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먹는 여우/한국문학'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16.11.25 정유라의 말과 똥말 '차밍걸' (1)
  2. 2015.06.08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2)
  3. 2014.12.30 1991년의 '패륜아들'
  4. 2014.09.07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2)
  5. 2014.03.21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1)
  6. 2013.01.07 마흔의 버킷 리스트
  7. 2011.11.03 꽃의 나라
  8. 2011.10.17 당신의 여행가방에 담긴 책
  9. 2011.08.15 우리 만난 적 있죠? (4)
  10. 2011.07.15 염소에게 자유를 묻다 (3)

▲ 차밍걸(2013년)


“큰 말들 틈서 뛰는 모습, 성실히 사는 소시민 같다.”

-‘차밍걸’ 마주 변영남씨 인터뷰(2013년 5월 26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불만이면 종목을 갈아타야지. 남의 욕하기 바쁘니 아무리 다른 거 한들 어디 성공하겠니?”


2014년 최순실(개명 후 : 최서연) 딸 정유라(개명 전 : 정유연)는 위와 같은 글을 SNS에 올렸다. 먹고 살만한 집 자식이 못사는 집 자식을 비웃는 거야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그러기 전에 자기 부모가 어떤 방법으로 부자가 되었는지 알 바 아니라는 의식이 짙다. 물론 부자라고 해서 무조건 지탄 대상은 아니다. 성실하고 정직한 부자는 사회 귀감이 된다. 게다가 공익에 기여한다면 ‘부의 가치’가 올라가고 ‘부의 의미’는 긍정적 효과를 얻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정직한 부자는 점점 보기 어렵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에는 다른 행성에 사는 것처럼 접근이 어려워졌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빈부 양극화 심화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주장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IMF 유산인 비정규직이나 명퇴, 가계부채 증가와 맞물린 빈곤은 청년과 노인을 구분하지 않고 삶을 ‘살아 견디는 일’로 내몰았다. 그렇다고 모두 IMF 탓으로 돌리면 IMF는 억울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오래전부터 방법과 과정 대신 목적과 결과에만 투신했다. 서울을 가려면 정당한 절차를 거쳐 온당한 방법으로 가야 하는데 모로 가는, 이를테면 자동차를 훔치거나 기차에 무임승차하거나 여비를 강도질하든 목적에 이르는 과정을 무시했다. 어쨌든 목적만 이루면 나중일은 이해가 되고 용서를 받고 심지어 선망 대상까지 됐다. 서울은 입신양명 종착지처럼 말이다. 오죽하면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까지 생겼다.


나중에는 말까지 서울로 갔다. 제주도에서 2005년 3월 4일 태어난 작은 말이 있다. 다른 말 보다 키도 작고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이나 적게 나갔다. 덩치가 턱없이 작아 허드렛일을 하거나 관광용 승마로 살 처지였다. 마주의 빚 대신 서울로 보내진 말은 과천 승마 경기장에서 경주마로 뛴다. 성적은 처절했다. 8년 동안 101번 경주에 나섰지만 우승한 적이 없다. 덩치 크고 잘 달리는 말에 밀려 하위권에 머물렀다. 사람들은 성적이 안 좋은 이 말을 ‘똥말’이라고 불렀다.


똥말은 8년 동안 뛰면서 한 번도 상위권에 링크된 적이 없다. 트랙에 나서면 객석에서는 야유가 들렸고 마주와 기수는 고개를 숙였다. 성적이 안 좋다보니 똥말에게 승부를 거는 사람도 적었다. 그러나 똥말은 뒤처지면 포기할 만도 한데 끝까지 달렸다. 꼴찌를 하는 날에도 중간에 그만두는 법이 없었다. 마치 완주가 목표인 것처럼 말이다. 자기 몸보다 두 배 가까이 큰 말들 틈에 끼여 꿋꿋이 달린 똥말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모여 ‘똥말 팬클럽’을 만들었다.


똥말은 101번째 경기를 마지막으로 경주마에서 은퇴했다. 팬들이 마련한 은퇴식에서조차 우승 한 번 하지 못한 말에게 무슨 은퇴식이냐고 관중은 욕을 했다. 성공한 인물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사회 이면을 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 차밍걸(6번)이 달리는 모습


똥말에 관한 책이 두 권 있다.《위대한 똥말》(서석영 지음. 허구 그림. 바우솔. 2015년 1월)은 어린이 책이고 《101번의 아름다운 도전》(이해준 지음. 중앙북스. 2014년 3월)은 오랫동안 똥말을 취재한 중앙일보 이해준 기자가 취재기를 엮었다. 1등, 성공, 최고만을 지향하고 강조하는 사회에서 그늘에 가려진 대상에게 조명을 비춘 이야기다.


동화작가 서석영이 쓴《위대한 똥말》에서는 똥말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가 주인공이다. 키는 작고 공부나 운동도 못한다.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하는 누나와 비교를 당하며 자신감을 잃고 자포자기 심정이 강했다. 실직한 아버지가 편의점을 차려 바쁜 와중에 한 달에 한번 똥말 경기를 보러 가는데 동행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똥말을 보면서 주인공은 매일 운동장을 뛰고 마라톤에 출전하며 공부도 잘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정유라가 편법을 “실력”으로 인식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머니 최순실이 사는 방식과 가치관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부모가 사회 공익에 반하고 위법을 하며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깨우치지 못했기에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을 비웃은 것이다. 삐뚤어진 모정과 그악스럽고 야멸스런 행동을 시대정신으로 각인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삼성이 정유라에게 사준 그랑프리 명마 비타나-브이(vitana-v)는 30억 원이었다고 한다. 정유라가 아시안게임에 타고 나온 말(馬)도 7억 원을 넘는다고 하니 웬만큼 잘 살지 않으면 말(語)이 안 나온다. 타고난 신체조건과 엄격한 훈련과 관리를 받은 말은 경기에서 뛰어난 성적을 낼 테니 비쌀만하다. 그런데 이조차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말 세계에서조차 신분계급이 나뉘지 않았다고 부정할 수 있을까.


비단 정유라 뿐만 아니다. 내 새끼가 어떡하든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려서 뇌물을 건네고 조작을 하며 남을 쳐내는 부모를 극성부모라고 단순하게 부르면 안 된다. 엄정하게 말해서 이들은 공정과 합리의 가치를 말살하고 공동체 질서 파괴와 공익 훼손을 초래하므로 사회질서 파괴범이다. 정유라가 승마 관계로 드러난 의혹만해도 여러가지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출석 며칠만 했음에도 졸업을 하고, 학칙을 바꿔 원서마감이 지났음에도 대학 입학 자격이 주어진 정황은 힘들게 공부해 입학한 학생들에게 사회 신뢰감을 상실하게 하고 노력의 결과에 박탈감을 제공한다. 게다가 정유라를 이화여대에 합격시키려고 정유라보다 높은 면접 점수를 받은 학생 두 명을 탈락시킨 의혹을 대입하면 정유라의 승마는 뇌물과 편법과 협박으로 조장된 승부조작 경마와 다를 바가 없다. 말(馬) 때문에 말(語)이 막힌다.



“주목받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했어요. 중간이나 그 아래밖에 못하지만 자기보다 큰 말들 틈에서 끝까지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면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을 보는 듯했지요. 차밍걸을 함부로 똥말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차밍걸이 똥말이면 우리 같은 소시민은 다 똥말인가요?”-《101번의 아름다운 도전》

 

똥말은 우승을 못했지만 묵묵히 달리는 끈기를 알아봐준 팬들의 응원과 환호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떨까. 통계청은 2016년 11월 현재 비정규직이 640만여 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인원까지 합치면 1천만 명에 이를 것이다. 생계가 급해 붕어빵을 파는 사람, 야근을 해야 아파트 대출금을 갚는 사람, 연탄을 떼면서 근근이 겨울을 나는 병든 사람, 새벽 버스를 타고 가서 청소를 하는 사람,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해 몇 달 째 월세를 못 내는 사람에게 사회가 안겨준 것은 과정의 공정성을 무시한 무감각한 도덕성 붕괴와 이타성 상실의 공황이다. 우리는 공황사회에 살고 있다. 


똥말은 은퇴 후 목장에 가서 승용마 훈련을 받고 제2의 삶을 살다가 2015년 11월 3일에 죽었다. 그녀의 공식 이름은 ‘매력적인 소녀’라는 뜻인 ‘차밍걸’이다.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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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똥엄마 2017.10.01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나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7번지 오두막에서 (고)권정생 (1937~2007) 선생

인간은 괴로울지라도 진실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이들에게 사실을 그대로 보여 줄 수 없다는 제한된 동화 문학은 어느 정도 기만행위에 가까울 것입니다. 동화를 통해 어린이들이 어른에 대한 불신의 씨를 품을 수 있다는 교육적 윤리성을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1983년 5월 28일 이오덕에게 보낸 권정생 편지




얼마 전 동시집《솔로 강아지》이순영 지음. 조용현 그림. 가문비. 2015. 3 가 ‘잔혹동시’를 실었다는 이유로 논란이 됐다. 수록한 시 가운데 엄마를 씹어 먹는 내용을 담은 ‘학원 가기 싫은 날’이 화근이었다. 학원 가기 싫은 아이에게 억지로 학원을 보내는 엄마를 향한 원망이 가득 담긴 시였다. 해님이 방긋방긋, 예쁜 꽃이 웃어요 하는 류의 순한 시에 익숙한 독자들은 열 살 어린이가 쓴 노골적인 내용에 질타를 보냈고 여론을 감당할 수 없던 출판사는 책을 전량 회수 폐기했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잔혹동시’라는 호칭에서 어린이를 대하는 어른의 환상과 강제는 없을까? 어린이는 잔혹한 글을 쓰면 안 되는 것일까? 안된다면 살점을 떼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심지어 잡아먹기까지 하는 안데르센이나 그림 형제가 쓴 동화는 왜 허용하는 것일까? 어린이에게 세상을 보는 시각을 어른이 정해주는 게 옳은 일일까? 물론 ‘학원 가기 싫은 날’이 십자포화를 맞은 이유는 삽화가 자극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엄마 심장을 꺼내 입에 피를 묻히며 먹는 그림은 납량특집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옴직한 오버였다. 시 내용이 강했으므로 삽화는 한 단계 정제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잔혹동시’라는 개념은 ‘어린이는 순수(純粹)하다’는 뜻을 깔아놓고 잔혹한 동시를 쓰면 안 된다는 느낌이 강하다. ‘잔혹’과 ‘동시’는 대치개념으로 이용된다. 즉 아직 세상 때가 묻지 않은 어린이는 어른에 상대적으로 순수함이 남았으므로 순한 글만 써야 한다는 무의식적이고 때로는 노골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어린이를 순수체로 규정한다. 이런 식의 ‘순결 강박증을 조장하는 어른의 시선’은 어린이 정신과 신체를 ‘어린이는 잔혹하지 않다, 잔혹함을 모른다.’는 환상에 강제하는 것이다. 세속의 민낯을 은폐하면서 어린이에게 맑고 밝고 예쁨만을 주입하며 어린이 감정을 억압하는 의도가 ‘잔혹동시’라는 한 개 낱말을 만든 것 같다.


자고나면 어린이 책이 우후죽순 나오는 가운데 출판계와 저자와 독자가 논의 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줄 것인지 고민한다면 책만 짓고 만들고 던져주는 시장원론에서 벗어나 원인을 묻고 캐는 현실과 이을 필요가 있다. 안 그래도 한국아동문학에서 가장 사랑받은 작가였던 권정생 선생(이하 선생 호칭 생략)은《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이오덕·권정생 지음. 양철북. 2015. 5 에서 가감 없는 어린이 문학을 말한다.


제 동화가 무척 어둡다고들 직접 말해 오는 분이 있습니다만, 저는 결코 제가 겪어 보지 못한 꿈같은 얘기는 쓸 수가 없습니다. 쓰려고 노력하지도 않겠습니다. 팔 병신은 팔 병신다웁게 몸을 움직이고, 다리병신은 다리병신다웁게 절뚝거리는 것이 정상이라 봅니다. 잘못된 교육은 인간의 결함을 숨기려는 데서 비인간화시켜 버린다고 봅니다.”


“병을 앓고 있으면서 마취약 때문에 고통을 잊고 있는 것은 가장 큰 불행입니다. 아동 문학인들이 어째서 그토록 현실에 대한 아픔을 잊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어린이 문학에서 ‘순(純)’을 걷어낸 권정생은《강아지똥》,《몽실 언니》[각주:1],《엄마 까투리》,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등 슬프고 아픈 이야기로 현실을 직시했다. 당의정을 던지는 대신 상처를 드러내 맥을 보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게 어린이 문학이라고 여긴 것이다. 물론 권정생 동화를 흠뻑 적시는 슬픈 배경은 서러움과 고통을 겪은 작가의 삶을 비춘 것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넝마주이를 하는 부모에게 태어났고 해방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가난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유랑생활을 했다. 초등학교만 나온 권정생은 거지, 공장, 머슴 등 밑바닥 인생을 살면서 결핵에 걸린다. 이때 걸린 결핵은 신장을 못 쓰게 만들어 평생 가혹한 지병이 되고 말았다.


권정생은 안동시 일직교회에서 17년 동안 종지기를 하면서 외롭고 아픈 밤을 지새우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리고 마침내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된다. 당선 발표가 난 며칠 후, 1월 18일 이오덕 선생 1925~2003 (이하 선생 호칭 생략) 이 일직교회로 찾아가면서 30년 만남이 시작된다.《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는 척박한 한국아동문학에 향유를 부어준 이오덕·권정생이 1973년에서 2002년까지 나눈 편지를 추려 엮었다.


이오덕은 당시 대구에 있는 초등학교에 재직 중이었다. 교사를 하면서 틈틈이 동화를 썼다. 이원수 선생을 만나고 1955년 잡지《소년세계》에 동시 ‘진달래’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권정생보다 열두 살 많은 이오덕은 출판계에 먼저 발을 디딘 입장이었으므로 인맥이 넓었다. 이현주 목사, 전우익, 이원수, 판화가 이철수 등 이오덕은 역량을 동원해 권정생을 세상에 소개했다. 시골교회 뒷방에서 종을 치고 살던 권정생에게 세상과 연결한 전령이 되 주었다. 


“바람처럼 오셨다가 제(弟)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가셨습니다. 일평생 처음으로 마음 놓고 제 투정을 선생님 앞에서 지껄일 수가 있었습니다.……… 소리소리 지르며 통곡하고 싶은 흥분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가슴으로 자구만 모아들이는 아픔이란, 선생님은 더 많이 아실 것입니다.”


이제까지 아무에게도 가슴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없던 외로움이 물씬 묻어난 편지다. 하룻밤 만남에 권정생은 이오덕에게 부끄러움 없이 속내를 보인다. 이오덕은 바쁜 와중에도 서울을 다니며 권정생 작품을 출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권정생이 겪는 생활고를 배려해서 원고료와 인세를 먼저 받는 방법을 찾았고 직접 받아 건네기도 했다.



일직교회 앞에서 이오덕(좌) ·권정생(우)


“이오덕 : 서울 가면 선생님 동화집 내도록 해 놓고 오겠습니다. 주로 그 때문에 갑니다.” 

“권정생 : 낙서 한 장까지도 선생님께 맡겨 드리고 싶습니다. ”


이오덕은 창작과 비평사, 소년중앙, 여성동아, 소년조선, 한길사, 계몽사, 분도 출판사, 종로서적을 비롯해 많은 출판사를 찾아다니며 권정생 글을 맡겼다. 편집자를 만나지 못하면 며칠 기다리기까지 했다. 원고가 거절당할 때는 힘이 없는 자신을 탓하며 함께 괴로워했다. 두 사람의 깊은 신뢰는 동화 한편으로 시작했지만 글이 맺어준 우정은 30년을 변하지 않고 한편의 영화와 같은 서사를 유지했다. 첫 인연은 글이 단추를 풀었지만 삶이 지향하는 바가 같고 진실한 태도로써 서로 존중하며 배려했기 때문이다.


