. 아기가 부모의 관심을 받으려고 눈물과 콧물을 빠는 것처럼 섹스는 사랑 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욕구 발현이다.

 

길러진 나르시시즘

그러나 전기다리미가 과열되면 집을 통째로 태운다. 지나친 자기애가 남에게 해를 끼치고 자기 파괴로 치닫는 모습을 백설 공주 새 엄마에게서만 보는 건 아니다. “아기에게는 ‘이원론’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한 헝가리 심리학자 샨도르 페렌치 연구가 아니더라도 자기만 알고 자란 아이가 자기를 넘은 다른 세계에 곁을 내주지 않을 확률은 더 높아질 것이다.

 

지하철에서 옆자리를 넘나들며 장난을 치는 아이,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거나 물건을 흩어놓는 아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계속 이런 행동을 할 경우 심리학자들은 성격 장애로 진단한다. 구강기에 보였던 (자기를) ‘빠는’ 특징이 고착화된 것이다. 대개 인간은 성장하면서 부끄러움을 알고 존중을 배운다. 그것은 눈물과 콧물의 대가였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이 의도적 학습에 의해 더 강력한 슈트를 입게 된다면 나르시시즘은 더 이상 태생적이라거나 일시적 증상이 아니다.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그것은 이념이다.


책에 나온 것처럼 전쟁이 끝나고 경제후광을 업은 교육열풍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미국은 2차 대전에서 군수산업으로 풍요의 시대가 왔고 한국은 개발경제 성공으로 풍요를 맞이했다. 씨족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매머드mammoth[각주:7] 에게 돌도끼를 휘두르고 함정을 파던 과거와 달리 각자도생과 개인의 도락이 도래한 것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경제 여유가 생긴 미국에서 개인의 자신감 키우기 교육 열풍이 일어난 것도 자기 삶을 조명하는 개인주의 배경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자신감 키우기 교육 이면에는 성공지향이 뿌리를 내렸다고 주장한다. 성공은 남들과 다른 삶이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물론 공동체 이익보다 개인의 풍요로운 삶을 추구한다고 해서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인간은 행복할 권리와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문제는 자신감 키우기 자녀교육지침서에서 다루는 “너는 세상의 중심이야.”, “너는 특별한 존재야.”와 같은 말이다. 모두가 이 세상의 중심이고 모두가 특별하다면 모두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대개 부모는 자기 아이를 남들과 다르게 구분하려고 든다. 저자는 이런 방식의 교육은 아이에게 특권의식을 심어준다고 가리킨다. 나르시시즘 패착인 “너는 남과 달라” 를 당의정으로 만들어 떠먹이는 행위다. 심리학 이론인 ‘가면모델Mask model[각주:8]’ 을 적용해서 보자면 사회 공동체를 배제한 자존감 높이기 교육을 받은 세대에서 나르시시즘 현상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자기 밖에 모르는 ‘소황제’가 자라면서 성적, 스펙, 재력, 명성, 권력의 가치를 공동체 공공이익보다 우선 중시하는 건 예정된 결과이다. 이들은 사회 법규가 자신에게는 적용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자신은 남과 다르기 때문이다. 부정부패로 얼룩졌지만 부끄러움을 모르고 책임을 지지 않는 ‘특권의식에 쩐’ 나르시시스트들을 매일 신문이나 방송에서 본다. 이들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제공하고 인성을 중시하는 공동체 가치관을 흔들어 놓는다. 한마디로 비겁한 자기 합리화에 취해 살인을 저지른 사이코패스와 같이 사회악이다.


▲ Franz Caucig(1755~1828), Narcissus’. 슬로베니아 국립미술관 소장


리더십과 나르시시즘

나르시시스트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특별한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돌출된 행동을 할 뿐이다. 책에 따르면 지구에 먹다 만 사과를 남기고 간 스티븐 잡스도 자기중심에 빠졌던 사람이다. 게다가 우월감에 젖어 툭하면 남을 무시했다. 면접채용에서 일부러 고약한 질문을 던지고 기안 작성자에게 멍청하다는 욕을 퍼부었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지적허세를 남발하고 예의가 없다. 그러나 잡스가 보인 자만심은 자신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잡스가 변덕이 심하고 무례했지만 뛰어난 영감과 카리스마는 리더가 갖춘 장점이라는 것이다.

 

책에서 소개한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심리학 교수 제시카 트레이시 연구 발표처럼 부족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려고 외부 위협을 막거나 위협하는 우두머리일수록 호감을 높이 산다고 할 때, 우리는 영웅을 만들뿐만 아니라 간절히 바란다. 평화만 보장된다면 풍전등화와 같은 난국을 굳건히 지켜 줄 힘의 세계에 복종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이상인격psychopathy[각주:9]을 빌려와 설명하는 바, 사회 지배적 성격이 강한 사람을 지도자로 꼽는 문제는 반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두려움을 모르며, 불안을 느끼지 않는” 지도자가 국가에 이익을 가져오고 좋은 지도자로 평가 받았다는 점에서 생각할 여지가 많다. 이쯤하면 자만심과 자존심이 우주까지 닿는데다 두려움을 모르고 악과 싸우는 아이언맨lron Man[각주:10] 을 대통령으로 추대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무대와 카메라를 좋아하므로 적격자다. 물론 이상인격과 나르시시즘은 먼 친척 같다고 한 키스 캠벨의 말을 인용하지 않아도 자기에게 빠져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자기 파멸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언맨은 환상이 만든 히어로이다.

 

영웅은 영웅일 뿐 지도자가 아니다. 권력을 통제권으로 사용한 지도자는 독재자이다. 영웅과 독재자는 자신감과 리더십으로 무장한 나르시시스트이지만 명성과 권력을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따라 나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무자비한 나르시시즘에 젖은 지도자를 선택한 추종자들이다. 저자의 주장처럼 지도자는 추종자들의 지지가 없다면 힘을 못 쓴다. 통치 명분이자 결과에 이용되는 추종자들에게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나르시시즘 지도자는 매우 매력적인 대상인 것이다. 히틀러나 폴 포트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런 대상을 선택해 많은 희생을 치렀다. 따라서 독선적 체제구축을 위해 사회 공동체를 와해하고 흔들어 놓도록 방조한 집단 나르시시즘은 지난한 근현대사 상처로 얼룩진 우리에게 뼈아픈 자화상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인간의 감정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이타적인 사랑이라는 개념 자체가 왜곡되었고, 존경이 과시로, 관용이 탐욕으로, 이타심이 욕구로 변질되었다. 우리는 점점 더 거울로 둘러싸인 세상에 살고 있으며 가장 눈에 띄는 광경은 바로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이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 광경에 만족하고 있다.”

 

 


  1. 미국의 뒤퐁사에서 제조하는 전기 절연재료로, 셀룰로스 아세테이트 필름을 대신하여 1950년 후반부터 발매된 강화(强化) 폴리에스터 필름이다. -두산백과- [본문으로]
  2. 흔히 '공감이론'으로 불리기도 한다. [본문으로]
  3. "나는 박수, 박수, 오직 박수를 위해 살아요"라는 가사가 주 내용이다. [본문으로]
  4. 섹스+문자를 합성한 단어로 문자로 섹스를 한다는 뜻으로 음란채팅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5. 인터넷에서 자기 노출사진을 게시하거나 일상사를 노출하는 행위. [본문으로]
  6. 인터넷에서 '나르시시즘' 이미지를 검색하면 거울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혀로 핥는 사진까지 나온다. [본문으로]
  7. 약 480만년 전부터 4천년 전까지 존재했던 포유류이며 긴 코와 4m길이의 어금니를 가졌다. 혹심한 추위에도 견딜수 있게 온몸이 털로 뒤덮혀 있었지만 마지막 빙하기 때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두산백과- [본문으로]
  8. 성장 환경이나 현상의 배경이 되는 조건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9. 비정상적인 성격으로 말미암아 사회에 해를 입히거나 스스로 번민하는 인격. 자극과 반응 사이의 불균형, 개개 기능 사이의 협조 불량, 정신적 변이성 따위의 특성을 나타낸다. [비슷한 말] 이상 인격ㆍ정신병질 인격.-네이버 사전- [본문으로]
  10. 미국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한 영화. [본문으로]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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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19 1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윤미화 2016.08.20 14: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신작가님. 방송 출연 문의라면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책 관련 아니면 문의에 응답할 내용이 없습니다. 이와 다른 질문이시라면 이 공간에 앞댓글처럼 비밀글로 질문 남기시면 답변해드리겠습니다. 혜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독일 정신과 전문의 미하엘 빈터호프 Michael Winterhoff 는《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송소민 옮김. 추수밭(청림출판), 2016.5 에서 현대인은 “과도한 요구”를 받고 있다고 진단한다. 선사시대 씨족사회가 아닌 한 온통 신경 써야 할 일이 널려있다. 집과 학교는 규율을 요구하고 사회로 진출할 때는 스펙을 요구 받으며 인간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상대방을 의식해야 한다. 심지어 휴대폰 기계 종류와 요금제 선택마저 쉽지 않다. 선택 조건이 클수록 결정은 어렵다. 보험은 더 심하다. 약관과 종류와 혜택사항을 듣다보면 복잡해서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지 포기하고 싶기까지 하다.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원제는 ‘Mythos Überforderung’로 ‘과도한 요구 신화’를 뜻한다. 사회 병리 현상을 독일 사례에 비추어 정리했지만 불안과 무기력, 우울증과 혐오에 시달리는 한국과 무관하지 않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자영업자의 불규칙한 생활과 가족의 불안, 일의 목적을 상실해 집단 피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대충 일처리를 하는 직장인, 이미지에 집착한 외모지상주의 허실(虛失), 공감을 잃고 자폐증을 앓는 폐쇄적 분위기, 좌절과 실패를 혐오로 분출하는 광기, 무책임이 만연한 사회 분위기 등은 오늘 우리가 겪는 병폐이다. 미리 밝히자면 저자가 내린 성숙한 사람이란 ‘자기 결정에 따른 책임의식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척 놀랜드’[각주:1]처럼 살지 않는 이상 아무것에도 요구 받지 않는 삶이란 게 있을까. 남들처럼 살려면 새 기술과 새 문화에 적응해야 하고 스펙까지 쌓아야 한다. 더 큰 성공을 향해 분투해야 하는 끝없는 분주함을 요구 받다보니 사는 게 피로하다. 저자는 이처럼 ‘과도한 요구’에 노출되다보니 신경쇠약이나 심신피로감에 시달리고 수면장애나 무기력증, 나아가 갈등 폭발, 우울증과 같은 질병에 노출된다고 지적한다. 일이 잘 안 풀리고 힘들고 의미를 잃으면 능률이 떨어진다. 무기력으로 인한 방조와 무책임에 길들여진 사회에서 건강한 담론과 합리적 결정이 사라진 건 이상한 일도 아니다. 

 

▼ “과도한 요구”에 시달리는 사회, 누가 우리 등을 떠미는가.

“멀티태스킹, 상시 연락 가능한 상태, 끝없는 분주함, 한 가지 임무에 충실할 수 없는 상황⇒번 아웃(burn out)”. 저자는 이처럼 피로한 상황 반복을 계속 요구하는 문제가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물론 어떤 사람은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자리로 가기 위해 스스로 채찍질한다. 좋게 말하면 노력이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게 아니라면 그 결과는 성공이든 실패든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성공신화를 끝없이 주입하는 사회 분위기나 체제를 지적하지 않는다. 본인 의사에 반한 노력 강요가 있다. 안 그래도 요즈음 ‘노오력’과 ‘열정페이’가 부정적 뉘앙스로 사용된다. 이른 바 갑질에 대한 비유이다. 노동 대가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착취 때문에 생긴 말이지만 자발적 노력과 강요된 노력은 구분해야 한다. 개인을 곤란하게 만드는 어떤 일이 구조적 문제인지 개인 문제인지 살펴볼 일이다. 직업과 연봉과 사회적 지위에 구애받지 않고 말이다.

