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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08 변경 지도

옛날 옛적에 한 왕이 살았는데, 그는 이 지구상의 모든 권력과 금은보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명랑해지기는커녕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침울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기의 궁정요리사를 오게 해서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는 오랫동안 충직하게 짐을 섬겨왔고 짐의 식탁을 가장 훌륭한 요리로 가득 채웠다. 그러나 이제 짐은 그대의 요리솜씨를 마지막으로 한번 시험해 보고 싶다. 그대는 짐에게, 짐이 50여 년 전 내 나이 한창일 젊은 시절에 시식해 보았던 산딸기 오믈렛 요리를 만들어야 하네. 50여 년 전 그때 짐의 선왕은 동쪽에 있는 나쁜 이웃 왕과 전쟁을 했었지. 그때 그 왕이 싸움에 이겨 우리들은 도망을 쳐야만 했어. 그래서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망을 쳐 드디어 어느 날 어느 어두컴컴한 숲속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는 숲속에서 길을 잃어 허기와 피로에 지쳐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어느 조그만 오두막을 발견하게 되었지.


그 오두막집에는 한 노파가 살고 있었는데, 그 노파는 뛰어나와 우리를 반기면서 손수 부엌에 나가서 곧 무엇을 들고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산딸기 오믈렛이었어. 내가 이 오믈렛을 한입 입에 넣자마자 나에겐 기적처럼 힘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고 또 새로운 희망이 샘솟는 것 같았어.


그때만 해도 짐은 미성년의 소년이었고 또 너무 젊었기 때문에 이 맛있는 요리가 얼마나 좋은 것이었던가를 오랫동안 생각해 보지 않았어. 그러나 짐이 훗날 이 요리가 생각이 나서 짐의 전 제국을 뒤져 그 노파를 찾아보게 했지만 그 노파는 물론이고 그 노파의 산딸기 오믈렛을 요리해 줄 만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어. 그대가 만약 짐의 이 마지막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면 짐은 그대를 짐의 사위로 삼아 이 제국의 후계자로 만들 걸세. 그러나 만약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면 그대는 죽어야만 하네.”


이 말을 듣자 궁정요리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폐하! 정 그러시다면 교수 형리를 곧장 불러주십시오. 물론 저는 산딸기 오믈렛 요리법과 하찮은 냉이에서 시작해서 고상한 티미안 향료에까지 이르는 모든 양념을 훤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오믈렛을 만들 때 어떻게 저어야 마지막 제 맛이 나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폐하! 저는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제가 만든 오믈렛은 폐하의 입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폐하께서 그 당시 드셨던 모든 향료를 제가 어떻게 마련하겠습니까. 전쟁의 위험, 쫓기는 자의 주의력, 부엌의 따뜻한 온기, 뛰어나오면서 반겨주는 온정, 어찌 될지도 모르는 현재의 시간과 어두운 미래, 이 모든 분위기는 제가 도저히 마련하지 못하겠습니다.


궁정요리사가 이렇게 말을 끝맺자 왕은 한참동안 묵묵부답이다가 곧 그에게 선물을 가득 챙겨 주고는 그를 그의 직책으로부터 파면시켰다고 한다.


_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에서〈산딸기 오믈렛〉_




‘아우라(Aura)’는 “예술 작품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를 가리킨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7.15~1940.9.27)이《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에서 처음 언급한 ‘아우라’는 이후 작품의 가치를 논할 때 자주 사용됐다. 벤야민은 앞에서 인용한〈산딸기 오믈렛〉에서 보는 것처럼 ‘아우라’를 거론할 때 ‘원본의 힘’을 강조한다. 아직 기술복제가 등장하기 이전 원본은 곧 진리였다. 복제가 실현되자 기술은 반론을 제기했다. 즉 “원본은 순간에만 존재할 뿐 감동은 별개”라는 논리다. 짝퉁도 얼마든지 감동을 유발하고 아우라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복제는 대중에게 예술을 쉽게 제공했다. ‘특정’과 ‘고급’을 상징했던 예술은 복제를 거듭하여 대중을 장악했다. 예술은 이제 앤디 워홀의 콜라병 복사처럼 일상이 되었다. 마침내 예술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기계(사진기)를 이용한 사진을 두고 예술이다 아니다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결론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신자유주의의 무한 확장은 상상 이상의 생산물을 쏟아냈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복잡한 생활양식과 기술이 출현했다. 감동의 시간은 갈수록 짧아진다. 이제 사람들은 복제에 만족하지 않는다. 피조물을 만든 신을 흉내 내듯 개조를 원하게 된 것이다. 