“권정생 : 선생님, 5천원만 보내주세요.”

“이오덕 : 우편환으로 7천원 부쳐 드립니다. 또 어려우시면 편지 주십시오.”

“권정생 : 이불을 한 아름 껴안고 뒹굴었다가 벽을 손톱으로 바득바득 긁었다가 문을 박차고 마당으로 뛰쳐나가기도 하고,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마당을 서성대다가 다시 방에 들어와 쓰러지고,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세상이 온통 흔들려서 몸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이오덕 : 약을 계속 잡수셔야 할 터인데 걱정입니다. 어디 돈을 빌려서라도 약을 잡수시면 제가 가서 갚겠습니다.”

“권정생 : 소변에 농이 나오고 출혈이 심해진 것 같습니다. 늘상 그런 거니 생각하시면 됩니다. 혼자 있으니 자유롭다는 것 하나만으로 저는 행복한지도 모릅니다. 창문만 열면 산과 들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나의 집이 있다는 것, 너무 과분하지요. 혼자 있으니까 울고 싶을 때 실컷 웁니다.”


《몽실 언니》가 잘 팔리면서 권정생은 돈 걱정을 덜고 일직교회를 떠나 마을 빌뱅이 언덕[각주:2]에 오두막 한 채를 짓고 본격적인 작업에 임한다. 몸이 아파 200자 원고지 10매를 한번에 쓰지 못했지만 창작에 매진했다. 진주가 혼자 몸을 키워도 알아봐주는 이가 없다면 진흙 속에 묻힌다. 또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지 않으면 흩어진다. 이오덕은 권정생이 지닌 진실한 삶의 태도와 근기를 일찌감치 알아보고 후원자가 됐다. 그래서 권정생은 반 고흐 그림을 좋아하는 이오덕에게 숙명 같다고 말한다. 고흐를 지원한 테오를 자신과 이오덕에 비유한 것이다.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는 한국아동문학의 지나온 자취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권정생·이오덕의 가치관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권정생은 편지에서 사람이 싫다고 토로한다. 심지어 인간멸종을 말하기까지 한다. “이 지구상의 모든 것이 살아남기 위해선 먼저 인간이 망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습니다. 저주 받아야 할 것은 인간들뿐입니다.”


권정생이 인간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 심리 기저는 가난과 질병으로 인한 차별과 서러움을 경험하며 장르 불문하고 책에 몰입한 영향인 듯싶다. 사물의 본질, 즉 밑절미를 따지는 일은 권정생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세속을 보는 관점이 외피에 머물지 않고 맥락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이오덕에게 보낸 편지에서 ‘원인’, ‘이유’, ‘요인’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권정생이 세상을 보는 시야는 대상 한 개에 초점을 고정하지 않고 언저리에 흐르고 스미고 번져 섞여 흔들린 움직임을 주시하는 세계관이다.


“한 인간의 선행이나 악행은 모두 그 역사와 사회의 소산물이지 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한 살인 강도가 있었다면 그건 그 사회 모두의 공동 책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활 동화라는 것이 나오고 많은 작가들이 쓰고 있지만, 실제 어린이들의 생활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지만, 저 자신이 창작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심정으로는 일체의 동화 문학에 대한 과감한 개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간은 모두 사기꾼”이라는 냉정한 자아비판을 거두지 않은 권정생은 인간을 향한 사랑이 뜨거웠던 인물이다. 이름처럼 바르게 살려고 바를 정正 날生 내면을 끊임없이 두들긴 이유는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저의 동화에선, 어떤 조건에서도, 인간은 구원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싶은 것입니다.”고 고백한다. 세속의 탁함과 거짓을 감추지 않고 어린이 문학에서 과감하게 ‘순수’에 대한 환상을 떼어낸 권정생과 여력을 다해 세상에 알린 이오덕. 허황된 허세와 허울로 치장하고 포장한 오늘 세태에 두 사람이 간직하고 지키려했던 오롯한 밑절미는 유효한지 궁금하다.




























⊙ 2007년 10월, 필자가 찾아간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7번지 권정생 선생 오두막




  

  1. 기독교 잡지 <새가정>에 연재했던 <몽실 언니>는 인민군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1982년 12월호부터 1983년 2월호까지 군사정권 검열에 걸려 삭제후 연재를 재개했다. 1984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초판 5천부를 발행. 인세 75만원을 받았다. 이후 개정판에서 삭제한 인민군을 복원할까 싶었지만 맥락이 흐트러지고 많이 팔린 상태라 관뒀다고 한다. [본문으로]
  2. 마을 사람들이 별을 보던 곳이라는 뜻과 거지들이 비를 피한 곳이라는 두 가지 말이 전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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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itabrevis 2015.06.11 14: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결코 제가 겪어보지 못한 꿈같은 얘기는 쓸 수가 없습니다'에서 깊은 공감을 느낍니다. 권선생님의 인간애만을 기억했는데 그 실존적인 고통 부분에서는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오래전에 직접 찾아가셨네요. 예전에 살아계실 때 한번 가봤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건강하세요.

    @doornot

    • 윤미화 2015.06.11 22: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힘겨운 투병 가운데 자기를 직시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셨던 분입니다. 편지에 옹이가 깊고 결기가 서늘합니다.

      지금도 오두막은 보존되고 있다고 합니다^^

옛날 옛날에 나무가 하나 있었어. 옛날에는 사람 하나에 나무 하나, 그렇게 탯줄이 연결되어 있었어. 나무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기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먹으며 살아갔지. 사람들이 자신의 나무가 있었던 때에는 서로 싸울 일이 없었어. 사람들은 자기의 나무에 기대어 먹고 쉬고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었어. 옛날 이야기, 나무 시대의 이야기, 사람들이 태어난 이야기, 그리고 늑대를 조심하라는 경고도 있었지.


그리고 어느 날 늑대가 나타났어. 늑대는 자기에게도 나무를 달라고 하늘에 빌었지. 늑대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않았지. 배가 고파 어슬렁거리던 늑대는 사과나무에 달린 조그만 아이의 탯줄을 끊고 아이를 먹어버렸어. 아이를 없애고 그 나무를 자기 것으로 하고 싶었거든. 늑대는 사과를 먹으며 행복했지만 사과를 먹을수록 예전에 먹었던 아이의 맛을 잊을 수가 없는 거야. 늑대는 주변에 있는 배나무의 아이들, 복숭아나무의 아이를 차례로 잡아먹었어.


그렇게 해서 늑대에게는 배나무와 복숭아나무가 자기 차지가 되었지. 그때부터 나무들은 탯줄로 연결된 자기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게 되었어. 나무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되자 자기 나무에서 열리는 자기의 열매만 먹던 사람들도 나무와 연결된 탯줄을 불편해하기 시작했어. 하나둘씩 나무와연결된 탯줄을 스스로 잘라버렸어. 어떤 사람은 자기가 지금까지 속았다고 말했어. 또 어떤 사람은 나무의 말을 믿지 말라고 했어……그렇게 해서 나무의 시대가 가고 사람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어. 늑대는 여전히 늑대로 이 나무 저 나무를 쫓아다니며 사람들을 잡아먹고 말이야.-《나무에게서 온 편지》에서 발췌.


⊙ 사진 : 1991년 5월 18일 신촌에서 거행된 명지대 강경대 학생 장례식





《나무에게서 온 편지》(하명희 지음. 사회평론아카데미. 2014. 11)는 1991년 민주항쟁에서 활동한 고등학생들 이야기다. 원제가《패륜아들》(나는 원제가 더 끌린다)인 이 소설은 제22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했다. 제목에 ‘나무’와 ‘편지’가 들어간 바람에 서정적 뉘앙스를 풍기지만 당시 치열했던 고등학생 운동사를 다뤘다.


여고생 ‘도은’은 어느 날 낯선 편지 한 통을 받는다. 발신지는 난지도였다. 무작위로 번호를 뽑아 2, 7, 23을 조합해 “2학년 7반 23번 언니에게”라고 쓰여 있다. 편지 내용은 아버지가 억울하게 돌아가시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다. 도은은 편지를 받고 난지도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처음 알게 된다. 그때까지 난지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쓰레기 처리장인줄 알았다. 편지 발신자를 도은은 “머리를 땅에 박고 가지를 쳐들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나무”라고 부른다. 나무에게 용기를 북돋는 답장을 쓰려고 했다가 그만 편지를 잃어버린다. 궁리 끝에 라디오 방송에 사연을 보냈다. KBS 2FM ‘전영혁의 음악세계’에서 도은이 보낸 편지가 소개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냈으면 좋겠어요. 나무가 마지막처럼 했던 말 ‘안녕’이 슬픈 인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무를 만나면 처음처럼 ‘안녕’이라고 말하며 껴안아주고 싶어요. 나무와 함께 건대 호수를 걷고 싶기도 해요. 거기에 가면 273번 가로등이 있어요. 그 가로등 아래서 나무를 만나고 싶습니다. 나무야, 듣고 있니? 건대 호수의 273번 가로등 아래에서 만나자. 나는 거기 있을게. 네가 찾아오렴. 죽지 말고 살아. 살아서 만나자.”


1980년대 말부터 학생운동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80년대 초·중반 질풍노도와 같은 횃불처럼 타오르던 학생운동은 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사그라진다. 올림픽 이전과 이후 사회 분위기는 선을 그었다. 국가는 음울한 기운을 감추고 쾌청함을 조장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최루탄에 맞고 분신을 하고 고문을 받으며 죽어갔음을 잊은 듯했다. 방송은 선진국 입성이 코앞에 있는 것처럼 국가 위신을 강조했다. 올림픽은 민주주의에 안착한 것처럼 팡파르를 만방에 불었다. 독재와 부정과 불평등과 불합리가 모두 물러간 지상낙원처럼 올림픽은 학생운동을 세탁하고 묻었다.


그러나 골 깊은 이념정쟁은 풀리지 않았고 저소득층은 사회안전망에 무방비 노출됐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선생님은 노동자인가? 아닌가?”를 학생에게 질문했다. 집단이나 정부, 기득권에 이견을 표하면 빨갱이 낙인이 찍히는 건 그대로였다. 외려 은밀하고 비겁한 탄압이 자행됐다. 성급한 민주화 봉합 결과이다. 야욕을 가진 자들은 사회 분위기를 정확히 읽어냈고 마침내 90년 1월 3당 야합[각주:1]이 성사된다. 5공 세력을 심판할 야당이 먼저 권력욕에 눈이 멀어 의무를 등졌다. 국민을 도륙한 살인정권과 손잡은 3당 야합은 억울하게 죽은 민주항쟁 희생자들을 욕보이고 활동가들에게 분노를 안겨줬다.


1991년 4월 26일 명지대 대학생 강경대[각주:2]는 백골단 집단구타로 죽는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각주:3](노태우 정권 당시 법무부 장관은 현재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이다), 김귀정[각주:4] 성균관대 학생 등 불과 두 달 만에 열세 명이 죽었다. 때마침 총리가 된 정원식[각주:5]은 외국어대에 마지막 강의를 하러 갔다가 분노한 학생들에게 밀가루와 계란 투척을 당한다. 신문에는 흐트러진 넥타이에 하얗게 밀가루를 뒤집어 쓴 총리가 1면을 장식했다. 총리에게 모욕을 줬다는 이유로 민주화 운동은 시민들에게조차 외면당한다. 언론은 90년 91년 민주화 운동가들을 싸잡아 ‘패륜아’라고 불렀다. 무고한 국민을 죽이는 자들이 권력을 지키는 윤리를 들먹인 것이다. 본질을 왜곡시킨 언론은 독재 권력의 나팔수가 되어 정국을 뒤집는데 기여했다. 게다가 전교조는 국가전복을 꾀하는 이적 단체로 지목됐고 동조자는 해고나 퇴학을 당했다.《나무에게서 온 편지》에서 언급한 것처럼 고등학생들은 좋아하는 선생님조차 지켜드릴 수 없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사회적인 이슈를 갖고 토론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니들이 뭘 아냐’는 식으로 윽박지르고, 부모님이 일하시는데 지장이 있을 거라고 협박까지 한다니까요.”


“뭐, 교사가 노동자라고? 교사가 왜 노동자야! 이런 싸가지 없는 것들. 교사가 공순이, 공돌이들이랑 같아?”


사상의 자유가 억압되면 토론의 자유조차 불허된다. 강제로 납땜한 사상의 틀 안에 복종을 강요하는 사회는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다. 정부가 정한 정책과 제도와 사상의 기조는 관제 일꾼을 양산하는 바, ‘정부의 충실한 마름’은 노비를 착취하고 학대하며 일신영달을 알뜰하게 챙긴다.《나무에게서 온 편지》에 나오는 폭력이 일상화된 학생주임이나 일당을 떼먹는 고약회사 사장은 정부가 키우거나 묵인한 탄압과 착취의 충견들이다. 이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나무가 있으며 자기감정을 담는 화분이 있으며 자기 이념을 맺는 열매가 있음을 부정한다. 당연하지만 정부가 지시한 겁박과 정부가 조작한 사상 안에서 안위를 꾀하므로 반대의견은 적대자로 간주한다. 이처럼 공안정국은 개인의 사상과 행동을 규제하고 몰아세움으로써 정부중심의 이념만을 섬기는 것이다. 독재는 ‘일념(一念)을 신념(信念)’으로 강제 규정한다.


1990년, 91년에 교실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학내신문을 만들며, 시위대에 합류했던 고등학생 운동가들은 이제 40대 중년이 되었다. 언론을 비롯한 민주화 기록에는 대학생과 일반인 기록이 등장할 뿐, 고등학생 운동가를 조명하기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그래서 저자는 세월호 참사 농성장인 광화문 광장에서 이렇게 질문한다.