 

저자가 “맹목적 행동주의”로 지적한 루프트한자 조종사 파업만 봐도 그렇다. 저자는 조종사 파업으로 항공사와 국가에 큰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한다. 조종사 파업은 여객운송, 화물운송, 물류마비 등 산업 근간을 흔드는 피해가 생긴다. 파업 조종사들은 피해 예상을 모를 리 없다. 해고 조종사 복직과 임금인상, 복지 혜택을 요구했다. 오랫동안 사측과 대립했던 문제다. 저자는 “모두가 생존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차분하게 마련하지 않고 상대방 비난과 억지로 굴복시키려는 노조 행동은 주목받고자 하는 심리가 작동한 때문이다.” 이라고 한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노조가 파업을 할 때는 공론화시켜 이목을 집중시켜서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한다.

 

파업 원인과 과정을 좀 더 세밀하게 알 수 없으므로 나로서는 저자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 노조가 사리분별 못하고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사리사욕을 챙길 목적이라면, 집단이기주의는 개인이기주의의 집합체라는 설득이 따라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가 산업을 책임지는 조종사들에게 특별한 사명감과 일방적 희생을 요구한다면 조종사 개인의 행복과 충돌한다.

 

사회 구조적 문제와 개인 문제는 같은 궤도에 흐르는 자장 같은 것이다. 그것은 서로 벗어날 수 없다. 개인은 사회를 구성하는 집합체이자 독립된 개체이다. 책에 나온 영업직 자영업자 가장 사례처럼 사회 문제와 개인의 삶을 배경으로 문제를 돌아볼 수 있다. 저자는 아이가 잠을 안자고 많이 우는 원인을 일감을 집에까지 갖고 오며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은 가장의 불규칙한 생활 패턴에 있다고 본다. 가장 일정에 맞춘 가족생활이 좀 더 자유로운 시간을 갖지 못하거나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가 짚지 않은 게 있다. 가장이 집에서까지 고객과 통화하며 영업처리를 하는 상황이란 뻔하다. 영세 사업체인 까닭에 사무실에서 파트타임으로 대신 일을 처리하는 직원이 없거나 위탁할 경제 여유가 없다. 주택 대출금이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직 어린 아이 장래를 위해 돈을 모아야 한다. 물론 당장 아이 불안 해소가 시급하다. 아이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직업을 바꾸거나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 일을 할 수도 있다. 간단한 해결책 같지만 사는 게 사지선다형 시험문제는 아니다. 아이에게 불안한 정서를 만드는 가장의 불규칙한 생활 이면에는 무엇으로부터 심한 요구를 받고 있는지 봐야 한다. 일벌레가 아닌 이상 누군들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싶지 않나.

 

▼ 이미지에 집착하는 사회

지자체 신청사를 지을 때마다 호화청사 때문에 말이 많다. 호화청사 논란 공통점은 무리한 신축으로 인한 세금 낭비 말고도 이상한 디자인을 꼽을 수 있다. UFO 건축 설계 공모전이라도 여는지 둘레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신청사를 심심치 않게 본다. 공공기관 외형까지 이미지 경쟁에 나서지 않고서야 기이한 형태의 건물을 어떻게 이해할까.

 

그렇다면 공적 시설물에까지 왜 이미지 집착을 하게 된 것일까. 저자는 예전에는 ‘관계’를 중요하게 여겨 상대방을 의식했다면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정착된 1980년대 이후 사람들은 ‘나의 욕구 만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시민과 국가,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선생과 학생, 공무원과 민원 등 관계를 의식한 사회 분위기가 돈과 이미지에 밀려 퇴색한 것이다. 관계 형성 대신 일방적 관심을 받고 싶은 욕망이 성공 요소로 자리를 차지했다고 봐야 한다. 튀는 행동, 외모, 외양, 조건이 사실 관계 확인 없이 종종 이슈에 성공하는 경우를 보라.

 

SNS를 보자. 얼짱 각도 사진을 찍어 자기 얼굴을 스스로 공개한다. 옷, 구두, 자동차, 상류층이 먹음직한 음식 사진이 인터넷을 달군다. 여기에 근육으로 단련되었거나 날씬한 몸매를 드러내면서 외모지상주의를 완성한다. 그런데 성공요소는 흔히 ‘우월적’으로 묘사되는 외모뿐만이 아니다. 포용력 있는 성격, 너그러운 성품, 따듯한 공감 등 인격까지 과대 포장하는데 이르렀다. 이제 웬만하면 속내를 드러냈다가는 부정적 이미지에 덧씌워지기 십상이다.

 

저자는 자신이 속한 집단 기대에 맞춰 이미지를 맞추는 일은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건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집단과 다른 의견은 호응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배척받기까지 한다. 다수결이 진리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왔을 것이다. 집단 이미지에 자기 의견을 맞추지 않은 소수가 성공하기란 어렵다. 호화청사 설계도를 보고 반대 의견을 낸 사람은 세태를 모르는 사람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나르키소스(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작품. 1594~1596 제작, 로마국립고대미술관 소장)


집단 나르시시즘은 맹목(盲目)이다. 눈이 멀어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볼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다. 모든 상상과 사고와 행동에 자신을 중심점으로 설정한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이미지 관리가 자기중심주의를 맹신한다는 것에서 비롯되므로 집단 나르시시즘이 심각할수록 사회가 일방통행 되는 건 당연하다. 우리는 아리안 민족 우월성에 취했던 히틀러와 일당들, 반공 체제만이 자유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맹신했던 박정희 정부, 기업이 번성해야 국민이 잘 살수 있다는 이명박 정부에게 자폐증에 걸린 집단 나르시시즘 병폐를 충분히 겪었다.

 

자기중심적 세계관과 자기 확신에 빠져 타인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 박근혜 정부를 지나면서 자기애성 인격 장애가 저절로 떠오른다. 저자는 자기애성 인격 장애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에 빠지면 자신에 대한 과장된 평가에 들떠서 자기기만에 흠뻑 도취되고 본인이 대단히 훌륭한 인물인줄로 착각한다고 한다. 본인은 성공한 것처럼 착각하지만 정작 둘레에는 큰 짐이 되고 마침내 집단에 패악을 끼칠 인물인 점을 망실했다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관계·책임과 같은 상호 교류를 모른다. 자기세계에 빠져 자신의 이미지만 사랑하는 나르시시스트가 대화나 논쟁을 거부하고 대신 관심과 과잉 칭찬을 요구하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독재자와 자아도취 병증이 깊은 나르시시스트에게서 확인하는 바, 그들의 최종 목표는 숭배와 흠모 지위를 얻는 것이다. 그것도 맹목적으로.

 

저자는 개인 나르시시즘이 둘레 사람들과 생활 반경에 피곤함과 좌절을 안기는 반면 사회로 확장되면 무기력, 무비판, 차별과 소외를 낳는데 이 모든 출발점은 이미지 집착에 있다고 한다. 즉 이미지를 최상의 가치로 만든 사회는 나르시시스트를 번성시키는 최적지인 셈이다. 내실과 진실과 사실 대신 외모, 브랜드, 스펙, 인맥, 재력 등 남에게 보여주는 이미지에 고착된 사회는 점점 더 많은 차별과 소외와 혐오와 폭력이 나오지 않을까.

 

▼ 어른이 되는 일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뇌는 신경전달물질인 코르티솔을 분비한다고 한다. 코르티솔은 다양한 방식으로 스트레스에 반응한다. 공격하거나 달아나거나 모든 일에 의미를 잃게 만든다. 그러나 정작 코르티솔이 맡은 중요한 역할은 따로 있다. 대뇌피질 넓은 영역을 차지한 코르티솔은 사람이 생각하는 일을 차단한다고 한다. 저자는 바로 이 특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가 직관을 상실한다고 지적한다.

 

의식과 무의식을 비롯해 경험과 인지를 총반영하는 직관을 잃는 다는 건 본능 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뜻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이성적 판단이나 과학적 사고를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 기분 망친 대상에게 화를 내거나 포기하고 싶을 뿐이다. 본능에 지배당할수록 즉흥적 기분과 충동적 감정에 흔들리게 된다. 일이 생각보다 안 풀어지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핑계대기도 쉽다. 심지어 저 사람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한다. 저 사람 때문에, 그 일 때문에, 때마침 무슨 일이 겹쳐서, 되는 일이 없다. 그동안 대체 나는 무엇을 했던가.

 

나대신 누군가 피곤한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저자가 말한 것처럼 “나 대신 결정 좀 해주세요” 하는 어른아이가 도처에 있다. 피트니스트레이너, 웨딩플래너, 식이조절상담사, 건강관리사, 인생 상담사, 커리어코치, 성생활코치, 취업컨설턴트 등 내 삶을 내가 결정하지 못해 대신 결정해주는 직업이 호황이다. 단순한 고충 토로나 상담을 넘은 ‘인생 설계사’를 만난 것처럼 의지한다. 한국에서도 종교인이나 자기계발서 저자, 사회 유명인이 대중을 상대로 인생 상담을 해 주는 게 성황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의지를 잃어서 남이 내 인생을 결정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다. 이건 자기 결정권을 불신한 타자의존성 체념이다.

 

안 그래도 저자가 체념을 일컬어 “삶이 부여한 요구들에 무의식적 항복”이라고 정리했다. 자기 결정에 따른 책임을 미루고 타인에게 나를 맡기는 일은 개인에게 삶의 무의미를 상징한다. 그런데 개인과 가정의 체념이 사회로 확산되면 어떠할까. 이를테면 기업 직원이 체념에 빠지는 바람에 맡은 업무를 소홀히 해서 회사에 큰 손실을 가져왔다고 치자. 나아가 정부나 단체 등 공적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는 곳에서 체념이 만연하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 전체로 퍼진다. 저자는 개인의 체념이 가족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집단 체념은 사회가 퇴행구조로 전락한다고 가리킨다.

 

사회가 무책임한 분위기에 폐색이 짙어지면 범죄가 우후죽순 성장한다. 체념은 무책임과 영원한 동반관계로 범죄를 양산하는 좋은 자양분이다. 신분 서열, 그로 인한 체념이나 분노, 이미지 강세에 밀린 소외, 차별에 둔한 자폐성 나르시시즘은 대개 범죄 원인으로 작동한다. 얼마 전 있었던 강남역 살인 사건, 수락산·사패산 살인 사건 등 숱한 사회 범죄는 조현병으로 간단히 요약할 수 없다. 범죄자를 지배하는 감정인 두려움, 흥분, 불안 심층에 얽힌 복잡한 구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인간의 뇌에는 과부하를 인식할 수 있는 감각기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한 채 과도한 요구상태에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하고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며 대가가 보장되지 못한다면 체념 아니면 무책임 말고 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있을까. 저자는 좌절하고 피로한 사람들에게 숲을 산책하거나 종교시설을 찾을 것을 권한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개인의 미성숙함은 그렇게 정리하고 노력하여 성숙의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치자. 미성숙한 사회분위기도 개인 각자 노력만으로 성숙을 담보할 수 있을까. 있다면 우리 손에 든 패는 무엇인가. 


요즘은 뉴스를 볼 때마다 세기말적 증세를 보는 것처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아노미 anomie[각주:2] 에 흠뻑 적신 기분이다.

 

 

 

 

  1.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에 서 톰 행크스가 분한 남자 주인공. 미국 물류회사 페덱스 직원이었다가 어느날 항공사고가 나서 남태평양 무인도에 홀로 난파된다. 4년 동안 섬에서 살다가 바다에 떠밀려온 알루미늄 판자를 타고 섬 탈출을 한다. 섬에서 사는 동안 난파물건이었던 배구공에 '윌슨'이라는 이름을 짓고 대화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본문으로]
  2. 사회적 규범의 동요·이완·붕괴 등에 의하여 일어나는 혼돈상태 또는 구성원의 욕구나 행위의 무규제 상태. 어원은 무법·무질서의 상태, 신의(神意)나 법의 무시를 뜻하는 그리스어 아노미아(anomi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두산백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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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파리 6구 오데옹 거리에 실비아 비치가 운영했던 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




한국서점조합회가 발간하는《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등록한 동네 책방은 1559곳이라고 한다. 2013년에 비해 66곳이 줄었지만 새로 등록하는 책방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여전히 장사는 잘 안되지만 한편에서는 관심이 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온라인에서 쉽고 빠르게 책을 구매하거나 가까운 공공도서관에 희망 도서를 신청하면 될 일을 왜 동네 책방을 찾는 것일까? 아니, 다른 무엇보다 1년 평균 독서량이 한권 겨우 넘고,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은 책을 안 읽는다는 통계를 보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대체 동네 책방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전국 스물아홉 곳 책방을 취재하고 인터뷰한《우리, 독립책방》북노마드 편집부 엮음. 북노마드. 2015.12 서문에서 발행인은 독립책방에 대한 바람을 이렇게 밝힌다. “기존 상업출판이 눈여겨보지 않는 ‘출판물’을 직접 ‘제작’하고 ‘유통’시키는 ‘공간’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그 ‘예술 실천’의 과정에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어떤 가치들이 꿈틀거리면 좋겠습니다.”