자본은 행성 지구와 인류가 지금까지 만든 모든 원본을 구닥다리로 여기는 것처럼 자연을 뒤엎고 문화를 바꾸고 마침내 사람의 삶까지 쥐락펴락한다. 정치, 경제에 이어 자연과 예술마저 자본의 숙주가 된 지금 사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사진집《변경 지도》(이상엽 지음. 2014.12. 현암사)를 읽는 동안 발터 벤야민의 ‘원본 아우라’에 대해서 생각했다.


《변경 지도》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낱말은 ‘변경’외에 ‘자본주의의 민낯’이다. 표현을 바꿔도 ‘신자유주의의 광풍’외에는 달리 떠오르지 않는다〈2008-2014 변경을 사는 이 땅과 사람의 기록〉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2008년에서 2014년까지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했다. 


변경은 소외된 땅이며 강제로 밀려난 땅이고 곧 사라질 땅이다. 있었으나 없어질 땅이고 없는 땅이다. 곧 잊힐 땅이므로 기억에서 버려진 땅이 변경이다. 변경의 미래는 그렇다. 그 땅을 이루던 자연과 그 땅에 기대 살던 사람이 완악한 자본의 광풍에 스러진 곳이 변경일까. 이 땅 어느 곳이 변경인 것일까.


“만들어진 아름다움에 감추어진 신음하고 소외된 우리 땅을 톺아보려 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르포르타주 작가 이상엽의 글은 곡진하며 사진은 응축됐다. 뉴타운 정책, 4대강 사업, 장애인 복지, 해고 노동자, 송전탑과 원자력발전소, DMZ, 세월호 참사. 사진이 가리킨 현장을 나열하고 이름표를 붙여보자. 용산, 마포, 낙동강, 금강, 새만금, 차별, 쌍용자동차, 기륭전자. 콜트콜텍, 밀양, 고리, 연평도, 교동도, 안산, 팽목항, 광화문까지. 여기에 꼬리표를 붙인다면 재력과 지위를 들먹이며 냉소와 차별을 던지는 몰지각이 될 것이다. 


“변경은 내 안에 있었다. 멀고 황량하고 긴장감이 느껴지는 변경. 변경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풍경 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변경은 공간적으로만 구축되는 것은 아니다. 변경은 서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공통의 경험, 역사적 기억에 관한 의식을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관행과 담론 속에서도 구축된다.”


영토의 단위를 넘어 ‘인간 본성의 갈비뼈’ 사이에 깃든 ‘타자 밀어내기’까지 변경은 현실이다. 저자는 국가와 국민으로 연결된 유기적 신체 관계에서 부분이라도 절단되면 ‘단절’을 대입해도 해석이 가능하다 사람의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변경을 여행했거나 변경에서 살았거나 변경을 목격하고 경험한 신체는 아프다. 저자가 가리킨 시간의 경과 속에서 지속된 자연스런 영토적 단위를 ‘지리적 신체’에 비유한다면 지리적 신체를 절단하고 불태우는 행위는 지리적 신체에 깃들었던 사람의 삶을 떠밀거나 주저앉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나의 울타리’ 바깥으로의 외출이 쉽지 않은 연대가 필요하다. 사람은 자기 터전과 몸을 이기주의의 진지로 삼는다. 그악스런 배타성은 지리적 신체와 사람의 신체가 연결됐고 지리적 신체끼리 혹은 사람의 신체끼리 그물코처럼 이어졌음을 부정한다. 그러나 몰라서 그런 게 아니다. 착취 대상으로 삼아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파국은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중심과 변경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사회 전체를 유동하게 만든” 신자유주의의 힘찬 페달 때문이다.


저자가 찍은 흑백사진은 손으로 만지면 검은 물이 뚝뚝 묻을 듯 농축됐다. 극사실로 드러난 사진은 검고 무겁고 눅눅하다. 안셀 애덤스(Ansel Adams 1902~1984)가 참여했던 ‘F64’ 그룹[각주:1]의 풍경 사진처럼 더하고 뺌 없이 사실을 재현했다. 파괴와 침탈을 날것으로 기록한다. 저자가 이렇게 ‘있는 그대로’를 은폐하지 않고 고통을 드러낸 사진을 찍게 된 뿌리를 폴 스트랜드(Paul Strand 1890~1976)[각주:2], 루이스 하인, 아론 시스킨드, 헨렌 레빗, 잭 매닝이 만든 좌파 사진가 집단 ‘포토리그’[각주:3]에 있다고 밝힌다.1936년부터 1951년까지 뉴욕에서 활동한 ‘포토리그’는 사진사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 사진 그룹이었다.