“왜 우리는 거리로 나가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고, 지금의 우리들은 여전히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왜 우리는 사회로부터, 국가로부터, 언론으로부터 ‘패륜아’로 낙인 찍혀야 했으며, 왜 우리들은 길고 오랜 침묵을 지켜야만 했는지를. 당시 해직되었던 전교조 선생님들도 복권이 되었는데, 그때 학교에서 쫓겨났던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왜 아무도 그들의 삶을 물어주지 않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나무에게서 온 편지》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류 소설이 아니다. ‘그 때 그 시절 이야기’도 아니다. 지난 시대 일이지만 현재진행형임을 저자는 말한다. 일부 보수층과 극우주의자를 비롯한 일간베스트 회원들은 이명박근혜 정권 들어서 이념이 다르면 어느새 빨갱이로 몰고 ‘종북’ 손가락질을 한다. 종북은 현 정권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이자 정치도구이며 창조 아이콘이다. 종북은 북한을 따른다는 뜻인데 집권 여당 정책이나 대통령을 비판하면 북한을 찬양하는 것처럼 왜곡하는 것이다.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찬성만 반기는 게 독재의 특징이라지만 종북이라는 ‘헛것’의 등장은 복잡함을 넘어 착잡하다. 실체 없는 것이 실재를 압박하는 어이없는 이념 적용은 24년 전과 다르지 않다. 길에서 검문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해 죽었던 시대였다. 실체 없는 것이 실재를 침탈한 지금, 이 소설은 진짜 패륜아는 누구이며 우리가 염(殮)[각주:6]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1. 1. 1990년 1월 22일,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약칭 민정당)이 제2야당 통일민주당(약칭 민주당),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약칭 공화당)과 합당해 통합 민주자유당을 출범시킨 것을 말한다. 3당 합당에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3당 야합이라고도 한다. 여당인 민주정의당을 중심으로 3당 합당을 추진해 보수당(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을 창당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2. 제5공화국의 후신세력인 민주정의당 세력은 6월 항쟁이라는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정권을 잡았으나, 계속되는 국민의 민주화요구와 군사정권 청산요구는 이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었다. 이러한 국민적 요구에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주정의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자, 노태우 정권은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이른바 '보수대연합'을 비밀리에 추진하여 1990년 내각제 개헌 밀약을 조건으로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3당 합당을 이끌어내 거대여당을 탄생시켰다. 3당합당의 여파로 노태우 대통령이 출범한지 2년 만에 80%에 육박하는 높은 수치의 지지율을 기록한 적도 있었다. <출처: 위키백과> [본문으로]
  2. 4월 26일 명지대학교 앞에서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위해 구출대회가 진행되었고, 시위가 격렬해지자 경찰이 진압을 시도하게 되었다. 백골단이라 불리는 사복 경찰관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시위 진압을 시작하자, 강경대는 학교 쪽으로 도망치기 위해 1.5m 높이의 담벽을 넘으려다가 경찰에게 붙잡혀 쇠파이프로 두들겨 맞은 뒤 그대로 방치되었다. 이러한 광경은 곧 다른 학생들에게 목격되어 이들에 의해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한시간 만에 사망하였다. <출처 : 위키백과> [본문으로]
  3.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은 노태우 정권의 실정에 항의하는 분신이 잇따르는 가운데 1991년 5월 8일 당시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연합 사회부장의 분신자살 사건에 대해 검찰이 김기설의 친구였던 강기훈이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기소해 처벌한 인권침해 사건이다. 형법상 자살 관여죄에 대한 대법원 판결 가운데 실제로 죄로 인정된 유일한 판례였으며, 강기훈은 법원으로부터 목격자 등 직접적인 증거도 없이 국과수의 필적 감정결과와 정황에 따라 자살방조 및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받고 1994년 8월 17일 만기 출소했으나 사건 발생 16년 만인 2007년 11월 13일 대한민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제58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1] 이에 따라 2012년 대법원의 재심이 개시되었으며, 2014년 2월 13일 재심 판결에서 대법원은 당시 검찰이 제시한 필적 감정이 신빙성이 없으며, 유서 대필 및 자살 방조에 대해 무혐의·무죄로 재판결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본문으로]
  4. 1991년 5월 25일 시위 도중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을 피하다가 압사당한 성균관대 학생 [본문으로]
  5. 1991년 6월 3일 오후 18:30분 경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강당에서 당시 국무총리 서리에 임명되어 교수직을 사퇴하는 정원식(鄭元植)에게 계란, 밀가루, 페인트, 짱돌, 소주병, 맥주병, 유리조각, 인분 등을 집단으로 투척한 사건이다. 전두환 정권에서 문교부 장관을 지냈던 그는 서울대학교와 덕성여자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의 시간강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는 그가 문교부 장관으로 있을 때 전교조를 불법화하고 전교조 인사들의 구속과 불이익 조치를 취한 데 대한 학생 운동권의 집단 반발이었다. <출처 : 위키백과> [본문으로]
  6. 시신을 수의로 갈아입힌 다음, 베나 이불 따위로 싸다. [본문으로]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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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 한 방울을 현미경으로 열 다섯 배 확대. 벌레처럼 생긴 요각류, 화살벌레, 필라멘트 처럼 생긴 시아노박테리아, 직사각형 조류(藻類), 물고기 알, 쌀알만한 게의 유생 등이 보인다.  * David Liittschwager - National Geographic (《지구를 담은 사진전》 내셔널 지오그래픽 展 도록에서)






소설가 한창훈이 쓴 산문집《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문학동네. 2014.8)를 읽으면 눈물이 난다. 그냥 바다 이야기도 아니고 ‘인생의 자갈길’을 걸어 본 작가가 술상을 곁들였는데 용 뺄 재간이 없다. “당신에게 바다란 어떤 곳인가요?” 묻는 한창훈은 바다작가다. 바다작가 장르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자타공인 바다에 관해선 할 말이 가장 많은 작가다. 한 말도 가장 많다. 이제까지 이렇게 저렇게 펴낸 책에 바다가 넘실댄다. 


거문도에서 태어나 물질과 낚시를 배우고 뭍에 나가선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다 8년 전 고향에 돌아왔다. 객지에서 포장마차를 할 땐 바다가 그리워 정어리 통조림을 먹으며 고향바다를 떠올렸다고 한다.  


“바다와 떨어질 수 없는 인생” 한창훈은 2010년 펴낸《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문학동네. 2010.9) 개정판인《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문학동네. 2014.8)와 함께 바다에 밥상과 술상을 차려 독자를 초대한다.《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에서 해산물 30종을 펼쳐 침을 고이게 만들었다. 글과 사진을 보며 입맛만 다시는 독자에게 얄미운 소리까지 한다.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말은 한 번도 못 가봤다는 말보다 불쌍합니다.”


밥상 위 해산물은 다양하지만 술상 위 해산물은 갯것 한 가지만 있으면 된다. 술과 이야기가 따라주니까 완벽하다. 한창훈은 해산물을 ‘갯것’으로 부른다. 선재도 구름믈에 사셨던 여섯째 이모는 내가 여름방학에 놀러 가면 갯것을 차려 밥을 먹였다. 뻘을 ‘개흙’이라 하고 바다 일을 ‘갯일’이라고 했으며 선원을 ‘뱃사람’이라고 불렀다. 뱃사람 한창훈이 차려준 갯것은 밥상 위에서 침을 삼키게 하고 술상 위에선 웃다가 눈물이 나게 한다. 능청맞고 쓸쓸하다.


“내 이 별이 뭔고 했더니 허공에 떠 있는 푸른 물방울이었구만 그래.” 2005년 한배를 타고 인도양을 건넌 안상학 시인이 말한 ‘푸른 물방울’은 1861년 쥘 미슐레가《바다》(정진국 옮김. 새물결. 2010.10)에서 말한 “청순한 한 방울의 물에서 짙푸른 대양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인간의 끝없는 구애를 따돌리고 애태우는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푸른 물방울 행성 지구에서 바다작가 한창훈은 “우리는 눈물의 종족”이라고 한다. 슬프거나 기쁘거나 눈물을 흘린다. 대개 그럴 땐 술이 곁에 있다. 바다와 눈물과 술은 액체다. 한창훈의 말처럼 바다를 닮은 가장 비슷한 액체가 술이라면 눈물은 술을 부른다. 아니 바다가 술을 부르던가. 사람들은 바다에 가서 슬프거나 기쁘거나 술을 마신다. 


쥘 미슐레는《바다》에서 상처받은 사람에게 열린 바다를 여인에 비유한다. “바다는 누구에게나 좋고 넉넉하다. 그런데 자연 생활에서 아직 크게 멀어지지 않은 생명들, 부모의 죄로 고통 받는 순진한 어린아이들, 사회적 희생자로서 특히 사랑 탓에, 남자들보다 잘못이 덜한데도 생활에 더 짓눌린 여자들에게 더욱 동정적이며 선의를 베푸는 듯하다. 여인 같은 바다는 그런 사람들을 다독이기 좋아한다. 바다는 자신의 힘을 그들의 나약함에 보태어준다. 바다는 그 영원한 참신함으로 그들의 고민을 씻어준다.” 로맨틱한 바다예찬은 한창훈이 말한 “바다는 어머니처럼 자애롭다.”는 뜻과 상통한다.


바다는 정말 끝까지 자애로울까? 우선 바다를 ‘다독이는 여인’에 비유한 쥘 미슐레 말을 더 들어보자. “바다라는 큰 세계의 일은 현실적이다. 바로 사랑하고 번식하는 일이다. 사랑은 그 밤을 풍요롭게 채운다. 사랑은 깊은 곳으로 잠수하고, 가장 작은 생물에게서 더욱 넘친다. 그러나 어떤 것이 정말 원소일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것을 붙잡아 보면, 여전히 사랑하면서 또 다른 개체로 분리된다. 생명의 가장 낮은 단계에서, 어떤 유기적 기관도 없는 그런 것에서, 이미 모든 생식 형태가 완전하다. 이것이 바다다. 바다는 지구의 거대한 암컷이다. 지칠 줄 모르는 욕망으로, 영원한 수태로 새끼를 낳는다. 절대로 끝이란 없다.”


미슐레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바다가 거대한 암컷이 된 이유는 지칠 줄 모르는 욕망 때문이다. 파도가 잔잔한 날조차 바다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수태를 하고 생산한다. 펄떡펄떡 생동하는 기운은 바다의 생식활동이다. 바다는 때로 폭풍우를 일으켜 긴장을 조성한다. 긴장은 에너지를 분출한다. 그러나 바다의 뜨거운 열정은 바다에 기대 사는 인간에겐 어떤 경우 재난이 된다.


1959년 태풍 사라호. 거문도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 모아서 만든 팔경호는 명절물품을 사기 위해서 추석을 앞두고 출항했다. 그리고 엄청난 태풍이 바다를 휩쓸고 섬을 할퀴고 떠났다. 선원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섬사람들은 시신 없는 무덤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서서 울고 앉아서 울고 누워서 울고 엎드려 울었다. 걸어가다가 울고 오줌 싸면서도 울고 잠자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더 울었다. 길 가다 우는 사람이 나타나면 같이 손잡고 울었다. 또 하루가 가도 변함이 없었다.”


한국말의 감칠맛을 살린 멋진 묘사다. 슬픔을, 고통을, 통증을, 절규를 ‘울다’라는 동사로 반복해서 절절하게 표현했다.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바다에 잃은 사람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심정이 이와 같지 않을까. 대마도까지 밀려 갔던 팔경호는 5일 만에 돌아왔다. 배가 귀항하자 사람들은 기뻐서 또 울었다. 팔경호와 태풍이 바다에서 격전을 벌이는 장면을 묘사한 한창훈의 입담은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와 견줄만하다. 바다는 기름솥처럼 펄펄 들끓고 배는 한조각 나뭇잎처럼 위대태위태하다. 끝없이 솟구쳐 오르는 파도는 윌리엄 터너 작품「바다의 폭풍」이 연상된다. 터너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폭풍이 몰아친 하버항에 나가 네 시간 동안 돛에 몸을 묶고 폭풍을 맞았다. 온 몸으로 체험한 그림이다. 검은 바닷물과 진회색 폭풍은 배를 삼켜버릴 듯 소용돌이친다. 굉음이 화폭을 뚫고 나와 들리는 듯하다.


⊙ 윌리엄 터너(Willam Turner 1775~1851)

<Storm Seam Boat Off a Harbour's Mouth Making Signals in Shallow Water, and Going by the Lead 1842>



바다는 끝까지 자애롭지 않다. 바다를 관조할 상황에서나 자애를 입에 올릴 수 있는 거다. 인간이 자연 앞에서 오만한 영장류 행세를 아무리 자행해도 자연은 한순간에 뒤집어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오늘도 바다는 그대로 있다. 자연의 무심한 태도야말로 인간이 무서워할 대상이다.


그래서 바다를 숭상하자고 한창훈은 말하지 않는다. 바다 이야기를 할 뿐이다. 진부한 표어는 새마을운동 시대에 막을 내렸다. 그 대신 한창훈은 마른멸치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며 거기 바다가 있다고 말한다. “나는 오랫동안 혼자 술을 마셔왔다.”고 운을 뗀 작가의 바닷가 집 이야기는《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에서 가장 쓸쓸하다. 낮에는 물고기를 낚고 밤에는 심연을 들여다본다. 밤배 불빛이 별빛 같다.


“내가 오랫동안 바닷가에서 홀로 살고 있기 때문에 쓸쓸함을 잘 견딘다고 사람들은 여긴다. 사실 잘 견디는 편이다. 살면서 가장 오랫동안 견뎌야 할 것이 쓸쓸함이니까. 그러나 견디는 것과 쓸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뭐라고 말을 갖다 붙여도 혼자 지내는 것은 외롭다. 혹시 외로움을 즐기시나요? 이런 무식한 질문을 어쩌다 받는다. 그러면 나는 외로움을 느껴버리면 이런 곳에서는 못 살죠, 라고 폼 잡고 대답하지만 ‘심하게’라는 부사를 빼고 한 소리이다. 안 외로운 척, 괴롭지 않은 척 하는 태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게 그거다. 태도와 자세를 유지하는 것.”


한자 홀로 독(獨)은 예쁜 글자가 아니다. 외로운 사람, 홀몸, 홀어미, 늙어서 자식 없는 사람 뜻 외에 일본에서는 원숭이를 잡아먹는 큰 원숭이, 외발이, 고립된 산, 짐승이름이란다. 중국에서는 나라이름 촉(蜀 : 또는 벌레)에 개를 뜻하는犭(犬)이 붙었다. 한자사전 뜻풀이에 의하면 개와 벌레는 모이면 싸움을 하므로 싸움을 하지 못하게 떼어놓았다는 뜻이라고 한다. 혼자 살면 싸울 일이 없으므로 일상이 평안하다. 대신 무료함과 쓸쓸함을 감당해야 한다. 한창훈의 말을 빌리면 “평화는 따분하다.”


외로움과 무료함이 짙어지면 집 앞 바다에서 학꽁치를 낚던 한창훈은 큰 배를 타고 대양을 건넌다. 인도양과 대서양을 건너고 북극을 간다. 하루 걸려 수에즈 운하를 지날 땐 밋밋한 바다에 무료해서 내리 잠만 잔다. 대신 꿈에서 바다를 만났다. 내가 일 년에 두어 번 서울에 가서 사람들과 섞이다 오는 이유와 비슷하다. 사람은 외딴섬처럼 살 수 없다. 뭍에서 바다를 그리워하듯 바다에서 뭍을 그리워하는 까닭은 닿을 듯 말듯 한 나와 세계와의 거리를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술이 있다.


“일하다가 배고픕니다. 소주 마십니다. 외롭습니다. 소주 마십니다. 힘듭니다. 소주 마십니다. 일이 남았는데 잠 쏟아집니다. 소주 마십니다. 다칩니다. 소주로 씻어내고 소주 마십니다. 선장이 지랄합니다. 소주 마십니다. 선장 저도 마십니다. 동료와 시비 붙습니다. 소주 마시면서 화해합니다. 그러다 다시 싸우고 또 소주 마십니다. 여자 생각 간절합니다. 소주 마십니다. 고기가 잘 잡힙니다. 소주 마십니다. 고기가 안 잡힙니다. 소주 마십니다. 항구로 돌아옵니다. 소주 마십니다.”


소주 마십니다, 한 구절로 완벽한 한국말을 전달한다. 잡다한 양념 없이 소금만 넣어 제 맛을 낸 대구맑은탕 같다. 왼쪽 가슴에서 턱하니 외로움을 꺼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한창훈에겐 홋카이도에서 마신 일본 술 ‘조빠리(じょっぱり)’가 가장 잘 어울린다. 조빠리는 일본어로 ‘독한 여자’, ‘고집 센’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치면 (화끈하면서 낭창낭창한) 전라도 여자”같은 조빠리는 됫병 소주다. 때마침 폭설이 내리고 선술집에서 마신 조빠리야말로 아직 꺼지지 않는 정념과 이룰 수 없는 인연을 뜨겁게 해소할 술이 아닐까 싶다. “몸속으로 다시 한 번 폭설이 내렸다.”라는 문장에 반해 구글에서 조빠리를 검색했다. 15도 내외의 한국 소주 도수와 비슷하다. 압생트나 보드카처럼 혀에 불을 붙이는 술인 줄 알았다가 내심 실망했지만 그렇다고 한창훈이 술 이야기를 거둘 리 없다.