정리하면 기획, 제작, 유통을 독립책방 한곳에서 맡을 수 있는 문화 인프라를 염원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부연하자면 ‘동네 책방’은 독립책방, 북카페, 작은 책방 등 운영 방식에 따라 이름이 갈린다. 큰 틀에서 보면 동네 책방은 책만 파는 곳과 다른 행사를 곁들이는 혼합 형태로 나눌 수 있다.《우리, 독립책방》에서도 맥주나 커피를 파는 책방, 출판을 겸한 책방, 저자와의 만남이나 전시 같은 문화 콘텐츠를 겸한 책방을 소개한다.

 

‘술 먹는 책방’으로 알려진 상암동 ‘북바이북 BOOK BY BOOK’은 ‘책맥’ 책을 보면서 맥주를 마신다는 뜻 이라는 말을 회자시킨 책방이다. 대개 책방은 책을 주 종목으로 판매하면서 음료를 제공하거나 판매하면서 고전적 형태의 책방에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술이나 음료를 함께 파는 책방을 찾는 손님들은 대개 책을 좋아한다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술이나 차를 마시면서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책 구매로 연결된다는 게 공통 의견이다.

 

술이나 차를 파는 대신 출판이나 전시를 하는 책방은 책방의 진화라고 볼 수 있다. 기존 책방이 책만 파는 공간이었다면 요즘 동네 책방은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지방이나 서울이나 책이 안 팔리는 건 똑같아서 재정 상황은 좋지 않다.《우리, 독립책방》에서 인터뷰에 응한 책방 지기들 대부분이 어려운 재정 상황을 토로한다. 가장 큰 원인은 책이 안 팔린다는 것이고, 다음으로 임대료 부담이 책방 운영에 힘든 점이다. 동네 책방 대개가 영세 자본으로 출발한다. 그러다보니 초기 적자를 억제하느라 다른 일을 병행하는 사례를 자주 접한다.

 

회사원, 사진가, 잡지 에디터 등 다른 직업을 갖고 책방을 꾸리는 지기들은 임대료와 매출을 저울질하며 부지런히 일한다. 책이 좋아 책방을 열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은 것이다. 생존과 열정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그럼에도 책방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한결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책방은 이야기가 모이는 곳”, “누구나 들어와서 쉬었다 가는 곳”, “만남의 장소”, “오래 머물고 싶은 곳” 이 책방이다. 책방 ‘무사’를 연 가수 요조는 책방의 정체성을 이렇게 말한다.

 

“저 같은 경우는 음악 하는 사람들하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할 때 그런 작당의 즐거움에 빠지곤 하거든요. 우리 나중에 이런 앨범 만들어볼까? 이런 공연 해볼까?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도 해보면서요. 거기에서 사는 재미가 느끼고, 정체 모를 에너지를 얻어요. 요즘 그 감정을 책방에서 느끼고 있어요.”

 

동네 책방에서 만나 음악 이야기도 하고 소설이며 시를 읽고 인문학을 토론하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심지어 독립출판물을 만들고 판매하기까지 이르렀다. 규모는 작지만 할 건 다 하는 셈이다. 게다가 맥주나 커피까지 마실 수 있다면 수다 떨며 작당하는 곳으로 안성맞춤이다. 집에서 만들어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떠는 책방도 있다. 독일 함부르크 라디오 방송국 프리랜서 작가가 연 책방 이야기이다.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페트라 하르틀리프 지음. 류동수 옮김. 솔빛길. 2015.8 는 빈에 책방을 열고 동네 주민들과 어울리며 책방을 꾸린 체험담이다. 어느 날 빈에 여행을 갔다가 계획에 없던 책방을 인수한 부부는 주민들의 호응과 출판계 협조를 받아 동네 책방을 성공적으로 꾸린다. 우여곡절이 있기로는 어디나 마찬가지이지만 이 실화에는 열악한 독서문화와 폐쇄적인 출판풍토라는 두 가지 악재를 가진 우리나라에 생각할 점을 던져준다.

 

폐업한 책방을 열 때 주민들 대개가 찾아와서 반가워했다. 동네 책방은 지역 주민의 문화 자긍심을 나타낸다고 여긴 것이다. 문화에 대한 의식이 열려있는 상태에서 책방은 가장 쉽게 접하는 문화 최전선이다. 한 나라의 시민 의식 수준을 문화를 대하는 인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회는 다양한 인식이 공유되고 인정되는 사회일 것이다. 책은 문화의 척후병이자 증표로써 누구나, 거의 아무 장애 없이 접할 수 있다.스트리아에서는 이런 의식 수준이 시스템에 정착되어 책방 사업자 등록이나 보증 없이 주문만 하면 도매상에서 책방에 책을 제공한다고 한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선매입을 요구하는 우리나라 실정이 대비된다. 탄탄한 문화 인프라가 구축된 상황에서 책방이 지역 주민의 자긍심을 자극하는 건 당연하다.《우리, 독립책방》에 소개된 포항의 ‘달팽이 북스앤티’ 책방이 이런 경우이다. 최근 1~2년 사이 술집과 원룸만 있던 골목에 대학생들이 만든 커뮤니티 카페와 작은 카레집, 젊은 업주가 운영하는 술집 등 작은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책을 매개로 작은 가게들이 공존하는 관계가 된 셈이다. 책방은 동종업끼리 연결되어도 좋지만 다른 업종과도 공생이 가능하다. 책은 옷이나 음식, 주방가구와는 완전히 다른 문화 상품이자 타업종 사업에 경쟁이나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가장 작은 책방으로 알려진 오키나와에 있는 헌책방 ‘울랄라 ウララ’는 반찬가게와 옷가게 사이에 있다. 다다미 세 장 크기로 사람 세 명만 들어차면 꽉 찬다.《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우다 도모코 지음. 김민정 옮김. 효형출판. 2015.12 는 도쿄 대형서점 직원인 저자가 오키나와 지점으로 발령 나고 2년 가까이 일하다가 아예 헌책방 주인이 된 실화이다. 우리나라 동네 책방 규모보다 더 작은 헌책방을 열기까지 지역 주민에게 많은 조력을 받는 점이 인상 깊다. 본토에서 먼 섬이지만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이 없으면 책방을 지지하고 반길 수 없다.

 

전국 각지에서 헌책 경매 시장이 열리는 일본은 출판사까지 섬에 있다고 한다. 본토에서 멀기 때문에 배송료가 비싸고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는 운송에 악조건이다. 그래서 기획과 출판과 유통을 오키나와 자체에서 원스톱시스템 one stop system 을 갖춘 것이다. 독자와 가깝게 만나는 체계이다 보니 책을 읽는 사람이 많은 건 당연하다. 책을 읽는 사람이 많으면 책 구입 장소가 많이 생긴다. 그래서 오키나와에서는 떡집이나 우산 가게에서까지 책 주문을 받는다고 한다. “오키나와에서 책은 특별한 물건이 아니었다. 오키나와만의 특별한 풍토가 키운 하나의 특산물처럼 여겨졌다.” 지역 특성을 갖췄거나 관광객을 겨냥한 판매 전략도 동네 책방 운영에 귀담아 들을 부분이다.


▲ 오키나와 헌책방 ‘울랄라 ウララ


기억에 따르면 2000년대 초기부터 온라인 서점이 부흥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 즈음부터 온라인 서점을 이용했다. 어쩌다 지역 책방을 찾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온라인 서점에 책을 주문했다. 선택부터 결재와 배송까지 깔끔하게 간편했다. 게다가 온라인 서점에서 제공하는 할인과 적립금에 귀가 솔깃했다. 편리함에 길들여져 온라인 마일리지를 쌓는 동안 동네 책방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가끔 동네 책방이 그립다. 책방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야릇한 설렘, 뜻밖에 다른 책을 발견하는 기쁨, 책장을 살포시 넘기던 예민하고 단정한 손놀림, 옆 사람이 뒤적이는 책을 흘깃 넘겨보는 호기심, 무엇보다 고른 책을 품에 안고 오던 두근거림을 잊을 수 없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프랜차이즈가 골목상권까지 진출하면서 동네 작은 가게가 사라졌다. 세탁소, 복덕방, 동네슈퍼, 문구점, 반찬가게, 과일가게, 빵집, 등등 헤아릴 수 없다. 책방도 예외가 아니다.

 

20세기 초 파리 오데옹 거리에서 명성을 떨치던 책방들은 파리를 문화의 상징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실비아 비치가 문을 연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Shakespeare and Company’ 에는 소설가와 시인과 음악가가 모여 당대 문화를 토론했다. 독자들은 책방 언저리에 모여 풍성한 문화를 수혈 받았다. 제임스 조이스는 이곳에서《율리시스》를 출판했고 헤밍웨이는 파리에 머문 7년 동안 단골 고객이었다. 


우리에게는 20세기 초 파리에 버금가는 동네 책방이 많다. 한 지역에 동네 책방이 몇개인지를 보면 문화 수준과 사회 인식 상태가 가늠된다. 군부독재 시대에 피폐한 현실을 견디게 해 준 것도 골목마다 문을 열었던 동네 책방이었다. 그곳은 압제 피난처였으며 민주 기도처였다. 만남 장소이자 공유 결집체인 허브였고 사상과 문학을 재생산하는 출처였다. 경제성장만 외치면 무엇이든 다 해결될 것처럼 호도하는 구호에 세뇌 당하는 동안 정작 우리가 잊었거나 잃은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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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Loosdrechtse PIas 호숫가에 있는 한 칸짜리 집.


2011년 로테르담 건축회사 2by4 설계. 침실, 부엌, 화장실, 샤워시설과 창고까지 갖췄다. 호수 조망을 위해 양쪽 벽은 유리창을 달았고 한쪽벽은 날씨에 따라 개폐가 가능하도록 덧창을 달았다. (출처) 하이프비스트(Hypebeast) 2014년 11월 24일 소개





“1845년의 3월 말경, 나는 도끼 한 자루를 빌려들고 월든 호숫가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호수 가까이에 집 한 채를 지을 생각으로 곧게 뻗은 한창때의 백송나무들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월든》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콩코드주 호숫가 마을 ‘월든’에서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살았다. 소로우에게 집은 잠을 자거나 손님을 맞이하는 장소였다. 많은 시간을 밭에서 농사를 짓거나 산책을 하며 보냈다. 문 앞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기도 했다. 겨울밤에는 추워서 머리까지 담요를 뒤집어썼다. 여름에는 숲속에서 나는 온갖 새소리를 듣고 동물을 만났다. 오두막은 좁아서 손님이 한꺼번에 찾아오면 집둘레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오두막이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계문명 의존도가 높은 오늘날 소로우처럼 자연 재료로 지은 오두막에서 사는 사람은 흔치 않다. ‘오두막’이라는 말도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다. 집을 가리키는 호칭도 바뀌었다. 시골에서는 ‘농가주택’이나 ‘전원주택’으로 불리고 도시에서는 ‘아파트’가 집의 대명사가 되었다. 문화가 바뀌고 삶이 변하자 집도 달라졌다. 


주거의 변천사를 시대별로 꼼꼼하게 정리한《집-집의 공간과 풍경은 어떻게 달라져 왔을까》전남일 지음. 돌베개. 2015.12.31 에서 저자는 “집의 역사가 곧 우리의 삶의 모습을 말해준다”고 말한다. 결론부터 말해서 주거 공간 변화와 삶은 되먹임 관계로 상호 조응한다.

 

예전에는 집과 땅은 함께 세워졌다. 길지를 택해 집을 짓거나 샀다. 경제 여유가 없으면 움막이라도 지었다. 이런 경우에도 집터를 중요하게 여겼다. 집을 고를 때 땅을 살피는 것처럼 땅은 집의 기본 조건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공동체를 형성했던 근대 이전에는 땅이 마을이나 지역사회와 동의어였다고 한다. 


