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복궁 야경


2014년 작고한 한겨레 신문 건축 전문 기자 구본준이 쓴《세상에서 가장 큰 집》(구본준 지음. 한겨레출판. 2016년 11월)에서는 “건축은 태생적으로 ‘공공적’인 분야”라고 한다. 건축이 공공분야인 이유는 건물을 지은 설계자나 건축 소유자뿐만 아니라 이용자와 건물을 보는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보면 책에서 다룬 궁전이나 신전도 특권층을 위한 건축이었지만 당대 시대상을 반영하고 민중의 삶과 관계있었으므로 공공건축물이라고 본다.

 


■ 기둥을 사랑한 인류

신전과 궁전 규모는 권력을 상징한다. 당대 모든 기술을 응집한 결정체이며 문화예술 정수이다. 기존 건물보다 더 크고 더 정교하고 더 아름답게 짓는 설계를 동원한다. 새 공법을 적용했고 차별적인 디자인을 추구했다. 더 크고, 높고, 길어야 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빠트릴 수 없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기둥이었다.

 

기둥은 단순히 지붕을 떠받치는 물리적 기능에 그친 것이 아니다. 책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집트 하트셉수트(Hatshepsut) 장제전은 집이 길어지면서 기둥이 늘어난 가장 극명한 예시이다.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 계곡 아래 3단으로 지은 장제전은 죽은 왕을 모신 것으로 알려졌다. 3,500년 전 고대 이집트 여자 파라오 하트셉수트 때 지었다는 기록으로 봐서 사후 세계를 건축한 것 같다. 극도로 단순한 직사각형 건물에 네모난 줄기둥을 세웠다. 절제와 엄격함이 베어 나오는 이 건물에 유리창을 달면 현대 건물로 손색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 하트셉수트 장제전


기둥의 시각적 이미지는 반복과 웅장함이다. 같은 기둥을 반복해서 세운 열주는 건물에 진중함과 거대함을 부여한다. 2,500년 전 지은 파르테논 신전은 하트셉수트만큼 절제미를 뽐내는 대신 안정적이다. 서양 건축의 고전이 된 파르테논은 기둥지름과 길이, 두께 비율을 따져 지었다고 한다. 웅장한 돌기둥 때문에 서양 건축사의 기준이 된 파르테논은 그리스 건축 특징인 비례미학 절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저자는 “기둥이 줄지어 설 때 장중함, 숭고함이 드러납니다.”고 말한다.

 

파르테논을 기준으로 삼은 서양 기둥 건축은 이후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기둥 양식으로 변주한다. 베를린 구 박물관, 영국박물관, 경희대학교 본관 석조전은 파르테논 신전 기둥을 본 땄다. 그러나 줄기둥이라면 미켈란젤로가 78세에 설계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을 빼놓을 수 없다. 책에 따르면 바티칸 산 피에트로 대성당 광장에는 도리아식 원기둥 284개, 각기둥 88개, 지붕에 대리석 성인 조각상 140개가 있다고 한다. 설계는 이탈리아 바로크 대표이자 로마를 설계한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했다.

 

저자는 신성한 절대 신을 추구하는 건축 상징은 줄기둥밖에 없다고 한다. 성당 앞 광장에 압도적인 줄기둥만을 세움으로써 신을 향한 절대 순종을 드러낸 것이다. 예배하고 경배하는 장소에 절제미를 부각시켜 신성을 극대화했다. ‘위요(圍繞)’감 극치를 보여준 줄기둥은 그리스도가 두 팔로 인간을 품는 형상을 한 것으로 해석한다. 종교를 이해하고 숭모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설계이다.

 

신전은 신을 모시고 추앙하는 공간이다. 불순한 마음을 품을 수 없다. 절대복종과 믿음 외에 다른 의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권위를 세우고 싶었던 인류는 신전의 줄기둥을 일상으로 끌어들인다. 책에서 인용한 영국 아파트인 ‘로열 크레센트’나 티베트 불교 최고 교육기관이자 박물관인 중국 간쑤성 라브랑 사원, 여의도 국회의사당, 용산 전쟁기념관은 신처럼 숭상 받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나타냈다. 줄기둥은 그 욕망의 결과물인 셈이다. 