아라온호를 타고 북극 항해를 했을 때 유빙을 녹여 보드카에 섞어 마신다. 이른바 유빙 보드카 칵테일. 수염고래나 일각고래와 같은 북극고래를 보고자 시도한 항해였다. 시간이 정지된 듯 한 얼음 바다 위에서 보드카를 마시면서 이제나 저제나 고래를 기다렸다. 고래가 뭐관데.



내가 좋아하는 향유고래는 몸길이가 최대 20m에 수컷 몸무게가 57톤, 암컷이 40톤이 넘는다. 1820년 포경선 에섹스호를 침몰시킨 향유고래를 탐구한 후 허먼 멜빌은 소설《백경 : 모비딕》을 썼다. 바다의 최고 거물인 향유고래는 창자 속에 있는 이물질을 바다에서 배설하는데 이것으로 왕과 왕후만이 사용하는 ‘용연향’을 만들었다.


해저 3000미터까지 잠수가 가능한 향유고래는 1869년 쥘 베른이 쓴《해저 2만 리》에선 네모선장이 모는 잠수한 노틸러스호를 공격하는 괴물로 등장한다. 허먼 멜빌이 고래와 힘겹게 싸우면서 고래를 경원의 대상으로 둔 반면 쥘 베른은 제거할 대상으로 본 듯싶다. 쥘 베른은 자연을 인간의 대립개념으로 이해했다. 안 그렇다면 시종일관 바다 생물체를 인간의 진로를 방해하고 헤치는 괴물로 그릴 필요까지 있었을까. 그에 반해 직접 포경선을 타고 고래를 대면한 허먼 멜빌은 자연에 경외감을 품었다. 


“오, 세상에서 보기 드문 늙은 고래여, 
그대의 집은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힘이 바로 정의인 곳에 사는 힘센 거인이여, 
그대는 끝없는 바다의 왕이로다.”_허먼 멜빌.《백경 : 모비딕》_


한창훈은 허먼 멜빌에 가깝다. 고래에 대한 오마주를 빠뜨리지 않는다.

“생명이란 것이 시작되어 가까스로 육지에 올랐을 때 그도 함께 와서 능선과 초원을 거닐다가 어느 날 문득, 땅에 대한 궁금증은 풀렸어, 이제 돌아갈 거야, 이렇게 스스로 바다로 되돌아가버린 생명체. 지구를 연구하는 외계인 박사님께 우리가 추천할 존재는 고래이다. 사람 아니다.”


“우리 행성의 땅과 바다를 동시에 설명하는 최고의 생명체”인 고래 이야기를 한창훈이 소설로 써주었으면 좋겠다. 바다를 닮은 얼굴로 죽고 싶다는 한창훈 아니면 어디에서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될 거다. ‘무심하고 진중하고 고독한 고래’가 그립지만 달려갈 수 없는 사람의 어느 깊은 밤을 향유할 기회가 있으면 한다. 한창훈의 말마따나 이 푸른 물방울 행성(물방울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의 가여운 종족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게 삶의 유일한 미덕 아니겠나. 물론 술을 곁들이면 한창훈도 고래도(고래에겐 나중에 물어보고) 나도 아름답게 취할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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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09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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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봄이 오면

                          5학년 김기년


봄이 오면 할머니가 생각나고

나의 고향도 보고 싶다.

우리 고향에는 꽃도 많이 피고

아지랑이도 핀다.

그리고 강물소리도 난다.




이 시는 강원도 사북초등학교 64명 어린이들이 쓴 동시집《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임길택 엮음. 김환영 그림. 보리. 2006.9)에 실렸습니다. 고향을 떠나 온 어린이가 봄을 맞아 고향을 떠올리며 쓴 시입니다. 봄이 왔는데 왜 할머니가 생각났을까요? 할머니가 햇쑥으로 떡을 해 줬거나 봄나물을 만들어 줬던 걸까요? 꽃과 아지랑이가 피고 강물소리가 났던 것으로 보아 시골이 고향이었던 것 같군요. 어른들 같으면 이런저런 수사를 덧붙이거나 은유법을 동원해 꾸몄을 시를 어린이는 느낌 그대로 곧장 풀어냈습니다. 봄이 왔으니까, 느낌 아니까요.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를 잠시 감상해 볼까요. 엮은이 임길택 선생님(1952~1997) 은 마흔다섯 살에 폐암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탄광마을이나 산골마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탄광마을은 알다시피 가난합니다. 지금은 카지노로 유명한 정선이나 사북, 고한, 태백 등 강원도 중산간 일대 마을을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90년대 초반이므로 관광개발 붐이 일어나기 전입니다. 일렬로 쭉 지은 시멘트 벽돌과 슬레이트 지붕은 석탄가루를 뒤집어 쓰고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검은가루가 풀풀 날렸습니다.


이즈음, 3월 춘분 경인데 심지어 야산에 핀 진달래까지 석탄가루가 내려앉아 있더군요. 밝은 색 옷을 입은 사람도 찾기 어려웠습니다.《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는 제가 봤던 탄광마을 풍경을 재현합니다. 광부인 아버지는 술을 많이 마십니다. 집에 돌아와선 술주정을 하고 어머니와 싸움을 하는 장면이 시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탄 캐는 일은 힘든데 월급은 턱없이 적어 빚 갚을 일이 막막한 사람들의 일상입니다. 생활에 여력이 없으니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새 옷을 사 입거나 장난감을 갖는 일은 꿈도 못 꿉니다.



_나의 꿈

             5학년 염명수


나는 친구가 네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통일이라 하지만

나는 그것이 아니다.

나의 꿈은

먹는 걸 많이 먹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_탄차

            4학년 전형준


탄차가 한 번

지나가면

먼지가 많이 난다.

먼지가 나면

우리들의

마음 속 깊게까지

시커메진다.



_아버지 월급

                 6학년 정재옥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아버지 월급 쓸 것도 없네.



시가 너무 어둡나요? 탄광마을 삶은 어둔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광부의 삶이란, 삶에 어두운 것인지 어둔 것이 삶인지 분간이 모호한 경계에 있습니다. 갱 안은 탄이 묻힌 어둠 속 공간입니다. 불을 밝히지 않으면 앞을 볼 수 없지요. 지상에서 얼마나 깊이 땅 속으로 들어왔는지 계측기가 없으면 알 수 없는 곳입니다. 숨 쉬는 소리와 탄 캐는 기계 소리만 들리는 곳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간 곳이 있습니다. 막장입니다. 막장은 탄을 캐기 위해 뚫은 굴 맨 끝에 있는 갱도입니다. 마지막에 다다른 곳, 막장은 어떤 곳일까요.



_막장

                6학년 노영민


나는 지옥이

어떤 곳인줄

알아요.

좁은 길에다

모두가 컴컴해요.

오직

온갖 소리만

나는 곳이에요.



‘크림 스키밍(cream skiming)’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원유 가운데 맨 위에 떠 있는 부드럽고 단 부분만 떠 먹는 일을 가리킵니다. 경제 용어로도 쓰이는데 기업이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윤이 확실한 부분에만 투자하고 경쟁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속칭 단물만 빨아 먹는거죠. 일상에선 어떻게 쓰일 수 있을까요? 예쁘고 편한 모습에 집중하는 건 어떤가요? 세련된 옷차림, 화려한 명성, 풍족한 식탁, 웃음을 잃지 않는 생활은 잘 차려진 성찬을 대하는 것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정겨운 인사와 포장되지 않은 선의를 주고 받는 사교는 왁스로 잘 닦인 마루바닥을 보는 것처럼 유쾌합니다. 분명 삶에 필요한 윤활유라고 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런데 생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대부분 우울증 원인으로 화제를 돌립니다만 문제는 ‘돈이 없는 우울증’입니다. 없어도 너무 없다는 데 문제가 큽니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일하러 나가는데 빚이 줄지 않거나 심지어 빚이 더 는다고 합니다. 씀씀이가 커진 탓만 해야 할까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탄광마을 어린이들조차 아버지 월급이 콩알만 하다고 푸념합니다. 열 몇시간씩 막장에서 탄가루를 뒤집어 쓰고 일하는데 말이죠. 오죽하면 탄광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탄가루가 걸어 나오는 것 같다고 묘사합니다.



_아버지

             5학년 김명희


아버지는 광산을 팔 년이나 다녔다.

그러나 아직도 

세들어 산다.

월급만 나오면 싸움이 벌어진다.

화투를 져서 빚도 지고 온다.

빚을 지고 온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죽으라고 빈다.

그래도 어머니는 용서 안 한다.

밤에 잘 때는 언제 싸웠냐는 듯이

오손도손 잔다.

그 땐

누나와 나도 꼭 껴안고 잔다.



이 시집은 1970년대, 80년대 초반 지은 시를 엮었습니다. 지금은 탄광마을도 많이 사라졌지요. 당시 이 시를 지었던 어린이들은 마흔 줄이 훌쩍 넘었을텐데, 어찌 살고 있을까요. 탄가루를 얼굴에 묻히고 기침을 하는 아버지는 안녕하신지요. 돈이 없어서 아이 옷 한 벌 변변히 사 주지 못해 애끓던 어머니는 건강하신지요. 더 이상 아버지에게 매를 맞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는지요. 대부분 탄광마을을 떠나 아파트에서 살텐데 빚은 없는지요. 아파트에도 봄꽃이 피었는지요.




오늘은 춘분(春分)입니다. 24절기 하나로 태양 황경이 0°가 되는 때를 말한다고 하더군요. 낮과 밤 시간이 같은 날입니다. 양력 9월 23일 경에 해당하는 추분(秋分)부터 낮보다 밤이 길어지면서 동지(冬至)에 이르면 밤이 가장 길어집니다. 한겨울에 다다른 것입니다. 12월 21~22일경인 동지 이후부터 조금씩 밤이 짧아집니다. 그러다가 춘분을 기점으로 낮이 다시 길어집니다. 봄이 시작됩니다.


새소리가 주지꿩 주지지꿩 쭈삐쭈삐쭈 길어지고 경쾌해졌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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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남진 2015.10.11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이들 내친구들 지금도 연락하고 살지요

 

어제 집에 온 손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인생 이모작 말이 나왔다. 1가구에 한 두 명은 비정규직이나 취업백수가 있는 상황에서 마흔을 넘긴 중년의 이모작 이야기는 서글프다. 늘어나는 교육비와 부동산 거품과 명퇴 불안에 불안정한 노후까지 속시원한 게 없다. ‘피로 사회’를 넘어 ‘한탄 사회’가 아니냐고 ‘씁쓸한 농’을 했다. 

 

농민신문사에서 펴내는 월간지《전원생활》2013년 1월호에 기고한《마흔의 서재. 한빛비즈. 2012.11.21》서평을 옮긴다. 장석주 시인의《마흔의 서재》는 서평집이 아니라 서평 에세이다. 책을 빌려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부분이 크다. 내 책《독과 도》도 서평집이 아니라 서평 에세이다. 서평집과 서평 에세이는 책 내용 소개와 저자의 의견이 어느 쪽으로 무게를 두고 있는가에 따라 나뉜다. 잡지에 수록한 원고 제목은 <인생 이모작을 펼칠 나이, 책을 펼치다>이다.

 




 

 

“마흔은 어느덧 인생의 오후로 접어드는 시기이다. 변변하게 해놓은 일도 없이 천둥벌거숭이로 살아왔는데, 돌아보니 벌써, 마흔이다. 그 누군들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석주 시인은 마흔 즈음의 심경을 콕 짚었다. 나의 마흔은 어땠을까. 오랜 사회생활로 진이 다 빠져서 세상이 시들했다. 삶의 의미도 색다른 즐거움도 없었다. 병든 닭처럼 지내다가 책을 사들였다. 방에 책이 쌓이면서 한 권씩 읽기 시작했다. 책의 매력은 강렬했다. 퇴근 후 피곤한 눈을 비비며 책을 읽다가 잠들었다. 마침내 어느 날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흔의 서재》는 장석주 시인이 85권의 책을 통해 살아온 궤적을 돌아보고 앞길을 살피는 글이다. 작가는 젊었을 때의 실패와 후회를 생각하며 누군가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싶었단다.

 

새롭게 무언가를 하기에는 촉박하고 그대로 남은 생을 살기에는 아쉬운 나이가 마흔이다. 그래서 마흔을 인생 이모작 기준으로 삼는다. 이대로 살 것인가. 새로운 일을 찾을 것인가.

 

“우리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로 인생의 오후로 접어든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나쁜 것은 그릇된 전제를 안고 이 길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의 아침에 가졌던 프로그램으로 인생의 오후를 살 수는 없다.”

 

칼 융이《현대인의 영혼을 찾아서》에서 한 말이다. 불혹을 넘으면 인생은 가을이다. 갈무리를 할 나이다. 따라서 젊었을 때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떠올리고 흔들린다.

 

작가 역시 젊었을 때 운이 좋아 돈도 많이 벌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몸은 고단하고 마음은 불안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다가 마흔 즈음에 시골로 내려왔다. 독서와 산책을 하고, 풀꽃을 보며 번잡함을 버리고 평화를 찾았다. 서재는 서향이 가득하고 마당엔 꽃이 피었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책을 펼치는 밤, 마흔의 긴 밤은 두렵지 않다고 고백한다. “책은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하고 현재의 나를 단속하며 내일의 나를 앞당겨보게 하는 편안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시냇물 흐르듯 조근 조근 다정한 작가의 목소리가 편안하다. 노자, 장자, 공자와 프랑수아 줄리앙에게 삶의 지혜와 소요유를 배우고 J.D 샐린저, 장 지오노, 리처드 바크로부터 세상과의 관계를 탐구한다. 순하고 부드러운 문장은 따분한 오후 같지만 작가의 사유는 깊고 선명하다.

 

“어떻게 하면 더 활짝 열린 존재로 살 수 있을까?” 그래서 죽을 때까지 꼭 하고 싶은 일을 ‘버킷리스트’에 기록할 것을 작가는 독자에게 주문한다. 책은 부박한 세상에서 현실을 위로하고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조력자다. 행복의 가치는 과정을 뚫고 나갈 때 발견할 수 있다는 오래된 진리를《마흔의 서재》는 말한다.

 




 

군소리)

 

1. 마흔, 그 지리멸렬 피로한 나이.

출판사에서 제공하는《마흔의 서재》책 소개는 이렇다.

 마흔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서재가 필요하다. 자신만의 지적 공간에서 오롯이 쉬고, 사유하고, 거기서부터 남은 생의 길을 시작해야 한다. 이 책은 생에 몸살을 앓는 마흔에게 피로한 몸을 누이고, 인생의 초안을 다시 생각하고, 소중한 이에게 편지를 쓰고 고독과 마주하며 자신을 비우고 채울 공간으로 서재를 권한다.

 

소개글처럼 마흔에 누구나 서재를 가질 수 있는 사회는 천국에서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가뜩이나 주택 융자금에 아이들 교육비에 부모님 간병비용으로 허리 휘는 마흔에 서재까지 가지려면 추가 대출이 필요하다. 현실은 이렇다. 하지만 삶이 이렇게 마냥 팍팍해선 숨을 못 쉰다. 굳이 책이 아니라도 ‘뻣뻣해서 끊어질 것 같은 삶을 애무하는 페이브릿이 필요하지 않던가.

 

마흔 살이 되면 뭔가 있을 것 같지만 기대할 것은 없다. 더 가혹한 현실과 구부정한 퇴근길의 그림자가 짙어질 뿐이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마흔 살이 되었을 때 아무 일이 없다면 비교적 괜찮은 삶이다. 그렇게 불러도 될만큼 지금 사회는 충분히 피로하다.