“사진은 막대한 사회적 가치를 갖고 있다. 사진가들에게는 오늘날 세계에 대한 참된 이미지를 기록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오랫동안 사진은 조형주의자들의 헛된 영향 때문에 고통 받아왔다. 포토리그는 미국을 쵤영하기 위해 카메라를 사용하려는 정직한 사진가들의 손에 카메라를 되돌려주려는 것이다”_포토리그 선언문


⊙ 루이스 하인: 이탈리아 상점가의 눈먼 거지.1911년


저자가 찍은 사진은 ‘F64’나 포토리그’의 맥락을 이어받아 사회의 구석진 곳, 습하고 균열된 곳, 고통받고 울음이 넘쳐나는 곳을 향해 초점을 맞춘다. 그곳은 예열 없이 훅 달아올랐다가 단박에 잿더미로 변한 폐허다. 새만금은 기네스북에 올랐고 관광명소가 되었다. 물고기는 사라지고 물고기를 낚던 사람은 도시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했다. 밥벌이의 자존감이 부정된 삶이다. 한반도 남쪽에 모래사막을 만들었던 4대강 사업은 토건광풍의 산증인이다. 사람과 새와 나무와 물고기의 풍경을 공책을 쭉 찢어버리듯 한 번에 버렸다. 저자는 이 극렬한 만행의 주범으로 “자본과 오래된 권력”을 꼽는다.


자본과 오래된 권력은 ‘중앙의 힘’을 상징한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저자가 지적하지 않은 비수 하나를 추가한다. 변경에 거주하면서 중앙을 숭모하는 무리 말이다. 무리라고 하니까 특정 집단처럼 비춰질 수 있겠지만 그 스스로 피해자 운명에 처하면서 왁달박달[각주:4]하고 욱대기[각주:5]한 변경의 일부 거주자들이야말로 변경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잽싸게 짓밟는 자이기도 하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를 왕복하면서 변덕을 부리는 이들의 목적은 자본과 권력을 향한 야욕을 무관심과 지적 나태로 위장한다. 지킬 수 없는 공약을 떠벌리고 조작을 일삼는 정치인을 뽑아주는 손은 누구의 손이던가.무지와 몰지각의 근기란 얼마나 강하던가! 칸트의 말처럼 손은 눈에 보이는 뇌의 일부인 것이다.


에둘러 자본주의니 신자유주의니 어렵게 말할 필요 없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땅은 겨울이었다. 봄이면 꽃이 피고 아이들이 태어나지만 한동안 이 땅은 겨울일 듯싶다. 


자살률 세계 1위, 청소년 자살률 1위, 낙태율 1위, 이혼율 1위, 고아 수출 1위, 대학 학비 부담률 1위, 40대 남자 사망률 1위, 빈부 격차 1위, 국민소득 대비 부동산 값 1위……비정규직 노동자 900만 명 전체 노동자의 50%, 생계형 알바 300만 명, 무직 가구 비율 17%여섯 가구 가운데 한 가구, 청년 백수 450만 명, 부패지수 아시아 3위, 생활만족도 OECD 꼴찌, 인구 1%가 사유지 57% 독점, 인구 10%가 국가 전체 부의 74% 점유, 곡물 자급률 26%로 OECD 꼴찌, 4인 가족 월수입 150만 원 이하 750만 명, 노동시간 OECD 1위……


다시 맨 처음 ‘아우라’로 돌아가 보자. 


“벤야민의 1932년 소논문인「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사진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기여를 한다”고 했다. 벤야민은 사진을 그림처럼 찍거나 꾸미거나 해서 거기에 ‘아우라’를 다시 불어넣으려는 시도는 종교적인 맹목주의라 했다.