 

■ 종묘, 이세신궁(伊勢神宮)

종묘 정전은 한국에서 가장 긴 목조건물로 101미터이다. 맞배지붕에 단순한 구도이다. 제사공간으로 비워놓은 월대까지 넉넉한 여백을 허용했다. 죽은 이를 추모하는 장소인 만큼 번잡한 허세가 없다. 경건과 참회와 침묵이 흐른다. 역대 조선 임금 영혼을 모신 곳이므로 신전과 같다고 한다. 종묘사직을 국시로 여긴 조선에서 임금은 궁궐보다 종묘를 더 중하게 여겼고 관리에 철저했다.

 

“유교는 가부장제가 근간이었고 이 가부장제는 제사를 통해 유지되었습니다. 임금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가부장이고, 그 가부장의 조상인 역대 왕들에게 제사하며 정통성을 널리 알립니다. 나라에서 가장 신성한 건축물이었던 것입니다.”

 

조선은 가부장제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던 만큼 엄격한 제사가 요구되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유교 폐단이나 조선 기득권의 착취를 정당화하고 백성을 지배하기 위한 명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건축물은 시공간을 넘어 당대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유산이다. 비록 왕조유지를 위한 구축이었겠지만 종묘 정전이 지닌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사상과 마찬가지로 문화와 기술을 가늠하고 연구하며 계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종묘는 우리 건축사에 매우 이례적이고 독보적인 유산이다.

 

흥미로운 점은 종묘는 권위를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제된 감정과 경건함 가운데 심지어 아늑함마저 든다. 흡사 종교 시설처럼 편안하다. 중심축을 배치해서 계속 다른 건물을 등장하게 하는 중국 태묘와 달리 종묘는 시야 전체를 여러 건물로 채운 부채꼴 모양이다.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처럼 한눈에 시야가 확보되는 종묘는 아이맥스 같은 감동을 준다고 한다.

이세신궁(伊勢神宮)


시간 흐름에 따라 증축한 종묘와 다르게 일본 이세신궁은 20년마다 새로 짓는 신전이다. 일본 최고 여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시는 내궁과 농경의 여신 도요우케오카미(豊受大神)를 모시는 외궁으로 구성됐다. 일본 토착 종교인 신토(神道)에서 가장 높은 신인 태양신을 모시는 이세신궁은 일본 황실의 조상신을 모신다. 서기 260년에 신축한 것으로 알려진 이세신궁은 땅을 두 필지로 나눠서 한 땅에 건물을 짓고 20년이 지나면 옆 빈 땅에 새 건물을 짓는다. 20년 된 옆 건물은 헐고 빈 땅으로 비워 놓는다. 2000년 동안 “언제나 새 건물”이다.

 

식년천궁(式年遷宮)을 하며 20년마다 새 건물을 짓는 이유는 “영원성”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깨끗한 신전을 지으면 신은 더 젊어지고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될 것이라는 믿음, 영원하기 위해 새로 짓는다.” 유한한 인간이 영원불멸을 추구한 셈이다. 말하자면 건축이란 유한한 인간이 무한을 염원한 의지이며 표상이 아닐까. 왕조 불멸을 기원하고 신과 대면을 바라마지 않는 이데올로기 집약체가 궁전과 신전이었던 점을 상기하면 말이다.

 

■ 자금성, 베르사유, 경복궁

저자는 건축을 결정짓는 요소는 예산과 땅이라고 한다. 대개 이 두 가지 요소에 의해 건축이 재단되는 것과 반대로 권력이 결정하는 궁전은 제약이 없다. 권력이 집중된 곳이니만큼 궁전은 최고 자원과 최고 기술이 동원된다. 절대 권력일수록 궁전은 크고 화려한데 그 이유는 권력자는 비교할만한 대상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크기로 치자면 자금성부터 떠오른다. ‘금지된 붉은 성(The Forbidden City)’이라는 뜻을 가진 자금성은 위압적이다. 두껍고 높은 벽과 육중한 문이 겹겹 둘러친 자금성은 황제 권위에 범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크고 무겁게 지어 방문객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내려다보는 건물이다. 복종과 군림만 있는 곳이므로 풍경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8천개의 방은 큰 스케일 위용을 뽐낸다.