 

마흔은 불혹의 나이다. 유혹이 많다는 뜻이다. 인생의 절반을 허겁지겁 살아왔지만 세상은 더 급변하고 빡빡하다. 몸은 쇠락하고 있지만 아쉬운게 많다. 그래서 불장난을 저지르기 쉬운 나이다. 마흔, 반란의 나이다. 일탈의 나이. 몸 속에 남은 열정을 확인하고 싶은 나이. 젊은 사람을 만나 회춘하고 싶고, 젊은 청춘에 빨려들고 싶고, 젊은 기운에 몸을 던지고 싶은 그리하여 인생의 사춘기시작된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망가지고 싶어서 근질거리는 반항의 나이. 한번쯤은 쌈박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나잇값을 하셔야죠” 책임감에 휘청거린다. 그래서 마흔은 지리멸렬한 청춘의 끝에 마약같은 냄새를 풍기며 찾아오는 불안한 나이다. 뭔가 달라지고 싶지만 달라지기 쉽지 않아서 몸을 떤다. 그러다가 잘못되면 말년에 개털된다는 걸 아는 나이, 마흔은 그렇다. 인생이란 게 끝내 별 거 없지만 별거를 만들고 싶어 몸살을 앓는다. 인생의 대형사고는 40대에!

 

2. 마흔, 인생 이모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그 여자네 집》,《자전거 도둑》등을 쓴 소설가 박완서는 1970년, 소설《나목》으로 데뷔했다. 마흔이었다.《나목》은 한국전쟁 직후 미군부대에서 만난 화가 박수근의 일화를 그렸다. 문단에 얼씬거린 적이 없던 가정주부가 당선됐다고 언론은 호들갑을 떨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작가가 된 것이 아니다. 박완서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면서 책을 읽고 틈틈이 습작을 했다. 수면 아래 열심히 물질을 해서 마침내 강 어귀에 다다른 오리처럼 노력없이는 불가능하다.

 

법관의 직위를 버리고 귀향해서 글을 쓰기 시작한 미셀 드 몽테뉴. 그의 나이 마흔이었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영지의 원형 탑 3층에서 몽테뉴는《인생 에세이(수상록)를 썼다. 독서는 몽테뉴에게 커다란 위안을 주었다. 몽테뉴는 부유한 집안 출신에 관습대로 결혼했고 법관의 명예까지 누렸다. 그러나 몽테뉴에게 진짜 중요한 관심대상은 따로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는 몽테뉴의 평생 화두였다.

 

마흔이 되었지만 삶은 여전히 지리멸렬했던 것이다. “학문보다 달콤한 작업은 없다” 사색과 독서, 지적 탐구심이 1천여 권의 책과 함께 원형 서재 안에서 율동을 했다. 서재에는 성경과 고전에서 따온 57개의 명구를 나무 들보에 칸칸이 새겨 넣었다.

 

 치타델레(Zitadelle. 몽테뉴가 괴테의 자아 개념을 따서 탑에 붙인 이름으로 요새 안에 독립된 별채 성(城)을 뜻함)’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을 쓴 몽테뉴의 인생 이모작은 오늘 날, ‘에세’(Les Essais)로 남았다. 에세이는 흔히 수상록으로 번역되지만 몽테뉴의 입을 빌리자면, 정신의 잡동사니이자 사유 시험(essai)이다.

 

원형 탑에 머물던 몽테뉴는 속박을 벗어나는 방법은 다른 속박에 걸리는 것 외에없음을 깨닫고 문을 열고 나와 여행을 떠난다. 평생의 화두를 풀지는 못했지만 세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불완전한 영혼과 부유하는 속세에서 책으로나마 자신을 위로하는 일이 필요한 만큼 인간은 고독하고 고단하다. 마흔에 시작한 몽테뉴의 인생 이모작은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위로하는 정신》에 상세하게 나온다.

 

3. 버킷 리스트

《마흔의 서재》에서 장석주는 인생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를 작성할 것을 권한다. 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목록이다. 2008년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출 영화 The Bucket List’ 로 더 유명해졌다. 양동이나 들통의 뜻인 Bucket’은 ‘죽다라는 속뜻이 있다.

 

자살할 때 양동이에 올라 목에 로프를 감은 다음 양동이를 걷어차면 로프가 목을 조인다. kick the bucket’에서 유래한 버킷 리스트는 삶을 재조명하고 의미를 고찰한다. 이제까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고 남은 시간을 의미있게 가꾸는 행위다. 인간은 로프에 목이 조이지 않도록 다리를 받쳐 줄 ‘양동이’가 필요하다. 당신의 양동이는 무엇인가.

 

장석주 시인은《마흔의 서재서문에서 “당신의 마흔은 어떻게 찾아왔습니까?” 를 묻는다. 마흔의 버거움을 오스카 와일드의 입을 빌려 인용한다.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연명할 뿐이다. 

 

어떤 결론을 내리는 대신 회의와 의문을 품었던 몽테뉴는 인생을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그 자체로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대가 인생에 마련해 주는 자리의 좋고 나쁨에 따른다.”

 

살고 싶은 대로 마음껏 향유하진 못해도 마흔앓이를 하는 인생 이모작 예비 설계자들에게 약간의 햇빛과 포근한 온기가 깃든 세상은 요원한가. 문득, 컴퓨터 옆에 서너 권의 책을 두고 글을 마치면서 회의가 든다. 생활비와 대출금과 등록금과 노후걱정을 덜고 인생을 즐기는 ‘뽕끼’도 조금 용납하는 ‘숨통 트인’ 사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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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에서 도시로 나온 ‘나’는 열일곱 살이다. 신발뒤축을 꺾어 신거나 쩝쩝 소리 내서 밥 먹는 걸 싫어하고 학교에서 공놀이 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은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도시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아버지의 통제에서 간신히 벗어났지만 타향살이는 만만치 않다. 자취방을 구한 첫 날부터 동네 폭력배에게 두들겨 맞는다. 학교는 폭력이 일상화 되었다. 선생도 학생도 폭력에 익숙한 환경은 폭력에 길들여진 ‘폭력의 이중교배’를 낳는다. 심지어 폭력의 덕목으로 ‘인내’가 등장한다.

“누군가 매를 들면 우리는 어른들의 군대 경험을 떠올렸다. 그들의 증언 속에 항거했다는 말이 없듯이, 우리도 굳건하게 매질을 견뎌내야 했다. 아프고 억울했지만 때리는 이유는 묻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매질을 잘 견뎌낸 아이는 강한 인내력을 인정받았다. 참을성은 우리가 배우고 익혀야 할 최고의 덕목이었다.”-(23쪽)

묻지마 폭력의 인내심 발휘가 요령으로 대두된 장면이다. 다시 말해서 폭력의 원인은 없고 폭력에 대처하는 처세술만 남았다. 이러면 방조세력이 등장한다. 적극적인 충성세력이 직접적 실력행사자라면 방조세력은 폭력의 방관자다. 거기엔 왜?라는 질문이 소거되었다. 따라서 질문이 없는 방관은 폭력을 방치할 뿐만 아니라 폭력의 피해자를 보호하거나 구제하지 않으므로 결국 폭력의 협조자가 된다.

주인공이 같은 반 친구인 영춘 일당과 접전을 벌이는 장면을 숨어서 지켜보던 반 친구는 “그냥 그래버리면 되잖아.”-(42쪽)라고 체념한다. 강자에게 고개를 숙이면 뒤가 편하다는 식의 ‘지나가는 이’-방조자이지만 암묵적 협조자-가 무서운 이유는 이렇게 원인을 의문하는 사람을 보란 듯이 오히려 원인을 방조하거나 은폐를 조력함으로써 폭력 가해자에게 동조하는 것이다.

                                                 ⊙ 한창훈 작가. 사진출처 : 문학동네

흔히 역사를 길에 비유한다. 이런 전제하에서 설명한다면 선명한 길은 목격자의 진실한 증언이 만든다. 길에 죽은 비둘기 시체를 던지거나 쓰레기 더미나 똥덩어리를 퍼부은 사람도 지나간다. 그런데 그런 길을 증명하는 방법은 목격자의 증언이다. 역사의 진실이 궤짝 속에서 녹스는 이유는 ‘알아서 굽히는 무지한 협조’가 있기 때문인데 한창훈은 동네 폭력배를 국가 폭력에 항거하는 전사로 만듦으로써 이 소설에서 인간의 악랄한 본성을 악착같이 추적하는데 실패했다. 개인의 자유를 박탈당했다는 명분으로 전사로 거듭 난 동네 불량배 진구가 계엄군 점령 이전 자신이 동네 양아치로 살면서 저지른 폭력이 면죄부가 될 문제인지 작가는 설명이 없다. 

진구는 패거리와 지역을 장악하고 더 큰 조직의 수하역할을 충실히 했다. 지역정보를 캐서 전달하고 상권을 협박했다. 게다가 양심에 흔들림없이 벙어리 여자를 지속적으로 범한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작가가 진구와 같은 조직 폭력배를 시민군으로 그리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패거리를 조직해서 악행을 일삼으며 아무 가책없이 여자를 상습적으로 범하는 진구의 모습에서 작가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사사로운 폭력이 국가 폭력보다 경미한 폭력’ 이 되려면 진구는 벙어리 여자에게 일말의 책임감이나 애정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계엄령이 선포되고 아수라장으로 변한 상황에서 진구는 자기가 범한 여자의 안부를 걱정하거나 도피시키지 않았다. 자기여자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그렇지 않다면 동네 깡패 진구에게 어떤 동기부여가 생겨 시민군으로 변한 것인지 작가는 설명해야 한다. 단지 위기감 때문으로 해석하자면 ‘깡패생활 존속의 위기감’으로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계엄군의 학살난동 중에도 진구는 자취방에 잠입해 벙어리 여자를 범한다) 항쟁이 끝나면 이런 부류는 다시 깡패로 돌아가고 시민군 활약을 공으로 얻어 더 큰 세력을 키운다. 이런 괴물의 탄생은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계엄 사령관 출신 대통령 탄생과 계엄군 출신 정부 각료들이 증명했다. 그들은 일신의 안녕을 보장받고 더 큰 탐욕을 실현하기 위해 ‘애국을 도용’한 인물들이다.  

혈육 한 점 없이 남의 집에 얹혀사는 장애 여성을 동네 폭력배가 책임감이 부재한 성적 대상물로 삼는 것은 자전거 타고 길 가던 학생을 향해 총을 쏘는 계엄군의 희롱과 오버랩 된다. 폭력이란 경중으로 구분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동네 조무래기들에게 주먹질을 하고 장애 여성을 범하는데 자책감조차 없던 진구가 시민군이 되는 대신에 차라리 ‘기회주의적인 방관자’가 되었다면 이 소설을 통해서 ‘인간내면의 악’ 을 구경하는 재미는 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짐승만도 못한 새끼들이 난장판을 만드는 게 화가 나서” 시민군에 합류한 동기라면 약자에게 폭력행사를 취해 착취를 일삼은 진구 역시 짐승 새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개인 권력욕에 불타 국민을 도륙한 정권과 자기의 지역패권 장악을 위한 욕망의 차이만 있을 뿐이고 이 두 욕망은 약자 탄압이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

광주 항쟁을 소재로 쓴 이 소설이 가정폭력과 학교폭력, 국가폭력이라는 꽤 심도깊어 보이는 조건을 갖고 있음에도 역사소설도 아니고 성장소설도 아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고 악을 지배자의 전유물처럼 다룬 인상은 결국 작가가 폭력의 위험성을 경중으로 나누고 있는 것 같은 혐의가 짙다.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악행은 평범한 사람에게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를테면 “사람이라면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짓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62쪽)는 생물선생님 말과 대비해 볼 때 학교폭력과 동네폭력이 국가폭력과 견줄 때 그 영향력의 섬세한 관찰을 이 소설은 놓치고 있다. 

상처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그래서 폭력의 종류와 강도에 관계없이 작동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국가폭력보다 개인적인 폭력이 더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전쟁통에 강간을 당한 A와 B 두 피해자가 있다고 치자. 이런 경우 문 밖의 전쟁보다 강간의 고통이 더 끔찍한 경우도 있다. 이처럼 똑같은 상황에서 A와 B가 받아들이는 폭력의 체감도는 각자 다르다. 그러니까 '나도 그 아픔 알 것 같아' 라는 말은 '겨우 이 정도 갖고 힘드냐?' 는 말만큼이나 오해의 산물인 것이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폭력으로 인한 고통을 공감하는 것이 한계다. 따라서 자신이 저지른 폭력을 슬쩍 덮고 국가폭력 앞에서 분연히 떨쳐 일어난 진구의 의협심은 조작된 자기기만이며 회피다.(지역사회 폭력보다 국가폭력이 더 큰 문제라는 이런 설정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의도를 알 수 없다. 깡패조차 계엄군에게 저항했다는 식의 의도인 것인가?)

엉성한 이야기 얼개와 반복되는 장면 묘사는 작가의 전작과 다르게 지루했다.《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의 작가 한창훈은 능청맞게 말을 푸는 매력적인 작가였다. 섬에서 섬으로 시집 와 집안일, 밭일, 갯일, 논일을 하다 죽는 섬의 여자들을 촉촉한 눈으로 쳐다봤다. 거문도 태생의 작가는 구불구불한 이력처럼 바닷가 사람을 놓치지 않고 조명했다. 풍경의 외피만 손가락 끝으로 스친 이야기는 감성의 밑바닥까지 가라앉지 않는 짝퉁이라는 점에서 한창훈의 바다 이야기는 깊고 눅진하고 걸걸했다. 결국 글이 주는 힘은 발바닥이 디딘 힘과 비례한다.

바다와 가까운 작가는 켜켜의 문장을 날렵하게 도려 ‘낱말의 회’를 떠서 독자 앞에 올렸다. 짧지만 섬세한 문장은 달고 부드러웠다. 북서풍이 불면 홍합 살이 실해진다는 것도 알려줬다. 그의 첫 소설은《홍합》이다.《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에선 첫 소설《홍합》이 나온 배경이 수록되었다. 80년대 후반 홍합공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이 소설은 1998년도에 썼다. IMF때라 생계가 막연한 상황에서 석 달 동안 방에 커튼치고 윗도리 벗어부치고 작업했다고 한다. 이 작품으로 한겨레 신인공모전에서 당선했고 그 때 전업작가로 출발했다. 

한창훈은 작가 데뷔 이전 현장을 충분히 걸어 다닌 인물이다.
음악다방 DJ, 트럭운전사, 커피숍 주방장, 선원, 건설현장 막노동꾼, 포장마차 사장을 거쳐 전업 작가로 변신했다. 두바이와 로테르담의 대양을 항해했고 수에즈 운하를 거쳐 지중해도 갔다. 야전에서 뼈가 굵은 작가는 자신의 체험담이 곧 글감이다. 그래서 한창훈의 글에선 기력이 넘친다. 구체적이고 선명한 구술체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등단한 문창과 출신의 ‘분칠한’ 글과는 분명 달랐다. 한창훈 글은 핏빛처럼 녹아내리는 노을의 냄새가 났고 펄펄 끓는 가마솥에 푹 곤 볼락 삶는 냄새도 났다. 잡풀 우거진 길에서 바람을 맞는 신선함과 스산함과 따듯함이 어우러진 것이 내가 만난 한창훈의 글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팩트에 픽션이 결합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꽃의 나라》는 울분도 자극도 의문도 섬세함도 없다. 게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잦은 장면 교체로 산만하기까지 하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까 끈질기게, 악착같이, 벼랑 끝으로 밀고 가는 에너지가 부족하다. 나쁜 놈은 끝까지 나쁘게 희생양은 더 가혹하게 만들었다면 이 소설은 분노의 꽃이라도 피웠을 것이다. 물론 제목을 보자면 분투 없이 피어나는 꽃은 없다고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제 아무리 짓밟아도 꽃은 핀다는 상징적 제목과 작가 후기에서 언급한 “미워할 것을 분명하게 미워하지 않아서 생기는 아픔” 을 좀 더 잔인하게 밀고 나가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 <꽃의 나라> : 한창훈(지은이)/문학동네/2011.8.19
*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한창훈(지은이)/문학동네/2010.9.3
* <홍합> : 한창훈(지은이)/한겨레출판/2009.4.10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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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을 미루고 서울에 다녀왔다. 2박 3일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꼬박 밤을 새우다시피 ‘놀았다.’ 국악공연도 보고 미술관도 갔다. 도시에서도 가을볕은 황홀했고 바람은 달콤했다. 밤이 되자 술상을 차려놓고 지척에 사는 후배를 불렀다. 골뱅이 무침과 막걸리를 앞에 두고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을 말했다. 밤은 깊고 추억의 상자는 닫힐 줄을 몰랐다. 새벽 두 시가 넘어 누군가로부터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이 나왔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꿈을 펼쳤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일주일 후 모스크바에 닿는다. 7박 8일 동안 울창한 원시림이 장관인 시호테알린 산맥을 지나 자작나무 숲이 끝나면 바이칼호수와 아무르 강도 건넌다. 마침내 종착역인 모스크바에 한숨을 폭 쉰 기차가 멈추면 여행자는 가방을 질질 끌고 호텔로 간다. 일주일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음식도 맞지 않았다. 그대, 먼 이방인은 지금 왜 여기 온 것인가.