서양문명이 항구에 도착해 나팔을 불기 이전 한국의 집은 안방과 사랑방, 행랑채, 별당과 같은 다양한 이름을 붙였다. 양반집은 대문 안에 건물 여러 채를 거느린 복잡한 구조였고 양민은 좀 더 단순했다. 하층계급으로 갈수록 집은 더 작고 불리는 이름도 간단했다. 마침내 서양 사상과 문화가 유입되면서 일상이 달라지고 집도 변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서양과 일본 영향을 동시에 받은 일제강점기 무렵 집이 가장 크게 변했다고 한다. 대문과 마당을 그대로 유지했지만 대청부터 개조했다. 대청은 ‘큰 마루’라는 뜻을 가졌는데 집 규모에 따라 크기가 비례했다. 집이 큰집은 대청도 컸다. 집안일을 할 때 작업공간으로 사용했던 대청은 평소에는 방을 드나들 때 거치는 공간이었다. 책에 따르면 크기에 반해 역할이 크지 않던 대청은 유리문을 달면서 외부와 차단하는 공간으로 변한다. 한 개의 별도 공간이 된 대청은 집 주인의 사생활 공간이 된 것이다. 공동 작업 공간에서 좀더 내밀한 사적 영역이 된 것이다.

 

대청이 ‘마루’로 이름이 바뀐 건 훨씬 나중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마루’라는 이름은 1970년대부터 등장한 ‘거실’ 이전 사용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마루’는 ‘대청’과 ‘거실’ 사이에 탄생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대청은 난방이 안 되는 구조였으므로 따로 난로를 설치하는 집도 있었고 유리문에 커튼을 달기도 했다. 그러나 대청이 열린 공간 의미가 강한 반면 유리문을 달고 외부와 차단한 대청은 더 이상 대청이라고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애매하고 모호한 상태에 나온 이름이 ‘마루’ 아닐까.

 

“근대적 주거 공간이 도입되었어도 마루라는 용어는 바닥 재료 및 구조를 표현했고 그곳에서의 정해진 기능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오히려 마루의 다양한 기능을 암시한다. 즉, 마루라는 용어는 대청에서 거실로 변화하는 과도기에 다양한 기능의 혼돈을 적당히 표현하는데 적합한 명칭이었다. 그렇지만 실체적인 공간의 성격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바닥 재료를 나무로 쓴 대청처럼 마루도 나무가 대세였지만 간혹 시멘트나 벽돌로 마루를 만든 집도 있었다. 바닥에 카펫을 깔거나 돗자리를 깔아 맨바닥의 이질감을 극복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엎드려 숙제를 하거나 뒹굴던 마루에는 아직 소파가 놓이지 않은 널찍한 자리가 있는 마루였다.

 

책에 따르면 거실이라는 이름이 나온 시기는 1970년대 이후이다. 저자는 “마루가 오직 바닥의 특성만을 지칭한 것이라면, 거실이라는 용어는 장소성을 드러낸다.”고 한다. 대청이나 마루가 잠시 사용하는 기능을 부여받은 반면 거실은 이름에서도 기능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머무를 거, 앉을 거(居)’를 사용하는 거실(居室)은 이미 하나의 방이 된 것이다. 거실은 잠을 자는 일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휴식을 취하거나 가족 공동 공간이나 손님을 맞이하면서 교류 공간이 되었다. 


여자 전용 공간이었던 안방 가까이 거실이 등장한 배경에는 남자 전용 공간이었던 사랑방이 유명무실해지면서 부부가 안방을 공동 사용하게 된 데 있을 것이다. 남녀평등 사상이 집 구조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안방에 있던 부부가 손님을 쉽게 맞이할 수 있고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장소로 변한 대청은 당당히 ‘방(室)’으로 변모해 거실로 불렸다.

 

대청이 변한 과정에서 보듯 전통가옥은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극변한다.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을 허물고 벽돌과 시멘트와 유리와 철이 건축 재료가 된 것이다. 건축 재료가 변하고 구조가 변하게 된 기저에는 문화 변화가 크게 작용한다. 서양문화가 들어오면서 합리성을 기치로 삼아 주거변화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직업 변화까지 집 구조와 기능을 개조했다. 책에 따르면 봉건시대 남자 전용 공간이었던 사랑방은 직업 변화에 따라 도태된다. 거주지 반경 내에서 일을 하던 봉건시대와 달리 근대에 들어 거주지와 떨어진 곳으로 출퇴근하는 직업이 생긴 것이다. 하루 종일 집을 비운 남자는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가족의 위로를 기대했다.

 

이전까지 여자 전용 공간이었던 안방에 모여 아내와 자식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마침내 안방은 가족 구성원과 함께 누릴 보금자리 기능을 부여받는다. 이 책에서 재미있게 읽은 안방 풍경은 내가 경험한 1970년대를 추억할 수 있었다. 안방은 밤에는 부부가 잠을 자고 낮에는 손님을 맞이했다. 텔레비전을 보고 밥을 먹는 가족 공동 공간이 안방이었다. 안살림을 맡은 사람은 안방에 그럴듯한 가구를 들여 손님에게 과시했다. 안방 가구는 그 집안 경제력을 보여줬다.

 

1980년대 이후 안방은 부부침실로 바뀌고 손님을 맞이하거나 집안 행사는 거실에서 맡게 된다. 흥미로운 건 아직 거실이 등장하기 전에 ‘응접실’이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응접실은 손님 전용 공간으로 사랑방 구실을 했다. 대개 마루 옆에 곁방을 따로 마련해 만든 응접실에는 소파와 탁자를 놓았다. 그림이나 조각품으로 치장했다. 안방이 여자의 취향을 반영했다면 응접실은 남자의 취향을 적용한 공간이었다. 응접실 또한 밖에서 일을 처리하는 세태에 밀려 사라지고 집은 좀 더 개인 공간으로 변한다.

 

마침내 거실마저 가족 공동 공간 기능을 잃고 있다고 저자는 가리킨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구성원이 축소되고 개인 공간이 활성화된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컴퓨터를 비롯한 최신 설비를 손쉽게 갖춘 자기 방에서 혼자만의 취미나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저자는 이 현상을 가리켜 “공간의 위계질서가 사라지고 동등한 방들로 구성된 건축구조는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영역 구분이 더욱 견고해졌다.”고 한다. 말하자면 개인 공간이 안락해질수록 공동공간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 전통가옥에 유리문을 단 최순우 옛집


한국전쟁 이후 화장실과 부엌이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집은 더 깨끗하고 편리해졌다. 1970년대 이후 아파트 대량 보급은 더욱 많은 생활 편의를 제공했다. 박정희 정권은 토건산업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산업근대화라는 명분으로 땅과 집을 담보로 삼아 아파트를 지었고 건설사는 경제성장을 주도했다. 부동산이라는 용어가 확장되고 집이 재산증식의 기표가 된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철학이 부재한 경제 성장은 ‘성장 강박증’이라는 질병을 만들었다. 1970년대부터 시작한 부동산 열풍은 경제 지표와 굳건한 가치관으로 고착화했다. 재산증식을 보증할 금융상품이 대안으로 제 몫을 맡지 못한 상태에서 잉여의 돈은 부동산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부동산 파동에서 결국 자본이 우세한 자에 의해 집의 점유율이 독점되는 건 예견된 일이었을 것이다. “당신이 사는 집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는 광고처럼 집없는 서러움부터 부동산 재벌까지 적어도 한국에서 집은 보금자리를 넘은 부의 상징이자 신분의 증표가 된 것 같다.

 

“아파트에 살면서 나는 아파트가 하나의 거주 공간이 아니라 사고 양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중산층의 사고 양식이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술꾼에는 술을 마시면 취하는 버릇이 있듯이 여러 가지의 병이 있다. 그 가장 큰 병은 새로운 더 큰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어 하는 병이다. 사람들이란 혼자 있을 때는 제법 사람 같은 생각을 하다가도 여럿이 있을 때는 금새 달라진다. 남 앞에서는 가능하면 은밀하게……왜냐하면 아파트 주민들은 문화인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속성이다. 그래서 가장 우선하는 것은 같은 동네, 또는 같은 층에 사는 사람이 자기보다 우월한지 우월하지 않은지를 탐색하는 것이다.”-김현, 「알고 보니 아파트는 살 데가 아니더라」에서.

 

집은 사회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개인의 삶부터 사회현상과 부동산 정책, 문화와 같은 다양한 요소가 결합했다. 내 집 마련 자구책으로 땅콩주택, 타운하우스와 같은 경제성을 고려한 집을 짓는다. 전원주택, 농가주택이 농촌을 상징한다면 펜트하우스와 고시원은 사회 양극화를 증언한다. 마당 중심에서 거실 중심으로, 마을과 지역 단위에서 개인 공간 단위로, 보금자리에서 재화와 상품으로 집이 변하는 동안 삶도 변했다. 이 책은 우리가 살았고, 살고 있으며, 살게 될 집이 단순히 시멘트와 철과 화학재료 덩어리가 아님을 지멸있게 톺았다.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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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내리는 풍경 : ⓒ 강덕경[각주:1](1929~1997)



_저 뻑꾹 소리


봄 열어 가을 떨어질 때까지

저 뻑꾹 소리.


나 떠난 뒤 겨울 되면

저 뻑꾹 소리

어느 허공에 얼어붙으랴.

                         

                 -최승자. 시집《내 무덤, 푸르고》에서-





세종대 일문과에 재직 중인 박유하 교수가 쓴《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 2013.8.5 초판은 현재 절판되었고 2015년 6월 25일 펴낸 제2판이 판매중이다. 2013년 판본이 절판된 이유는 2015년 2월 17일 법원에서 삭제신청 가처분 판결이 났기 때문이다. 


가처분 판결 과정은 이렇다. 2014년 6월 16일 ‘나눔의 집’ 고문 변호사와 소장 등에 의해 위안부 피해자(이하 '위안부') 아홉 명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고소 내용은 위안부 명예훼손 형사고소와 2억 7천만 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이 합쳤다. 여기에《제국의 위안부》판매금지와 위안부 접근금지가 요청됐다. 서울동부법원 민사21부가 원고 측에서 수정 신청한 53곳 가운데 34곳을 수정하라고 판결했다. 그렇게 해서 초판은 판매 금지됐고 수정한 제2판이 나왔다.


법원 판결대로 서른 네 곳을 삭제한 두 번째 판본을 읽고 서평을 쓴다.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박 교수 논지에 많은 부분 동의하고 공감한다. 또한 몇몇 부분은 박 교수와 생각이 다르다. 이렇게 말하면 양비론이라는 비난을 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특정 대상을 논할 때 100퍼센트 좋거나 나쁘거나 그르거나 틀린 경우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물며 생각을 결집한 책이야 말해서 뭣하랴. 게다가 위안부와 같은 참혹한 역사를 다룰 때 어느 한쪽으로 치닫는 태도는 지양한다. 


위안부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려면 우리가 놓치거나 외면한 부분, 생각이 서로 다른 부분을 머리 맞대고 고심하는 상호 보완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배층의 탐욕과 무능함으로 나라를 잃고 제국의 압제에 동원되어 참담한 고통을 겪은 위안부에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미래 세대에게 우리가 무엇을 남겨줘야 하는지 좀더 많은 논의와 연구가 있기를 바란다.