 

황제 궁전은 당대 모든 역량이 총동원된 건축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국가 근간을 건드린다. 자금성보다 방이 더 많은 베르사유는 황제의 권능으로 자연까지 굴복시킨 건축물이다. 8킬로미터에 달하는 정원은 왕의 눈에 모든 것을 들어오게 설계했다. 심지어 귀족들을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 궁전에서 살게 했다고 한다. 왕권강화와 지방 귀족 세력 견제하려는 의도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권력 강화에는 유지비가 많이 든다.

 

지금이야 자금성과 베르사유는 유명 관광지로 꼽히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명물이지만 이면 그늘에는 희생자의 피가 서렸다. 왕과 귀족들이 흥청망청 지낼 무리한 토목공사는 과중한 납세와 가혹한 노동착취가 따랐다. 나라살림이 거덜 나고 원성이 높아지면 건축물은 권력자와 함께 처단 대상이 된다. 그래서 저자는 건축물에 집착한 독재자일수록 예외 없이 짧게 존재하다 사라졌다고 한다. 사람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무시하고 자신을 위한 하드웨어 허망함이라는 것이다.

 

“권력이 건축을 중시하는 것은 권력의 상징이 되는 건축과 마력 때문입니다. 대중은 그 화려함과 거대함에 매혹되어 권력자에게 절대 복속되고, 권력자는 이로써 권력을 생산해냅니다. 그래서 건축은 권력을 보여주는 극장인 것입니다.”

 

경복궁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원군은 아들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경복궁을 중건한다. 임진왜란 때 불 탄 경복궁은 1865년 4월 중건을 시작해 1868년 7월 입주했다. 당백전을 주조하고 관료들에게 강제로 기부금을 받았으며, 4만 명을 강제 동원했다. 서양 열강이 제물포 앞바다에 들어와 문호개방을 외치던 즈음에 왕조 부흥을 꾀했던 것이다. 세계가 공화정을 흡수할 때 고종은 일본을 견제한답시고 제국을 주창했다. 경복궁 중건은 시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경복궁은 한국에서 마지막 왕조가 살던 집이다. 비운의 장소로 기억되는 까닭이었겠지만 저자가 유독 경복궁에 보인 애정은 한국 근현대사가 집중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가 자행한 경복궁 훼손은 모멸감을 건드렸을지도 모른다. 일제 강점기 때 건물 90퍼센트가 소실된 지금의 경복궁은 규모가 많이 축소됐다. 원래 칸수가 8천개에 이르렀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1995년 8월 15일 오전 9시 21분 조선총독부 첨탑이 분리되면서 상흔의 기억을 떨쳐내었다고는 하지만 경복궁을 규모로 논하는 평은 사라지지 않았다.

 

저자는 한국보다 국토면적이 40배 큰 중국에서 자금성 규모 70퍼센트 수준인 경복궁은 결코 작은 궁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경복궁은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었고 저자 거리와 맞닿아 있다. 왕권과 신권이 견제하는 관계였고 강력한 시각연출로 주변 나라에게 조공을 받아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으므로 특별한 효과를 억지로 집어넣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 히틀러가 꿈 꾼 ‘게르마니아’

히틀러가 세우고자 했던 제국의 수도 ‘게르마니아’ 설계는 이렇다. 인구 1억 명. 폭이 100미터가 넘고 길이가 7킬로미터에 이르는 중심 직선도로를 만들고, 그 도로 끝에 초대형 돔 건물인 국민 대회당을 세우는 것. 돔은 너비 290미터, 높이 250미터, 수용인원 18만 명. 바티칸 산 피에트로 대성당 돔의 17배가 넘는 수준. 로마의 개선문에 해당하는 120미터짜리 새로운 문을 세울 계획이었다.