그거야 여행에의 환상 또는 동경이나 역마살이 도진 것이라고 자탄하는 순간 집이 그립다. 장 그르니에는《일상적 삶》에서 여행의 동기를 여섯 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그 중에서 <호기심에 의한 여행> 중 위대한 여행으로 <돈키호테>를 꼽는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결정적으로 호기심의 부재로 인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의도가 실패했다고 그르니에는 말한다. 여행은 그것이 비록 침략의 동기를 지녔더라도 호기심의 발로라는 측면에선 그렇다. 말하자면, 모든 여행은 호기심이 동반된다. 낯선 땅을 향한 호기심, 미지의 만남에 대한 설레임. 이런 면에서 여행은 연애와 닮았다.

물론, 이희인의《여행자의 독서》는 달콤한 연애 대신 지루한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으로 출발한다. 사실은 도스토옙스키를 만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책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초장에 편집한 이유는 도스토옙스키라는 거장을 거론하기 위함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나는 창백한 도스토옙스키를 건너뛰고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곧장 승차했다.

저자가 ‘작은 감옥살이’라고 비유한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중에 그를 구제해 준 것은 친기즈 아이뜨마또프의《백년보다 긴 하루》다. 척박한 중앙아시아의 스텝지역을 기차가 지날 때 간이역을 지키는 역무원의 붉은 얼굴을 보며 읽기에 좋은 책이다. 대륙횡단 기차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리고 여행자는 지도책을 보며 아직 가지 않은 땅을 향해 상상력의 비행을 질주하는 것이다. 비록 “시베리아 횡단 여행자나 원양 항해자도 결국은 정착한다.”는 장 그르니에의 맥 빠지는 패러독스를 들을지라도 여독이 풀리면 여행자는 다시 가방을 꾸린다. 만약에 책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그의 책도 비행기나 기차를 타게 된다. 어떤 책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거나 희망봉을 돌기도 한다.

이희인의《여행자의 독서》는 책과 함께 한 여행에세이다. 여행에세이의 특징답게 간결하고 맑은 글과 사진보는 맛이 있다. 해외여행을 다룬 에세이라 저자가 언급한 책과 작가들도 외국작가들 위주로 구성되었다. 여행지와 구색을 맞춘 책을 언급하고 작가를 호명함으로써 책 읽는 여행자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연출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선 도스토옙스키의《백야》를 읽는다. 백야의 황홀경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심경이란 어떨까. 잘 먹고 잘 살아라, 냅다 원망을 할까. 아니면 주인공 마음을 빼앗아 놓고 떠나가 버린 나스첸카의 편지를 받은 후 “한순간 동안이나마 지속되었던 지극한 행복이여!”라고 감사해할까.

결국 해피엔딩 드라마로 끝나는 연애 이야기는 실패작이 된다. 타인에게는 비극적인 운명을 요구하고 자신에게는 해피엔딩을 원하는 나는 고약한 인간이다. 그런데 여기서 심오한 고뇌 없는 작품이 명작이 된 경우는 없다는 것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엔 도스토옙스키 대신에 크눌프의 경우를 보자. 여행자라면 크눌프여야 어울리는 법.

헤르만 헤세가 서른여덟 살 때 발표한《크눌프》는 방랑자 크눌프의 일대기다. 단편이지만 헤세의 일대기와 닮은 점이 많다. 헤세는 열여덟 살 때 고향 칼브를 떠나고 스물두 살 때는 슈바벤을 떠나고 마흔 여섯 살에는 스위스로 망명했다. 방랑자 헤세는 다양한 지역을 떠돌았고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서점 점원과 토목기사, 사환 등을 거쳐 출판사 직원까지 체험과 글쓰기의 연결이 가능했던 것도 헤세의 방랑벽 때문이다. 크눌프가 시골과 도시를 왕복하고 농부와 철학자와 목사와 여인들을 만났던 것은 헤세 자신의 이야기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크눌프는 헤세가 가장 아낀 인물이다.

그러나 작품이 명작으로서 완료되려면 ‘최후 연출력’이 뛰어나야 한다. “그 후 잘 먹고 잘 살았대요” 식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아무런 각인을 남기지 못한다. 독자는 강렬한 최후를 원하고 그것을 즐긴다. 그것이 인간의 ‘태생적 본능’인지는 모르겠지만 크눌프가 헤세의 상위 작품에 열거될 수 있었던 요건은 방랑벽과 설산에서의 최후가 작동한 것으로 본다. 만약에 크눌프가 고향으로 돌아와 탕자의 옷을 벗고 모범시민이 되었다면? 심심한 크눌프를 참고 볼 수 없는 어떤 독자는 기차나 배를 타고 한밤중에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독자는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면 책을 불태우기도 하고 심지어 작가를 죽이기까지 한다. 그런 게 어딨냐고? 책을 오독하거나 저자와 주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신랄한 인격모독을 일삼는 독자들을 인터넷 검색 한 방이면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이처럼 매번 죽는 위험을 무릅쓰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흥미롭지 않은가.(음, 그러고 보니 나도 여러 명의 작가를 위협했구나)

이야기가 곁다리로 흘렀는데《여행자의 독서》저자인 이희인의 블로그 닉네임은 크눌프다. 방랑벽이 있다는 암시이겠지만 그 덕분에 그가 선택한 책도 세상의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었다. 러시아부터 샹그릴라와 카슈미르를 건너 스페인과 그리스를 갈 때는 부러움을 넘어 질투까지 생긴다. 남들이 쉽게 접근하지 않는 팔레스타인과 미얀마는 호기심의 원천이고 바르가스 요사가 있는 페루와 쿠바의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가노라면 여행벽이 있는 독서가들은 절망한다. 그러므로 여행과 독서를 동시에 이룬 이런 여행기는 하루하루를 ‘지하철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숨을 던져 주지만 다음과 같은 문장은 절망속의 안도라고나 할까.

“여행은 꿈을 이루는 것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따지고 보면 꿈을 하나 둘 잃어가는 것에 더 가깝다. 가슴 속에 고이 간직했던 땅들이 마침내 눈과 코, 발바닥 앞에 벗겨질 때 그 만큼의 감격과 함께 꼭 그만큼의 상실감이 따라온다. 꿈꾸던 곳을 디딘 순간, 꿈이 하나둘 가슴팍 어딘가에서 허무하게 빠져나간다. 처음부터 꿈 따위는 갖고 가지 않는 것이 현명한 여행자일지도 모른다.”-《여행자의 독서, 310쪽》

그런데 생텍쥐페리는 왜 해안선 저 너머로 사라진 것일까. 몽상속의 그는 현명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B612 행성으로 날아간 것일까. 생텍쥐페리는 1943년 드골 임시정부가《전시 조종사》의 판매를 금지하자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왜 내가 전투 비행기에 몸을 싣고 순정한 삶을 살도록 허락하지 않는단 말인가.” 몽상가의 삶은 몽상이고 현실가의 삶은 현실이다. 이렇게 말하면 말장난이다. 크눌프가 방랑과 귀향을 갈등했듯이 헤세가 1920년 에 쓴 <방랑> 중에서 “고향은 너의 내면에 있든가 아니면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 것처럼 여행은 몽상을 통해 현실을 확인하고 현실 속에서 몽상을 잉태하는 왕복 교차선이 아니겠나. 그러니 우리는 목마를 타고 떠난 버지니아 울프처럼 상실감을 예상하면서도 수평선 너머의 낯선 땅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대체 고향은 어디야?)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이희인의《여행자의 독서》는 사실, 분석도 비판도 필요 없다는 듯(굳이 첨가하자면 120쪽의 미얀마 편에서 조지 오웰을 미얀마 군복무자로 기술했는데 이건 오류다. 조지 오웰은 경찰신분으로 근무했다) 약간은 무심한 표정을 짓는 책이다. 저자의 감정이 절제된 너무 착한 이 책을 나는 오른쪽 팔목에 링거 바늘을 꽂고 읽었다. 말하자면, 몸이 아프니까 봄나물처럼 순해지고 싶어서 일부러 골라든 책이다. 마음이 마음을 고르고 마음이 마음에게 다가 가는 것은 연애다. 책도 다르지 않다. 마음결 따라 마음으로 선택한 이 책을 읽는 동안 책을 좋아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새삼 가졌다.

그렇지만 이렇게 착한 책은 내게 매력적이지 않다. 칼칼한 글에 길들여진 까닭 때문이지만 아무래도 여행과 서평을 혼합한 책은 예쁜 소녀시대 비주얼로 그친다. 나와 같은 늙다리에게는 사랑스런 소녀시대이지만 인순이의 허스키보이스에 마음을 준다. 자갈길을 좀 걸어본 사람이 공감하는 야생의 냄새라고 부르자.

이런 의미에서 곽재구의《우리가 사랑한 1초들》은 인간본질에 대해 사유하도록 이끄는 책이다. 이희인의《여행자의 독서》가 여행에의 동경과 저자의 소박한 문장으로 마음을 순화시켰다면 곽재구는 따듯한 호롱불을 밝힌다. 타고르의 고향인 산티니케탄에서 보낸 540일 동안의 에피소드를 엮은《우리가 사랑한 1초들》은《여행자의 독서》보다 더 착한 문장으로 서술되었다. 시인이 들려주는 고졸(古拙)한 문장은 흡사 초등학교 글짓기처럼 꾸밈이나 억지가 없다. 있는 그대로 진행되지만 거칠지 않고 입안에서 술술 말이 돈다. 처음부터 그대로였다는 듯《우리가 사랑한 1초들》은 문자를 빌린 이미지화에 자연스럽다.

가령, 초등학교의 야외수업 장면을 인용해보자. “숲속의 교실에는 새소리가 아침 내내 얼음 알갱이들을 따뜻하게 부숩니다. 원숭이들과 개들, 소들, 염소들, 나비들이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습니다. 꽃들은 여기저기 피어 그 향기가 아득하고 떠돌이 바람들이 이 나무 저 나무 아래의 수업을 기웃거립니다. 나는 숲속의 한 나무 그늘에 앉아 아이들의 수업을 바라보다가 시를 씁니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 46쪽》

젠장, 부럽군. 전쟁으로 불리는 한국의 교육제도를 떠올리는 독자는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장면이다. 하지만 곽재구는 조용하게 말할 뿐이다. “아름다운 학교에서 자란 아이들이 만든 세상 또한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사랑한 1초들, 47쪽》저기요, 그런데 인도 사회가 아름다운 상황인가요? 물론, 시인에게 정치적인 의도로 이런 질문을 던지면 시인은 말 대신 시로 응답하겠지만 이 책에서도 인도의 불평등 사회를 대면하는 시인의 불편한 심기가 여러 번 언급된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살아지는 세상은 없는 것이다. 숲 속 학교의 아름다운 정경도 감탄하고 하얀 종이배를 강가에 띄워 소원을 비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사람이 별 탈 없이 사는 것이 더 좋은 것은 아닐까. 챔파꽃이 시들고 보순또 바하 꽃이 시드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지상에서 가장 쓸쓸하고 마음 아픈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꽃은 이듬해 새 잎으로 피어나겠지만 늙고 가난한 릭샤의 허물어진 집은 지는 꽃보다 더 초라하다. 구멍 난 벽틈으로 쥐와 벌레가 드나들고 흙먼지가 들어와 늙은 릭샤의 폐를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에서 작가는 시종일관 사랑과 아름다움을 말한다. 달빛 냄새가 난다는 조전건다 꽃이 피는 것을 보기 위해 한밤중에도 달려가고 무책임한 가정부에게도 옷을 사준다. 작가에게 사랑이란 열쇠꾸러미 같은 것이어서 어떤 결단을 내리는 순간에도 몇 번이나 주머니 뒤지듯 확인하는 것이다. 하여, 작가가 세상을 보는 애틋한 시선과 숭미(崇美)에 대한 찬가를 이해하려면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수밖에 없다.

“살아오는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내게 사랑과 연민과 고통을, 무수한 음악과 이야기들을 주었지만, 그 음악과 이야기의 바다에서 아주 작은 종이배처럼 나는 많이 행복했지만, 단 한 차례도 저 눈빛과 웃음의 맑음을 알지 못했습니다.”-《우리가 사랑한 1초들, 337쪽》이어서 작가는 자신이 여행한 호수와 산과 사막과 해 지는 포구와 해바라기 꽃이 핀 마을과 사람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나는 꿈과 현실의 국경을 행복하게 잃어버립니다.”

한때 글 짓는 일을 하던 친구의 전언에 의하면 곽재구의 유년기는 남다르다. 2000년대 초반 지역의 문화회관에 초청강사로 온 곽재구는 어렸을 때 주사가 심했던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이 예사였다고 한다. 어느 날 술 취한 아버지로부터 담장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작가는 그 길로 집을 나와 친척과 친구들 집을 전전하면서 성장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떠돌이로 살아온 작가의 이력을 듣고 나서 나는 비로소 오랫동안 책장에서 잠자던《사평 역에서》시집을 다시 들췄다.

남의 집에서 남의 이불을 덮고, 엄마대신 남이 차려준 밥상과 남의 옷을 입고 떠돌며 자란 시인의 허기는 마침내 세상과 사람을 향한 끝없는 연민으로 발화되었다. 작가가 방랑하던 파란 골목길과 사람들이 빠져나간 텅 빈 기차역은 내 스무 살 언저리와 자꾸 겹친다. 우리는 그런 길을 터벅터벅 걸어 저문 강에 다다라 남십자성이나 북극성을 만나는 것 아닐까.

살벌한 군부독재가 사람의 생명줄을 쥐고 있던 1980년대, 나르시시즘에 젖은 시를 쓴다는 이유로 곽재구는 나로부터 잊혀졌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에 대한 가없는 사랑을 가슴 가득 품은 시인의 연민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책과의 인연도 ‘때’가 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나의 오독이 정상참작 되지 않겠지만 “한 꿈의 바다, 한 찬란하고 눈부신 생의 바다”-《우리가 사랑한 1초들, 341쪽》이 한 문장을 읽으며 눈물을 흘린 나도 어느 덧 지천명에 이르렀다.

분명한 것은, 흐르고 흘러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연이라는 것이고 이런 전제하에서 여행은 인연의 발자국이다. 당신은 무슨 책과 누구와 어떤 인연을 맺는 여행을 할 것인가. 물론, 매혹적인 비극 대신에 좀 심심하더라도 행복한 귀환을 기원해 드립니다.