 

*    *    *


▼ 강제성과 자발성

위안부를 다룬 책과 영화에서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모습을 쉽게 본다. 여기서 가리키는 강제성은 총을 멘 일본군이 싫다고 뿌리치거나 울부짖는 소녀를 납치하듯 끌고 가는 장면이다. 강제성이 입증받으려면 상명하복 군대 계율을 상기할 때 일본군이 조선 소녀를 끌고 가도 된다는 근거가 나와야 한다. 식민지 조선인을,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닌 20만여 명(이 숫자도 불분명하다) 을 데리고 갔다면 일본군에서 명령을 내린 문서가 발견되어야 한다. 또 하나, 문서 존재 여부와 별개로 냉정하게 말해서 ‘현장에서 일본군의 강제연행’ 증거가 증언 외에는 아직까지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강제연행을 부정하는 의견이 나오면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일본 극우 주장과 같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강제연행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박 교수는《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 증언을 제시하며 일본군에 의한 직접적인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한다. 혹시나 강제연행이 있었다면 위안부가 아닌 정신대 동원이었을 것이라고 밝힌다. 여기서 우리는 위안부와 정신대 차이를 혼동한다는 논지다. 위안부와 정신대 차이는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상세한 자료가 나오므로 생략하겠다. 강제성과 자발성 논쟁이 뜨거울 때마다 위안부 증언이 제시된다. 증언 가운데 공통점이 있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아버지가 가라고 해서”, “좋은 옷을 입을 수 있다고”와 같이 돈을 벌겠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위안부 증언집인《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한국정신대대책문제협의회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한국 위원회 증언팀 지음. 풀빛. 2001.8 에 따르면 의붓아버지가 포주에게 딸을 팔아넘긴 이야기가 나온다. 팔려간 딸은 다시 다른 포주에게 팔려 위안부가 되었다. 심지어 어머니가 돈 벌어 오라고 해서 갔거나 남편이 등을 떠밀어서 위안부가 된 이도 있다. 


여기서 보듯 계급을 확인한다. 정신대가 경제 여유와 일정 수준 교육받은 집 딸을 대상으로 동원한 것에 비해 위안부는 가난해서 교육을 받지 못한 집에서 돈을 버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이들은 어떻게 딸이나 아내를 위안부에 보내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까.

 

ⓒ 《제국의 위안부》발췌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1940년대 신문에 위안부 모집 광고가 실린 것을 볼 수 있다. 부모가 직접 광고를 봤거나 업자에게 권유받았을 것이다. 이런 추정이 가능한 이유는 위안부 증언 대부분이 부모 외에 면장, 이장, 동장, 동네 남자들, 또는 경찰과 함께 찾아온 업자가 말해줬다고 하기 때문이다. 과정이야 직접적 강제연행이 아니라고 해도 사기행위에서는 반론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런 모든 ‘유혹과 사기’는 “식민지 조선의 가난한 집 딸”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박 교수는 일본군에게 “구조적 강제성”을, 조선인 공모자에게 “현실적 강제성” 책임이 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박 교수가 “일본군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발언 배경에 조선인 업자와 포주가 있음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자발성인가? 정말 일본군은 위안부 모집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것일까? 박 교수는 신뢰할만한 일본군 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자발성에 무게를 두지만 1980년대 위안부 연구를 하던 일본인 교수가 발견한 문서에는 엄연히 일본군 위안부 모집 명령서가 있음이 밝혀졌다. 이 자료는 1992년 1월 11일 아사히 신문에 “위안소 군 개입 자료 발견”이라는 기사로 처음 실렸다. 군 수뇌부가 위안부 모집을 명령했고 국장들이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따라서 “군의 수요를 알게 된 업자들이 사기를 써서 모집했고 일본군이 묵인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단속했다.”고 한 박 교수 주장은 틀렸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묵인”과 “공식적 단속”은 모든 협작 배경이며 비공식 사건을 은폐하는 공식 절차이다. 따라서 ‘묵인’은 방조죄에 해당하는 범죄이다.


  

▲ 1938년 3월 4일 일본군 위안부 모집 명령서



▲ 1992년 1월 11일 아사히신문 위안소 부대에서 직접 지시 기사




▼조선인 협력자/공모자들


마음이 불편해도 조선인 협력자를 조금 더 들여다보자.《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에는 조선인 업자 또는 포주는 위안부 모집부터 성매매 행위까지 강제한 장본인으로 지목된다.

 

“문 앞에서 돈 받은 놈” 혹은 “우리 밥주구 옷 입히구 또 우리 데리구 거까지 간 놈”, 또 데려간 비용을 요구하며 “벌어 갚으라”고 했고 “도망-폭력-감금”했다. “항의에도 폭력을 행사”했다.” 박 교수는 “손목을 나꿔채며 가자고 했다.”는 조선인 업자를 가리켜 “강제로 끌어간” 주체가 다름 아닌 우리 안에도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한다.

 

《제국의 위안부》에 따르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또는 일본을 가리지 않고 조선인 포주(또는 일본인 포주)가 군대 이동을 따라 함께 따라다녔다고 한다. 군인에게 받은 화대는 포주가 관리했다. 해방이 되고 조국으로 돌아오면서 위안부들이 수중에 돈이 없었던 건 포주가 갈취했기 때문이다. 위안소에 있을 때 조선인 포주는 위안부에게 매질을 하거나 폭언을 했다고 한다. 말을 안 들으면 쇠꼬챙이로 때리거나 낙태를 시키는 일도 포주가 맡았다.

 

오죽하면 “일본군보다 조선인 포주가 더 죽이도록 미웠다.”고까지 증언한다. 타국에서 처절한 삶을 견디는 위안부가 같은 조선인에게 받은 학대는 그 절망감이 더 참담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이나 지원 관계자들은 조선인 공모자를 조명하지 않는다. 치부를 감추고 싶은 심정이야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런데 증언이 널리 퍼진 상황에 왜, 누가, 무엇 때문에 불편한 진실을 묻으려는 것일까. 


▼“동지적 관계”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 저널리스트 센다가코(千田夏光)가 쓴《목소리 없는 여성 8만 명의 고발, 종군위안부(声なき女”八万人の告発)》를 기저로 삼았다. 센다가코는 1970년대 한국을 방문해 위안부 증언을 직접 채록했고 위안부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40여 년 전 아직 사십대에 있었던 위안부들은 그동안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살다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에게 처음으로 증언했다. 이들의 증언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같거나 처음 듣는 이야기가 섞였다. 한마디로 지옥에서 절규했던 위안부 이미지를 흔든다.

 

박 교수는 “민간인 위안소에서 일했다.”는 위안부 증언에 따라 사창이 있었다고 정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판자벽을 사이에 두고 작은 침대 한 개와 모포 한 장이 있던 위안소가 아니다. 민간에 있던 사창 풍경은 이렇다. 여자들은 손님이 오면 한명씩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술을 마시고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고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손님은 장교나 병사는 물론 민간인까지 받았다. 여자들은 조선인, 일본인, 중국인이 섞였는데 이들은 포주 관리를 받았다. 박 교수는 사창에서 일했던 여자들을 위안부로 보지 않는다. “다른 상황에 처해 있던 여성들을 똑같이 ‘위안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위안부 논쟁에서 가장 예민하게 거론되는 이야기가 “매춘”이다. 증언에서 보는 것처럼 사창의 존재는 위안부 정체성을 혼동시킨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일본군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처참한 모습에서 벗어난 것 같기 때문이다. 전쟁은 어느 특정 세력이 사익이나 권력독점을 전횡하는 수단으로 일어난다. 두 말할 필요 없이 군인은 살상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다. 국가에 강제 동원되어 죽임을 당한다는 점에서 피해자이다. 개인 원한 없이 불특정 다수를 죽여야 하는 가해자이다. 물론 모든 책임은 전쟁을 일으킨 국가에 있다. 그러나 전쟁 수행 과정에서 살상과 폭력행위가 정당하게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살상과 폭력은 반인륜적이며 비도덕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애 감정을 느꼈다.”고 한 위안부가 있다고 해서 위안부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부대가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적군에게 쫓길 때 돈과 식량을 주고 숨어 있으라고 한 일본군이나 해방이 가까워오자 차비를 주면서 고향으로 돌려보낸 일본군은 아직 인간에 대한 예의가 남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박 교수는 일본군과 위안부 관계를 너무 디테일한 조각에 할애한다. 본인이 “총체적으로 위안부 증언을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해놓고 말이다. 위안부 본질은 ‘일본 제국주의가 강제한 식민지 여성 성폭력’이다. 사창에 소속되었거나 견딜만한 대우를 받았다고 해도 성착취임을 부정할 수 없다.

 

박 교수가 이 책에서 거듭 제시하는 “위안부를 위하는 군인” 사례는 성착취 대상인 위안부에 대한 연민은 아니었을까? “대리고향이자 가족”이며 “같은 일본인(식민지 조선인 국적은 일본이었으므로 조선인 위안부 국적은 일본이다)으로 죽음의 공포에 함께 직면하고 조국을 위해 일하는 동지적 관계”라는 박 교수의 자의적 판단은 사실 관계를 흐려놓을 우려가 있다.

 

평소에는 성을 제공하고 전투 후에는 간호부 역할을 하며 피묻은 전투복을 빨아주고 옷을 꿰매주는 관계는 ‘동지’ 관계였다기보다 어디까지나 일본 제국주의 병사와 식민지 조선 여성의 수직관계이다. 일본군 입장에서(위안부 입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이 관계가 동지 관계로 성립하려면 위안부에게 성을 제공하는 요청을 중지해야 하고 다른 노동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위안부가 심신미약 상태에서 고통을 호소할 때 일본군은 안전하고 깨끗한 의료처방을 위안부에게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포주의 착취와 폭력으로부터 위안부를 보호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내거나 “조센삐”, “공중변소”라는 멸시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동지는 평등한 조건에서 차별 없이 권리를 누리고 수평적 정서를 교류할 때 성립된다. 조선인 위안부를 대하는 일본군 태도는 “차별감정” 뿐만 아니라 전쟁터에서 부족한 간호부 대체까지 행사했다는 점에서 철저한 노동착취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조선인 위안부들의 다면성이 있었음을 직시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아픈 위안부에게 약을 타다 주거나 관계를 갖는 대신 좋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심리적 안정을 도와준 일본군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선물을 사다 주고 고향 이야기를 하면서 전쟁터에서 서로 의지한 증언도 소중하다. 조선인은 무조건 피해자이며 일본군은 불천지 원수와 같은 대립각만으로는 다양한 위안부 실체 파악이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위안부 개인이 겪은 기억이 획일화로 뭉뚱그려져 존중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박 교수가 말한 ‘동지적 관계’로 일본군을 기억하는 위안부가 있더라도 위안부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개인의 경험은 각자 소중하고 위안부 기록에 반영되어야 하지만 인간존엄성이 참혹하게 짓밟혔다. 따라서 숨기고 싶은 처절한 고통을 스스로 위로하고자 하는 어떤 심리가 작동한 것이 아닌 한 ‘동지적 관계’가 가능한지 의문이다. 지옥에서 견디기 위한, 살아내기 위한 실낱같은 자위 감정은 아니었을까? 만에 하나 박 교수 말처럼 ‘동지적 관계’로 인식하고 아무 의심 없이 일본군의 배려에 감동한 위안부가 있었다면 대체 위안부 인권의식 수준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사죄와 보상

무라야마 정권은 1995년 ‘아시아 여성기금’을 조성했다. 국가보상으로 조성하려고 했지만 사회당 출신 각료 반대에 부딪쳤다. 논란과 논쟁을 거쳐 1995년 7월 ‘츠구나이(償い·위로)[각주:2] 사업’을 실시했다. 겉으로는 민간기금처럼 보였지만 국가에서 지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면하기 위해 민간기금처럼 발표했다. 52억 엔 가운데 46억 엔이 일본 정부가 지출했다고 한다.

 

1965년 한일협정 때 위안부 보상금 지급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못한 건 한국 정부 불찰이다. 미국 압력에 의해 서둘러 맺은 한일협정은 식민지배 피해 보상금을 포항제철 설립 비용에 사용했음이 뒤에 밝혀졌다. 위안부 피해 파악조차 못했던 한국정부는 보상방식이 아닌 경제협력 형태로 수령을 한 셈이다. 게다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합의했다. 일본이 위안부 보상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1965년 한일협정을 들먹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더라도 일본은 적잖은 보상금을 그동안 위안부에게 지원했다. 한국 정부도 1970년대 위안부 실태 조사를 시작하면서 지원했다. 지금도 일본 민간단체에서 지원금이 지급된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이 청구할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바람에 일본 법정에서 위안부가 패소한다. 보상 문제와 함께 사죄 또한 같은 맥락에서 다뤄져야 한다. 보상과 사죄는 개인과 일본 정부를 구분하여 책임 문제(법적 책임은 아쉽지만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가 따른다. 


