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설명

1. 1961년 재판정에 나온 아돌프 아이히만(부스 안)

2. 1999년 재판정에 나온 모리스 파퐁

3. 2016년 12월 중앙지검에 출두하는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1.

1960년 5월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체포된 남자가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게슈타포 과장이었던 남자는 아우슈비츠로 유대인을 보냈다. 소위 ‘최종 해결’ 책임자였던 남자가 폴란드 수용소로 보낸 유대인은 5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독일이 패전하면서 남자는 미군에 체포되어 수용소에 갇혔다. 그러나 가짜 이름을 대고 수용소에서 나온 뒤 이탈리아로 도망갔다가 1950년 아르헨티나로 가는 배를 탔다. 남자는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명을 쓰며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듯했지만 10년 만에 도피 생활은 막을 내렸다.

 

이 남자 본명은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 1906년 3월 19일~1962년 6월 1일)이다. 독일 출신 미국 정치 이론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년 10월 14일~1975년 12월 4일)가 쓴 실제 재판 이야기《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아이히만은 나치 친위대였던 SS(Schutzstaffel) 중령으로 유대인 이송 최고 책임자였다. 1960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전범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2차 대전 당시 자기가 한 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법적인 책임은 없습니다. 도의적인 책임이라면 있겠습니다만. 제가 내린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 마음은 늘 가벼웠습니다. 물고기를 잡듯, 유대인을 잡아 목적지로 보내는 일은 단지 제 업무였을 뿐입니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이 한 말은 위에서 지시를 받고 한 일이기 때문에 나는 아무 책임이 없다는 말이다. 아이히만 말대로라면 법적 책임은 아이히만에게 명령을 내린 상부에게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맡은 업무가 수백만 명을 위험에 빠트리게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①. 아무리 상부 명령이라고 해도 옳지 않은 일을 할 수는 없다.

②. 법적 책임이 나에게 없으므로 문제가 안 된다.

③. 내가 아니어도 어차피 누군가 할 일이므로 양심에 가책을 받지 말자.

 

재판을 지켜봤던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의 판단력 마비를 이렇게 해석한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바보였기 때문이다.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2.

전쟁이 끝나고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로 도망갔던 1950년대부터 60년 초반에 프랑스에서는 과거세탁을 한 남자가 있다. 남프랑스 보르도 지방 치안 책임자였던 이 남자는 1942년에서 1944년까지 2년 동안 유대인 1690명을 폴란드 유대인 수용소로 보냈다. 당시 프랑스는 나치 꼭두각시로 비시 정권이 장악했다. 독일 패전이 임박하자 남자는 레지스탕스 정보원으로 변신한다. 레지스탕스 공로를 인정받은 남자는 나치부역자 척결에서 살아남았다.

 

기회를 잘 이용한 이 남자는 1999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전범 재판을 받은 ‘모리스 파퐁’(Maurice Papon. 1910년 9월 3일~2007년 2월 17일)이다. 파퐁 재판을 계기로 나온 소설이 《처절한 정원》(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문학세계사. 2005년) 이다. 


드골 정부 신임을 얻으면서 파퐁은 승승장구한다. 알제리 전쟁에 투입되어 반군 포로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파퐁을 견제할 힘은 없었던 듯싶다. 파퐁은 1958년부터 1966년까지 파리 경찰국장 재직 중 알제리 이민자 탄압에 앞장섰다. 알제리 이민자 희생자 수는 공식 집계만 200여명에 달하지만 진압작전에 성공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레지옹 도뇌르 최고 훈장을 받는다. 마침내 1978년 파퐁은 예산장관에 임명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오는 법이다. 보르도 지방 낡은 창고에서 발견된 파퐁의 ‘더러운 과거 문서’가 나오면서 1997년 파퐁은 법정으로 나왔다. 이때 파퐁은 여든 일곱 살로 연금을 받으며 안락한 노후를 즐겼다. 파퐁이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고령이라는 이유로 재판은 6개월이나 걸렸고 10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파퐁은 스위스로 도망을 갔다.

 

적극적으로 해외 수배령을 내리지 않은 채 허송세월 몇 년이 지났다. 여론이 악화되면서 파퐁이 스위스에서 호송되었지만 수감기간은 3년에 불과했다. 병보석으로 풀려난 파퐁은 2007년 아흔여섯 살에 죽었다. 장례식은 유언대로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와 함께 매장됐다고 한다.

 

파퐁은 재판정에서 이렇게 변론했다. 나는 위에서 시키는 일을 했고, 나치가 무슨 일을 벌이는지 몰랐다.” 아이히만도 법정에서 이와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어떠한 인간도 죽인 적이 없다. 나는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단지 이송하라는 명령을 실행했을 뿐이다.”

 

3.

지난 13일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채널A 취재진과 만나 청문회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경제수석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이 죄가 됐다.” 청문회에 출석했던 7일에는 손경식 CJ그룹 회장을 만나 이미경 CJ 부회장 사퇴를 강요한 혐의 추궁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박 대통령의 뜻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 아렌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인 ‘생각없음(thoughtlessness)’이 악의 근원이라고 한다. 영향과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이나 파퐁은 성실한 수행자였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자문하지 않았고 고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옥스퍼드 대학원 정책학 박사인 조원동 전 경제수석 같은 엘리트조차 나치 전범이었던 아이히만이나 파퐁과 똑같은 말을 한다. 


조 수석뿐만 아니라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해 박근혜 대통령 측근들과 비선 실세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인 사람들이 아이히만이나 파퐁과 같은 이들이다. 일제 협력자 출신 김창룡과 노덕술처럼 완장 채워주면 ‘시키는 대로 했다가 나중에는 알아서’ 어긋난 권력을 행사했던 인물을 21세기에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혹하다. 우리 현대사 비극은 이처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가운데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에서 나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권력에 의탁한 맹목적 욕망에 충실한 이를 가리켜 세간에서는 ‘정권의 개’라고 부른다. 개에게 미안한 일이다.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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