* <여행자의 독서> : 이희인(지은이)/북노마드/2010.11.10
* <우리가 사랑한 1초들> : 곽재구(지은이)/톨/2011.7.25
* <크눌프> : 헤르만 헤세(지은이)/홍경호(옮긴이)/범우사/1998.4.30
* <일상적인 삶> : 장 그르니에(지은이)/김용기(옮긴이)/민음사/200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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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맥주, 밀크티, 여행, 클래식음악, 기다림, 춤추는 인형, 시 쓰는 타자기와 꿈 같은 단어가 반복 묘사되는 황경신의 책 세권을 묶어 읽었다. 《그림 같은 세상》,《초콜릿 우체국》,《슬프지만 안녕》은 잡지 PAPER에 연재된 글을 묶은 것이다. 습작같은 글도 보이고 단막 시나리오도 있는 말 그대로 잡지같은 책이다. 내가 왜 이 책을 집어들었을까 한심스럽기도 했다. PAPER 편집장 황경신의 책은 제목만 봐서도 도무지 내 고딕취향의 독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십대 성장통을 앓는 듯한 내용도 그렇다. 성장통이란 것이 사춘기 완료, 성인 입문의 과정으로 한정지을 필요는 없지만 이 책은 이십대, 또는 삼십대 초반의 사랑에 들뜨고 이별에 아파하는 감성을 자극하도록 만들어진 책이다. 왜냐, 세 권의 책이 모두 부드러운 자세로 글과 그림을 배치하고 있다. 마치 작가가 툭하면 사용하는 ‘밀크티’처럼.

긴 글 읽기 싫어하는 독자에게 어필되는 짧은 글에 몽환적인 문장이 그림을 설명하는《그림 같은 세상》은 출판사의 기획의도가 솔직하게 드러나 오히려 순진해 보인다. 스물 두 명의 화가와 그림을 작가의 느낌대로 서술한《그림 같은 세상》은 그림 에세이다. 그림 에세이는 주로 여성작가들이 시도하는 장르로 감성, 감각이 어쩌고 하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대개 거기에 자아과잉도 걸쭉한 스프처럼 녹아 있다. 청춘의 전매특허인 자아과잉과 예민함.

이런 성격의 책들은 ‘짧은 이야기에 장식적인 문체’가 특징인데 내가 읽고 던진 한젬마의 그림 에세이는 그 중 최악이었다. 황경신의《그림 같은 세상》은 한젬마의 그림 에세이보다는 글이 많다. 많기만 할 뿐 아니라 그림에 얽힌 사연과 화가의 정보도 제공한다. 그러나 그 정보조차 인터넷에서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는 것들이라서 책은 이 때문에 더 가벼워졌다.(이 망할 인터넷아 손들어!)

                                                     ⊙ 작업실에서 작가 황경신

《그림 같은 세상》에서 눈길을 끄는 글은 네덜란드 화가 카렐 파브리티위스의 <황금방울새>에 붙인 시 한편이다. 프랑스 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은《슬프지만 안녕》에서 변주된다. 이처럼 《그림 같은 세상》,《초콜릿 우체국》은《슬프지만 안녕》과 많은 부분 서로 연결되면서 중복되고 있다. 내가 황경신의 책 세권을 묶어서 서평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치 세쌍둥이의 분신술을 보는 것처럼 ‘반복, 그리고 반복, 또 반복’된다. ‘황경신 시리즈’가 된 세 권의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소감은 몇 가지의 프레임만으로 계속 같은 틀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가령, 세 권의 책 내용은 대부분이 사랑과 이별의 테마로 채워졌다. 물론 인형의 세계를 상상하고 세계의 종말을 사유하지만 농도 짙은 건더기까지 잇지는 않는다. 사유하는 지점에서 작가의 글이 멈추면서 다음 이야기에서 또 비슷한 소재를 사용한다. 이런 이유로 황경신의 글은 무질서하고 혼란스럽다. 대형 간판 한 개에 같은 배우가 등장하는 여러 편의 영화를 덧칠해서 그린 것 같다. 요컨대 황경신의 글은 단편으로선 성인동화처럼 뭔가 있어 보이지만 묶어 놓으면 물에 풀어진 물감처럼 흐릿하다. 이야기를 구별하는 경계와 개별적 특징이 없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서평은 세 권의 책을 읽고 구조를 뜯어보는 일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그림 같은 세상》,《초콜릿 우체국》,《슬프지만 안녕》은 ‘반복과 연결의 세쌍둥이’다. 한 작가의 여러 권의 책에 대한 감상이 이렇게 한 통로로 쉽게 가는 것도 드물다. 한마디로 작가 황경신은 가벼운 사람이거나 가벼운 글을 의도적으로 쓰거나 또는 가벼운 것을 가치관으로 삼은 사람처럼 보인다. 오해 마시라. 가벼운 걸 욕하는 게 아니다.

《그림 같은 세상》에 나오는 자크 프레베르의 시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은《슬프지만 안녕》에서 과거 화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 남자로부터 재현된다. 공원에서 행인들이 사준 컵라면과 소주를 얻어먹고 사는 노숙자인 남자는 새 없는 새 장을 그리면서 자크 프레베르를 언급한다. 뭔가 화려한 과거가 있어 보이는 주인공은 시가 상징하는 사랑의 본질, 이를테면 사랑이 찾아오도록 유도하고(알고 보면 치밀한 계산), 찾아오면 사랑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자유로운 사랑, 사랑의 자유. 하지만 기쁨의 노래만 부르는 사랑은 없다. 그런 사랑은 이데아의 세계, 저 너머에 있다.

인간의 사랑은 오욕칠정의 나선형 구조로 얽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이야기는 왜 중단되지 않는 것인가. 슬픔과 아픔과 고통과 그리고 약간의 기쁨이 사랑의 테마다. 그 새우 눈물만큼의 도취에 빠지는 것도 사랑이다. 파국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것. 사랑은 난공불락의 감정이다. 아, 어쩌라고 사랑은 내게 왔단 말인가. 불치병처럼 심장에 사랑의 기운 한 점이 콕 박힌 순간 우리는 한숨을 쉰다.

물론, 황경신은 리얼다큐에서 보는 것 같은 무지막지하고 막나가는 끝장까지 다 보는 폭주족 같은 사랑은 말하지 않는다. 황경신의 사랑은 TV문학관의 첫사랑, 황순원의《소나기》같은 맹물같지만 꽤 오래 남는 사랑이다. 멈칫멈칫 하다가 몇 번 아프고 울고 그리고 이별하는 사랑이 황경신의 사랑이다. 동화 속의 사랑이 이러했나.

                                                 ⊙마르크 샤갈, <생일>, 1915년작

동화 같은 사랑에는 흐트러진 침대도 없고 급하게 벗어놓은 옷가지도 없다. 키스하는 장면도 안 보인다. 그와 그녀는 벙어리장갑을 선물하고 잠깐 손을 잡을 뿐이다. 육체는 없고 사랑의 감정만 남은 황경신의 사랑은 마치 샤갈의 그림 <생일>처럼 ‘육체의 무게 없이 영혼만 존재’하는 사랑이다. 아오리 사과처럼 덜 익어 시큼한 사랑이 황경신의 사랑이다. 아직 세상의 때가 덜 묻은 담백한 수채화 같다. 이런 사랑을 나 같은 늙다리는 추억이라고 부른다. 나도 요로코롬 투명하고 말간 레몬티같은 시절이 있었다우! 

아니나 다를까. 황경신의 추억은 파랗거나 노랗지만 대개 오렌지색이다. 짧은 단막극같은 ‘한뼘 스토리’인《초콜릿 우체국》에서는 오렌지 추억이 많다. ‘오렌지색 어항’을 추억하고 ‘오렌지색 셔츠’를 입은 그를 추억한다. 옛사랑에게 초콜릿을 보낼 수 있는 초콜릿 우체국 문은 ‘오렌지빛깔’이다. 그녀는 ‘오렌지색 머플러’를 기억하며 초콜릿을 보낸다.《슬프지만 안녕》에서도 ‘오렌지색 셔츠’를 입은 그와 백마역을 간다. (곰스크 대신에 백마!)

이쯤에서 힘 빼고 잠깐 추억하자. 나도 ‘백마 추억’이 있다. 스물 두 살인가 세 살인가 몇 번 갔었다. 신촌역에서 경의선 기차를 타면 한 시간도 안 걸렸다. 1980년대 중반이다. 들판과 야산이 동그랗게 앉은 시골마을이었다. 신촌에서 찾아오는 대학생들로 인해 술집 몇 개가 조약돌처럼 띄엄띄엄 있던 곳이다. 한번은 친구와 대낮에 갔다. 지붕이 낮은 작은 술집에서 파전에 소주를 마셨다. 주인아저씨가 옆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 제목은 잊었지만 백마는 잊지 못한다. 몇년 후 한 남자와 다시 백마를 갔었고 나는 그곳의 한 카페에서 고개를 숙인채로 “우리 그만 만나요”라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울창한 소나무가 다 사라지고 아파트와 상가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찬 술집거리를 가로질러 혼자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황경신의 사랑’은 이즈음의 내 추억과 중첩된다. 전화만 받아도 뺨이 붉게 물들고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던, 팥빙수 국물처럼 달콤하게 남은. 추억을 오렌지색으로 그린 황경신의 사랑은 그래서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이름 없는 주인공들 때문에 모호하다. 그와 그녀. 익명의 사랑을 관찰하는 작가는 상상력의 힘을 발휘해서 나중엔 인형동호회까지 만든다. 

그 인형이 그냥 인형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몰입하지 않는다. 숨 가쁘게 살아오면서 이성은 냉정한 것이고 냉정함이 지성이라고 단정한 때문이다. 그러니까 책을 읽으면서도 무아지경의 즐거움을 배척하고 이렇게 구조를 해부하는 만행을 부린다. 오해로 가득찬 ‘해부의 쾌락’을 즐긴다면 그건 딱 내 얘기다. 
세 권 모두 서평공책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인데 굳이 공책에 페이지를 적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화살표 쭉 긋는 연결대목이 꽤 되었는데 앞에서 인용한 자크 프레베르의 시 외에도 몇 개를 추리면 다음과 같다.

《초콜릿 우체국》에서 타자기를 의인화했던〈거기 아무도 없나요〉는《슬프지만 안녕》에선 벤치에서 만난 시 쓰는 여자가 갖고 나온 타자기를 연상시킨다. 시를 쓰던 남자로부터 버림받은 타자기는 시 쓰는 여자를 만났다. 무겁지만 여자는 타자기를 들고 다닌다. 그러므로 “너의 존재가 점점 무거워져”-(초콜릿 우체국, 56쪽)라는 이별 통고로 버림받았던 타자기는 새 연인을 만나 다시 시를 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면 사랑은 계속된다.

그러나 끝내 버림받은 사랑은 어떻게 삶을 지속할까. 친절하게도 작가는 그렇다고 서둘러 생을 마칠 이유까지야 없다고 조언한다.《초콜릿 우체국》에 수록된〈DOLL'S BAR〉는 인간으로부터 버려진 인형들이 밤마다 모이는 카페다. 한때는 총애를 받았지만 버림받은 몸이 된 인형들은 밤에 모여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다가 새벽이 오면 헤어진다. 그들은 유령처럼 사라지지만《슬프지만 안녕》에서 재회한다.

그것도〈장밋빛 인생〉이다. 비만 오면 외출하는 인형 마리는 장미 세 송이가 유리컵에 놓인 카페 ‘장밋빛 인생’을 찾아간다. 그곳엔 아직 피지 않은 장미꽃, 활짝 핀 장미꽃과 시든 장미꽃이 있다. 시든 장미꽃을 놓은 이유를 카페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모두 외롭거든요. 누군가의 친절, 누군가의 포옹, 누군가의 키스, 그런 걸 원해요. 꿈이나 마법 같은 거. 그리고 그걸 찾아서 돌아갑니다. 하지만 현실을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 항상 시든 장미가 필요한 거죠. 인생이란 순식간에 끝나 버린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서 말입니다.”-《슬프지만 안녕, 140쪽》

사랑하고 이별하고 상처받고 위로하는 이 책의 문장을 다이어리에 적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위로. 여기까지 오는 과정도 힘들었으니 내 인생에 박수를 쳐주자는 가수 현숙의 노래도 있다. 괜찮다. 따듯한 코코아차도 마시고 내가 나를 안아주고 성에 안차면 한밤중에 나를 위한 만찬도 차려라. 나를 사랑하고 살뜰히 아끼는 일이 필요할만큼 세상은 충분히 서먹하고 외롭다. 

“다들 믿고 싶은 겁니다. 세상 어딘가에 장밋빛 인생이 있다는 걸 말이죠.”-《슬프지만 안녕, 141쪽》그래서 그 장밋빛 인생이 있는 곳은 곰스크일까.《초콜릿 우체국》에 수록된〈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독일작가 프리츠 오르트만의 동명소설《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인용한 것이다. 한 신혼부부가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타면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끝내 곰스크로 가지 못한 채 끝난다. 곰스크는 실제 존재하는 지명이 아니지만 주인공은 곰스크가 실제 있다고 믿는다. 곰스크는 어디쯤 있을까. 작가는 곰스크 상징성을 슬쩍 젖혀두고 “기차에서 내리지 않았다면 곰스크로 갈 수 있었을까?”-《초콜릿 우체국, 32쪽》라고 묻는다. 

                                                    ⊙곰스크는 어디에 있나요?

곰스크로 가는 기차역의 철도원이라도 되는 양《슬프지만 안녕》의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인생여정을 관찰하는 작가의 시선을 한 문장으로 피력하고 있다. “이것은 나의 아름답고 고요한 풍경 속으로 잠시 들어왔다가 사라진, 삶과 사랑과 세상과 슬픔에 관한 이야기들” 끝내 곰스크로 가진 못했지만 주인공은 절망하진 않았다.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슬퍼하고 누군가는 잠시 행복해하지만 지구는 그래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돈다는 거지.

“그러니까 세상의 종말을 위한 사과나무가...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모든 것이 이렇게 평화로운 거구나...”-《슬프지만 안녕, 164쪽》처럼 곰스크는 작가의 선배인 기형도가 타고 떠난 비행선 착륙지일수도 있고 세상 종말을 지켜보는 사과나무가 있는 언덕일수도 있다.

그 세계의 끝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작가는 세상으로 난 창문을 통해 관찰자의 눈으로 삶을 그린다. 그 또는 그녀로 호칭되는 익명성의 관찰은 공감대 형성면적이 넓지만 발목까지만 빠진다. 그래서 황경신의 글은 슬프지만 끝내 슬프지 않고 아프지만 아프지 않다. 내가 지어낸 말장난 같지만 작가는 말한다.

“그곳에 이르면 나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용서 받은 후 영원히 평화로운 잠 속에 잠길 수 있을 것이다. 달콤하지도 않고 씁쓸하지도 않은, 격렬하지도 않고 부드럽지도 않은,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 모든 감정이 무(無)로 돌아가는, 잠”-《슬프지만 안녕, 172쪽》

황경신의 소설은 이야기의 배경에 항상 회화적 배색을 칠해 놓고 시작한다. 작가의 화실 경험과 그림에 대한 애정이 개입된 혐의가 짙은 글쓰기는 흡사 객석에서 연극무대를 보는 듯하다. 세심한 소품까지 묘사하는 장식적인 표현과 시선이동의 디테일 묘사가 뛰어난 황경신의 문체는 가벼워서 훅 불면 날아갈 듯 너울댄다. 작가는《슬프지만 안녕》의 책날개에서도 “더욱 가벼워져서 이 아름다운 세상과 온 마음으로 소통하고 싶다.”고 밝힌다. 세 권 모두 감각적 문체와 비유 때문에 황경신의 나이를 30대 초반쯤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작가는 1965년생이다.