▲ 1970년 12월 7일 바르샤바 위령탑 앞에서 무릎 꿇은 빌리 브란트 총리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떠올린다. 진정성과 빌리 브란트.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 앞에 당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는 무릎을 꿇고 짧은 기도를 했다. 제2차 대전 당시 나치가 저지른 학살에 독일 정부를 대신해 잘못을 속죄한 것이다. 용서는 참회가 전제되어야 한다. 일본 정부에서 “유감”이나 “심심한 사과”를 아무리 언급해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는 건 진심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노 담화와 아시아 여성기금 수령자에게 보낸 일본 총리 사죄 편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박 교수 생각과 다르게 나는 고노 담화문을 일본 정부 사죄로 보지 않는다. 국정 최고 결정권자이자 책임자는 총리다. 총리가 아닌 장관 수준에서 발표한 사죄는 식민지배 문제를 축소하고 서둘러 매듭지으려는 태도이다. 마찬가지로 아시아 여성기금을 수령한 한국인 위안부에게 총리가 보낸 편지에서 언급한 사죄는 기금 수령자에 한정된 사죄였다. 


2015년 8월 27일 하토야마 전 총리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추모비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전 총리의 사죄는 일본 정부를 대표할 수 없다. 총체적 참극을 일으킨 장본인이 일본 제국이었음을 상기하면 일본 정부를 대표하는 현 총리 정면 사과만이 위안부와 한국인에게 인정받을 것이다. 아무 조건 없이, 정치 공학 계산 없는 태도 말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그것이 아닌가.

 

“‘조선인 위안부’ 문제가 ‘위안부’라는 존재를 통해 드러난 ‘식민지배’ 문제임을 말하고,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에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가 포함되지 않았기에 그런 한일협정을 보완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한일기본조약 자체를 흔드는 어려운 사태를 감수하지 않고도 한국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그때는,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지배하는 기간에 희생당했던 수많은 사람들-3•1 독립만세운동, 간토 대지진, 병사로 동원되어 참가한 전쟁, 고문 등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진심을 그 ‘사죄’ 속에 담아야 한다.”-《제국의 위안부》

 

*    *    *


나 역시 일본제국주의를 대할 때마다 민족감정이 작동한다. 그것은 내가 일본 식민지였던 한국에서 태어나 식민지 폐해를 교육받고 자란 피해자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를 비판하거나 비난할 때는 가치 판단 이전에 사실 관계 확인이 필요하다. 누군가 옳다고 주장한 게 사실이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밝혀진 사실이 진실일 경우 말 그대로 ‘불편한 진실’이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 서평에서 박 교수 논지를 반박했지만 “실은 그 옛날의 ‘강제로 끌려간 소녀’도 지금의 투사도 ‘위안부’의 전부는 아니다. ‘위안부’의 그 모든 모습을 보지 않고는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는 박 교수 의견은 지지한다. 그것은 우리가 몰랐거나 의도적으로 은폐했던 자화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나 대통령조차 위안부를 위로하고 이 문제에 관해 일본과 대화를 적극 시도한 일이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10월 8일 방일 기간 중 가진 NHK TV 기자회견[각주:3]에서 과거사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말했다. 피해자와 일별없는 대통령의 일방적 결정이었다. 심지어 지원 관계자들끼리 정치 이해관계로 득실을 따지며 권력투쟁을 한다. ‘역사의 고통’을 계산하며 이익을 취하려 한 것은 없는지 지금이라도 자문해야 한다. 나아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울 삼아 우리가 저지른 베트남전이나 미군 기지촌과 같은 만행 앞에서 속죄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한 시대와 특정국가 문제가 아니다. 민족을 넘은 식민제국의 문제이며 돈이 관여한 자본주의 문제이자 인간존엄성을 말살했다는 점에서 인류의 자기극복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문서 자료를 첨부하느라 글을 수정했습니다.(3월 2일)








  1.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관련도서로 <그림 속으로 들어간 소녀>가 있다. [본문으로]
  2. “기금이 쓴 ‘쓰구나이償い’라는 말은 ‘보상補償’이라는 말과 구별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영어로는 補償은 compensation, 償い는 atonement 라고 번역되었습니다. atonement 라는 말은, 종교적인 단어로 속죄, 죄를 씻는다는 의미를 갖는 영어입니다. the 를 붙여 대문자로 the Atonement 라고 쓰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의미합니다. 이에 따라 기금 사업은 사죄에 근거한 행위라는 것을 전하려 했던 겁니다. 영어로 설명을 들은 필리핀과 네덜란드가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 다른 곳보다 더 이해해준 것은 이 부분과 관련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국어로는 補償도 償い도 다르게 번역할 수 없어서 똑같이 ‘보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와다 하루키 [본문으로]
  3. 1998년 10월 8일 일본을 방문 기간중에 김대중 대통령은 무라야마 내각이 추진한 '아시아 여성기금'을 지지하며 기자 회견과 오오사카 교포 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 정부로서는 다시금 양국의 과거의 역사에 대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 국민은 언론의 자유가 있지만, 정부, 여당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 해 나가고자 한다"라고 언급했다.22) 그리고 같은 날의 NHK TV와의 좌담회에서는 "역사인식의 문제가 일단락 됐다고 보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일단 그렇게 됐다고 생각한다. 한국 국민과 저는 이 문제가 더 이상 재론되지 않고 21세기를 향해 의논하자는 방향으로 가자는 생각이다"라고 답변했으며,23) 10월 9일 오오사카에서의 동포와의 간담회에서는 "일본은 과거를 직시하고, 잘못된 것을 사죄"하였으며, "일본측의 완전한 사죄를 받아내었"으므로, "이제 한·일관계는 20세기에 시작했던 불행을 이번 공동성명과 더불어 20세기말로서 끝맺고 21세기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출처 : 동아일보. 1998년 10월 10일자 기사. [본문으로]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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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3.01 2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형사처벌은 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고있고 제국의 위안부 책이 일본혐한우익파에 봉사하는 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2. 박민인 2016.03.02 0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 월간지에 일본어로 먼저 연재 되고, 한국에서 단행본이 출판된 뒤,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된 고도의 기획서입니다. 이 책이 우리 사회에 기여한 것이 한줌이라면 일존 우익에게는 천군만마였습니다. 당장 유튜브에 박유하를 검색해 보세요. 그들이 우리 우리 사회의 일부에서 옹호하는 박유하를 어떻게 철저히 이용하는 지를. 그리고 우리 사회는 학문의 자유와 피해자 인격 모독이라는 격론을 벌이고, 우읻화 되고 있는 일본은 이를 또 철저히 이용하고, 박유하는 피해자인척 하고 있습니다. 일본 우익이 얼마나 한심한 나라로 보겠습니까. 그러면서 진정한 사과를 요구 하다니요.

    • 윤미화 2016.03.02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에서 먼저 출간되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논란 부분을 어떻게 사실관계 확인을 입증하는가가 관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3. 딸기21 2016.03.11 17: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언니의 글은!
    잘 읽었습니다!

  4. 보수공사 2017.01.25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안부문제를 지배국인 일본이 피지배국인 한국에 행한 범죄냐,
    남성이 여성에게 가한 범죄냐의 문제로 보느냐에 대한 위안부의 인식하는 차이인 듯합니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전쟁에 희생된 위안부 문제를

    미아리 텍사스의 매춘사업과 동일선상에 놓고 '남성이 성을 요구하니 매춘한다'는 남성원죄설과같은 생각은 논리의 비약이라 봅니다.

    최근 국회에 전시된 '더러운 잠'의 문제에 대해서도 작자는 단지 '박근혜를 풍자한 것'을 여성의원 혹은ㄴ 여성들이 '여성 비하'라는식으로 본말을 흐리는 것이 아타깝군요

  5. 역시.. 2017.03.15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남자들이 주범입니다. 지금도 한국여성 성매매에 있어선 항상 그포주가 대부분 한국남성이구요. 여성도 있지만 남성이 대부분이며,,,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른나라 남자들은 목숨걸고 싸워서 자국여성 지키는데..한국남자들은 여자들을 성노예로 갖다 바치면서 지들목숨 부지하는데 이용하네요...일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그랬습니다. 청나라 화냥녀들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구요..
    어딜가나 여성들의 성을 착취하는 한국남자들이 있네요.
    미국의 한국성매매여성들이나 일본의 한국성매매여성들도 그포주는 한국남성들이라고 하네요..
    한국여자들은...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한국남자들은 지구상에 존재해선 안되는 종자들입니다.

  6. 이상부 2018.12.30 2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해 전 관심사 입니다. 논리적으로 잘 이해를 돕는 글 입니다. 작문의 글 정독 하며,개인 저 나름으로 정리를 하지면 필자의 생각과 일부를 공유합니다. 여기엔 역사의 단절과 지배주 의는 결국 우리민족의 아둔함이 만든 것이라 생각 합니다. 이는 우리 5천년 역사의 천민자본의 악 순환과 태생적 민족주의 또는 패배주의 이는 분단의 역사를 보아도 기득권지들은 천민자본을 자신들 뜻 대로 법을 만들어 민중을 마치 자신들 사육 정도로만 새각 하죠, 이것이 지금 과거 우리의 허물은 안중에도 없고 역사의식을 패배주의로 부터 자신들 정치적 이익만을 고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독도문재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 왜 일본은 독도가 한국땅 이란걸 일본의 지식인 그리고 앙심이 선 이들은 달 알고 있습니다. 필자께서, 피력 했듯 , 우리의 노비근성 그리고 패배주의 , 또는 천민지본 그 악순환을 끊지 못 한다면 치옥의, 역사는 또다른 형식이 자본이란 이름으로 이 땅을 지배 할 것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아버지,내 인 생의 버팀목 저자
    이상부 배
    010 4678 9982 이사람은 서울 삽니다
    필자의 역사의식이 눈치를 보지 않고
    글을 양심껏 쓰는 것 같아 이시대
    필자와 같은 지식인들이 많았으면합니다.

    탁주 한잔,나누고 싶은
    필자의 글을 추천 합니다
    고맙습니다.



▲ 1971년 1월 1일 경향신문 6면 사회면 기사 ‘새紀元(기원) 여는 滿員(만원) 서울’


“이 靑寫眞(청사진)은 滿員(만원) 서울이 뻗어 나갈 길을 漢江(한강) 이남 지역으로 잡고 이곳을 副都心(부도심)으로 흡수, 개발하면서 서울은 몇 개의 衛星(위성)도시를 거느린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으로 永續(영속)토로 하는 것을 大前提(대전제)로 하고 있다.”




지방주민이 서울을 대하는 생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서울을 동경하거나 서울에 불만이거나. 서울을 동경하는 사람은 서울을 욕망했고 불만인 사람은 지방 열등감을 은연중 비추며 서울 수준을 희망했다. 말이 달랐을 뿐 ‘서울 욕망’을 공통분모로 가졌다.


서울은 어떤 곳인가. 서울은 무엇으로 움직이는 곳인가. 한국 지역 구도는 영남과 호남이 아니라 서울로 상징되는 중앙정부와 지방으로 나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구태의연한 구도같지만 서울과 서울이 아닌 곳으로 갈리는 게 국가 정책이며 정서이다. 중앙정부 정책과 인식을 보자면 지방은 그곳이 전라도든 경상도든 제주도든 강원도든 충청도든 통째 묶어서 지방일 뿐이며 서울은 ‘특별한’ 지정학적 장소, 즉 중앙통제기구인 것 같다. 


꾸준히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저술을 해 온 강준만 교수는《지방 식민지 독립선언》(개마고원. 2015.9)에서 “서울-지방간 발생하는 사회문화적 현상은 과거 일제 강점기의 동경-경성간 관계와 너무도 비슷해 깜짝 놀랄 정도”라고 한다. 이 말은 동경 식민지였던 경성을 대입해 지방은 서울 식민지라는 뜻이다.《지방은 식민지다!》(개마고원. 2008.10)에서 인용한 윤택림 한국구술사연구소장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강 교수가 정한 ‘동경-경성, 서울-지방’의 관계를 명확하게 적시한다.


“탈식민시대에 식민주의란 단순히 정치적, 경제적인 종속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며, 영토적 경계에 기초한 것도 아니다. 식민주의는 모든 국가 내부에서도 계층, 민족, 종족, 성, 지역적 차별로 인해 계속해서 만들어져 왔고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즉 이제 식민주의는 정치적, 경제적 지배와 종속뿐만 아니라, 문화적 지배와 종속으로까지 그 의미가 확대된 것이다.”