우리는 사진의 어디에 투신해야 하는 것일까. 원본이 지닌 ‘결’과 ‘틈’마다 옹골차게 스며 들어찬 촉수이다. 더듬거리고 흔들리는 가운데 내밀성 지향을 지속할 때 진실은 말한다. 저자의 결기가 압축된 사진은 저자 스스로 “절망에 길들임이 두려워” 사진을 찍는다는 대목에서 나는 제이콥 브로노우스키(Jacob Bronowski 1908-1974)[각주:6]가《인간 등정의 발자취》에서 말한 “손은 정신의 칼날”이 떠오른다. 변용하자면 ‘눈은 정신의 등사기’이다. 초점이 어느 곳을 맞추고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사진이 찍히기 때문이다.




  1. 1932년 에드워드 웨스턴을 중심으로 그이 영향을 받은 (주로 미국 서해안에서 활동하던) 사진가들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한 그룹. 안셀 애덤스(Ansel Adams), 이모켄 커닝엄(Imogen Cuningham), 존 폴 에드워드(John Paul Edwards), 소냐 노스코비아크(Sonya Noskowiak), 헨리 스위프트(Henry Swift), 윌러드 반 다이크(Willard Van Dyke),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의 멤버로 구성되었다. F64는 피사계 심도를 극대화하고 사물을 선명하게 묘사하기 위해 대형 카메라 렌즈의 조리개를 가장 작은 구경으로 조인 조리개 수피를 의미한다. 주로 자연을 소재로 미국의 독특하고 웅대한 충경이나 나무, 바위 등의 조형을 리얼리즘에 입각해서 표현함으로 써 자연의 신비, 존엄성 등의 묘사를 추구했다. 1932년 샌프란시스코의 드 영 기념 미술관(M. H. de young Memorial Museum)에서 창립 전을 개최했다. 그룹 활동은 단기간이었지만 부드러운 톤의 회화주의 사진이 주류였던 당시 전위적인 그룹으로서 사진 계에 강렬한 영향을 끼쳤다. 극사실 풍경을 사진으로 재현하는데 힘썼으며, 국립공원 파괴 과정을 공개해 자연훼손 경각심을 일으키는데 기여했다. [본문으로]
  2. 미국 사회주의 동맹에 소속된 좌파 사진가. 러시아 영화감독 에이젠슈테인에게 영화를 배우고자 러시아로 건너갔지만 매카시 열풍에 밀려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떠돌았다고 한다. [본문으로]
  3. 1936년부터 1951년까지 폴 스트랜드가 주축이 되어 뉴욕에서 활동한 사진가 그룹이다. 1930년 국제노동자구조협회 문화 활동으로 시작했다. 강연, 사진교육, 취재, 전시,사진 작업, 잡지 발행 등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빨갱이 사냥에 몰려 해체됐다. 포토리그에서 사진을 공부한 사람이 1.500명 이상이었고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들을 배출했다. 오늘날 다큐멘터리 사진은 포토리그 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평가한다. [본문으로]
  4. 성질이나 행동이 곰살갑지 못하며 조심성 없이 수선스럽다. [본문으로]
  5. 1. 난폭하게 윽박질러 위협하다. 2. 억지를 부려 우겨서 제 마음대로 해내다. [본문으로]
  6.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을 찾기 위해 전 생애를 바친 20세기의 진정한 지식인. 수학자, 희곡작가, 생물학자이자 과학사학자이다. BBC의 다큐멘터리 《인간 등정의 발자취The Ascent of Man》의 진행자와 동명의 책 저자로 널리 알려졌다. 1908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1차 대전 중에 독일로 이주했으며, 박해를 피해 1920년에 가족이 모두 영국 런던으로 이주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후 영국 국토안전부에서 일하였고, 2차 대전 중에는 영국 공군을 위한 폭격전략을 수학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했다. 영국 석탄국 소속 연구소 소장으로 근무하면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폭투하 소식을 듣고, 전공을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바꾸었다. 1945년 원자폭탄의 효력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가 재앙과 같은 끔찍한 실상을 목격한 뒤 군사연구를 중단했다. 그때부터 과학의 도덕적인 측면에 관심을 갖고 생명과학과 인간성 탐구로 연구 방향을 선회하면서 과학의 인간적 측면을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에 주력했다. 1964년부터 죽을 때까지 미국 샌디에이고의 소크 생물학 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생물철학 분야에서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주요 저서로 《인간을 묻는다》 《과학과 인간의 가치》 《인간 등정의 발자취》 《서양의 지적 전통》 등이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윤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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