*<그림같은 세상> : 황경신(지은이)/아트북스/2002.12.2
*<초콜릿 우체국> : 황경신(지은이)/북하우스/2004.6.17
*<슬프지만 안녕> : 황경신(지은이)/김원(사진)/지식의숲/2006.4.15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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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 만 수 2011.08.17 0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그만 지구란 공간속에 무수한 무명의 생명들이 시절 인연따라 놀고 있었고 있고 있겠네.님은 항상 그자리에 있는 데 예나 지금이나 또. 우리는 그 영을 그리네.생명이란 없고 있네.해질녁 산 모롱이 연기 피어나는 곳 오늘도 난[우린] 한 발자국 걷네. 한 마음이 없는 데 그 마음에 의지하고 인간이란 탈을 쓰고,그 언젠가 오실 그 님. 인간이 추구하는 조그만 편린 조각을 맞추고 또 맞추고. 벌써 닭이 먼동이 터온다.그 시절 그 공간에 너와나 손잡고 함께 춤추는 그런 시공간 항상 놀고 있는 그 자리가 선

  2. 까까 2011.08.17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페이퍼가 아직도 나오는 모양이죠? 이 두 권은 제 취향과는 거리가 먼 (싸이 미니홈피 및 SNS 프로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유형의)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만 요즘 젊은 사람들을 사로 잡는 분위기가 그러하니 이해는 합니다(그러나 저도 젊은 사람입니다). 이 소설들 얼마나 팔렸을라나? 나는 왜 이게 궁금한 걸까...

  3. 벼리 2011.08.20 1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중성이라는 이름을 띄고 나오는 이런류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은 결국 독자에게 무엇을 남기는것인지 가끔 의문이 듭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김성동의《염소》는 꽂혀 있던 자리 아래 바닥에 앉아서 단박에 읽었다. 작가의 에필로그까지 합쳐도 150쪽이 안 되는 책이다. 중간에 펜 삽화가 시원시원하게 박혀 있는 이 책은 1981년 5월 10일 초판 1쇄를 찍었다. 이미 대출 한도인 다섯 권의 책을 가방에 넣은 상태라《염소》는 도서관에서 읽은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다가 또 우연찮게 김성동 작가의 근황을 잘 아는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염소》가 떠올랐다. 그래, 염소 쓰자. 명색이 ‘6년차 염소 치기’ 아닌가.

《염소》는 ‘생후 8개월짜리‘아질개’염소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짧은 생애를 돌아보며 시작한다. 아질개는 ‘새끼’, 또는 ‘어리다’의 순우리말이다. 어른동화인《염소》는 이처럼 지금은 사용하지 않거나 잊혀져가는 순우리말을 많이 섞어 썼다. 표준어로만 쓴 소설을 읽다가 이렇게 순우리말을 섞어 쓴 소설을 읽으면 ‘낱말의 리듬’을 체감하게 된다. 마치 심심한 흰 쌀밥만 계속 먹다가 잡곡밥을 먹을 때처럼 언어가 가진 상징과 은유와 비유와 상상력을 천천히 곱씹을 수 있다. 

살이 안 쪄서 빼빼라는 이름이 붙은 ‘나’는 말발굽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는 야트막한 산과 붕어가 뛰노는 맑은 개울이 있는 작은 산골에서 태어났다. 꽃과 나무와 새와 어린아이들이 있는 곳이었지만 가난을 대물림하는 마을이기도 하다. 어느 날 빼빼는 주인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낯선 곳으로 팔려간다. 탈출을 시도하지만 끝내 사람 손에 잡히면서 이 소설은 끝난다.

어른동화라고 소개된《염소》는 우화(寓話)다. 우화(fable)는 동, 식물의 이야기를 빌려 인간세상을 풍자한다. 우화는 대개 교훈을 던지면서 결말이 난다.《염소》도 우화의 정통성을 지키듯 독자를 향해 뜨거운 질문을 마지막 문장으로 넣고 있다. 최후를 맞이한 빼빼는 유언처럼 자신의 목을 따는 칼잡이와 그것을 목격하는 독자를 향해 묻는다. “사람들은 어째서 살아 숨 쉬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요?”-(140쪽)

산골마을에서 도시로 팔려 나오기 전에 짧지만 행복했던 시절이 빼빼에게도 있었다. 들판에서 새와 꽃과 나무를 보며 아름다움을 관조했다. 자연 속에 섞인 티끌하나 없던 자유로운 행복이었다. 홍싯빛 노을이 마을의 저녁을 물들이면 주인집 아들 엄돌이와 함께 들판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엄돌이와 함께 자연 속에서 마냥 행복할 줄 알았던 빼빼는 어느 날 주인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엄마가 사라진 후 부쩍 외로움을 탔다. 엄돌이는 빼빼가 팔려 나가던 날 부엌에서 혼자 울었다. 어른에게는 한 개의 사물에 지나지 않는 염소이지만 아이의 눈에는 생명인 염소. 생명을 가진 존재이므로 공유한 시간만큼 정도 깊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째서 살아 숨 쉬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냐?”는 질문에 “사람은 아이였을 때만 온전한 사랑을 한다.”  고 나는 대답한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돈과 출세와 명예와 권력욕망과 지적욕망도 성장한다. 따라서 어른이 될수록 사랑의 방식과 내용과 의도도 변한다. 즉, 자아와 타자를 둘러싼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계산에 의해 작동된다고 본다. 이미 사랑의 순결을 상실한 어른은 자기중심적이고 자기편의적인 사랑만이 사랑의 재단 위에 헌정하는 것이다.

《염소》는 1980년 광주민주항쟁 직후에 쓴 소설이다. 살벌한 군부독재 치하에서 작가의 서랍 속에 숨죽이고 있다가 1981년 세상에 나왔다. 그 때문에 이 소설 속의 염소는 저항하다 제거 당하는 시민으로, 염소를 흥정하며 칼을 잡는 사람들은 신군부로, 자유를 주창하다 죽는 늙은 염소는 민주화 투사로 대입이 가능하다.

그러나《염소》에서 흥미롭게 주목 할 인물은 돼지다.
나는 대개의 리뷰에서 언급이 안 된 돼지를 주목했다.(남이 다 하는 짓은 흥미가 없다) 작가가 설정한 ‘무사안일 돼지’의 상징성은 자유와 생명의 존엄성을 상징하는 빼빼만큼이나 소설의 중요한 메타포다.

아직 엄돌이와 한 집 식구였을 무렵의 빼빼는 엄마조차 사람 손에 이끌려 사라진 후 상념이 많아졌다. “염소는 어째서 사람들에게 끌려만 다녀야 하는지, 그리고 나를 마음대로 끌고 다니는 커다란 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어째서 또 이마에 깊을 골을 파면서 한숨 같은 담배연기를 뿜어내야만 하는지.”-(59쪽).

이 때 옆방의 돼지가 하는 말이 걸작이다.

“애태운다는 건, 그건 사람들이나 하는 거야. 우리 짐승들은 그저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주면 주는 대로 먹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고, 눈 감으라면 감고, 귀 막으라면 막고, 입 다물라면 다물고, 그렇게 한세상 사는 거야. 그게 편해.”-(60~62쪽)

남들하고 같은 대열에 서서, 튀거나 다른 길로 가지 않고 이탈 없는 삶. 주어진 제도에 이의제기하지 않는 삶. 그게 돼지가 말하는 편한 삶이다. 현실에 순응하는 삶이 보장하는 것은 안전이다. 변화가 품은 불안함과 제도권이 보호하지 않는 위험한 것으로부터의 안전. 그것만 보장받는다면 내 울타리 바깥으로 시선을 던질 일도, 울타리를 부수고 뛰어넘을 일도 없다.

넓고 넓은 미지의 땅과 바다는 별의별 사건사고와 위험이 도사린다. 아가, 너도 이 아빠만 따라 해라. 대양(大洋) 따위는 잊어버려. 그러나 누군가는 울타리 안쪽의 안전한 보장을 견디지 못한다. 울타리는 일정한 안전을 보장받지만 그 대신 자유를 저당 잡힌다. 그래서 바다로 뛰어내렸다. 누가? 빠삐용 말이다.(나는 절벽아래 바다가 무서워 도시에서 촌구석으로 뛰어 내렸다)

빠삐용도 그렇지만 어딘가로 뛰쳐나가는 사람은 이 소설 속의 빼빼처럼 생각이 많다.

“깜깜한 어둠의 저쪽에는 무엇이 있으며 눈물처럼 빛나고 있는 저 별들엔 누가 살고 있는지, 아아라히 먼 하늘의 끝에는 무엇이 있으며 저 산 너머에는 그리고 또 어떤 세상이 있는 것인지.”-(57쪽).

빠삐용은 안전을 포기하고 자유를 선택했다. 물론, 절벽에서 아무나 뛰어 내리는 것이 아니다. 빠삐용이니까 가능하다. 왜? 빠삐용은 안전은 구속이며 자유는 생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영화《빠삐용》에서 가장 강렬하고 아름다운 장면도 비록 아주 잠깐동안이지만 주인공 스티븐 맥퀸이 한 마리 나비처럼 바다 위를 훨훨 나는 장면이다. 빠삐용(Papillon)은 프랑스어로 ‘나비’다.

빠삐용은 살아서 자유를 찾는데 성공했지만 빼빼의 저항은 최후를 맞이한다. 빼빼의 자유와 생명을 강제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돼지는 무지한 방관자다.《염소》에 등장하는 돼지는 주는 대로 먹고, 하라는 대로 하는 자기 삶의 수동적 방관자다. 자기 것만 안전하면 만사 장고 땡이다. 한 지붕 아래 거주했지만 빼빼가 팔려 나가는 날도 개의치 않고 구유통만 뒤진다.

무사안일하고 무지해서 인식능력을 상실한 방관자 돼지는 권력의 전횡에 암묵적 동의를 표함으로써 칼을 손에 든 사람을 돕는 협조자다. 늙은 염소의 말처럼 “마침내는 사람의 손에 죽게 되”는 운명이지만 자존감을 갈구하는 빼빼와는 다르게 돼지는 권력에 복종한다. 돼지에게 (자유를 향한)저항이란 곧 ‘행복의 죽음’이다. 그러므로 권력자를 향해 무조건 복종하는 돼지의 행복은 꿈도 갈등도 없는 ‘잿빛 유토피아’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가 시작되면서 김진숙 노조위원은 6개월 동안 85호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다.’ 그것은 그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지 ‘산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동안 제공되던 전기와 물과 식량조차 하나씩 끊기고 있다는 소식이 7월 둘째 주부터 들려왔다. 제2차 희망버스가 다녀온 직후다. 나와 팔롱을 맺은 대부분의 트위러들은 인간이 인간을 강제하고 압제하는 상황을 지켜보며 아프고 괴롭고 분노한다. 그들이 좌파라서가 아니라 ‘인간 존엄성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내가 사는 시골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이 사태를 잘 알지 못한다. 대개 노인들이라 잘 모르고 장년층은 알지만 장맛비에 논둑 무너질까 먼저 걱정이거나 사태를 오해하고 있다. 심지어 “기업이 어려운데 뭐 하는 짓이냐”는 말도 한다. 기업의 경영실패를 노동자 정리 해고로 해법을 모색하는 경위를 모르기 때문이다. 정부발표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애국심을 강조하며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는 사안에 대해선 침묵하는 사람은 빼빼를 향해 “생각하지 말라”던 돼지와 겹쳐진다. 인간에게 ‘회의하고 갈등하는 생각의 힘’을 제거하면 육체라는 사물화 된 물질 외에는 남는 것이 없다.

그래서 자유와 생명을 질문하고 갈구하다 최후를 맞는 빼빼는 말한다.

“내가 사람의 손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움직였을 때, 나는 이미 힘없이 끌려만 다니던 어제의 염소가 아니라는 것을.”-(137쪽)

김성동은 1979년 첫 장편소설《만다라》를 발표하면서 파계승 출신의 작가로 주목을 받았다.《만다라》는 젊은 수도승의 고뇌와 방황을 통해 수행자의 자아를 조명하는 소설이다. 1981년 임권택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어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전무송이 땡초 지산스님 역을 맡았고 안성기가 그를 모시고 따라 다니는 젊은 수좌승 역할을 했다. ‘만다라(曼茶(陀)羅, mandala)’는 라마교에서 발달한 불교의 형상을 그림으로 나타낸 상징적인 불화다.

요즘 20, 30대 독자는 김성동을 잘 모른다. 어쩌면 한국영화사에서 한 획을 그은《만다라》조차 생경할지도 모르겠다. 2003년 12월《김성동 천자문》이 잠깐 세간에서 화제가 되고는 다시 잠잠하다가 2010년이 저물어가는 즈음에 녹색평론사에서《현대사 아리랑》을 펴냈다. 해방 후부터 현대까지의 한국 현대사 인물평전인 이 책은 그러나 독자층이 한정된 까닭에 큰 호응을 얻지 못한 작가의 최신간이다.

《염소》첫 출간 당시 작가는 “사납고 억센 글을 쓰고 싶다”고 피력했다. 군사독재의 압살을 목격하면서 성나고 고통스러웠던 까닭이다. 사납고 억센 글로 나쁜 사람들을 몰아내고 싶었다던 작가는 2002년 개정판을 내면서 ‘탐욕스러운 이기심’을 또 아파한다.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의 탐욕은 변한 것이 없단다. 오히려 증폭하는 자본의 횡포가 ‘염소와 돼지’를 분열시키는 것은 아닐까 요즘 인식의 양극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의 책장을 덮을 즈음엔 루쉰의《아Q정전》이 떠오른다. 노예에 길들여지면 나중에는 노예가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노예를 지키기 위해 압제자와 공모하는, 인간의 노예근성 말이다. 조지 오웰의《동물농장》에선 독재자 돼지 나폴레옹이 글 읽는 염소 뮤리엘을 비롯해 권력에 복종하는 노예를 길들인다. 협박과 회유와 꾸짖음과 폭력에 길들여진 ‘내 안의 노예’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성동의《염소》는 우연의 발견이지만 염소의 자유와 생명을 강제하는 염소치기 내 입장에서는 운명적인 만남이 된 책이다. 나는 염소(생명)의 강탈자라는 업보를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염소의 자유는 물론이거니와 나 자신의 생계 수단으로부터의 자유도 여전히 구속 상태다.






<염소> : 김성동(지은이)/정준용(그림)/청년사/2002.9.12
<동물농장> : 조지 오웰(지은이)/도정일(옮긴이)/민음사/1998..8.5
<아Q정전> : 루쉰(지은이)/자오엔녠(그림)/이욱연(옮긴이)/문학동네/2011.2.25
<만다라> : 김성동(지은이)/청년사/2005.2.18
<현대사 아리랑> : 김성동(지은이)/녹색평론사/2010.12.24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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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펠릭스 2011.07.18 2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정도가 되면 각각의 개체에서 공통적인 키워드를 찾아내는 재미를 갖게되는데요.

  2. 김 만 수 2011.08.17 0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꿈은 꿈으로 생의 골짜기엔 그 시절 그 공간에 존재한다.너와나 생사 윤회 그 시절 인연 따라 피고 지네. 물 한 방울에 팔만 사천 생명이 그 공간에 놀고 있었고 오늘 나도 그 시절 그공간을 잡고 있구나.아 조그만 지구라는 행성에 몸둘곳몰라 빈하늘만 바라보다 저하늘에 북극성 남십자성 그리워만 하는 너와나는 천상 천하 홀로 가는 뭇생명이 그시절 그공간 있고 없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