《지방은 식민지다!》를 조금 더 보자. 강 교수는 지방은 서울 식민지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여러 통계와 자료를 제시했다. 그 가운데 남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마누엘 카스텔(Manuel Castella)’이라는 용어를 든다. 이 말은 ‘종속적 도시화’라는 뜻으로 남미 도시는 남미의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잉여가치를 착취하면서 성장했고 유지된다는 이론이다. 말하자면 큰 도시는 위성도시와 지방으로부터 제공받은 생산물로 지탱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해서 파생된 이론이 ‘내부 식민지(internal colony)’이다. 강 교수는 ‘내부 식민지’는 레닌이나 그람시에서부터 나온 개념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럽과 남미를 거쳐 많은 개도국에 적용된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 상황이 남미와 정확히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서울 중심 정책과 정서를 떠올리면 ‘내부 식민지’라는 논리에 수긍이 간다. ‘지역 불균형 해소’나 ‘국토 균등 발전’이라는 구호를 심심찮게 공염불로 들어 온 입장에서 서울과 지방은 결코 평등하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정책이 입안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행 대상에서 배제된다는 뜻이다. 서울이 한국의 수도이기 때문에 ‘우선’되어야 한다는 뻔한 논리를 들이대기 전에 서울 집중 현상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교육에서부터 서울중심은 역사가 깊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오랜 속담을 지키려는 듯 자녀를 서울로 유학 보내는 풍토병은 고질병이다. ‘in 서울’ 대입 전략은 지방대를 ‘지잡대’로 격하시키는데 기여했다. ‘지잡대’에서 ‘잡(雜)’은 ‘섞이고 장황하고 번거롭다’는 뜻을 가졌다. 뜻 그대로 ‘잡스럽다’. ‘잡스럽다’는 진골, 성골처럼 일품을 상징하는 귀족의 심플한 이미지가 아니라 이것저것 뒤죽박죽 섞여서 이렇다 할 상징과 체계가 없음을 비유한다. 싸구려 물건일수록 요란한 색과 모양을 띄고 가짜 약일수록 오만가지 효험을 광고한다. 그러니까 ‘잡’은 ‘하찮은’ 것이다. 그 많은 말을 제치고 ‘지방대’가 ‘지잡대’로 불린 연유는 지방 차별 의식 결과물인 셈이다.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에서 강 교수는 대학 입시만으로 서울 인재 독식이 끝난 것이 아니라고 한다. ‘편입 대이동’이 지방대 학생을 서울로 끌어 올린다는 것이다. 입시에서 ‘in 서울’에 실패한 지방대생은 해마다 20만 명에서 30만 명이 ‘in 서울’ 편입시험에 응시한다고 한다. 합격자는 새 학기가 되면 수도권 대학으로 떠난다. 텅 빈 지방대는 정원감축 대상의 좋은 빌미가 된다. 2014년 10월 1일자 경향신문은 <4년제 대학 입학정원 내년 1차 감축 지방대 96% 수도권대는 4%에 그쳐>라는 기사를 냈다. 이 기사에 따르면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경쟁력이 떨어져 지방대 정원 감축이 불가피하다. 대신 창의적 지역 인재 육성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장관이 언급한 방안이 정확하게 발표되지 않았으나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초기 핵심국정과제에서 ‘지방대 살리기’를 외쳤다. 물론 현실은 립서비스였다.


한국에서 대학 간판은 취업 보장용으로, 신분 증명서로, 선거용으로, 정치 구호로, 정책 립서비스로, 개천에서 용만들고 싶은 부모의 숙원사업과 같이 온갖 형태로 발화된다. 그 정점에 SKY가 있다. 강 교수는 지방대 살리기에서 SKY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가정을 언급한다. 서울대는 전남으로, 연고대는 강원으로 이전한다면 연고대라는 말도 사라지고 서울대 파워도 약해진다는 주장이다. 입시에서 ‘in 서울’은 이제 갓 스무 살이 되는 세대에게 사회에서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는 기회다. 지방대 출신이 대기업이나 공기업 취업에서 밀리고 심지어 결혼조건에서조차 차별받는 현실을 볼 때 그렇다. 나아가 SKY 출신이 장악한 공기업 임원과 정부 인사, 사회 지배층 학맥을 볼 때 ‘SKY 면허증’은 아주 유용한 보험이다.


“SKY 간판 가치는 평생 간다. 즉, 10대 후반에 한 번 치른 경쟁의 결과가 평생 간다는 뜻이다. 이후에 경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초기 경쟁의 효과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SKY의 간판 가치는 일종의 ‘지대(地代) 추구’효과다. 지대추구는 사적 영역의 집단들이 생산적 활동을 통해 수익을 얻기보다 국가 부문의 자원과 영향력에 접근하여 수익을 얻고자 하는 비생산적인 행위를 의미하지만, SKY의 간판가치가 생산적 활동의 가치를 압도한다는 점에서 그 본질은 같다.”


어디 교육뿐만 그런가. 연고주의는 한국의 오랜 병통이다. 권력자의 연고주의에 기인한 인사. 언론 중앙 집중, 서울 중심 기업, 국가 행사 서울 개최와 같은 서울 편집증 증세는 지방민에게조차 서울 연고 풍토를 주입했다. 향우회, 동창회, 종친회와 같은 사적 성격이 짙은 모임까지 서울에서 갖는다. 태생은 지방이지만 서울에서 만나면서 사회적 성공을 확인하고 결속하는 것이다. 서울은 곧 성공을 상징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서울만 가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서울에 가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 좋은 건 서울에 많고 많은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사소하지만 결코 소홀할 수 없는 몇 가지 예를 인용하면 이렇다. 지방 소방관들이 면장갑이나 고무장갑 끼고 불을 끌 때 중앙정부는 지원 대신 입으로만 안전을 말한다고 강 교수는 지적한다. 어디 소방지원 뿐인가. 지방 지원을 떠들고 정작 재정 지원은 외면하는 두 얼굴을 하는 것도 중앙정부다. 2015년 7월 29일자 경향신문에서 보도한 <국세 14% 깎을 때 지방은 23%나 감면……지방 재정 골병>은 서울시가 포함되었는지 여부가 확인이 안 된다. 지방세를 지자체와 협의 없이 감면했다고 하는 기사에 따르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소통이 없었음은 분명하다. 강 교수는 지방 재정에서 서울시 해당 여부는 언급없이 지방 분권 사기극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면 ‘중앙정부-지자체’ 도식을 그려야 한다. ‘지자체 서울’은 ‘중앙정부 서울’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이 중앙정부는 아님에도 중앙정부는 서울로 인식되어졌음은 사실이다. 지방 공무원이 정부종합청사로 출장을 갈 때 중앙정부로 출장을 간다고 하는 대신 서울로 출장을 간다고 하는 말을 상기하자. 따라서 이 글에서 언설하는 ‘서울’은 지정학적 장소이자 중앙정부를 동시에 가리킨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가 이탈리아 속담이라면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가 한국 속담이다. 미래의 근간으로 추대하는 교육부터 문화, 의료, 산업까지 중앙정부가 우선 선택권을 쥐고 있다. 심지어 지방에서 생산한 농산물과 수산물, 임산물을 서울에서 선점한다. 대형 유통 기업이 탄탄한 자금력을 동원해 계약한 생산물은 신속하고 신선하게 서울로 제공된다. 경험에 의하면 양질의 지방 생산물을 서울 대형마트에서 지방보다 저렴한 값에 살 수 있다. 산지가 더 비싸고 볼품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서울이 이처럼 소비를 주도하게 된 건 편리해진 교통이 한몫했다고 한다.


“KTX를 서울 사람만 타는 것이 아니라 지방주민도 타고 오히려 문화와 소비상권의 격차가 너무 큰 현실 때문에 지방의 여유 있는 소비계층이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서울로 자주 와서 다양한 문화서비스를 받고 고급소비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방상권이 겪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수도권 인구를 지방으로 자주 내려가서 관광하고 교류하게 만들 취지였던 고속철도 반응은 외려 지방주민이 서울로 돈을 쓰러 더 많이 간다고 한다. 이러니 중앙정부 지방청사에 발령을 낸다고 해서 지방에 굳이 집을 살 이유가 없다. 지방에 가족을 데리고 가면 자녀 교육에서 밀리는데다 편리한 교통수단이 있는데 서울을 떠날 명분이 없는 것이다. 수도권 주민이 수도권을 안 떠나고 지방 주민이 서울로 쇼핑하고 관광하러 가는 바람에 지방이 더 쇠락하는 건 자명한 일이다. 이렇게 수도권이 지방의 주머니까지 터는 ‘빨대효과’까지 가세했으니 지방주민은 경각심을 가져야 하건만 실제 체감은 정반대이다.


그래서 강 교수는 지방이 바뀌지 않으면 지방은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지방정부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중앙정부 폐단 못지않게 서울만 바라보는 지방 병폐를 들춘다. 인재를 서울로 보내면서 지방에 인재가 없다고 한탄하는 모순, 황폐화되어가는 고향을 두고 서울에서 성공을 자축하는 향우회 인사들, ‘공무원 신문’으로 전락해 관보 같은 지방 언론, 개발만이 지방 살리기 구원투수인 것처럼 고향땅을 훼손해 아파트를 짓는 토건 세력, 중앙정부에 줄 대려고 비리와 거래하는 토호까지 지방주민은 중앙정부가 선진국을 따라잡고 싶어 하듯 고유성을 버리고 서울을 따라잡고 싶어 한다. 서울욕망이 곧 선진국 욕망이기라도 한 것일까.


책 앞부분에서 인용한 것처럼 ‘서울 편집증’은 정약용 유언에까지 등장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 가지 말고 버티라. 멀리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가려지며 사회적으로 제기하기 어렵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오래된 속담은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과정과 방법을 무시한 반정이지만 서울은 우월하고 지방은 열등하다는 편파 판정을 낳았다. 따라서 내부 식민지를 양산하는 나라에서 내부난민이 나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주류에 포함되지 못하거나 잉여생산물을 공평하게 소비하지 못하는 소외된 계층은 지역 구분 없이 내부난민이 된다. 내부난민이란 비정규직, 생활보호대상자, 노동자, 최저 소득자 등 법에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계층이다. 그래서 강 교수가 설파한 “지방 식민지 독립 투쟁은 나라를 위한 것이다.”는 말은 뼈아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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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헌법 국민투표(1972년 11월 21일) 투표장에 나온 박정희 일가 ⓒ 경향신문

1972년 10월 17일 유신이 발표되고 11월 21일 투표율 91.9퍼센트, 찬성률 91.5퍼센트로 유신헌법안이 확정되었다.

유신헌법 투표는 갓 스무살이 된 박근혜의 첫번째 투표권 행사였다.





2015년 11월 13일 파리에서 폭탄과 총기 테러가 있었다. 이슬람 무장조직 ‘다에시 Daesh’[각주:1] 소행으로 알려진 이 테러로 132명이 죽고 많은 사람이 다쳤다. ‘피의 금요일’ 다음날인 11월 14일 광화문 광장에서 10만여 명이 운집한 시위가 있었다. 시위대는 경찰차벽을 뚫고 청와대 진출을 시도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캡사이신을 섞은 살수차 몇 대를 동원해 시위대를 향해 직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위대와 경찰이 몸싸움을 하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언론과 여론은 ‘폭력시위’와 ‘과잉진압’ 언어선택에서 갈렸고 SNS에서는 파리 희생자를 추모하는 프랑스 삼색기 색을 프로필 사진에 합성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가 꽤 많은 사람이 추모 프로필 단장에 동참한 걸 봤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와 14일 광화문 시위와 관련해서 입을 다문 사람들이 프랑스 삼색기 합성 프로필을 유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런 말하면 ‘이타심 없는 국수주의자’로 욕먹을지 모르지만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파리 테러는 추모하면서 왜 세월호 참사 추모 노란 리본은 달지 않은 것일까? 물론 리본 달기 동참이 추모의 념을 대변하는 정석은 아니다. 그렇다면 자국 참사에 침묵한 사람이 외국 참사에 슬픔을 동감하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것일까? 있다면 무엇 때문인가?