 

물론 제국을 통일하기 위해 한창 전쟁 중일 때 길이만 4백 미터에 달한 총통 관저를 먼저 지었다. 책에 따르면 총통관저는 끝없는 계단과 유리창 없는 돔, 거대한 방, 137미터에 달하는 홀, 천장 높이 9미터였다고 한다. 마치 SF 영화 장면 같다. 외부와 차단된 폐쇄된 동선으로 사람을 조종하고자 하는 의도였던 것 같다.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빛의 대성전(Cathedral of Light)’


한때 건축가가 꿈이었던 히틀러가 권력을 이용해 건축에 집착한 이유는 대중선동과 억압에 이만한 도구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정점이 뉘른베른크 스타디움이다. 줄기둥을 세운 건물을 배치하고 주변부에는 산 피에트로 광장 줄기둥처럼 스탠드를 빙 둘러쳤다. 40만 명이 참석한 전당대회 하이라이트는 대공 서치라이트 130개를 밤하늘에 수직으로 쏘아 올린 순간이다. 하늘 끝까지 히틀러 권위를 세운 것 같이 경외감으로 가득찬 밤이었다. ‘빛의 대성전(Cathedral of Light)’은 ‘히틀러의 애완견’으로 불린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연출했다.

 

■ “건축은 형태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생각, 곧 의도를 알아야 제대로 보인다”

저자는 뉘른베른크 나치 전당대회장 참석자들은 히틀러를 경외대상으로 여겼을 것이라고 한다. 한편의 장렬한 정치 쇼를 연출하면서 히틀러가 얻은 건 유대인의 피와 돈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얼마나 광기에 약한 존재인지, 인간이 얼마나 허상에 허약한 존재인지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었을 것이다. 히틀러는 이미지에 약한 인간의 속성을 철저히 이용했다.

 

흥미로운 건축사를 쉽고 차분하게 서술한 이 책에서 독자가 새겨들을 건 ‘허상에 대한 경계’와 ‘이면 톺기’이다. 크고 화려하고 오래된 건물 모습에 현혹되기 전 건물에 깃든 이야기, 즉 내용을 알아챌 때 건축은 우리에게 ‘공익 유산’이 될 것이다. “거대 건축물은 그래서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사람을 도구로 쓰는 잔인함을 함께 보여주는 두 얼굴을 가진 문화유산입니다.” 저자가 남긴 이 말을 곱씹으면, 민과 소통 통로 없이 외딴집으로 전락한 청와대와 지자체에서 앞다퉈 짓는 호화 청사가 떠오른다. 시민 세금으로 지은 집에서 시민에게 군림하려는 욕망 말이다.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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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송세월 2016.12.30 1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본준 기자님 밴쿠버 올림픽때 휘슬러 건물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대화했었는데 참 아쉬운 분이지요. 건축에 대한 지평을 넓혀준 분이고... 왜 이렇게 급하게 가시는 줄 모르겠어요.

  2. 딸기21 2016.12.30 1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언니, 벌써 다 읽으셨군요 ^^
    고마워요!

  3. 딸기21 2016.12.30 1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 드팀전 2016.12.31 0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이에요.건강하신가요?

    페북 외에는 잘 하지 않다보니 잊고 지냈습니다.
    구정은 기자가 페북에 기사 링크를 걸어서 보게되었네요.

    내년에 5학년과 2학년이 되는 아이들은 전에 키우시던 염소들처럼
    잘 먹고 잘 크고 종종 담장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5 kg 귤은 한줌의 건초더미처럼 하루를 넘기지 못하구요.
    종종 그럴싸한 핑계로 학교와 학원을 빠져 나가기도 합니다.
    저는 흰머리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미장원 아가씨들이 멋지다고 하는 말에
    속아서 그냥 두고 있습니다.

    마침 올해의 마지막 날인데 인사를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내년에도 건강하시구 좋은 일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산에서

    엄상준 올림

    • 윤미화 2016.12.31 2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아, 상준씨 반가워요.
      저는 잘 지내요.
      벌써 꼬마들이 이렇게나 컸군요.
      조금 있으면 질풍노도 본격시즌이 될 듯한데요.
      그러고보니 우리가 안지 10년이 훌쩍 넘었어요.
      흰머리와 주름살 늘만해요.
      아이들이 큰 것좀 봐요.

      소식 알려줘서 고마워요.
      이렇게나마 스르륵 불어오는 바람처럼 소식 묻고 얘기하고 좋네요.

      고마워요. 네 식구 모두 행복한 새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