꼭 세월호 참사만 예로 들 필요는 없다. 14일 광화문 광장에서 10만명 시위대가 집결한 이유에 관심이 있는가? 이 물음은 ‘폭력시위’와 ‘과잉진압’ 논쟁에 묻혀 사라진 본질이다. 무고한 시민이 참사를 당한 파리 테러에 분노하고 희생자를 애도하면서 코앞에서 벌어진 10만 명 시위 이유와 시위에서 발생한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이유가 없다. 분노하고 저항하며 애도하는 행위는 물리적 거리와 국가와 인종과 성에 얽매이지 않는 ‘공평한 이타심’이자 ‘존엄성 회복’을 염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상황을 보면서 당면한 현재는 물론 과거 역사를 제대로 모르고, 알려하지 않는 ‘부실한 인식’과 ‘선으로 포장한 무지’와 ‘의도적 악의’가 우리를 잿빛 안개처럼 휘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지난 시대 그렇게 교육 받았고, 학습 당했으며, 진실 앞에 침묵을 강요받은 결과이다. 게다가 정치 혼란 앞에서 먹고사니즘에 치이느라 왜곡을 바로 잡고 반성할 결정권조차 잃은 게 아닌가 싶다. 


꼼꼼한 자료를 인용해 근·현대사를 톺은《대한민국은 왜?》김동춘 지음. 사계절. 2015년 10월 추천사에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대한민국 70년의 참회록이다”. “참회록”이라는 한마디에 ‘과거사 정산’이 떠오른 건 참회록 밑바탕이어야 하고 줄기에 스며든 피와 같은 ‘정직한 회고’, ‘진실한 인정’에 방점을 찍은 까닭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은 과거사 문제 앞에서 거짓을 진실로 참칭하고 조작된 포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신영복 교수는 그 결과로 오늘날 한국 사회가 여전히 권력이 전횡되어 억압받고 있다고 진단한다.


“과거 7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어떤 사람들을 억압하면서, 어떤 길로 국가를 이끌어 왔는지를 참회한다.”


잠깐 군소리를 하자면, ‘과거사 청산’ 대신 ‘과거사 정산’이 필요하다. 있던 일을 없애버리는 ‘청산’은 과거사를 윤색하거나 말살할 우려가 있다. 정확히 공과를 따져 평가하는 ‘정산’이 제대로 이뤄질 때 과거와 현재는 끊어지거나 비틀림 없이 온전하게 이어질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 천착한 저술을 꾸준히 발표해 온 김동춘 교수는《대한민국은 왜?》에서 현재 국민을 고통의 나락에 빠지게 한 많은 문제 출발점으로 8·15 이후 역사에서 되돌아보고 싶었다고 한다. 신영복 교수가 추천사에서 언급한 “과거 70년 동안”과 상통한다. 한국 현대사 개설서는 아니지만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행을 앞두고 많은 생각이 드는 발언이다. 


해방 즈음을 보자. 민중의 힘으로 자발적 해방을 맞지 못한 채 강대국 이권에 이끌려 조국이 분단되고 전쟁과 이념갈등을 초래했다. 그래서 김동춘 교수는 동학과 같은 조선의 자생적 근대화 노력이 외세 침략과 전쟁으로 물거품이 되고 혼란기를 겪으며 정치와 문화 주체성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철저히 타의에 의한 강압과 압제의 결과였고 따라서 1970년대 경제성장은 “압박 근대” 산물이라는 것이다. 박정희 세력과 지지자들이 단골 사용하는 ‘한강의 기적’은 결국 경제성장만이 한민족 최대 과업이념으로 상정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가 성장지상주의라는 괴물의 탄생으로 수단과 방법의 정당한 절차와 윤리 배제로 인한 ‘저열한 체제’ 구축을 쌓고 말았다.


말하자면 지금과 같은 ‘헬조선’이 탄생하기까지 70년이 걸렸는데 그렇다면 70년 전, 식민지배 끝물에 이르기까지 조선 엘리트층은 개화와 독립을 두고 싸웠다고 볼 수 있다. 일제가 가져다 준 개화는 참혹한 수탈과 압제를 동반했다. 게다가 지방 세력 전권을 가진 향반들조차 현실 판단력을 잃었다. 힘의 우열로 서열을 삼는 서양문명을 적대한 향반들은 근대화 자생을 선도하는 대신 숨이 끊어지고 있는 중국에게 S.O.S를 보냈다. 세계정세 흐름에 아둔한 중국 사대주의 근성이 빚은 결과는 공동체로 지탱했던 향촌 몰락과 함께 백성의 사상 동요, 그리고 각자 살길을 찾아 거리낌 없는 부역행위로 나아갔다고 본다. 그것은 무지를 넘은 도덕의 해이였으며 존엄성 파괴이자 인간성 폐허의 서막이었다.


김동춘 교수는 혼란기 엘리트층은 세속에 이재가 빨라 개화를 명분으로 삼고 일제에 복종해 부와 권력과 명예를 쌓았음을 지적한다. 책에서 잠시 등장한 것처럼 미국을 흠모하여 모국어를 버리고 60년 동안 영어로 일기를 쓰고 일본 개화를 숭상하여 조선을 미개국으로 여긴 윤치호와 같은 식민지 엘리트층이 압제자에 빌붙어 사익을 추구할 때 백성의 삶은 처절했다. 학정과 기아에 시달렸고 불령선인 不逞鮮人[각주:2]으로 낙인찍힌 조선인은 고향을 떠나 일본으로 만주로 연해주로 뿔뿔이 흩어져 디아스포라 Diaspora[각주:3] 로 전락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 엘리트층의 사리사욕 챙기기와 부유하는 백성의 관계는 오늘날 1퍼센트 상위층과 중산층 몰락, 하류층 증가와 데칼코마니 Decalcomanie[각주:4] 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을 등지고 외세와 결탁한 비굴함이 발각되는 것을 염려한 이들은 해방 후 재력과 인맥을 동원하며 기득권 유지에 힘썼다고 한다. 김동춘 교수의 말대로라면 오늘날 헬조선 탄생은 이즈음 기회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참회 없는 비열한 유산’ 을 그대로 승계한 결과이다.


“오직 개화를 명분으로 일제에 복종하여 부와 권력을 누린 기회주의자들만이 경륜을 쌓고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그들은 부일 협력의 부끄러운 과거 때문에 8·15 이후 미국·소련·중국 등 자신이 망명했던 나라의 인맥과 후광을 등에 업고 있었던 ‘해외파’와 필사적으로 손을 잡으려고 했다. 돈·지위·인맥 등 강력한 밑천을 가진 이들 부일 세력, 재력을 바탕으로 미국이나 일본으로 유학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해방’후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했다. 8·15 이후 한반도의 역사, 그리고 대한민국사를 굴절시킨 식민지의 유산은 바로 이것이었다.”


결국 오늘날 우익과 보수 셀프 이름표를 단 세력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부지런히 그악스럽게 세를 지킨 무리들로 반대파를 좌익으로 지목하여 배척하고 응징했던 이승만 세력의 후계자가 된 셈이다. 사실과 논리는 엿바꿔 먹고 반대 의견은 종북으로 매도하는 후계자들은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주장하며 2015년 8월 15일 광복 70주년 행사장 앞에 ‘광복 67주년’이라고 쓴 현수막을 걸기까지 했다. 친일 부역자와 그 후손이 사초를 조작하는 의도는 1945년 8월 15일이 국민에게는 해방의 날이지만 부역자에게는 사망 선고일이었기 때문이라고 김동춘 교수는 밝힌다.


검은 이력을 감추거나 속이려고 광복절마저 부정하는 이들은 좌파 정적을 제거하고 정권을 독단하면서 정치를 사유화하는 게 최종 목표일 것이다. 그것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수혈 받은 ‘협잡의 유산’인 까닭이다. 민족은 하나라고 외치던 이승만 일민주의를 계승하여 다양성을 분열의 상징으로 내몰아 오직 하나의 시스템 통제를 기획하는데 역사는 이것을 독재로 규정한다.


그런데 헬조선에서 우리는 무엇 때문에 무기력에 빠져 있는 것인지 우선 물어보자. 이명박근혜를 거치면서 퇴행을 강제 당해 계속되는 좌절과 절망에 기인하는 것인가. 우리는 지난 시대 숱한 탄압을 겪었다. 김동춘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유신의 찌꺼기, 일제 말 전시 전체주의의 유산”을 정산하지 못한 대가이지만 정치를 무관심의 대상으로 밀쳐놓은 영향은 없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권력을 독점하고 전횡하는 정권과 손 놓고 망보느라 급급한 야당의 무능함을 보자면 도무지 기댈 구석이 없고 지금의 박탈감이 도저히 회복될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욕하고 경멸하고 혐오하다가 마침내 무관심의 정치가 된 것은 아닌지, 그 결과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건지, 서로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는 공동체 처절한 몰락이 끝인지, 이렇게 동력을 잃은 기차처럼 제 자리에 주저앉아 녹슬다 사라질 수밖에 없는지, 이런 결말의 하드보일드 납량물을 정녕 기다리는지 물어보자. 철저히 착취당하면서 아직 버리지 못한 실낱같은 그 무엇을 입술에 오물거리는 게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게 무엇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지만 당분간 저항할 힘이 없다. 무엇이 잘못 되었고 무엇을 희망하는지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절망 앞에서 뇌와 눈을 닫지 않는 것만이 거의 유일한 여력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김동춘 교수가 이 책에서 자주 입에 올리는 ‘폐허’는 더없이 쓰라린 현실이며 섣부르고 해맑은 낙관은 환상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돈과 권력과 명성으로 통칭되는 세속적 성공만이 최고 가치가 된 지금, 우리에게 남은 건 ‘체화되어가는 체념’은 아닌지 돌아볼 시점이다. 이런 점에서 근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그러진 연표를 되돌아본 이 책은 반성과 자각의 교과서로 손색없다.








  1. 이라크와 시리아 등에서 활동하던 무장단체 ISIS가 2014년 이름을 바꾼 IS는 이슬람 스테이트(Islam State) 약자로 ‘이슬람 독립국가’라는 말이라고 한다. 중동 등 이슬람권에서는 IS라는 명칭이 이슬람을 대표하는 국가인 것처럼 오해를 줄 수 있어 IS 대신 ‘다에시’로 불러왔다. 다에시는 IS의 전신인 ISIS의 전체명칭을 아랍어로 옮긴 말에서 다시 앞글자만 따 순서대로 배열한 뒤 발음한 것이라고 한다. ‘국가’라는 의미가 빠지게 될 뿐 아니라 ‘짓밟다’는 뜻의 아랍어 ‘다샤’와도 발음이 비슷하다. IS를 국가로 인정하고 IS 주장대로 현재를 전시상태로 규정하면 IS가 저지르는 여성 노예 매매, 성소수자 살해, 문화유적 파괴 등이 국제법상 인정된 국가에서 지금까지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벌인 일이 된다고 한다. 다에시(Daesh)라고 부르느냐 IS라고 부르느냐는 작은 차이 같지만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을 개시하느냐 또는 ‘체계를 갖추지 않은 학살을 저지르는 범죄 테러조직을 소탕’하느냐 문제로 갈린다. [출처] 2015년 11월 18일 YTN [한컷뉴스] “IS가 아닌 ‘다에시’로 불러야 하는 이유”.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51118160007410 [본문으로]
  2. 일제 강점기에,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으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자기네 말을 따르지 않는 한국 사람을 이르던 말. [본문으로]
  3. 팔레스타인 밖에 살면서 유대교적 종교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 또는 그들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핍박을 피해 세계를 떠도는 유대인을 가리켰다가 현대에 들어 국적을 상실한 난민을 뜻하는 말로 변했다. [본문으로]
  4. 회화 기법의 하나. 흡수성이 적은 종이 위에 물감을 두껍게 칠하고 반으로 접었다 펴면 양쪽 무늬가 똑같이 찍히는 현상 [본문으로]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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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형석 2015.11.21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건강하세요. 좋은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 남극오로라 2015.11.24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복면이 IS와 같다고 한 발언을 오늘 보면서 자기에게 반대하거나 대화하자고 외치는 국민을 IS와 동급으로 여기고 있다는 마음을 확인했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시대를 돌이켜보자니 필자님 말씀처럼 폐허라서 한숨만 나옵니다만. 뇌와 눈을 닫지 말자는 말씀이라도 주워갑니다. 저도 윗분처럼 건강하셔서 좋은 글 써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